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8)
영의와 베키는 서로의 것을 물물교환(?)했다.
영의는 베키에게 햄버거와 커피를, 베키는 영의에게 차를 대접했다.
‘……상자째로 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햄버거를 신나게 물어뜯고 있는 베키를 보며, 영의는 차를 우리고 있었다.
“차를 마실 때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또 여러 방식으로 즐긴다고 하더라고!”
베키의 그 말에, 영의는 잠시 기대를 했다.
‘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접하려고?’
“근데 난 그런 거 모르니까,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즐겨! 자!”
라고 하면서, 차를 상자째로 주었다.
영의가 양철로 된 차 상자를 받아 들고 잠깐 당황하고 있자, 베키는 거기에 추가로 덧붙여서 말했다.
“아, 걱정 마!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만큼 상식이 없진 않아!”
‘다행이다, 그래도 상식이란 걸 말하는구나.’
“자, 뜨거운 물이야! 차는 뜨거운 물에 우려먹는 거지!”
그렇게 또 무슨 발명품인지는 몰라도 어떤 작은 원형 판과 그 위에 올려진 주전자를 보여 준 베키. 주전자 안에서는 물이 끓고 있는 듯 증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따악!
“아야!”
“길 가던 사람을 초대해도 이런 대접은 안 하겠다!”
그렇게 베키에게 정의의 딱밤을 한 번 더 시전하고, 인내심을 발휘한 영의.
그나마 다행인 점은 차를 우려낼 기구들은 다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차를 우려낸 영의는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들고 살펴보았다.
갈색의 물이 우러난 것이, 상당히 오래되었거나 가공된 찻잎 같았다.
‘……차라고 하면 녹차 티백이랑 보리차밖에 못 마셔 봤는데…….’
이내 작게 한 모금 하는 영의.
“……흠, 괜찮네.”
차 맛은 모르는 영의였지만, 쓴맛도 별로 강하지 않고 은은한 향이 감도는 것이 나름 좋았다.
“흥알?! 그어흠 그어 아 후께(정말?! 그러면 그거 다 줄게)!”
영의가 차에 대해 호평을 하자 베키는 입안에서 우물거리는 햄버거를 다 씹지도 않고 급하게 대답했다.
“……다 먹고 말해라.”
“흐히한 마은 바워 흐야 흐는드(그치만 말은 바로 해야 하는데).”
베키가 계속 입안에 햄버거를 남겨 둔 채 말을 하자 영의는 중지를 접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이제 힘만 넣어 주면 곧바로 딱밤의 준비 자세가 되는 손의 모양.
“으음?! ……이앙(미안).”
우물우물.
베키는 영의가 딱밤을 때리려는 모양을 보고 움찔하고는 침묵한 뒤 햄버거를 빠르게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의는 그걸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사람은 맞아야 정신을 차려…….’
영의는 예로부터 사람은 매가 약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차를 홀짝였다.
그리고 뇌영은 탁자 위에서 찻잎에 흥미를 보이고 있는 중. 그리고 그때, 베키가 햄버거의 포장지를 구기며 말했다.
“……다 먹었어.”
베키는 입안의 것만 다 먹으면 될 것을 굳이 햄버거를 전부 먹고 나서 대답하였다.
“그래…… 그래서 아까 하려던 말이 뭐였는데?”
영의는 찻잎을 먹으려는 뇌영을 제지하며 베키에게 아까 전 대화의 내용을 물어보았다.
“으음, 혹시 차…… 좋아해? 맛은 어때?”
“응? 괜찮은데?”
영의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찻잔에 남은 찻물을 마시는 뇌영.
“그럼 그거 다 가져! 난 또 사면 돼! 사실, 줄 사람도 없긴 한데…….”
베키는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말했고, 영의는 베키의 말에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나를 대하는 데 서투르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뭔가를 주려 한다……?
‘설마…….’
영의는 마음속 의혹을 풀기 위해, 베키에게 몇 가지 물어보았다.
“……시간 남을 땐 뭐 하고 지내지?”
갑작스러운 영의의 질문에 베키는 당황하면서 눈을 굴렸다.
“어어? 어…… 나는…… 그러니까…… 연구?”
영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만약 갑자기 돈이 떨어졌다. 그럼 빌릴 사람은 있나?”
“응? 그거야, 내 발명품 몇 개 저당 잡고 빌리면……. 그보다, 난 그럴 일 없어! 은근 돈 잘 번다고!”
베키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영의에게 작게 화를 내고는, 이내 멈칫하고는 다시 뒤로 물러나 앉았다.
“……그래, 이 집에 일주일에 대충 몇 명 정도 찾아오지?”
“어어, 어?”
영의의 기습 질문에, 베키는 당황해서 눈을 굴리다가 이내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 그러니까…… 가끔 날아드는 까마귀가 두 마리, 식료품 갖다 주는 사람이 한 명, 또…… 음…….”
그렇게 중얼거리며 소파에 앉아 자신을 노려보는 영의와 찻잎을 빤히 바라보는 뇌영을 힐끔 보는 베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더 접었다.
“다섯!”
“……거기에 사람은?”
“……두…… 아니, 세 명!”
베키는 필사적으로 그렇게 말했으나, 영의는 고개를 저었다.
“뇌영이 똑똑하긴 해도, 사람은 아니야.”
영의가 고개를 저으며 한 말에 베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럼 두 명.”
“거기서 안까지 들어오는 사람은?”
이젠 아예 고개까지 푹 숙이는 베키.
“……한 명.”
“그래, 그리고 그게 나란 말이지…….”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맞구만.’
“너…… 친구는 있냐?”
영의의 물음에 베키는 고개를 번뜩 들며 외쳤다.
“이, 있어!”
“그게 나란 소리는 아니지?”
영의의 말에 베키는 잠깐 움찔했다.
‘어, 어어…… 그렇다고 해야 하나?’
“…….”
베키는 잠시 할 말을 고민하던 그때, 눈앞의 영의가 자신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충격을 받았다.
‘뭔데?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베키가 봤을 때는 영의가 자신을 불쌍하단 듯이 보는 거였지만, 영의의 입장에선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애를 구하러 온 거였구나……. 나도 나중에 고독사로 죽는 건 아니겠지……? 아니지, 뇌영이가 똑똑하니 바깥으로 구조 요청정도는 하러 가주지 않을까…….’
영의가 혹시 모를 미래에 대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그 때.
“흐이잉…… 흐허어어엉…….”
베키에게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영의는 갑자기 베키가 울기 시작하자 당황했다.
“뭔데?! 왜 갑자기 우는 건데?”
그러고는 일단 우는 상대가 눈앞에 있을 때의 대처 방안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남자가 울고있다. 그럴 때는?
‘일단 술을 사 준다. 그리고 울었던 이유를 물어본다. 별 이유가 아니면 가볍게 때린다. 헤어진 거면 술을 더 사 준다.’
-여자가 운다. 그럴 때는?
‘……수연이 어릴 때 말곤 못 봤는데? 일단 눈물부터 닦아 줘야 하나?’
일단 주변을 둘러보고 천 같은 걸 찾아보는 영의.
‘손수건…… 아니면 휴지라도……. 음?’
주변을 둘러보던 영의의 눈에 들어온 건 뇌영의 부드러운 깃털.
‘흠, 깃털도 물을 먹던가……? 아니지, 지금 무슨 생각을?’
영의는 잠깐이지만 뇌영을 휴지나 손수건처럼 써 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도 여기서 얘랑 있다 보니까 광기가 전염된 건가……?’
그렇게 잠시 당황해하는 사이, 베키는 스스로 자신의 손으로 눈물을 훔쳐 내며 닦기 시작했다.
“쿨쩍, 흐윽.”
“……뭐 때문에 운 건진 몰라도, 울지 마라.”
영의는 베키의 옆으로 건너가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며 그렇게 말했다.
조금…… 아니, 상당히 미쳤고 상식이랑은 동떨어진 베키이지만…… 주변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건 좀 슬픈 일 아닌가.
“……안, 울어. 흐끅. 난 친구 같은 거 없어도 잘 산단 말이야…….”
“그래, 그래. 나도 그런 거 없이 잘 살아.”
영의는 베키를 달래 주기 위해 그렇게 말했고, 베키는 영의의 말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영양 섭취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 작고 마른 체구인 그녀는 영의보다 덩치가 작았기 때문에,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진짜……? 너도 집에 아무도 안 와?”
베키의 질문에 영의는 가족은 그래도 포함시켜야 하지 않나……란 생각으로 대답했다.
“……오는 사람은 있지.”
그래도 가족은 집에 찾아오는 법이니까.
“그럼 넌 내 마음 몰라! 흐어엉…….”
하지만 베키는 그걸 있는자의 기만이라고 판단한 건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냐, 가족이라고! 가족 정도는 집에 오잖아!”
“난 가족도 없어! 내 마음 모른다고!”
그렇게 영의가 베키를 달래기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우물우물.
“…….”
우물우물.
베키는 말없이 눅눅해진 감자튀김을 씹고 있었다.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넌, 내 친구인 거지?”
“어, 그래. 친구인 거로 하자.”
영의의 대답에 베키는 영의를 쏘아보았다.
“하자, 가 아니라! 넌 내 친구! 맞지?”
“치, 친구지! 그럼!”
영의는 급하게 맞장구를 쳐 주며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거길래 내가 얘한테 이러고 있지?’
“……음! 좋아! 친구! 이름은?”
“……영의. 성은 최 씨고.”
“영의…… 영의. 음.”
베키는 영의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잘 부탁해, 영의 최 씨!”
해맑게 웃으면서 잘못된 이름을 말하는 베키. 영의는 곧바로 그 부분을 정정해 주었다.
“……씨는 빼고, 그냥 최.”
“그래, 영의 최!”
“그게, 고향에서는……. 아니다. 그냥 성 빼고 이름만 불러라.”
제대로 설명하려 하다가 베키의 문화권은 그 문화권대로 나름 존중해 주기로 한 영의.
그리고 어차피 이름만 알면 됐지, 성까지 알 필요가 있나?
“좋아! 이번에도 맛있는 밥을 얻어먹었는데……. 근데, 넌 왜 나한테 먹을 걸 갖다 주는 거야?”
“왜기는 왜야, 그거야……. 응?”
영의는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곧바로 대답하려 했다가 말문이 막혔다. 이내 대답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영의.
‘……뭐라고 답하지?’
“응? 대답해 봐. 왜 하늘도 날고 신기한 재주도 있으면서…… 이러고 있는 거야? 누가 시키기라도 한거야?”
영의는 베키의 물음에 더더욱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배달하는 이유야, 보상을 얻기 위해서고…… 보상을 얻……. 응? 그 이전에, 난 왜 이 배달들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거지?’
최초의 배달은 착오에서 시작되었다.
‘시야에 보이는 알림이의…… 아니, 그때는 그냥 헬멧과 같은 디스플레이 창이었지. 그걸 착각하고 갔던 게 첫 번째 배달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에는 욕심이었다. 첫 번째 때 얻은 힘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
‘그런 다음, 마탑에도 다녀오고…… 마교 쪽에도 다녀오고…….’
일라이저와의 거래는 금전에 대한 욕심이 조금 더 컸었기에 찾아갔다.
그리고 그다음, 혁련무강과의 거래는…… 한번 들어 본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보상 창이 너무 다양해서였고.
근데…… 베키한테는? 내가 왜 온 거지?
영의는 그 순간, 보상을 수령할 때의 주문인들. 그러니까, 음식을 먹었던 인물들이 보여 주었던 행동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설마…… 나도 무의식중에 배달을 한다고 생각하거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인 건가?’
영의는 그렇게 혼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