#제61화 (11)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사람들의 통행량은 늘어난다.
퇴근 시간이 겹치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길거리를 다니기에 위험해지니 서둘러 볼일을 끝마치려는 것이다.
그리고, 통행량이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드는 곳이 있었다.
못해도 20년 전에 지어진 3층짜리 낡은 건물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 거리.
이곳은 평소에 사람들이 제법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오래되었다고는 해도, 그만큼 오래 영업해 온 가게들도 있고, 또 월세가 싼 곳도 있었기에.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는 사람들이 이상하리만치 다가오지 않고 있었다.
마치 아무도 없는 도시와도 같은 황량함과 침묵만이 가득 차 있을 때, 그 침묵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흐어어어억! 아아아악!”
골목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한 남자가 영혼까지 고통받는 듯한 소름 끼치는 절규.
그리고 그 절규를 내지른 남성은 도로변으로 다급히 뛰쳐나왔다.
“허억…… 헉!”
남자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팔이 꺾여선 안 될 각도로 꺾인 채 다급히 도로에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왜, 왜 아무도 없는 거야?!”
풀어 헤친 셔츠와 적당히 넉넉한 양복, 그리고 금목걸이와 목덜미에 힐끗 보이는 문신.
누군가 본다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거나 피할 것 같은 남자였지만, 남자는 공포에 질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시내, 시내로 가면……!”
남자는 팔의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는 건지, 아니면 고통을 느낄 만큼 여유가 없는 건지 다급하게 불이 밝은 시내 지역으로 가려고 했다.
물론 누군가가 이 광경을 봤다면, 조폭들 간의 지역 항쟁에 도망쳐 나온 사람인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남자의 상황은 그런 사소한 게 아니었다.
물론 사람이 죽어 나가고 피가 튀는 그런 상황을 사소하다고 할 순 없지만, 남자가 겪은 일은 그런 게 사소하다고 할 정도였다.
‘다 죽었어……. 왜, 왜?’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각성자들도 제법 포함하고 있는 힘 좀 쓰는 조직이었다.
당장 서울 쪽에도 사업장이 몇 개 있었으니 약한 곳은 아니었다.
물론, 전국구라기엔 모자라지만 나름 이 지역에선 힘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 바깥에 나갈 일이 있어 나갔다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조직의 전원이 죽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은 하나같이 멀쩡하게 죽은 게 없었다.
피부와 몸이 분리된 사람도 있었고, 몸이 으깨진 듯한 사람도 있었다.
‘각성자들이 있는 조직이랑 싸우면 그런 일이 있긴 하지만……!’
물론 시체나 처참하게 죽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단 두 명이 그런 참상을 만들다니……!’
남자는 그 참상 중간에 여유롭다는 듯이 서 있는 한 명의 덩치 큰 남자를 봤을 때 전국구 조직에서 보낸 행동대장인 줄 알았다.
힘으로 통합하는 게 가장 깔끔하니까, 여력만 된다면 조직의 통합은 그렇게 하는 게 좋겠지.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평소엔 사람을 안 죽이다가, 조직 간 항쟁에서나 싸움의 흥분에 머리에 피가 쏠려 무심코 죽이고 마는 경우.
그럴 때 말고는 사람을 잘 안 죽이는 그들이었다. 물론, 배신자들을 처분하거나 하는 경우에는 마음에 거리낌이 별로 없었다.
그런 그들과는 다르게, 사람을 죽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아니, 오히려 죽이면 제일 편하다는 듯이 무심하게 시체들을 쳐다보는 눈빛을.
그리고, 목격자인 자신을 바라보며 아무렇지 않게 손을 휘두르는 모습에서 그는 위험한 인물이란 분위기를 느꼈다.
그 직감은 들어맞았고, 그는 팔 하나를 내주고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도망쳐서 경찰을 찾기 위해…… 아니면 도움이라도 청하기 위해 달리는 남자.
그는 약하긴 해도 강화 계열의 각성자였기에 달리는 속도는 자신이 있었다.
‘빨리…… 빨리 경찰에게……!’
범죄에 몸을 담은 사람이 경찰을 찾는 상황이 이상하긴 했어도, 지금 그런 걸 고려할 만큼 냉정하지 못했다.
아니,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경찰에 잡혀서 수감되는 쪽이 더 나았다.
그렇게 시내 쪽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그의 시야에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됐다, 난 살 수 있…….’
“저기…… 어디 가?”
그리고 그때,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국어로 들리긴 했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번역기를 통한 말투.
약간 어린 듯한 소녀의 목소리였지만, 긴장감에 남자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눈앞에 있는 한 예쁘장한 소녀. 중학생이나 되어 보일 법한 작은 덩치였지만, 남자는 그 소녀를 보자 몸이 굳었다.
‘그…… 그 괴물이랑 같이 있던…….’
“……시, 시내에…….”
“으~음. 시내? 저기, 시내에 맛있는 맛집 있어?”
남자는 희망을 품었다. 사람을 보자마자 죽이는 그 살인귀랑은 다르게 대화를 시도하는 상대의 말에서 희망이 느껴졌다.
“이, 있습니다! 양념갈비를 잘하는 집이……!”
그들 조직이 회식할 때도 종종 가고, 그도 평소에 애용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많이 찾아오는 맛집이었으니…….
“음, 난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별로인데…….”
소녀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자, 남자는 다급히 다른 맛집을 머리에서 떠올렸다.
“치, 치킨을 잘하는 집도 있습니다! 그…… 그리고……!”
다급히 기억을 뒤지려 하는 남자.
“……뭐, 됐어! 인터넷 보고 찾아볼게!”
소녀는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미소녀라고 생각할 법했으나, 소녀의 웃음에는 살기가 묻어 나왔다.
“아, 안 됩니다……! 현지 사람이 추천하는 집이 더 믿음직한……!”
남자는 다급해져서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으려 했으나, 그 말이 이어지진 못했다.
차악!
물에 젖은 고무판을 세게 내려치는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소리와는 다르게 거리에는 상당한 참상이 펼쳐졌다.
남자의 형태는 알아볼 수 없게 뭉개졌고, 주변으로 붉은 핏줄기가 뿌려졌다.
“아잇! 진짜! 피 튀었잖아!”
“…….”
아까, 사무실에서 조직원들을 참살한 큰 덩치의 남자가 도주하던 남자를 쫓아와 발로 내려찍은 것.
상당히 엄청난 기세였는지, 작은 핏방울들이 주변의 모든 건물들에 튀어 있었다.
“으으…….”
하지만 소녀는 옷에 튄 피가 더 짜증 난다는 듯, 덩치 큰 남자를 발로 툭툭 찼다.
“아저씨, 어떡할 거야! 피는 잘 안 빠진다고!”
“……미안하다.”
그리고 그때, 어두운 골목 안에서 한 남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피는 찬물로 빨아야 합니다. 그리고, 레몬과 베이킹소다도 도움이 된다고 하죠.”
“어? 진짜로?”
그렇게 걸어 나오며 이미 하나의 육편이 되어 버린 도망치던 남자의 시체에 다가오는 남성.
“으후~ 사무실에서도 그랬지만 정말 엄청나네요. 원래 세게 칠수록 핏방울 자국이 작고 멀리 튄다고는 하는데…… 저 멀리 있는 건물에도 튄 거 보이시나요?”
남자는 손가락으로 멀리 있는 건물을 가리켰고, 일반인이라면 거기 튄 작은 핏자국이 보일 리가 없었다.
“……보인다.”
“와! 진짜네? 엄청 작다!”
그러나 덩치 큰 남자와 소녀는 그 핏자국이 보인다는 듯 긍정했다.
“에휴, 맨날 사고는 두 분이 내시고…… 처리는 제가 하고……. 이거 보수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네요.”
“아! 그럼 내가 밥 사 줄게! 이 녀석, 죽기 전에 맛집이 있다고 했거든!”
소녀는 피를 뒤집어쓴 것도 개의치 않고 그렇게 말했다. 세탁 방법을 알아서일까.
“아, 양념갈비 잘하는 집 말입니까?”
“……알아?”
“네, 주변 지역을 다 조사했으니까 이……분의 사무실을 우리 임시 거처로 쓰기로 한 거잖습니까.”
이미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사람으로 지칭해야 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로 불러야 할지 잠깐 머뭇거린 남자.
남자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음, 곧 통제도 풀릴 것 같으니…… 시체를 치워야겠네요. 아직 안에 계신 거 압니다? 나오세요.”
남자의 말에 골목 안에서 한 여성이 걸어 나왔다.
“……아, 귀찮은데…….”
“아하하, 우리 중에서 이런 걸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이 당신뿐이라서요.”
“쯧, 으으…… 더러워.”
골목에서 나온 여성은 시체에 손을 얹었고, 이내 시체는 끓어오르는 소리를 내며 녹기 시작했다.
“우와~ 볼 때마다 신기해! 저기, 다음에 한 번 더 보여 주라!”
“……싫어, 더러워, 귀찮아. 나한테 이런 거 또 시키지 마.”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머니에서 일회용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고는 물티슈를 버렸다.
그리고 그 물티슈도,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치직거리더니 사라져 버렸다.
“그럼 난 잠깐 관광이나 하다가 올게.”
“네, 다녀오시죠.”
그렇게 덩치 큰 남성과 소녀, 존댓말을 하던 남성만이 남았다.
“자…… 핏자국은 당신이 처리해 주시죠. 프린세스.”
“어? 프린세스?”
소녀는 남성이 자신을 부른 이름에 의아해했다.
“……이번 작전에서의 호출명은 본인들이 정한 것 아닙니까? 프린세스라고 하셨으면서?”
“아! 그랬다! 미안!”
소녀, 프린세스는 그렇게 말하며 양손을 높게 들었다.
소녀의 손짓에 엄청난 광풍이 일어나며, 핏자국들을 쓸어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피가 묻은 곳에는 얼룩이 남았고, 그것은 처리할 방도가 없어 보였다.
카가가가각-!
그리고 겉 부분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길바닥과 건물의 벽면.
핏자국이 있던 부분이 깔끔히 깎여 나가고,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이는 거리가 되었다.
아주 미세한 외부 표면만을 깎아 낸 엄청난 컨트롤.
하지만 소녀는 피곤하단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저기, 으음…… 어…… 뭐였더라? 그 이름이?”
소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존댓말을 하던 남성을 쳐다보았고, 남성은 작게 웃으면서 답해 주었다.
“하하, 늘 그랬듯 파렌하이트입니다. F로 시작하는.”
“그게 무슨 뜻인데?”
“으음…… 매번 말했지만, 화씨온도를 붙인 사람이지요. 그래서 화씨온도가 F로 표시되는 겁니다.”
“음, 몰라도 되는 거네?”
“네, 그렇죠 뭐. 돌아갑시다. 옷도 갈아입으시고…… 뒷정리도 하고.”
남자…… 파렌하이트는 이내 발걸음을 돌려 아까 죽은 남자가 도망쳐 나온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체는 다 정리했는데, 그래도 엉망진창이 된 곳이니 청소는 해야지요.”
“나 옷 갈아입을래! 우리 짐 거기 있어?”
“……배가 고프다.”
지금까지 줄곧 과묵하게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입을 열었다.
“배달이라도 시켜 드려요? 지금 우리가 노출되면 조금 위험한데……. 변장 준비가 덜 됐습니다.”
“……먹고 싶다.”
“하하, 네. 마침 돈도 생겼으니 먹지요. 이 나라는 배달 문화가 발달했더군요.”
그렇게 말하며 세 명은 방금 전 살육이 벌어졌던 사무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존댓말을 하는 남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번역기로 대화를 나누었다.
한편, 영의는 옥션으로 향하고 있었다.
“돈을~ 바핟으며언~ 뭐를 살까요~.”
그는 기분이 좋아져 즉석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바이크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