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2)
독고휘의 추가적 설명과 편지의 뒤에 써져 있던 문구로 어떻게든 오해는 풀리는 듯했다.
“권마 놈이 뭐라고 쓴 건진 몰라도, 일단 뭔가 자잘하게 써 둔 걸 보니 나쁜 의도는 없는 것 같군그래.”
“……말코 놈만 불쌍하게 된 것 같지만, 뭐…… 내 일은 아니니까.”
떼어 내려다 포기한 편지를 다시 접어 비단에 싸 두는 독고휘.
그리고 일단 상황이 정리되자 냉정을 되찾은 무림의 노인들.
“커험. 그래서…… 눈앞의 이 애송이가…… 그 녀석이오?”
갈성천은 영의를 약간 못마땅한 듯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영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는 소리는 아니었으나, 자신이 한 말이 있어 정말로 부련주직을 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 그 녀석이 바로 그…… 약간 공동전인? 느낌의 녀석이다! 오늘도 술은 제대로 챙겨 왔겠지?”
“……술?”
팽소운의 말에 뒤이어 뭔가를 물어보려던 혜윤은 멈칫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침이 고였다.
“다 좋은데 그 전에, 하나만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니까 잠깐만요.”
영의는 약간 흥분한 기색의 노인들을 진정시키며 마정석에 대해 물어보기 위해 주머니에서 마정석을 꺼냈다.
보온 박스에는 일반 마정석을 넣어 뒀지만, 그의 주머니에는 뇌영에게 주기 위해 뇌 속성의 마정석이 들어 있었다.
“이런 건데…… 뭐 쓸 만한 용도 없을까요?”
영의가 건네는 작은 마정석을 받아 들고는 이리저리 살펴보는 노인들.
“흐음…… 느낌으로는 뇌기가 응축된 내단 같은데, 돌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단 말이지.”
“자연에서 기가 모여서 나오는 영석의 전설이나 이야기는 몇 번 들어 봤지만…… 뇌기가 모인 돌은 처음이군.”
사파의 수장으로서 견문이 넓은 갈성천과 여행을 자주 하여 나름 경험이 많은 팽소운도 뭔지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허허…… 약간 단전 같은 느낌도 드는군요. 만약 뇌기를 지닌 사람이 내단을 남긴다면 이런 모양이 나오지 않을까 싶소만…….”
혜윤이 그나마 그럴듯한 정답을 내놓았다.
속성은 아닐지라도, 마정석은 괴수들이 죽으면서 그들의 몸을 이루던 마력이 응축된 것이니까.
“흐음…… 이거, 부숴 봐도 되나?”
생전 처음 보는 귀한 물건인데 보자마자 바로 부숴도 되냐는 말을 하는 독고휘.
그리고 그를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나머지 노인들.
아무리 제멋대로 살았어도 그렇지, 기를 응축하고 있는 기이한 물건을 보자마자 부순다고?
하지만 영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세요.”
“그럼 어디 한번…….”
독고휘는 마정석을 받아 들어 손 위에서 이리저리 굴려 보다가 잠깐 관찰도 해 보고, 뇌기도 흘려 넣어 보았다.
‘흐음…… 뇌기는 담겨 있지만, 더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라……? 뽑을 수는 있나?’
이내 그는 마정석에서 뇌기를 조금씩 흡수하기 시작했다.
“허어. 제법 재밌군그래?”
본디 영약이나 영초 등, 신체의 외부 물질로 흡수되는 기운은 약으로 잘 정제하지 않는 이상 갈무리하지 않으면 대부분 몸에 머물다가 조금씩 새어 나가 버리는데…….
이 뇌기를 품은 돌은 특이하게 몸 안에만 있고 새어 나가질 않는다.
그 점에 흥미를 느낀 독고휘. 이내 그는 마정석을 꽉 쥐어 부수었다.
부서지자마자 안에서 폭발적으로 방출되는 뇌기를 손 위에 가둬 버리는 독고휘.
“제법 신기한 돌이야. 뇌기를 품고 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내보내기만 한다. 그리고 부서지면 뇌기를 마구 뿜어내니…… 내력이 고갈됐을 때 하나 있으면 쓸 만하겠군.”
독고휘는 그렇게 말하며 영의를 쳐다보았다.
“옳지. 신기한 걸 보여 줬으니, 나도 좋은 걸 보여 주지. 내 성명절기인 천뢰검을 말이야.”
이내 손에서 날뛰는 뇌기 덩어리를 하늘로 쏘아 올리는 독고휘.
“……천뢰검?!”
독고휘는 평화롭게 말했으나, 다른 일행은 천뢰검이라는 말에 기겁해서 동굴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형님! 미치셨수? 말은 해 주고 쏴야 할 거 아니우!”
“아미타불…… 아미타불…….”
동굴 안에서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소리치는 팽소운.
그리고 혜윤은 자신들의 안전을 기도하고 있었다.
하늘로 뇌기 덩어리를 쏘아 올리고 나서, 손을 하늘로 계속 향하고 있는 독고휘.
그의 손이 제법 어지럽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그 손으로 뇌기를 조종하고 있는 듯했다.
“잘 보아라. 천뢰검이란, 나의 뇌기로 하늘의 벼락을 불러오는 것이다!”
독고휘의 천뢰가 하늘로 쏘아 올려지고 나서, 하늘에 구름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하늘엔 시커먼 먹구름이 우르릉거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낮이었으나 조금씩 어두워지는 동굴의 주변.
“구름이 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없어도 문제는 없다! 뇌기가 있는 곳엔, 구름이 올 것이다!!”
독고휘는 그렇게 말하며 이내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그었다.
번쩍!
그러자 이내, 먹구름이 자신의 안에 있는 모든 뇌기를 뿜어내기라도 하는 듯, 엄청난 기세의 벼락이 수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독고휘가 뇌기를 유도하여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벼락이 꽂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곳에만 집중적으로 벼락이 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이 들게 했다.
마치 자연에 의지가 있어 누군가를 죽이려 할 때의 모습 같았기에.
그리고 그때, 벼락으로 달려드는 검은 물체가 있었다.
“음?!”
“어?”
독고휘도, 영의도 차마 예상치 못한 상황. 독고휘는 다급히 손을 다시 위로 뻗어 천뢰를 멈추려 했지만, 영의는 독고휘의 행동을 제지했다.
휘요요오!!
힘차면서도 생기 넘치는 소리.
마교에서부터 영의의 뒤를 따라 날아온 뇌영이 벼락을 맞고 내는 소리였다.
“허어…… 뇌령조라니, 경계심이 강하고 늘 먹구름만 따라다녀 잘 보지도 못하는 영물이거늘…….”
“계속하고 계세요.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독고휘는 하늘을 나는 뇌영의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벼락을 내리꽂았고, 뇌영은 매번 벼락이 내려칠 때마다 그곳으로 날아가 뇌기를 몸에 받아들였다.
휘요!
휘이이익!!
이제 뇌기를 만족할 만큼 받아들인 건지, 벼락을 뒤로한 채 영의에게 날아오는 뇌영.
뇌영은 영의의 어깨 위에 살포시 앉고는 부리로 깃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뇌영아, 좋았어?”
파닥파닥!
날개를 퍼덕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뇌영.
영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뇌영의 부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허허…… 뇌령조도 데리고 다녔는가?”
“아, 네…… 뭐. 마교에서 알을 받았는데…… 제가 부화시켜서 키웠죠.”
영의의 말에 독고휘는 살짝 놀랐다.
“마교에서 받았다고?! 영물의 알을?”
물론 아까 혁련무강의 서신을 받아 오긴 했지만, 비고에나 들어 있을 법한 영물의 알을 받아 올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나?!
“자네, 혹…… 마교 소속이라든가…… 아니면 혁련무강…… 그 녀석의 사위라도 되는 건가? 대체 무슨 관계지?!”
독고휘는 영의의 어깨를 붙잡으며 거칠게 물었다.
그 바람에 뇌영이 깜짝 놀라 날개를 좀 퍼덕이긴 했으나, 조류답게 금방 다시 균형을 잡았다.
“아니요, 관계……라면, 대충 영감님이랑 저 같은 관계인데……?”
독고휘는 영의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러니까, 제자라고?!”
“……아닌데요. 그보다, 저 영감님 제자였어요?!”
이번엔 영의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언제부터 자기가 제자였나?
물론 무공 좀 배우긴 했어도, 거창하게 스승 제자 관계는 안 맺었는데?
“크흠, 그건 아니지……. 그보다 그렇다면, 혁련무강 녀석에게도 무공을 배운 건가?! 응?”
이젠 아예 영의를 붙잡고 흔들기까지 하는 독고휘. 뇌영은 아예 날아올라 주변의 나무로 날아가기까지 했다.
“아니, 억. 간단하게, 억. 천마군림보, 억. 하나만 배웠, 으어억?!”
너무 거칠게 흔든 탓에 말의 중간중간이 끊기는 영의.
그리고 천마군림보를 배웠단 말을 듣자 독고휘는 영의를 붙잡은 손을 놓았고, 그 바람에 넘어지고 말았다.
“……허허, 허허허허허. 하하하하하!”
이내 반쯤 미친 사람처럼 크게 웃는 독고휘.
“형님, 끝났……. 들어가자.”
이제 동굴 밖이 잠잠해졌으니 밖으로 나오려던 노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무강아. 너도 탐났다, 이거냐? 응? 비무대회 때 보자……!”
그러고는 이내 동굴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독고휘.
“으어억! 왜 다시 들어오는 거요?!”
“원래 내 거처다, 이놈들아!”
갑작스럽게 돌아온 독고휘 때문에 동굴 내부가 잠깐 소란스러워졌으나, 이내 다시 잠잠해졌다.
“좋아, 판을 키워 보자!”
독고휘는 그렇게 소리치며 한 손에 비단 보자기를 든 채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왔고, 그의 뒤를 나머지 노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뭘 키워요?”
“이번 천하제일 비무대회에! 네가 나가라! 그리고 우승해라!”
독고휘는 영의를 가리키며 그렇게 소리쳤다.
“……네?”
“원래 후기지수들만 끼워 넣는 축제지만…… 너 몇 살이냐?”
“어, 스물여덟 살…… 아니, 이쪽으로 치면 스물일곱…… 스물여섯인가?”
영의의 말에 독고휘는 잠깐 고민했다.
‘……이십 대면……?’
“야, 성천아. 이십 대면 후기지수 아니냐?”
“……조금 나이가 있긴 해도, 후기지수의 범위 안에는 들어가지요. 특히나, 우리처럼 고령의 고수들이 얼마 전까지 현역이었으니…… 어지간한 소가주나 소가주 후보들이 저만한 나이일 것 같은데.”
“흠, 내 큰손주가 쟤보다 조금 어려. 그리고 나이야…… 조금 속여도 될 것 같지 않수? 얼굴도 반반하니 약관(20세)……은 힘들겠고, 스물두 살쯤으로.”
팽소운과 갈성천이 그렇게 말하자 독고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비무대회에 출전해라! 그리고 우승해라! 그렇게 되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내가 널 제자로 천명해 주마!”
독고휘의 말에 갈성천도, 팽소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제일인이 제자로 보증해 주고, 또 그럴 만한 실력도 있으니…… 누가 안 하겠어? 게다가, 저 형님이 지금 큰마음 먹고 가져온 게 있으니…….
그렇게 그들은 영의가 제의를 받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의가 누구인가? 현대인이다. 제자고 뭐고 큰 신경을 안 쓰는 남자인 것이다.
“싫은데요?”
“……뭐?”
영의의 대답에 모두가 의문을 품었다. 심지어 혜윤마저.
“제가 뭐 제자 한다고 이득 될 것도 없고…….”
“아, 아니…… 천하제일인의 제자라니까?! 그 이름만으로도 넌 무림에서 반쯤 영웅이야!”
당사자인 독고휘가 아니라 오히려 옆에 있던 갈성천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천하제일인이 직접 말한 건데?!
“전 무림인 아닌데요.”
“아…….”
영의의 대답에 독고휘만이 뭔가를 깨달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이 녀석은 무림이랑 관계없는…… 아예 다른 곳에서 온 것만 같은 녀석이었지…….’
영의는 이참에 그냥 제대로 얘기를 해 놔야겠다 싶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된다면, 설명하기도 귀찮을 것 아닌가? 물론, 독고휘의 제자가 됐다고 하면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사실, 저는 그냥 영감님들한테 음식이나 드리러 오는 거예요. 저는 무림인도 아니고, 마교 사람도 아닌…… 그냥 민간인이죠.”
“……그걸 믿으라고?”
영의의 대답에 팽소운이 멍하게 물었다.
가르치는 건 바로 받아들여서 익혀 버려, 또 뇌룡보를 만들어서 가르쳐 놨더니 자기 방식대로 뜯어고쳐서 써먹지를 않나.
그리고 매번 볼 때마다 조금씩 몸 안의 뇌기가 늘어나는데…… 무림인이 아니라고?
“……그래, 좋다. 네가 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이것만은 약조해 다오! 나의 제자가 되는 것도 싫다면, 혁련무강! 그 녀석의 제자도 되지 말아라!”
독고휘는 영의를 똑바로 바라보며 그렇게 소리쳤고, 영의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그런 건 별로라.”
그렇게 영의가 거절의 의사를 명백히 밝혔을 때, 그의 시야에 알림 창이 떠올랐다.
‘왜 이 타이밍에?! 설마?’
[Alrim이 비무대회의 출전을 추천합니다. 그러나, 제자로의 영입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무슨 소리야?’
비무대회에 나가란 소리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영의.
그 예측대로 비무대회에 나가라고 추천하는 알림이였지만 제자로는 들어가지 말란다.
[Alrim이 혁련무강과 독고휘, 양쪽에서 보상을 받기를 추천합니다. 한쪽의 편을 들면 다른 쪽이 사용자를 꺼릴 것입니다.]
‘……그건 일리가 있다.’
실제로 혁련무강도 독고휘에게 묘한 집착을 보였고, 독고휘도 안 그런 척하지만 혁련무강의 제자가 되지 말란 말을 강조했으니 서로가 나름의 감정을 갖고 있으리라.
한쪽의 편을 들면 다른 쪽에서는 상당히 안 좋게 보겠지.
[그리고 Alrim은 당신에게 추천합니다…….]
알림이의 계획을 듣고는, 영의는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잖아? 역시 인공지능다워. 천재야……!’
[Alrim을 높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의는 알림이의 계획에 따르기로 했다.
“하겠습니다, 그 비무인지 뭔지.”
“오오오!!”
독고휘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고, 다른 노인들도 이야기가 갑자기 다르게 흘러가자 흥미가 생긴 듯했다.
“대신, 제자는 안 할게요.”
“??”
그리고 영의의 말을 듣자 그들은 의문만이 가득해졌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