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9)
영의는 잠깐 혼란스러워졌다.
‘언제부터 내가 이 배달에 집착…… 아니, 열중했던 거지?’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라 했던가, 처음에는 착각이었다 해도 한두 번 왔다 갔다 하니 이 이상한 현상에 적응해 버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일종의…… 편리한 창구로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
“대체…… 언제……? 아니, 왜? 왜 그런 일이 일어났던 거지?”
일단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던 이유부터 되짚어 보려 하는 영의. 그러나 기억이 날 리가 없었다.
영의가 그렇게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베키는 영의에게 딱밤을 날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정신 차려!”
탁!
“아야! 아파!”
“휘익?!”
푸드덕.
자기가 때려 놓고 자기가 아파하는 베키와 영의를 때리는 것에 반응해 날아오르는 뇌영.
콕콕콕.
“아, 하지 마!”
“휘이익!”
베키의 머리를 다시 쪼기 시작하는 뇌영.
“아야! 아픈 건 난데 왜 나한테 그러는 건데?!”
베키가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자, 뇌영은 지금이 찬스라고 판단하고는 베키의 머리 위에 앉으려 했다.
“으아아! 하지 마!”
파닥파닥!
베키의 머리에 내려앉기 직전, 영의가 뇌영을 붙잡았다.
“뇌영아. 하지 마.”
영의는 아직도 머리를 감싼 채 주저앉아 있는 베키를 내려다보았다.
‘……나 참, 새 한 마리 무서워해서 벌벌 떠는 이런 애한테 도움이나 받고.’
딱밤이 아픈 건 아니었다.
그리고 베키의 정신 차리란 한마디에 영의는 고민에서 빠져나왔다.
‘그래, 생각해 봐야 내가 뭘 어떻게 알겠어? 난 원래 머리 쓰는 거보단 몸 쓰는 게 어울리는데. 그리고, 물어볼 대상은 따로 있지…….’
영의는 생각을 이어 가려다가, 베키가 아직도 머리를 보호하려 주저앉아 있는 것을 눈치챘다.
“히이익! 이젠 새가 날 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잡아서 일으켜 세우는 영의.
“진정해, 나니까.”
“어어…… 음.”
베키는 머리를 감싼 팔을 슬쩍 풀더니, 영의와 그의 손에 들린 뇌영을 보고는 마음을 풀었다.
“으으…… 난 새가 싫어…….”
“휘요옥!”
베키가 언제라도 뇌영이 다시 덤벼들면 막을 수 있게 팔을 여전히 올린 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알아들은 듯, 뇌영이 다시 퍼덕거리며 영의의 손 안에서 버둥거렸다.
“엄마야!”
“뇌영아, 하지 마. 날 지켜 주려고 하는 건 알겠는데…… 나 그렇게 약한 사람 아니야.”
“…….”
영의의 말에 버둥거림을 멈추고 얌전해진 뇌영.
영의는 이내 뇌영을 다시 어깨에 올렸다.
“으으으…….”
“……아무튼, 고맙다.”
“어? 어어, 어! 천만에!”
영의는 어떤 의도에서 했건, 일단 자신을 정신 차리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베키는 왜 감사를 표하는 건진 몰라도 일단 누군가에게 감사를 받는 일이 낯설었다.
“……뭐, 아무튼. 아까 하던 말 말인데…….”
영의는 말을 이어 나가려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모든 일의 발단은 헬멧에서 보이는 인터페이스가 나 스스로의 시야에 보이기 시작한 것부터가 아닌가?
이윽고 거기에 생각이 미친 영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어, 왜? 내, 내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뭔진 몰라도 내가 미안해!”
영의가 갑자기 일어서자 베키는 당황해서 영의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잠깐 물건 좀 찾으러 갔다 올게.”
“정말이지? 도망가는 거 아니지? 나만 놔두고 혼자 떠나는 거 아니지?”
영의의 팔을 꽉 붙들고 불안한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베키. 새로운 친구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떠나려고 하는 듯하니 불안해졌다.
“아니야, 정 불안하면 얘 놔두고 갈게. 금방 올 거야.”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어깨에 올려 둔 뇌영을 탁자 위에 두고는 바깥으로 향했다.
“어, 뭐? 뭘 놔둬?! 잠깐!”
그동안 나름 챙겨 먹고 살아서 살이 붙은 베키였으나, 근력은 보잘것없었기에 영의의 팔을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방 안에 둘만 남게 된 뇌영과 베키. 뇌영은 맹금류들이 가진 특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베키를 노려보았다.
“아, 하하…… 차…… 마실래?”
베키는 탁자 위에 앉아 있는 뇌영과 어색하게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물었다.
한편, 영의는 바이크로 다가와 그가 오랫동안 사용하던 은색의 헬멧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바이크는 교체했어도 헬멧은 그대로였지……? 사고 현장에서도 헬멧만큼은 멀쩡했고.’
그 당시에야 바이크보다 비싼 헬멧이니만큼 멀쩡했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멀쩡해도 너무 멀쩡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모든 사태의 원인은 이 헬멧에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가진 영의.
‘……알림이한테 물어보면 뭔가 알지도 모르지만…….’
알림이가 업데이트되는 것을 꾸준히 지켜봐 왔던 영의.
휴대폰이 이상하게 작동한다고 휴대폰에 있는 인공지능에게 뭐가 문제냐고 묻는 사람은 없다.
‘이게 뭐 X비스도 아니고…….’
알림이는 해 봐야 그냥 인공지능 비서 수준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고는, 헬멧을 챙겨 베키의 집 안으로 다시 돌아가는 영의.
그리고 아까의 응접실로 들어서자, 그의 눈에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소파 위에서 느긋하게 찻잔에 든 차를 마시는 뇌영과 어째선지 바닥에 앉아 눈을 내리깔고 있는 베키.
“이게…… 뭔…….”
그리고 베키는 여전히 뇌영이 두려운 듯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는 와중에도 힐끔힐끔 뇌영을 보았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영의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묻고 싶었지만, 물었다가는 베키가 더 불쌍해질 것만 같아 묻지 않기로 했다.
분명 바깥에서는 천재 마공학자이면서, 괴팍하긴 해도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인 베키였다.
하지만 지금 영의의 앞에서는…… 그냥 새를 무서워하는 친구 없는 살짝 미친 여자였을 뿐.
‘아, 친구는 있구나. 나 하나지만.’
이내 잡생각을 멈추고 탁자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헬멧을 내려놓는 영의.
“음……?”
“그거, 혹시 상태 좀 봐줄 수 있어? 예전에 번개에 맞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달까…… 그런 느낌이 있어서.”
“어어? 이거 나 주는 거야?”
베키는 헬멧을 보고는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보자…… 방어형이고, 무슨 기능인진 몰라도 다른 거랑 연결된 기능도 있고, 또…… 으음…….”
지난번처럼 핥거나 냄새를 맡진 않아도 뚫어져라 헬멧을 쳐다보며 빠르게 중얼거리는 베키.
“……주는 건 아니고…….”
영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베키는 눈에 띄게 실망했다.
“에에…….”
“잘만 조사해 주면, 비슷한 거로 하나 구해 줄게.”
오늘 배달만 끝내고 나면 현금이 제법 생기는 영의. 그는 그 돈으로 장비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영 믿음이 안 가는 헬멧이니까…… 회사에 반납해 버리고, 개인 헬멧이나 하나 사서 써야겠다.’
지금 베키에게 건네줬던 것만큼 하이 스펙은 아니라도, 비슷한 기능을 하는 싼 제품들은 제법 되니 구해서 줘도 되리라.
“정말?! 진짜지!”
베키는 영의의 말을 듣고 나서 갑자기 의욕이 넘치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스으으으읍-!
지난번처럼 헬멧의 향을 맡기 시작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물론 저런 기행을 하면서도 거짓말처럼 기계의 상태를 알아내고 점검하는 능력자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 적응이 안 되는 베키의 기행.
“음! 충격 감지 시에 역장 생성을 해 주는 마도구구나? 누군진 몰라도, 마감 부분이 안 보이는 걸 보니까 이쪽 실력은 있네!”
베키는 의외로 또 정확하게 용도를 짚어 냈다.
“보자~ 흐흠~ 음? 아! 이거 분해해도 돼?”
베키는 콧노래를 부르며 헬멧을 써 보려다가, 문득 생각난 듯 영의에게 분해의 허락을 요구했다.
“……안 돼. 내 물건이 아니거든.”
물론 옥션에서 돈만 받으면 몇 개든 살 수는 있지만, 일단은 회사의 물건이다.
‘……험하게 굴린 것 같긴 하지만.’
번개도 맞고, 쓰고 무림에도 다녀오고, 천마랑 추격전도 해 보고…….
‘아, 그땐 안 쓰고 있었나?’
“끄으……응…….”
그리고 베키는 영의가 분해를 하지 말라고 하자 앓는 소리를 냈다.
“분해를 안 하고 살펴보기엔 조금 힘든데……. 쪼오오끔만 하면 안 될까?”
엄지와 검지를 거의 붙여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틈을 만들며 영의를 바라보는 베키.
“…….”
영의가 침묵하자, 베키는 그 틈을 더 좁혔다.
“쪼오오오오끔만? 응? 다시 원래대로 해 놓을게!”
“……티 안 나게 할 수 있어?”
영의의 물음에 베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응? 그럼! 당연하지! 이 베키 님이라면 가능해!”
“……그래, 그러면 해 봐.”
“응! 나 정말 열심히 해 볼게! 그리고…… 하는 김에 개조도 조금…… 아, 안 되겠지? 미안.”
베키는 혹시 모를 기대감을 품고 그렇게 물어보았으나, 개조에 대한 건 영의가 고개를 저었다.
‘내 헬멧도 아니고, 뭘 어떻게 할지도 모르니……. 음? 잠깐만. 헬멧이라는 건 순수하게 사람을 지키는 용도니까…… 개조해 봤자 안 위험하지 않나?’
베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영의.
그는 상당히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말았다.
“그럼 한번 해 봐. 겉으로 티만 안 나면 돼.”
‘뭐, 정 안 되면 그냥 회사에 새 헬멧 하나 사 주고 마개조된 헬멧은 내가 써야지…….’
영의가 개조 허락까지 해 주자, 베키는 더더욱 신이 났다.
“우와! 넌 진짜 최고의 친구야! 고마워! 그럼 난 도구만 좀 가져올게!”
영의를 한번 껴안고는 후다닥 바깥으로 나가는 베키. 영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작게 웃었다.
“진짜 애 하나 키우는 느낌이네…….”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찻잔을 집어 들었다.
“휘요?”
설마 자기 말고 저 녀석도 키우는 건가 싶은 눈빛으로 영의를 쳐다보는 뇌영.
쾅!
“나 돌아왔어!”
그리고 몸에 공구 벨트를 걸치고 돌아온 베키. 아직 차를 입에도 대지 못했는데 바로 돌아온 것이다.
“……빠르네?”
“언제나 집 안 곳곳에 예비로 몇 개씩 놔두니까!”
무슨 비상금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공구 벨트를 챙겨 온 베키는 우선 헬멧의 겉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송곳 같은 것을 틈새에 끼워 넣었다.
팍!
힘차게 송곳을 끼워 넣고는 살짝씩 움직여 가는 베키. 영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뭔가 도둑이 자물쇠를 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지렛대처럼 송곳을 끼우고는 힘을 줘서 젖히려는 베키. 하지만 헬멧이 튼튼한 건지, 베키가 약한 건지 반응이 없었다.
“으음…… 여기서 힘을 조금만 주면 될 것 같은데…… 좀 도와줄래?”
베키는 힘에 부치는 듯, 영의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뭐…… 힘으로 하는 부분이면.”
영의는 베키의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베키에게 다가갔고, 그리고 그 순간!
파삭.
“……?”
“……어어?”
정상적이라면 나선 안 될 불길한 소리가, 헬멧에서 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