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5)
갈성천은 당황했다.
자신의 대력강체술을 보고도 놀라지 않는 사람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내 소문을 들은 녀석들도 처음 봤을 땐 다들 놀랐는데……?’
그러나 눈앞의 영의는 약간 신기하긴 하지만 별로 놀라진 않았다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어디서 한번 보고 오기라도 한 듯이, 눈앞에 저런 게 진짜 나타나니까 신기하다라는 분위기의 영의.
‘……근데 CG가 아니니까 오히려 약간 수수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현대 문물에서 사람이 거인으로 변하고, 역으로 작아지기도 하는 그런 것들도 본 영의인지라 별로 놀랍지 않았다.
‘근데 진짜 눈앞에 그럴듯한 게 나타나니까 신기하긴 하다. 어떻게 하는 거지? 뼈가 늘어나나?’
그렇게 영의의 반짝이는 눈을 어떻게든 무시하고, 갈성천은 설명을 이어 나갔다.
“대력강체술은 총 다섯 단계의 변화 과정을 가진 무공이다!”
그리고 몸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갈성천. 그는 손가락 하나를 펴며 말했다.
“일 단계는 여느 무공들과 다를 게 없다! 단순히 내력으로 몸을 강화하는 거지! 다만, 이때 몸이 더 튼튼해진다!”
그리고 이내 손가락을 다시 펴는 갈성천.
“이 단계는 외공 계열이나 힘에 치중한 무공들과 비슷하다! 온몸의 근육이 강해지고, 또 그 근육은 바위처럼 단단해진다!”
그런 다음, 세 번째 손가락을 펴는 갈성천.
이때 그의 몸이 아까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불어났다.
“삼 단계는 그 근육을 키우는 단계다! 이 단계와 같은 수준의 단단함을 가지고, 크기와 힘을 키워 내는 거다!”
그리고 이내, 방금 전에 보여 줬던 모습으로 바뀌는 갈성천. 어지간한 사람 손목 굵기만 한 손가락을 폈다.
“사 단계는 다시 거기서 단단함과 크기를 키우는 거다! 다른 무공들은 균일하게 단련을 시행하지! 하지만, 대력강체술은 다르다! 포기할 건 포기하고! 다른 걸 택하는 것이다!”
갈성천은 그렇게 말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빨라 봤자 적을 이길 수 없으면 도망만 다녀야 하고, 강해 봤자 적을 때리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하는 갈성천.
영의는 그의 설명을 듣다가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5단계까지 있다고 하셨는데, 5단계는 설명을 안 해 주십니까?”
영의의 질문에 갈성천은 잠깐 침묵했다.
“오 단계는…… 마지막 순간에 사용하는 기술이다. 대력강체술은 몸의 근육을 통제해서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기술이지. 그리고 그 마지막인 오 단계는 잠재력을 폭발시키는 거다.”
“……그럼 5단계를 적당히 배우는 게 낫지 않나요?”
영의는 독을 약으로 쓰듯 적당히만 사용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질문을 했지만 갈성천은 고개를 저었다.
“오 단계를 쓰는 것 자체가 죽음이다. 통제를 벗어난 몸은 다시없을 거력을 발휘하겠지만, 한 번의 주먹질로 뼈와 살이 다 터져 나간다면…… 하겠느냐?”
“……아니요.”
갈성천의 설명에 영의는 등 뒤에 식은땀이 살짝 배어 나왔다.
‘아무리 최후의 기술이라고 해도 주먹 한 방에 몸을 갈아 넣는다고……?’
‘진짜 무공에 몸과 혼을 다 불사르는 인간들이구나…… 여기 무림인들은.’
“아무튼, 무공의 요체는 간단하다! 단전을 포기하고, 몸을 단전으로 만드는 거지!”
“……?”
뭔가 뇌격공과 비슷한 것 같지만 아닌 것 같은 소리에 영의는 고개를 갸웃했다.
“단전 자체는 사용한다! 하지만, 대력강체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단전을 모두 비우고, 전신 세맥과 모든 근골에 내기를 흘려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내공이 많이 필요한 무공이기도 하지!”
갈성천의 설명에 팽소운이 추가로 덧붙였다.
“그래서 저 녀석 무공이 사파 쪽인 거지. 정순한 내력보다는 일단 몸에 채워 넣어야 하니까, 이것저것 막 받아들이거든.”
“시끄러, 난 원래 사파 체질이야. 사람이 돈 없으면 어떻게 살아?”
그렇게 영의가 노인들에게 무공을 전수받던 한편…….
새외에서도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눈보라와 추위만이 가득한 북해의 빙궁.
그래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만큼 건물만큼은 얼음이 아닌 돌과 나무로 짓는 북해.
하지만 얼음으로 된 방 안에서 얼음으로 된 의자에 앉은 중년인이 작게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따뜻한 곳으로 여행 갈 일이 생겼군그래.”
밀림지대에서 수많은 벌레와 짐승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남만의 야수궁.
거대한 호랑이를 침대 삼아 위에 드러누워 자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몸의 몇 배나 되는 호랑이 위에 있음에도 두려움 없이 태연하게 코를 골고 있었다.
“……크어엉…….”
“쓰읍! 잘 때는 조용하랬지!”
찰싹!
“크우우…….”
호랑이가 뭔가 말하려는 듯했으나, 남자가 호랑이의 옆구리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리고 이내 조용해지는 호랑이. 남자는 계속 낮잠을 이어 갈 생각인 듯 보였다.
그 외에도 불문임에도 불구하고 살생과 욕구에 관대한 포달랍궁과 새외라기보다는 중원에서 약간 떨어진 남해 지역까지.
모두 천하제일 비무대회의 소식을 전해 듣고, 오랜 세월 갈고닦아 온 자신들의 힘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냈다.
정파, 사파, 마교, 그리고 새외의 무공들까지.
천하의 모든 무공이 모여드는 천하제일 비무대회가 그렇게 조금씩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의는 그날의 정산을 대강 마치려 했다.
주변에서 놀던 뇌영을 불러와 함께 떠나려 하는 영의.
“제가, 제가 시간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하고 갈게요!”
영의도 마음 같아선 느긋하게 배우고 싶었지만, 진짜 여유롭게 눌러앉아 있다가는 일주일 정도 잡혀 있을 것만 같았다.
“대력강체술 아직 삼 단계 못 가르쳤는데…….”
갈성천이 서운한 듯 시선을 돌리며 작게 말했다.
“전 뇌격공 쓰니까 그 이상은 안 배워도 돼요!”
“소승도 금강역사역근경을…….”
혜윤도 서운한 눈빛을 영의에게 보냈다.
“으어어! 나중에 책으로 합시다!”
그렇게 영의가 다급하게 바이크에 올라타고 떠나려던 그때, 팽소운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잠깐.”
“……뭐 가르치실 거 있어요?”
팽소운은 나름 잘 가르치는 편에 속했다.
일단 무조건 신체 단련을 하자는 혜윤과 근육만 있으면 문제는 대부분 해결된다는 갈성천과는 달랐다.
일단 해 볼 만큼은 해 보고 안 되면 포기하는 타입의 남자였던 것.
“그건 아닌데, 가기 전에 형님한테는 인사하고 떠나야지.”
“……아.”
팽소운은 동굴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고, 영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신세를 좀 지긴 했으니 인사는 해야지.’
영의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예전이랑은 좀 달라졌네.”
독고휘와 처음 마주했을 때 동굴 안에 들어와 본 적 있던…… 아니, 깨어나 보니 동굴 안이었던 영의.
그때는 정말 필요한 것만 있는 삭막한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좀 편하게 바뀌어 있었다.
일단 작게나마 뭔가를 보관할 때 쓰는 것처럼 보이는 장롱이 하나 생겼고, 또 의자라든가…… 그릇 같은 것도 몇 개 보였다.
‘……살림살이 좀 늘어났네.’
그러나 사실 저 물건들은 독고휘의 것이 아닌, 팽소운이 매번 올 때마다 뭔가 하나씩 만들거나 사 온 것이었다.
나름 손재주는 있던 팽소운이었기에, 장롱이나 의자들을 만들어 와 자신이 쓰기도 하고, 독고휘에게도 주었었다.
그리고 영의는 이내 동굴의 안쪽에서 작은 탁자에 종이를 쌓아 두고 뭔가를 열심히 쓰고 그리는 독고휘를 발견했다.
“……영감님, 저 가 볼게요.”
“휘요오!”
영의와 뇌영의 작별 인사에 독고휘는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가거라. 다음에 오기 전까지는 다 써 두마.”
“네, 그럼…… 몸조심하시고요.”
“…….”
영의는 이내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나왔고, 다른 노인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한 뒤 바이크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졌다.
그리고 영의가 하늘로 사라지는 걸 본 갈성천과 혜윤은 이제야 뭔가 실감이 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정말로 신비한 청년이군요. 만약 더 어릴 때 만났다면 훌륭한 나한승이 되었을 것을…….”
아주 잠깐 가르쳤으나, 그에게 남다른 무재가 있다는 걸 깨달은 혜윤. 그는 영의의 무재가 아까웠다.
“하아…… 어떡하지……?”
한편, 갈성천은 지금 고뇌에 빠져 있었다.
비록 대력강체술이 몸에 안 맞는다며 중간에 멈추긴 했어도, 일 단계와 이 단계를 단숨에 해내 버린 것.
갈성천이 한숨 쉬는 걸 보고 팽소운이 호탕하게 웃으며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흐하하하! 제자 삼는단 생각 말고, 저 녀석이 어디까지 할 수 있나를 보는 재미로 하자고!”
‘효과는 다른 무공과 비슷해도, 체계는 완전히 다른 것이란 말이다……! 진짜 부련주 자리 줘야 하나? 아, 안 되는데……. 애들 엄청 뭐라고 할 텐데……?’
……제자로 못 삼은 것보다 부련주 자리가 더 아쉬운 듯했다.
한편, 독고휘는 영의가 날아올라 사라지는 것을 감지하고는 붓에서 손을 놓고 한숨을 쉬었다.
“허어…… 몸조심하라, 이 말이지……. 얼마 만에 듣는 소리인지…….”
그가 젊은 시절에도 몸조심하란 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란 소리는 많이 들었지만.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소리는 못 들어 보았다. 자기보다 젊은 놈들이 훨씬 골골대니까.
‘……아니지, 들은 적은…… 있구나.’
-늘 몸조심하세요, 가가.
-내가 조심할 게 뭐가 있겠소? 다녀오리다.
-그래도…… 늘, 조심하세요…….
-하하하! 걱정도 많구려!
‘……그래, 가족들한테서는 들어 보았구나……. 가족들은 날 걱정했는데, 난 오히려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화를 내려고만 했구나.’
독고휘는 등잔의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허어…….”
“형님, 왜 그러시우? 뭔가 까먹은 거라도 있수?”
팽소운이 늘 그리하듯 능글맞은 웃음을 띠며 독고휘에게 넌지시 물었다.
“까먹은 거라, 있긴 하구나. 아무래도 은거를 잠깐 풀어야겠다. 뇌섬문으로 가 봐야겠어.”
독고휘의 말에 나머지 세 노인들이 깜짝 놀라 그를 돌아보았다.
“……?!”
“뭐?”
“허허허…… 뭐라 하셨소?”
가족에게 짜증을 내려 했던 자신과 추켜세워 주는 세상에 염증 느껴서 은거한 양반이 뭐? 돌아간다고? 자기 집에?
그렇게, 오랜 가출이 끝나려 하고 있었다.
한편, 영의는 바이크를 타고 도심의 상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좋아, 오늘 저녁에 옥션에서 돈 정산받고…… 치킨이나 시켜 먹어야지!’
“뇌영아, 너 고기 먹니?”
“휘요익! 휘이익!”
영의의 물음에 뇌영은 좋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얘는 잡식이구나. 얼굴 생긴 거 보면 눈이 좀 매서워서 맹금류인 줄 알았는데.’
정작 먹여 보면 쌀도 잘 먹었던 뇌영.
영의는 조류에게 치킨을 먹인다는 생각은 무시한 채, 한가롭게 하늘을 거닐고 있었다.
‘아, 돈 들어오면 뭐 하지? 일단, 바이크부터 새로 살까? 아니지, 자취방을 옮겨? 흐음…….’
그렇게 고민하던 영의는 이제 슬슬 자신의 머리통만 해진 뇌영을 보았다.
“……네 집부터 사자.”
“휘이익!!”
자신에게 뭔가를 준다는 말에 기쁜 듯 날개를 파닥이는 뇌영. 참고로 뇌영은 어째선지 도시 지역에서는 비행을 즐기지 않았다.
“보자, 새장이…… 1미터…… 아니, 2미터짜리도 나오려나?”
영의는 일단 뇌령조가 얼마나 커질지 모르고, 또 생김새로 보아 활동적일 것 같아 큰 새장을 사려 했다.
그리고 그때, 알림 창이 영의의 눈앞에 떠올랐다.
[새로운 배달이 있습니다.]
“……알림아, 혹시 베키는 아니지?”
무림은 방금 다녀왔으니 아닐 테고, 남은 건 일라이저 아니면 베키였다.
어쩌면 새로운 고객일 수도 있었지만, 너무 희망적인 관측은 하지 않기로 했다.
[……Alrim은 이 소식을 알리게 되어 몹시 슬프다고 알립니다. 이번 주문인은 베키입…….]
“으아아아아!!”
“휘익?!”
영의는 베키의 이름을 알림이에게 듣자마자 바이크의 속도를 올렸고, 뇌영이 당황하여 그의 재킷을 발톱으로 꽉 붙들었다.
그리고 약간 상처가 나는 그의 재킷.
[Alrim이 유감이라고 알립니다. 하지만 주문된 것은 배달되어야 합니다.]
“그걸 아니까 이러는 거야!! 더 빨리!!”
영의가 이내 다시는 켤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한 부스터까지 켜자, 알림이는 눈치 빠르게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렇게 영의는 국토 대장정을 두 번 정도 한 뒤,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