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3)
모두들 혼란스러워하여, 영의는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는 무림에 뭐 뜻도 없고, 그냥 소박하게 사는 게 꿈입니다. 그래서 뭐 제자다 뭐다 거창한 건 안 하려고요.”
사실, 무림인들은 어떻게 싸우는가를 보고 싶기도 했다.
여기서 만났던 무림인들은 대부분이 시간만 주면 산도 부수는 괴물들.
하지만 비무대회 아닌가? 그것도 젊은 애들이 모이는! 위험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 영의.
“거창하다니! 그게 얼마나 큰 영광이고, 또 이득인지 모르는가?!”
손익계산에 민감한 사파 출신의 갈성천은 그렇게 소리쳤으나, 독고휘는 영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는 말이다. 괜히 유명해져 봐야 귀찮고, 또 짜증 나지.”
당장 본인부터가 세간의 시선과 자신의 유명세에 염증을 느끼고 은거하지 않았는가.
뇌섬문의 아이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여 주지 못하자 무의식적으로 그들에게 짜증과 화를 내려 했던 자신을 떠올리는 독고휘.
그는 영의의 말이 나름 공감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남에게 강요를 하였는지도 깨달았다.
‘나의 제자도 아닌데 나의 뜻을 강요하였구나……. 오히려 저 녀석이 없었으면 뇌격공도 다듬지 못했을 것을…….’
“그래…… 그럼, 비무대회엔 안 나가도 된다. 그냥 지금처럼 뇌격공의 완성이나 도와주거라.”
그렇게 말하고는 힘없이 발걸음을 다시 돌리는 독고휘. 물론 두 달 뒤, 혁련무강을 만나긴 할 테지만…… 아까만큼의 기대감은 없었다.
“그게……비무대회는 나갈 건데요?”
“뭐?”
독고휘는 영의의 말에 고개를 휙 돌렸다. 주목받는 짓은 안 할 것처럼 말하더니?
“다른 무공들에 나름 흥미도 있고…… 또, 우승하고 저도 바로 은거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건 맞지.’
일반적인 무림인이라면 비무대회에 참가하는 순간부터 은거랑은 한참 동떨어진 거다.
세간의 시선, 자신의 인지도, 그리고 얻게 되는 이득까지.
그 모든 걸 버리고 혼자 사는 은거랑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그, 그래! 이번 천하제일 비무대회에는 새외의 특이한 무공들도 모여든다! 매번 기이한 발상을 꺼내 오는 건 마교가 제일이지만, 무공의 특이성은 새외가 제일이다!”
독고휘는 이때다 싶어 열심히 설득을 시작했다.
‘그래도 얘가 무공을 배우긴 했으니까 그걸 써먹는 곳에는 관심이 있구나!’
처음 봤을 때부터 돈에는 나름 관심이 있어 보였지만, 나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던 영의.
하지만 지금 보니 그도 사람이긴 한 건지, 최소한의 욕망은 있구나 싶은 독고휘였다.
[잘하셨습니다. 이로써 뭔가를 요구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림아, 근데 이게 옳은 걸까? 조금 아닌 것 같은데.’
비록 학창 시절에 싸움질은 하고 다녔어도, 조퇴나 결석 같은 것도 한 적 없는 영의. 그의 양심이 조금씩 찔리고 있었다.
‘노인 상대로 사기 치는 느낌인데…….’
[아닙니다. 받아 둘 수 있을 때 받아 둬야 합니다.]
알림이는 그렇게 말했고, 영의는 내심 탐탁지 않으면서도 일단 그도 필요로 하는 게 있었으니 말을 꺼냈다.
“어, 그것도 그건데…… 혹시 뇌기 쓰는 다른 무공 같은 거 책이라든가…… 아니면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음? 다른 무공? 본좌의 뇌격공이 제일인데?”
설득을 하려던 도중 갑자기 제안을 해 오는 영의의 말에 의문을 품는 독고휘.
정확히는 말의 내용에 의문을 품었다.
‘뇌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뇌기 그 자체가 되는 뇌격공이면 다른 것은 필요가 없거늘…… 어째서?’
영의는 그 말에 대답을 제대로 해 줘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다.
“음, 그게…….”
‘알림아, 솔직히 털어놓을까? 아니면 네가 말한 핑계로?’
[Alrim이 추천하는 방식은 없습니다. 어떻게 말하든 받을 겁니다.]
‘그렇다면…….’
“제가 가르치는 애가 하나 있는데, 얘도 저처럼 뇌기가 적성이거든요. 근데 얘는 몸 쓰는 재능은 별로 없어서, 교본 같은 거 하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안 됩니까?”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영의.
“으하하하하하!!”
독고휘는 영의의 말을 듣고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
“내가 평생을 찾아도 없던 뇌전지체가, 정작 찾아보니 옆에 또 있다고?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하늘이시여! 저는 뇌전지체를 키울 운명이 아니었나 봅니다!”
갑자기 하늘을 보며 광소를 터트리는 독고휘.
영의는 이 영감님이 미쳤나 싶어 잠깐 무서워졌다.
“좋다! 본좌가 젊은 시절 사용하던 뇌령검법, 뇌전투법을 모두 전수해 주마! 대신, 글을 쓸 시간이 조금 필요하니 그건 기다려 다오.”
“네, 그 정도야 뭐…….”
“그럼, 요리나 먹자꾸나!”
어느 정도 할 말도 다 했겠다, 타협도 끝난 것 같겠다, 이제 진짜 목적에 집중하려는 독고휘.
영의는 보온 박스에서 음식들을 꺼냈다.
물론 혁련무강에게 다녀온 시간이 있어 약간…… 아주 약간 불거나 눅눅해지긴 했어도, 그래도 여전히 따뜻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크흠…… 시주, 소승은 육식은 하지 않소만…….”
탕수육을 바라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 혜윤. 그는 그래도 옆에 있는 짜장면과 짬뽕은 그럴듯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옆에 있는 거도 다 고기 들어갔는데요.”
“……뭐라, 하셨소?”
영의의 말에 혜윤은 당황했다.
시주! 그럼 소승은 뭘 먹으라는겁니까?!
“이거, 빨간 거는 해산물이고…….”
“오, 해산물! 이번엔 이걸 먹어 봐야겠군!”
팽소운은 기쁜 얼굴로 짬뽕 국물이 든 그릇과 면을 가져갔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그릇은 갈성천이 챙겨 갔다.
“붉은색이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구나…….”
갈성천, 그는 비록 사파인이지만 출신 자체는 사천 출신이었기에 매운맛의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붓지 마라.”
“아, 형님! 쪼잔하게 자꾸 그러기요? 이만큼이나 줬으면 부으라고 이만큼 많이 준 것 아니우!”
그리고 독고휘는 또다시 팽소운과 탕수육을 두고 대립을 시작했다.
탕수육을 사이에 둔 채 치열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팽소운과 독고휘. 팽소운은 소스 그릇을 쥐고 있었고, 독고휘는 탕수육 그릇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영의는 그 대립의 끝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뿐이란 걸 알기에, 중재에 나섰다.
“자, 진정하시고…… 그릇 없어요? 머릿수대로 나눠서 서로 원하는 대로 챙겨서 드세요.”
영의의 말에 독고휘와 팽소운은 신경전을 멈추었다.
‘일리가……있어!’
‘생각해 보니까 사람 수대로 나눠서 원하는 방식대로 먹으면 되는 거잖아?’
이내 싸울 필요가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자, 팽소운이 먼저 행동했다.
“……나가서 하나 깎아 오도록 하지. 그동안 먹지 마시우.”
곧바로 동굴을 나가 큰 돌 하나를 깎아 내어 즉석에서 접시를 하나 만들어 온 팽소운.
“……그럼, 나누도록 하지.”
그리고 허공섭물로 정확히 반절로 나뉘는 탕수육. 갈성천은 뭐 어떻게 먹든 상관없었고, 혜윤은 육식을 하지 않았기에 간섭하지 않았다.
“거참,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데 뭘 그리 다투는지…….”
갈성천은 짬뽕 국물에 면을 말아 섞으면서 말했다.
“넌 몰라 이놈아! 이게 얼마나 중한 사안인지!”
“쯧, 아무튼 사파 출신이라 그런가 입맛도 아무거나…….”
부먹, 또는 찍먹의 멋짐을 모르는 갈성천이 불쌍한지 눈을 흘기는 둘.
갈성천은 그 말을 듣고 화를 냈다.
“야! 나보다 더 아무거나 주워 먹는 놈이 할 말은 아니지!”
“허허…… 아미타불, 소승은 뭘 먹어야 하는지요……?”
혜윤은 지금 마음속으로 파계를 해 버릴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가 소림의 방장만 아니었으면 이미 맛있게 먹고 있었을 것이다.
“어…… 음, 스님들이 뭐 먹으면 안 됐더라……? 다섯 개 뭐 있었는데?”
영의는 혜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 스님한테 뭘 먹여야 하냐……?’
“오신채입니다, 시주. 마늘, 부추, 파, 달래, 흥거를 먹으면 안 되는 불교의 전통이지요…….”
혜윤은 합장을 하며 그렇게 말했고, 그의 시선은 단무지에 가 있었다.
“시주, 혹여 이것은 절인 무가 아닌지…….”
“아, 네. 단무지라고…… 식초 같은데 절인 무죠.”
“허허…… 그럼 소승은 이걸 먹도록…….”
혜윤은 반쯤 눈물을 머금고 단무지만 먹으려고 했는데, 독고휘가 그 손을 가로막았다.
“안 된다. 이걸로 입가심해야 한다고. 땡중아, 너도 그냥 고기 먹어라! 너네 나한승들은 고기 먹이잖아.”
사실 그랬다. 소림의 무승들은 모두 육식을 금하고 있지만, 나한진을 구성하는 정예 무승들은 육식을 허용했다.
사람인 이상 고기를 먹어야만 힘을 제대로 썼기 때문에.
“허허…….”
“아, 그리고 육식도 살생이 과정에 들어가니까 하지 말란 거지. 육식 자체가 금기는 아니잖아? 크어, 얼큰함이 확 하고 올라오는구나. 다른 느낌의 매운맛이다.”
갈성천이 짬뽕을 흡입하며 그렇게 말했다. 혀가 아리는 사천의 매운맛과는 다른, 시원하게 속을 울리는 매운맛에 빠져 버린 듯했다.
“허허허, 시주…… 아무리 그래도 소림의 방장으로서…….”
혜윤은 마지막 보루인 소림사 방장의 신분을 내세우며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소림을 대표하는 방장인데, 육식을 하면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이 말이다.
“……여기서 네 체면 신경 쓸 사람 아무도 없다.”
독고휘가 그렇게 말했고, 혜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기가 육식이 아니라 살생을 하고 다녀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유아독존 독고휘.
육식을 하면 오히려 얻어먹으러 올 것 같은 팽소운.
자신이 육식을 했다는 사실로 돈을 뜯어먹고도 남을 사파의 인물인 갈성천.
하지만 그와는 제법 각별한 인연이 있었으니 그럴 일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눈앞의 영의였는데…….
‘……이 젊은 시주는 어찌해야 할꼬…….’
“……스님이 고기 먹는 게 뭐요? 이상한가?”
현대의 삶을 살아온 영의에게 스님이 고기를 먹는 건 별로 이상한 모습 으로 보이지 않았다.
스님들도 좋아서 그렇게 사시는 건 아닐 거고, 또 대접하는 건 거절하지 않는단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리고 혜윤에겐, 영의의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영의의 말을 듣고, 혜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짜장면을 잘 섞은 뒤 그대로…… 마셨다.
후-루우우우우웁!
사방을 진동시키고, 마를 굴복시키는 사자후를 외치기 위해 소림의 무승들은 폐를 잘 단련한다.
모든 무인들은 호흡이 기본이지만, 소림은 무공의 시초. 그만큼 호흡과 육체의 기본기를 중시했다.
그리고 그곳의 정점인 신승 혜윤대사. 그는 평생을 단련해 온 신체를 마음껏 발휘해 짜장을 흡입했다.
“잘 먹네…….”
그 자리의 모두가 짜장면을 물 마시듯 마시는 혜윤을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지난번의 팽소운도 저렇게 한 번에 먹진 못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