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10)
일반적으로 사람이 눈앞에서 생각지도 못한 실수를 했을 때의 반응은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 너무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린다.
두 번째, 실수가 별것 아니라고 애써 태연한 척, 자연스러운 척을 한다.
세 번째, 그 실수를 덮기 위해 무리하게 뭔가를 시도하다 일을 키워 버린다.
네 번째, 침착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수습해 보려 한다.
그리고…… 눈앞의 베키는 그중에 세 개를 순차적으로 다 보여 주고 있었다.
일단 송곳을 손에 든 채 굳은 상태로 반쯤 부서진 연결 부위를 바라보고 있었고…….
“어…… 어어…….”
그런 다음, 애써서 태연한 척을 하며 허세를 부렸지만 목덜미에까지 식은땀이 나는 게 보였다.
“괘, 괜찮아! 원래 분해할 때는 과감하게 해야 하는 거야! 내, 내가 깔끔하게 고칠 수 있어! 지난번처럼!”
그렇게 말하고 나서 너무 당황한 건지, 아니면 모든 걸 부숴서 없던 일로 만들려고 하는 건지 망치를 들었다.
“이, 일단 조립을 하려면 다 분해해야겠지?! 한 번에 끝낼게! 망치 시간이야!”
이미 눈이 너무 떨리고 있어서 어디를 보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영의는 저러다가 자기 손이라도 때릴까 싶어 베키의 양손을 잡고 제지시켰다.
물론 자신이 맞을 경우는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진정해, 뭐라고 안 할 테니까. 그보다 고칠 수는 있지?”
영의가 양팔을 잡고 그렇게 말하자, 나름 안심이 된 건지 평정을 되찾아 가는 베키.
“어어, 어…… 어! 그래! 응! 당연하지!”
아직도 조금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그래도 망치를 든 손에서 힘을 빼는 것으로 보아 전부 부수려고 하진 않을 것 같았다.
“일단 한번 살펴봐. 그보다…… 이게 그렇게 쉽게 부서질 게 아닌데……?”
일반적 성인 여성보다 힘이 약하다고 봐도 되는 베키의 힘에 부서질 내구도라니?
베키가 반쯤 부서진 헬멧 부분을 놔두고 내부를 뜯어내기 시작했을 때, 영의는 생각에 잠겼다.
‘제품으로 나오면 안 되는 수준 아닌가? 아니, 헬멧인데 저렇게 쉽게 부서져도 되는 거야?’
영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베키의 입에서 힘 빠진 소리가 흘러나왔다.
“흐어어……? 이게 뭐야?”
“왜, 뭔데?”
영의가 베키의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허?”
그리고 그도 마찬가지로 의문이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내부의 기계 부분과 마정석으로 보이는 무언가의 잔해가, 새카맣게 탄 채로 눌어붙어 있었다.
“……저기, 원래 이렇게 하는 게 스타일이야? 조금…… 예술적인데?”
마치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 버린 회로 기판을 보는 느낌.
너무 상식과는 다른 형태라서 베키는 아예 새로운 스타일로 시도한 하나의 방식인 줄로만 알았다.
“……그럴 리가. 너도 지난번에 바이크는 봤잖아.”
비록 마정석을 사용하기는 해도 기본적 베이스는 지구의 기술이 바탕이기에, 어느 정도 기계와 비슷한 구조였다.
“그런데 이건 왜…… 이래? 아니, 그보다 이런 걸 쓰고 다녔다고?”
베키는 어이없어하며 검게 타 버린 기판을 공구로 쿡쿡 찔러 보았다.
“……형태를 유지하는 게 더 신기한 것 같은데? 영의, 너 이거 버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영의는 베키의 말을 들었지만 거기에 대답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럼…… 사고 때부터 저런 상태였다고? 헬멧에서 보이던 인터페이스도…… 알림 창도…… 헬멧이 원인이 아닌 거야?’
번개를 맞고 병원에 잠깐 입원해 있던 그때, 헬멧이 스스로 작동한 적 있었으나 아무도 그 사실은 몰랐었다.
그리고 지금, 영의는 실낱같던 단서마저도 잃고 말았다.
‘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번개를 맞고 이런 능력이 생겼다 뿐인데……? 이젠, 나도 모르겠다…….’
사람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막혔을 때, 좌절하거나 아예 그 일을 포기해 버린다.
영의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능력의 근원에 대해서 찾는 건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갑자기 찾아온 능력이니,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겠지. 그동안 최대한 조심해야겠어.’
배달을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배달을 받는 주문인들만큼은 영의에게 친절하게 대해 줬다.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한 나라의 왕이 대상이고, 그 사람한테 갖다 주려다가 경비병한테 제지당하거나 호위한테 다칠 수도 있고.
‘……그럴듯한 사람한테나 갖다 줘야겠다.’
한 지역의 배달이 있는 이상 다른 지역은 활성화가 안 된단 제약이 있었지만…… 목숨보다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영의는 그렇게 생각을 마치고, 탁자 위의 다 망가진 헬멧을 바라보았다.
“……원래 모양대로 되돌려줘.”
영의의 말에 베키는 깜짝 놀랐다.
고치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것도 아니라 원래 모양대로 해 달라고?
“어?! 왜? 이거…… 그냥 장식에 더 가까운데 이제?”
“……그냥, 원래 모양대로만 해 줘.”
영의는 새로운 전세방을 떠나보내며 속으로 눈물을 머금었다.
‘잘 가…… 내 전세방아…….’
옥션에서 받기로 한 돈을 쓸 계획을 다 세워 둔 영의였기에, 더욱 슬플 수밖에 없었다.
“어어…… 그러면 일단은 해 줄게.”
이내 빠른 손놀림으로 다시 복구를 시작하는 베키.
“흠, 여긴 이렇게였고…… 이쪽은 요렇게…….”
그리고 방금 전 부숴 먹은 부분은 마법을 사용하는지, 작은 빛이 나더니 이내 깔끔한 모습으로 복구되었다.
“짠! 마도구면 모를까, 다 부서진 거면 마법으로 수리하면 되지롱!”
이내 은색의 헬멧을 위로 들어 올리며 미소 짓는 베키. 그녀는 상당한 소득을 얻었다.
‘구조는 대충 봐 놨으니까 다음엔 이런 거 하나 만들어 봐야지!’
공학도와 돈, 그리고 시간이 있다면 못할 건 없다. 다만 발상이 필요할 뿐.
그리고 베키는 그중 셋을 가지고 있었고, 발상만이 없었지만 영의가 가져온 헬멧과 바이크는 충분히 좋은 발상이 되어 주었다.
‘입고 날아다니는 갑옷이나 만들어 볼까?’
현대였으면 저작권 문제가 일어날 법한 주제였지만, 그녀의 세상엔 그런 게 없었기에 베키는 즐거운 상상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헬멧을 받아 든 영의. 그는 머릿속으로 헬멧을 두어 개 구입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그리고…… 다음에 이거랑 똑같은 거 하나 가져올 테니까, 그거 개조 좀 해 줄 수 있어?”
“응? 해 줄게! 얼마든지! 친구를 위해선 얼마든지!”
베키는 영의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영의는 그 모습을 보자 뭔가 양심이 찔렸다.
‘……뭔가 세상물정 모르는 애 갖다가 이용해 먹는 느낌인데…….’
“다음에는, 잠 깨는 데 더 좋은 걸로 갖다 줄게…….”
커피보다는 카페인 음료가 더 보존하기도 좋고, 또 효과도 좋을 거라 생각해서 영의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베키는 그걸 다르게 이해한 건지, 영의를 꽉 끌어안았다.
“고마워! 역시 넌 내 진짜 친구야! 지난번엔 이틀 정도 밤새울 수 있었거든!”
“……잠은 제때 자고.”
이쯤 되니 영의는 베키가 정신이 이상한 것도 주변에서 제지해 줄 인물이 없어서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지, 미쳐서 주변인들이 떠난 건가?’
“하지만 컨디션이 너무 좋았었는걸?”
“……제때 자. 안 자니까 키가 안 크지.”
“키 따위 안 커도 돼!”
“……하아, 그건 네 마음대로 해라. 나는 집에 가 봐야겠어.”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헬멧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 했다.
“어어? 벌써 가게?”
“어…… 나도 내 집이 있으니까. 가야지.”
베키는 영의가 떠난다고 하자 눈에 띄게 아쉬워하며 풀이 죽었지만, 그래도 영의를 붙잡거나 하진 않았다.
“응……. 그래도, 나중에 또 와 줄 거지?”
“와야지. 네가 헬멧도 개조해 준다고 했고, 또 갖다 준다고 했잖아. 비슷한 거로 하나.”
영의의 말에 베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고마워! 친구야! 아, 그리고 차 가져가! 선물이야!”
“……고맙다.”
영의는 베키가 내미는 차 상자를 받아 들었고, 뇌영은 영의의 어깨 위에서 차 상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차 마시는 새라니. 제법 웃긴……. 아니, 있을 법한가?’
“내가 고맙지! 배웅해 줄게!”
베키는 영의를 따라 응접실 밖으로 나와, 집 앞까지 같이 나와 주었다.
그리고 헬멧을 쓰고 바이크에 올라타는 영의를 보며, 베키는 팔을 붕붕 흔들었다.
“잘 가! 다음에 또 와! 아니, 꼭 와!”
“그래, 다음에 올게.”
영의가 손을 작게 흔들자, 뇌영도 그걸 보고 따라 하려는 듯 한쪽 날개를 들어 올려 흔들었다.
“휘요옥!”
“윽…… 새는 안 와도 돼.”
“휘야악!”
베키의 거절에 뇌영은 화가 난 건지, 양쪽 날개를 펴며 위협하듯 울었다.
“으아앙! 내가 미안해!”
하지만 실제로 달려들거나 정말 화가 난 건 아닌 듯, 영의의 어깨 위에서 날아오르지는 않은 뇌영.
“하하, 얘도 제법 똑똑해. 진심은 아닐 거야. 나중에 조금씩 친해져 봐.”
“으으…… 난 조금 그런데…….”
베키는 영 적응이 안 되는 듯, 뇌영을 힐끔거렸다.
“그럼, 나 간다! 밥 잘 챙겨 먹어!”
“고마워! 잘 가! 친구야!”
이내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영의의 흰 바이크.
베키는 집 앞에서 줄곧 영의의 바이크가 멀어지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이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하던 연구를 계속 이어서 하기 위해…….
한편, 영의는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며 생각에 빠졌다.
‘나한테 이런 능력이 왜 생기게 된 걸까……. 하아, 뭔 단서가 없으니……. 어쩌면 내 각성자로서의 능력이 더 진화해서 이렇게 된 건가……? 근데, 그렇다기엔 왜 나 혼자만 이런 거지?’
그렇게 잠깐 고민하던 영의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정신 차려. 현재에 집중하자.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해결하면 되는 거야. 일단 오늘 해야 할 일이…….’
저녁에 옥션에서 금화를 판 돈을 수령하고, 또 다가오는 주말에 화연도 만나야 한다는 걸 생각해 낸 영의.
그리고 그는 다음 주에 있을 수연의 입학식까지 생각하자 조금씩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제법 오랫동안 침묵해 있던 알림이가 알림 창을 띄웠다.
[Alrim이 알려 드립니다. 조금 전 배달의 보상은 추후 수령으로 확정되었습니다.]
“……뭐, 그렇지.”
[그리고 또한 알립니다. 방금 전의 대응은 좋은 대응이었습니다. 주문인과의 친밀한 관계 유지는 도움이 됩니다.]
“……친밀보다는, 뭔가 반쯤 보살피는 느낌이지만.”
영의는 그렇게 알림이에게 대답을 해 주다, 문득 알림이한테 뭐라도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프로그램에 대놓고 말하는 느낌이긴 한데, 밑져야 본전이니까.’
“알림아, 너는 이거에 대해 뭐 아는 거 없어? 막 다른 세상으로 배달 가는 거.”
[Alrim이 알립니다. 그것에는 대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영의는 순간적이나마 잠깐 기대한 자신이 웃겼던지, 작게 웃어 버렸다.
“하하, 그렇겠지 당연히. 그보다, 나 자리 비운 동안 메시지 같은 거 온 적 있어?”
[네, 있습니다. 어머니, 신화연, 전지연으로부터의 3건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출력할까요?]
“그래.”
이내 메시지들을 확인하는 영의.
그리고 그는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눈치채지 못했다.
알림이가 통상적인 프로그램들이 하는 정보에 대해서 모른다거나 정보에 대해 역으로 묻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알림이가 그것에는 대답할 수 없다는 뭔가 아는 듯한 느낌의 말을 했다는 것에 대한 이상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