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7)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안. 거기에는 작게나마 빛나고 있는 조명이 있어서 내부의 풍경은 어느 정도 보였다.
조명에 비친 풍경, 방 안에선 아담한 체구의 여성이 어떤 남자의 손에 붙들려 있었다.
딱!
“아야!”
고통 때문에 소리를 지르는 여성.
따악!
“아아악! 미안!”
두 번째의 고통에 여성은 반사적으로 사과를 했다.
딱!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세 번째의 고통. 여성에게 예절과 사과를 동시에 불러일으킨 그 수법은 바로 딱밤이었다.
“……내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발목이 꺾이거나 사고가 났을 거야. 앞으로는 좀 온건한 방향으로 개발해.”
딱밤을 때린 남자, 영의는 손을 털며 베키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전 눈에 쏘아진 빛 때문에 아직도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영의.
“히잉…….”
베키는 양쪽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체에서 가장 강한 뼈 중 하나인 두개골이지만, 한곳에 딱밤을 세 번이나 맞으니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집은 또 언제 개조한 거야? 전에는 좀 돌아가긴 했어도 1층에 제대로 있었는데. 여긴 무슨 지하 공간이야?”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물어보는 영의. 분명 예전엔 사람 사는 꼴은 아니더라도 나름 정상적인 방이었었는데…….
“아, 내 실험실? 개조했어! 전에 네가 보여 준 것처럼 하늘을 나는 걸 만들고 싶었는데…… 만들다 보니까 집보다 커지더라고!”
베키는 자신의 작업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해맑게 웃으며 얘기했다. 물론, 눈가에 눈물은 여전히 맺혀 있었지만.
“……집보다 커져서……?”
영의는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추가적으로 물어보았다. 확실한 대답을 듣지 않으면 뭔가 더 무서운 것을 상상해 버릴 것만 같았기에.
“그래서 지하로 파고 내려갔어! 천장은 높이기가 힘드니까! 아아~ 땅 파는 마도구를 만드는 걸 네가 봤어야 하는데!”
“…….”
영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왜 옛날 만화에서 거대 로봇이 지하에서 나오는지 알 것만 같았다.
‘지금이야 고층 건물이 일반적이지만 그때는 지하로 파고드는 게 더 편하고 현실적이어서 그랬던 건가……?’
그리고, 거대 로봇 같은 걸 만들 만큼 정신 나간 천재들이 있었다면 아마 베키와 같은 발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뭘 만들었길래 이런 크고 깊은 곳이 필요했던 건데?”
지금 영의는 조명이 켜져 있음에도 벽이 보이지 않는 이 넓은 공간에 당황하고 있었다.
“음…… 글쎄? 일단 넓고 깊으면 좋을 것 같아서, 주변에 있는 평원만큼만 파냈어!”
베키는 양팔을 쫙 펼치고 그렇게 말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영의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혼잣말을 했지만, 베키는 그것도 질문으로 알아들은 건지 해맑게 대답했다.
“쉬워! 그냥 땅을 다 파내서…… 옆으로 옮기는 거야! 이 주변에 있던 구덩이들 다 메워진 거 봤지? 파고 남은 거로 메운 거야!”
영의는 그 말에 어쩐지 집 주변이 나름 멀쩡했다 싶었다.
“그래도 흙이 남길래 산 하나를 더 만들긴 했는데…… 그건 나라에서 나온 병사들이 금방 퍼 가더라고. 뭐, 난 필요 없으니까!”
‘당연히 없던 산이 생겨 버리면 문제가 생기니까 없애 버리려고 하겠지……!’
영의는 이름 모를 병사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괜히 정신 나간 한 여자 때문에 병사들이 산을 옮기게 되었다고…….
‘그래도, 다 흙더미라 괜찮았을 거야…….’
그렇게 영의가 나름 희망적인 생각을 하던 순간, 베키의 입에서 그 희망을 부수는 말이 나왔다.
“바위가 엄-청 많았는데, 다 부수고 옮기더라! 대단했어!”
‘이름 모를 병사들아아아아!!’
영의는 마음속으로 이름 모를 병사들을 애도했고, 이내 그냥 빨리 돌아가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여기 조명은 더 없어?”
“응? 켜 줘?”
베키의 말에 영의는 방금 전 당했던 섬광탄 공격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가능하면 여기가 아니라 지상으로 나가면 더 좋고.”
영의의 말에 베키는 영의의 손을 잡았다.
“자, 이리로 와! 지상으로 나가는 길이야!”
그렇게 베키가 영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베키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꺄악?!”
퍼덕퍼덕!
“아, 아야! 아파! 이게 뭐야! 새잖아! 저리 가!”
“휘이익!”
어디선가 날아온 새가 베키의 머리를 쪼기 시작한 것. 비록 어두운 공간이었지만 영의는 그 새가 뇌영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뇌기를 품고 있는 아이였기 때문에.
“……뇌영아, 멈춰.”
“휘요익?”
영의가 멈추란 말을 하자 쪼는 것을 멈추고 영의 쪽을 돌아보는 뇌영.
뇌영은 영의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이내 베키에게서 날아올라 영의의 어깨 위에 올라탔다.
“……미안, 내가 키우는 애인데 아직 어려서…….”
영의는 베키에게 사과했고, 베키는 상당히 아픈지 쪼인 부분을 쓰다듬고 있었다.
“으우…… 아파……. 나 같은 천재님은 머리가 재산인데…….”
베키는 연신 아프다고 엄살을 피우면서도 영의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그리고 베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벽이었다.
“……여긴 벽인데?”
“잠깐만 기다려 봐. 보자…….”
베키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자, 거기에 반응하듯 날개를 퍼덕이는 뇌영.
파닥파닥.
베키는 날갯짓 소리에 화들짝 놀라 영의에게서 한 발짝 떨어졌다.
“그, 그 새 좀 진정시켜 봐!”
“워, 워. 얌전히 있어. 착하지.”
“휘익.”
“으으으…… 난 새가 싫어…….”
쪼여서 싫은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새 자체가 싫은 듯했다. 그래서 집 안에 새가 들어왔을 때 반응하는 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
“으음…… 아, 됐다.”
베키는 무언가를 찾아서 작동시켰고, 이내 영의가 서 있는 바닥이 움직이더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
“어때, 내 작품 중 하나! 이동하는 바닥이야! 엄청 유용하게 쓴다고! 히히!”
“뭐…… 나름 멀쩡하네.”
영의가 그래도 멀쩡한 편에 속한다며 엘리베이터를 칭찬하자, 베키는 기분이 좋아졌다.
“이걸로 먹을 거랑 이것저것 집 앞에 운송시키고 집 안에 들여오고 그래! 오늘 널 이동시킨 것도 응용한 거고!”
“……뭐?”
베키는 영의의 말을 듣지 못한 건지, 아니면 들을 마음이 없었던 건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사실 지난번에 네가 왔다 간 이후로 먹을 거랑 마실 거는 신경을 쓰기 시작했거든? 우물은 대충 고쳤어! 그리고 먹을 거는 마을에 돈 주고 갖다 달라고 부탁했구!”
“흐음.”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속도는 영의가 떨어져 내렸던 속도보다 한참 느렸기에,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동안 할 일이 딱히 없으니 베키의 말을 계속 들어 주는 영의.
베키는 사람을 잘 만나지 않는 게 맞는 듯, 말이 한번 터져 나오자 계속 떠들어 댔다.
“사실 난 이것저것 차려 먹는 건 너무 귀찮았거든! 풀은 맛없지, 고기는 구워야 하지! 그래도 햄같이 그냥 먹어도 되는 게 있긴 했는데…… 지난번에 먹은 그거에서 착안한 거야!”
베키는 신이 나서 재잘재잘 떠들어 댔다.
영의가 가져다준 햄버거를 먹고 아이디어를 얻어 큰 빵의 속을 파내고 안에 고기와 야채를 넣고 씹어 먹는다고 했다.
‘그게 더 손이 많이 가지 않나……?’
그리고 물은 우물 안에 관을 연결해 거기서 퍼 온다고 했다.
“이제 늘 신선한 물을 마셔! 약도 안 사도 돼!”
‘……그래도 비상용으로 사 두는 게 좋을 텐데. 아니, 뭐 본인이 괜찮다니 상관없나.’
그리고 마침내 엘리베이터가 도착한 듯, 바닥의 움직임이 멈췄다.
“자, 다 왔다! 이제 문 연다?”
베키의 말이 끝나자, 벽에 해당하던 부분이 갈라지며 문이 열렸다.
“윽…….”
밝은 빛에 잠시 눈을 찌푸린 영의.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강한 조명이 아닌 실내에 비친 약한 불빛이었다.
“……그보다, 조명 같은 건 안 달고 사는 거야? 무슨 어둠의 자식이냐?”
학창 시절 커튼을 걷어 내며 소리치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하는 영의. 베키는 그 말에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
“우으…… 아무리 그래도 내가 피를 빨아 먹고 살진 않는다고. 그리고, 내 집인데 내가 살기 편하면 됐지……. 나는 마법으로 볼 수 있으니까 신경 안 써.”
“……?”
영의는 베키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말에 잠깐 정신이 멍해졌으나 이내 납득하기로 했다.
‘그래, 마법을 못 썼으면 마공학인지 뭔지도 못했겠지. 그보다, 피를 빨아 먹는다고? 여기 세상에는 뱀파이어도 있나?’
영의가 그런 의문을 가지는 동안, 베키는 집 안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분명히 지상으로 가자고 한 건 나였는데, 왜 베키가 앞서가고 있는 거지?
“응? 응접실! 손님이 오면 맞이하는 게 응접실 아냐?”
“…….”
뭔가 상식에 걸맞은 소리인데 베키의 입에서 나오니까 상식이 아닌 것만 같았다.
“자, 다 왔다! 여기가 응접실이야! 차 줄까?”
베키는 영의를 데리고 한 방의 문을 열었고, 그 방은…… 지난번 베키가 쓰러져 있던 그 방이었다.
물론, 이런저런 집기나 녹조가 껴 있던 물은 없어졌지만.
“……여기 네 연구실 아니었어?”
“응? 그건 다 지하로 옮겼지! 여긴 원래 응접실이었어! 그리고 지난번에 있던 차는 버렸고, 새로 산 게 있어! 마실래?”
“……그래.”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고, 베키는 콧노래를 부르며 응접실 구석에서 지난번에 봤던 것과 같은 차 상자를 꺼냈다.
“……그거 지난번 그거 아냐?”
“아니야! 그, 같은 제품이긴 하지만.”
영의의 의혹 섞인 물음에 베키는 바로 부정했다.
‘……내가 연구도 멈추고 집 공사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지난번 영의가 떠난 이후로 밥 먹는 것보다 좋아하던 마공학 연구를 그만두고, 집을 그나마 사람 살 만한 곳으로 개조했던 베키.
물론 영의의 바이크를 개조하며 얻은 아이디어로 예전 연구들은 다 멈추고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려는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름 청소와 개조도 하고, 주변 마을에 연락을 해서 식료품도 정기적으로 받아먹는 생활을 시작한 베키.
그녀는 달라진 집을 나름 은인인 영의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지난번의 이미지가 너무 각인된 건지 심드렁했다.
‘……너무해, 난 잘해 본다고 해 본 건데…….’
베키는 살짝 울적해졌지만, 그건 그녀의 기준으로 잘한 거였다.
입구에서 들어서자마자 깔린 기계장치들과, 정상이 아닌 것 같은 연구실은 그대로…… 아니, 더 발전해 버렸다.
중요한 건 의도가 아니라 체험하는 사람의 소감이었지만, 사람을 안 만나는 베키는 알 도리가 없었다.
베키는 마음속으로 결의를 다지며, 자신의 첫 친구(?)인 영의를 바라보았다.
‘힘내자, 베키! 언젠간 날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자고!’
영의가 그녀를 이해해 줄 리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