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화 (1)
마교의 대전 앞. 상당히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이, 이보게! 내 서신도 가져다주게!”
“진정해라, 권마. 이미 지존께서 쓰셨다고 하지 않았나.”
다급한 표정으로 손에 잘 접힌 종이를 꽉 쥐고 있는 덩치 큰 노인과 그 노인을 붙들고 있는 다른 노인.
“권마. 네 심정은 잘 알겠다만…….”
“지존이시여! 부디 저의 서신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허하여 주시옵소서!! 제 평생의 숙원이나이다!!”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인이 그를 제지하려 했으나 덩치 큰 노인은 바로 바닥에 엎드리며 소리쳤다.
그렇게 나오자 차마 뭐라고 더 말하기도 힘들어진 상황.
그들끼리 있을 때면 모를까, 지금은 몇몇 부하들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아…… 그래, 뭐…… 이미 써 왔다니 어쩔 수 없겠지.”
“지존의 하해와도 같은 마음에 이 권마, 참으로 감동하였나이다!”
그렇게 소리치고는 재빠르게 일어나 종이를 한 청년에게 건네주는 덩치 큰 노인.
그는 마교의 고수인 권마, 강자성이었다.
“어우…… 종이가……. 대체 몇 년 묵은 결투장이에요?”
종이를 받아 든 청년, 영의는 상당히 오래된 듯 색이 바랜 종이를 보고 놀랐다.
‘무슨 헌책방에 있는 책들에서나 나올 색깔이…….’
“정마대전이 끝나자마자 써서 보관해 두었지. 글 잘 쓰는 부하를 시켰으니 못 알아보진 않을 거다.”
권마는 그렇게 말하며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폈다.
“아, 네…… 그러시군요…….”
마음속으로 저걸 집착이 심하다고 봐야 할지, 아니면 소심한 거라고 봐야 할지 잠깐 고민하던 영의는 신경을 끄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싸우는 거 아니니까.’
그렇게 시동을 걸어 둔 흰 바이크 위로 올라타는 영의.
그리고 그가 떠날 기미가 보이자 상공에서 그에게 재빠르게 날아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휘요!
그의 애완 영물이 된 뇌령조, 뇌영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가 아까 보여 준 그 기술…… 이름은 지었나?”
검은 옷을 입고 있던 중년인, 천마 혁련무강이 떠나려던 영의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요.”
“그럼…… 자네만 괜찮다면 내가 지어 줘도 되겠나?”
“아,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고요…….”
본인이 생각해도 작명 쪽은 별로 재능이 없었던 영의였기에 그는 무림인인 혁련무강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마치 천축의 신화에서 말하는 번개의 신이자, 신들의 왕인 제석천(帝釋天)과도 같은 압도적인 크기와 힘! 나는 그걸 뇌신무(雷神武)라고 부르고 싶네만…… 어떤가?”
“뇌신무요? 뭔가 이름이 거창한 것 같으면서…… 특징이 없는데…….”
영의는 혁련무강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천마군림보는 발로 걸으니까 무슨 보로 끝나고, 주먹 쓰는 건 무슨 권으로 끝나는데…… 그냥 뇌신무?
“중간에 멈추어서 자세한 건 모르지만, 자네가 보여 줬던 모습은 형태에 구애받지 않았네. 그저 손을 뻗으면 그게 뇌신의 손짓이요, 발을 디디면 그게 뇌신의 걸음이 되는 무의 형태였지.”
“아…… 네.”
영의는 혁련무강의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옆에서 듣던 권마와 검마는 깜짝 놀랐다.
저 나이에 형태에 구애받지 않는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그럼 지어 주신 이름은 잘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몸조심하고…… 서신은 꼭! 좀 잘 전달해 주게…….”
몸조심은 그냥 한 말이고…… 서신에 대해서는 특별히 강조하듯 강하게 말하는 혁련무강.
“하하, 네. 그럼 다음에 뵐게요.”
영의는 뇌영과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알겠네. 잘 가게!”
이내 개조된 마정석 바이크가 빛살과도 같은 속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갔고, 그 뒷모습을 보던 혁련무강은 곧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본좌는 당분간 폐관을 하겠다.”
“예……?”
“갑자기?”
갑작스러운 혁련무강의 폐관수련 선언에 당황하는 검마와 권마.
“저 친구의 뇌신무에서 착안한 새로운 무공이 있다.”
“새로운 무공이라니……!”
혁련무강은 영의의 뇌신무를 보면서 하나의 새로운 발상이 떠올랐다. 그냥 발로 찍어 누르는 천마군림보 말고…… 저렇게 나 자신이 하나의 거인이 된다면? 이라는 발상.
“새로운 무공은 천마파천무…… 아니, 아수라파천무로 한다.”
천축, 즉 인도의 신화에서 제석천인 인드라와 아수라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고받는 존재.
그리고 그 신화에서 대체로 아수라가 인드라를 이겼었다.
다만 인드라가 패퇴 후 최고신들에게 힘을 받고 돌아오지만…… 순수 힘은 아수라가 더 강하단 뜻.
천마 혁련무강, 그는 개인적으로는 영의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마교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한 명의 무인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에 이러는 것이었다.
‘보여 주마, 본좌의 무공을! 그리고, 중원의 또 다른 뇌신을 무릎 꿇릴 아수라를!’
중원의 또 다른 뇌신이란 아마도 독고휘를 칭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혁련무강은 7주간의 폐관에 들어갔다.
한편 영의는…….
[보상 수령이 완료되었습니다.]
[천마군림보를 습득하였으나, 추가적인 변화로 뇌신무로 변경되었습니다. 본 변화는 사용자의 재량에 의한 것이므로 페널티가 없습니다.]
“그래, 고마워 알림아.”
[천만에요.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영의는 알림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보온 박스를 체크했다.
‘면은…… 뭐, 괜찮겠지. 잘 말아 먹으면…… 국물들은 안 쏟아졌고, 탕수육은…… 괜찮겠고. 마정석…… 저걸 물어봐야 하는데, 마교에선 까먹었지. 이번엔 바로 물어봐야겠다.’
무슨 이유에선지 저번부터 마정석을 배달하라고 한 알림이.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선 묻지 못했다. 사실, 배달도 못 했던 것 같았다.
늘 다녀오고 나면 보온 박스의 한구석에 굴러다니던 마정석 하나. 물어봐야지 생각만 해 두고 까먹고 있던 그것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안 까먹게 확실히 물품들 사이에 끼워 놨어!’
물론 혁련무강이 그것에 대해 말을 하려 했었으나 하지 못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이내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자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내려가는 영의.
“……응?”
그러나 뭔가…… 좀 많다?
‘영감님들이 무슨 모임이라도 열었나…….’
기감이나 탐지 능력 같은 건 없는 영의였지만, 뇌기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에 밑에 독고휘가 있다는 건 느낄 수 있는 영의.
그 외에도 미세한 뇌기 반응들이 있는 걸로 보아 여러 명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내려가서 육안으로 서로가 잘 보일 거리까지 다가가자 아래쪽에서도 반응이 왔다.
“오오! 왔구먼!”
“……하아, 성천아…….”
“음? 나 뭐? 뭐 또 문제 같은 게 있소?”
“……아니다…….”
갈성천을 안타까워하는 독고휘와 자신을 대체 왜 안타까워하는 눈빛으로 보는 건지 의문스러워하는 갈성천.
“허허…… 저렇게 평화롭게 하늘을 날다니……. 아미타불…….”
“뭐야? 우와! 사람이 하늘을 난다?!”
혜윤과 갈성천도 하늘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눈치채고는 놀랐다.
“이야, 간만이네요? 지난번에 그 도사님은 안 계시고?”
영의의 바이크가 바닥으로 착지했다. 그러자 곧바로 다가오는 팽소운과 독고휘.
“아, 형님. 이번엔 좀 부어서 먹어 봅시다.”
“닥쳐라. 연을 끊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
싸늘하게 말하는 독고휘를 보자 영의는 웃음만 나왔다.
“아하하…….”
‘왜 이 동네에서도 부어 먹는 거랑 찍어 먹는 거로 싸우고 있냐고……. 반반 나눠서 원하는 방식으로 먹어, 영감들아…….’
그리고 거침없이 다가가는 둘의 행동에 용기를 얻었는지, 갈성천과 혜윤도 영의에게 다가왔다.
“허어…… 아미타불. 시주는 대체 어디서 오셨기에…….”
“아, 잠시만요. 전해 줘야 될 물건이 있어서 그것부터 좀…….”
혜윤은 영의의 정체를 대략적으로 짐작하면서도 예의상 질문을 하려 했으나 영의는 혁련무강에게 당부받은 말이 있었기에 우선 보온 박스에서 서신부터 꺼냈다.
“그, 두 분한테 전하라고 하더라고요. 꼭 좀 전달해 달라고…….”
독고휘와 팽소운에게 건네어지는 서신.
독고휘에게 전해지는 것은 잘 조각된 목함 안에 들어 있었고, 팽소운에게 전해지는 것은 비단에 곱게 싸여 있었다.
“음? 나한테?”
“나한테도?”
서신을 받아 들고는 그 자리에서 읽어 보는 두 노인.
음식이야 늘 그랬듯이 기대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서신이라니 궁금증이 생겼다.
“흐음…… 허어…… 하, 하하!”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읽다가 웃기 시작하는 독고휘.
“…….”
그러나 독고휘와는 달리 서신을 읽으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팽소운.
“……야, 팽가야. 넌 대체 내용이 뭐길래 반응이 없냐?”
갈성천이 그렇게 말하며 본인도 궁금한지 팽소운의 서신을 흘끗 쳐다보았다.
“……어후.”
팽소운에게 온 서신을 보고는 못 볼 걸 봤다는 듯 서둘러 고개를 돌려 버리는 갈성천. 혜윤도 내용이 궁금해져 슬쩍 쳐다보았다.
“……허허, 나무아미타불 관자재보살 행심 반야바라밀다…….”
이내 손에 든 염주를 한 알 한 알 굴려 가며 불경을 읊조리기 시작하는 혜윤. 마치 서신을 정화하려는 듯 줄곧 서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아니, 뭔 내용이길래 그렇게…….”
물론 한자는 읽을 수 없는 영의였지만, 대체 뭐라고 썼길래 내용을 본 지 1초 만에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조금 단순무식한 면이 있는 권마 영감님이 뭐라고 썼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렇게 편지를 본 순간, 영의는 곧바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한자를 별로 많이 알지도 못하는 영의였지만 그래도 몇몇 유명한 글자는 알았기에.
팽소운에게 온 서신에는 한가운데가 이미 검게 변해 버렸지만 묘하게 띠고 있는 붉은색으로 그게 피로 썼다는 걸 알 수 있는 글자가 있었다.
그것도 한 글자로, 아주 크게.
[殺]
“……저거, 잘못 온 거 아닌가?”
영의는 그걸 보며 겨우 저거 한 글자 쓰려고 글씨 잘 쓰는 부하한테 맡겨서 쓰게 했다고? 그럼 피는? 부하 걸로 한 건가? 라는 의문에 빠져들었다.
“……형님, 아무래도 모든 걸 걸고 생사결을 하자는 도전장이 온 것 같수.”
팽소운은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서신을 두 번째 읽어 내려가던 독고휘가 의문을 표시했다.
“뭐? 권마 그놈이? 너희 얼굴만 가리면 누가 누군지 모르는데?”
행동거지도 비슷해, 성격도 비슷해, 심지어 덩치까지 비슷한 둘이었다.
오죽하면 정마대전 때 둘이 싸우는 장소에 지원을 가려고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정도로.
그나마 오래 다녀서 구분이 가능한 정사칠룡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들마저 없었으면 아마 둘이서만 계속 치고받고 싸웠을 것이다.
“흐음…… 일리가 있소. 팽 시주와 싸움만 생각했지, 살육 같은 건 즐기지 않는 인물이었소만…….”
“그렇네……? 그놈은 성격 이상해서 사파보다 착한 놈 같지 않았나?”
혜윤과 갈성천도 의문을 표시했고, 이내 독고휘가 팽소운의 서신을 뺏어 들었다.
“내가 좀 보자. 흐음…… 너무 대놓고 죽인단 뜻인데……. 음?”
그렇게 서신을 살펴보던 독고휘는 피에 말라붙고, 또 종이가 오래되어서 그런지 팽소운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바로 서신이 두 장이었던 것.
“야, 이거 두 장인데?”
독고휘는 조심스럽게 종이를 떼어 내려 해 보았지만, 피 때문인지 서로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거 떼다간 찢어지겠는데요?”
영의도 자세히 살펴보며 그렇게 말했고, 이미 두 장이 하나가 되어 버린 것 같은 상황이었다.
“흐음…… 어?”
두 장이 붙은 부분을 어떻게든 떼 보려고 살짝씩 힘을 주다가 발견한 한 글자.
그것은 피로 쓴 서신의 뒷부분에 써져 있었다.
“뭔데요, 뭐라고 쓴 건데요?”
영의는 한자를 몰라 그 부분을 읽을 수 없었지만, 그걸 본 독고휘는 이 피로 된 서신을 누가 쓴 건지 짐작이 갔다.
[운광, 너를 쓰러트리고 진정한 승자로 거듭나겠다.]
“……혹시 마교 놈들 이런 거 미리 만들어서 보관해 두냐?”
독고휘는 진실을 생각보다 정확히 짚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