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6)
사람은 마음속에 고민이 있고, 그 고민이 컨트롤하지 못할 만큼 깊을 때, 무의식중에 얼굴에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은 주변인들로 하여금 고민이 무엇인가를 물어보게 하여 고민의 해결을 돕게 하려는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그러니까, 제발 뭔 고민이 있는지 얘기 좀 해 봐라!’
호찬은 지금 얼굴에 애써 미소를 띠며 영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줄곧 저런 얼굴이어서, 카운터에 세워 둔 알바와 자신, 심지어 손님들까지도 영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나름 잘생겼으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오죽 고민이 깊어 보였으면 남자들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을까.
“……자, 다 나왔다. 햄버거 세트랑 커피 테이크아웃.”
“고마워요.”
영의는 그렇게 봉투를 받아 들고 가려고 했으나, 호찬이 봉투를 쥐고 있는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너 진짜 뭔 고민 있냐?”
“아니, 없어요. 그냥…… 진상을 상대해야 해서……. 아니, 진상보다 더 무서운 게…….”
호찬은 영의가 말을 꺼낼 때의 표정을 보고는 살짝 놀랐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부정과 우울을 지나 이내 수용할 때와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죽기 전의 사람을 본 건 아니지만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영의의 표정은 체념과 해탈에 가까웠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도 이 구성으로 사 가지 않았냐? 그때 그 배달이야?”
생각해 보니 지난번과 같은 주문을 하고 있는 영의.
그리고 그때 리뷰를 해 달라고 했는데 까먹고 물어보지 못했었다.
“네, 그쪽 배달 맞죠. 이번도. 그리고 잘 먹긴 하더라고요. 엄청 맛있게…….”
호찬은 자신의 햄버거를 맛있게 먹어 줬다는 사실에 얼굴에 미소를 띠었으나, 영의가 어째서 그걸 아는지 의문이었다.
“……응?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먹는 걸 진짜 보고 왔어?”
“말하자면 길어요, 좀…… 미친 소리같이 들릴 거고. 아, 콜라도 하나 좀 큰 잔에 포장해 줘요. 가면서 먹게…….”
영의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피곤해서인지 당분이 당겼다.
“일하면서 너무 스트레스받지 마! 정 안 되겠으면 때려치우고!”
영의가 콜라를 빨아 먹으며 바이크로 걸어갈 때, 뒤에서 호찬이 가게 밖까지 따라 나와 소리쳤다.
“……네, 그럴게요.”
영의는 일단 거짓말로라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 배달이 언제 끝날지는 그도 몰랐다.
‘……알림이도 모를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이미 시작해 버렸고, 시작했으니 끝까지는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그 다짐과는 다르게, 마음은 베키에게 가기 싫어했다.
“후우…… 가야지, 가 봐야지.”
영의는 한숨을 내쉬며 헬멧을 썼고, 바이크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휘이익!”
착.
그리고 영의가 오는 걸 알아챈 건지, 하늘에 있다가 영의에게 날아오는 뇌영.
“……걔가 너 막 기계로 바꾼다고 난리 치면 어떡하지?”
“휘요?”
영의는 뇌영이 걱정되어 한 말이었으나, 뇌영은 무슨 말인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다, 됐어.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영의는 바이크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베키의 돼지우리…… 아니,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지난번에 쓰러지고 그랬는데, 이번엔 좀 사람답게는 살고 있겠지.’
영의는 그렇게 생각하며 베키의 집으로 향했고,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지난번, 마치 버려진 집 같았던 정원은 나름 손질되어 잘 가꿔져 있었고, 주변의 황무지도 어느 정도 손을 본 것 같았다.
“……길이 만들어져 있네.”
물론 현대처럼 아스팔트가 깔린 그런 수준은 아니고, 주변과 다르게 평탄화를 잘해 두고 자갈 같은 게 없는 흙길이었다.
그리고 집도 나름 보수란 걸 한 건지 페인트칠도 되어 있었고, 여기저기 망가진 부분도 없었다.
“……좀 사람답게 사는 모습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데?”
그리고 이내 영의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베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왔구나, 왔어! 기다리고 있었어!
“……응?”
-자, 그럼 어서 들어와!
영의는 베키가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고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문 앞에 환영용인지, 아니면 진짜 쓰라고 만든 건지 매트까지 놔두었다니.
‘뭐, 지난번에 한번 죽을 뻔하고 나니까 나름 생각한 바가 있었나 보네. 이렇게 잘 가꿔 두고 한 걸 보면…….’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고 있었다.
“……뭐야, 들어오라면서?”
설마 집주인이 직접 맞이하는 게 예의라면서, 그 집구석에 있던 연구실에서 여기까지 걸어 나오는 건가?
드드드드득.
영의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집 안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드드드득!
“아, 되게 사람 됐네. 보기가 좋……. 응?”
사람이 뛰는 소리라기엔 조금 이상한 소리였다.
“……설마.”
영의가 불길함을 느껴 뒤로 물러서려던 그때, 문 앞에 놓인 매트에서 기계장치가 솟아오르더니 그의 발목을 휘감았다.
‘어쩐지 매트가 있더라니!’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더니, 제법 깔끔하게 정돈되고 청소된 듯한 실내가 보였다.
하지만, 바닥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바닥에 얌전히 자리하고 있어야 할 바닥 그 자체가 좌우로 갈라져 있었고, 그 사이로 철로 같은 게 솟아나 있었다.
“……하하, 설마.”
설마 이 철로로 이동하라는 건가……?
그리고 그 설마는 사람을 잡았다. 그것도 영의를 아주 정확하게.
철컹-
쐐액!
영의의 발을 휘감은 매트가 저절로 움직여 철로 위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엄청난 속도로 안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휘이익?!”
뇌영은 갑자기 자신의 아빠이자 엄마이자 주인인 영의가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자 당황하여 쫓아서 날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계에 녹음된 듯 약간 노이즈가 낀 베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집에 들어오지 마, 이 깃털 달린 쥐들아!
그리고 벽에서 솟아나는 그물과 몇몇 기계장치들.
아마 가끔 새들이 들어왔을 때 쫓아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리라.
“휘요옥?!”
깃털 달린 쥐라니, 자신이 얼마나 위생에 철저한데! 매일 싱크대라는 거대한 욕조에서 몸을 씻고, 먼지 같은 게 붙으면 뇌기로 태워 버린다고!
뇌영은 짜증이 솟구쳐 안으로 비행해서 날아 들어갔다.
그물과 기계장치들은 뇌영을 저지하려 했으나 뇌령조는 폭풍을 쫓아다니는 새.
비록 아직 어리다고는 하나 속도는 충분히 낼 수 있었다.
“휘익!”
그리고 뇌영은 자신의 주인을 구하기 위해 철로를 따라 비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영의는 몸 자체로 속도를 느끼고 있었다. 집 앞이면 모를까, 안으로 들어오자 칠흑 같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내가 스피드를 좀 좋아하긴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지금 그는 발목에 의지한 채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만약 단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이 운송 과정 이후에 발목에 문제가 생길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냥 부순 다음에 철로를 따라서 걸어갈까…… 하는 고민이 들던 순간, 철로가 끝나고 매트째로 어디론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 이제 부숴야겠네.”
영의가 철로로 가는 건 이해해도, 떨어지는 건 좀 아니다 싶어 몸에 뇌기를 일으켰으나 그 순간 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수면 안 돼! 내가 열심히 만든 건데!
영의가 갑작스럽게 들려온 베키의 목소리에 움찔하는 순간, 매트가 갑자기 팽창하더니 에어백처럼 부풀어 올랐다.
슈우욱-
공처럼 변하면 또 모를까, 부풀어 오르는 동시에 공기가 빠지는 소리를 들은 영의.
다급히 부숴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갖다 댔으나…… 기계 부분이 있어야 할 곳에 가지도 않았는데 손이 무언가에 닿았다.
“……뭔데?!”
매트가 부풀어 오르자 그의 발목을 잡고 있던 기계 부분을 감싸 버렸고, 탈출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텅-!
그리고 이내, 어딘가에 매트가 충돌하며 내부의 공기가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영의는 바닥에 떨어진 것이라 직감하며 문득 공기가 새던 이유를 알아챘다.
“……아, 에어 매트……?”
실제로 떨어지는 사람을 받아 내기 위한 에어 매트도 공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다.
만약 풍선처럼 빵빵했다면 사람은 떨어지면서 다시 튕겨 나갈 테니.
“……뭐, 그래도 지난번처럼 누구 죽이려는 그런 장치는 아니었네.”
영의는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 생각하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미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부터 발목을 잡아 둔 기계장치는 풀려 있었다.
‘……대신 사람을 가지고 장난치는 느낌은 여전하지만.’
이번엔 만나고 나면 진짜 한 대 때려 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영의.
그는 어지간해선 여자는 안 때리는 남자였으나 필요하면 때릴 수 있는 남자였다.
사실, 여자를 때리는 데에 있어 저항감 따위 없었다.
당장 집안부터가 격투 집안이고, 어머니와 동생과도 대련은 했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학창 시절 격투대회에서 제일 자주 마주친 게 화연이었다.
당연히 가장 자주 싸운 대상이었기도 하고.
‘……그래도, 무술을 배운 녀석은 아니니까 딱밤 정도로 해 주자.’
그렇게 성인 남성도 맞으면 멍이 들 딱밤을 때릴 계획을 세운 영의.
그리고 주변을 밝히기 위해 뇌기를 끌어 올리려던 찰나, 갑작스러운 섬광에 눈앞을 가렸다.
“짜잔! 어때, 내 새로운 발명품이? 피곤할 때 집에 들어와서 자고 싶을 때 바로 눕혀주는 장치야!”
팟!
“아악, 내 눈!”
이미 어둠에 적응한 눈에 갑작스럽게 태양과도 같은 강한 광량이 들어오자 눈을 가리는 영의.
그리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장치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이던 베키는 영의가 갑자기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지르자 당황했다.
“어어, 어어?!”
베키는 무술을 모르는 일반인과도 같은 육체였고, 또 어두운 곳에서 연구를 하는 게 일상이었기에 밝은 빛을 봐도 그냥 눈부심만 조금 느끼고 끝났다.
그냥 어두워질 때까지 연구를 하다가 종이가 안 보이면 그때 조명을 켰으니까.
하지만 영의는 무인에 가까운 타입이었고, 육체가 적응을 빠르게 했다. 어두운 곳에 들어가면 동공을 최대한으로 확장하는 게 빠르고 또 상당히 많이 확장되는데…… 그게 문제였다.
확장된 동공에 밝은 빛이 다가오니 야간 투시경을 썼을 때 조명을 받은 꼴이 된 것. 심지어 베키가 발명품을 자랑한답시고 조명을 밝게 했기에 효과는 더욱 강력했다.
“으으윽……!”
“저기, 진짜 미안……. 괜찮아……?”
그래도 베키가 나름 반성하는 것 같았으니, 영의는 일단은 봐주기로 했다.
“……괜찮아. 그냥…… 불 좀 덜 밝게 켜 줘…….”
영의가 괜찮다고 말하며 손을 내젓자, 베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아, 다행이다. 그럼 내 발명품 어때? 재밌었지! 난 되게 재밌었는데!”
영의는 그 말을 듣고 봐줄 마음이 싹 사라졌다.
‘……역시 겉모습은 변했지만, 하는 꼴은 그대로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베키의 이름에 ‘더 크레이지’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