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화 (22)
다음 날, 영의는 늘 그렇듯이 배달부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갔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채로.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자 참다못한 병찬이 말을 꺼냈다.
“……행님, 뭐 좋은 일 있어예? 와 그리 얼굴에 ‘내 오늘 좋은 일 있습니더~.’ 하고 있는데예?”
“응? 티 났어?”
“네, 형. 그것도 엄청…….”
사실, 오늘 아침에 옥션에서 연락이 왔다.
금화가 낙찰되었다는 연락이! 그것도 개당 5천만 원으로 25개 전부 낙찰!
옥션의 사장님도 기분이 좋았던 듯, 연신 축하한다는 문자가 왔었다.
“아, 별건 아니고…… 돈 들어올 일이 좀 생겨서.”
영의의 말에 병찬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뭔가를 직감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설마, 행님?”
지난번에도 묘하게 진실에서 슬쩍 회피하더니, 이번에도 그렇게 반쯤 진실을 맞혀 버리는 게 아닐까 싶어 잠시 당황한 영의.
“왜, 왜. 이번엔 뭔데 또.”
“로또라도 하셨어예?”
역시 병찬이는 병찬이였다.
잠시나마 어제 도둑의 용의자를 병찬이로 오해한 자신이 멍청했다고 생각한 영의.
“……아니.”
“에이, 로또가 그렇게 쉽냐? 그리고 됐어도 안 됐다고 말해야 하는 법이야. 형, 로또까진 아니고…… 토토라도 했어요?”
그나마 현실적인 방향으로 의심해 보는 병민.
그러나 그도 정답은 아니었다.
“아니, 그냥 비밀로 해라. 돈 들어오면 내가 술……은 못 사겠고, 밥이라도 살게.”
그들 직업의 특성상 술은 자제하는 게 좋았다.
만약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기에.
영의가 밥을 사겠다는 말에 뭐라 말하려던 병찬과 병민.
그들은 말을 꺼내려 했지만 꺼내지 못했다.
-삐익.
중간에 들렸던 이질적인 소리 때문에.
“……방금 뭔 소리 안 들맀나? 아인가? 내가 이상한 기가? 니 들었나?”
“……나도 들었어. 뭔가 휘파람…… 같은 소리?”
영의는 둘의 태도에 당황했다.
그리고 자신의 재킷 안쪽의 안주머니에 신경이 쓰였다.
‘뇌영아, 밥이란 소리에 반응하면 어떡해……!’
다급히 뇌영을 진정시키려 안주머니 쪽에 뇌기를 흘려 보냈으나, 뇌영은 뇌기도 나름 친숙하고 맛있지만…… 쌀이 더 좋았다.
하지만 일단은 배고픈 건 해결되니 참는 뇌영.
‘아, 괜히 쌀을 먹여 봤나…….’
뇌기를 주로 먹여서 키우면 똥도 덜 쌀 거고, 또 나름대로 잘 자라겠지만…… 뭘 먹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먹여 본 게 탈이었다.
애가 입맛이 고급이 된 건지, 뇌기를 먹긴 하는데 영 시원찮게 먹었던 것.
아무튼, 이렇게 위기에 봉착하게 된 영의. 그는 순간적으로 빠른 상황 판단을 했다.
‘좋아, 대책을 짜 보자.’
1번 - 방귀 소리였다고 한다.
‘그거 내 방귀 소리였어.’
‘아, 행님…… 실방구를 뀌시네…….’
……나름 나쁘진 않다.
2번 - 자신도 누가 휘파람 소리를 내었는가 하며 동조를 해 버린다.
‘무슨 소리지?’
‘약간 휘파람 같기도 하고…… 새소리 같기도 하고…….’
좋긴 한데, 타이밍이 조금 늦은 것 같다.
3번 - 못 들었다고 해 버린다.
‘뭔 소리? 난 못 들었어.’
‘아, 무슨 소리가 났는데…….’
그럴듯했다.
4번 - 실제로 새를 키우고 있는 걸 보여 주고, 매번 자리를 비운 이유가 이거였다고 설명한다.
‘사실, 난 안주머니에 새 한 마리를 키우고 있어.’
‘행님, 지도 SNS에 퍼런색 새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이게 진짜 빨라서 지구 반대편까지도 갑니더. 보실래예?’
‘파랑새는 우리들의 곁에 있는 거예요, 형. 멀리 갈 필요가 없어요. 행복을 주는 파랑새는 우리의 주변에…….’
……대책은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그만 세워 보자.
영의는 모른 척을 하기로 했다.
“소리? 무슨 소리?”
“……이상하네……. 내가 잘못 들었나?”
“그런가? 근데, 두 명이 들었으면 모를 리가 없는데…….”
그렇게 계속 의문을 품는 병찬과 병민. 그러나 그때 다시 소리가 들렸다.
삐유욱.
‘……이 소리는 뇌영이가 아닌데?’
“어! 방금 들렸어!”
“……나도 들은 것 같은데.”
영의와 병민이 그렇게 말하며 병찬을 돌아보았고, 병찬은 필사적으로 둘의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병찬아?”
“병찬아……?”
“크흠, 그…… 음…… 내 사과하께. 내가 방구 낐다. 됐나? 조심한다꼬는 조심했는데…… 이야, 그 소리가 나 뿠네…….”
다행스럽게도 뇌영이 들키진 않을 것 같았다.
“아, 더러워. 말을 해 그냥! 그럼 이해라도 해 주지! 그걸 굳이 몰래 해야 돼?”
“아니, 뭐…… 내도 수치심이란 게 있다 아이가. 대놓고 하기에는 내가 쪼매…….”
그렇게 오늘도 자기들끼리 재밌게 노는 병찬과 병민.
다른 배달부들도 그 둘의 모습은 나름 구경거리인 듯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으휴, 멍청하지만 착한 녀석들…… 늘 그렇게만 있어 줘라.’
영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밥을 사 줄 땐 좀 비싼 걸 사 줘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시야에 알림이 나타났다.
[Alrim이 알립니다.]
[새로운 배달이 있습니다. (2)]
‘어……? 2?’
지금까진 늘 하나씩만 했던 배달이었는데, (2)라고……?
영의는 다급히 알림 창을 확인해 보았다.
‘알림아, 정보만 띄워 줘.’
[Alrim이 요청을 받았습니다. 설명을 제외한 정보 표기.]
[주문인 : 천마 혁련무강]
[주소지 : 전과 동일]
[배달 물품 : 양념치킨(순살)]
[보상 : 천마군림보 전수(지난 배달에서 확정됨)]
이건 반가웠다. 영의도 내심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이번엔 두 마리 정도 사 갈까 생각하던 영의는 다음 주문도 확인했다.
[주문인 : 검황 독고휘]
[주소지 : 전과 동일]
[배달 물품 : 짬뽕 2, 짜장 2, 탕수육 (대) 2, 고량주(종류 무관) 3, 마정석]
[보상 : 정보, 무공, 사도련의 간부직 중 택 1]
사도련……? 이번엔 뭐 무슨 영감님이 찾아온 건데……?
거의 대부분의 인물이 교의 내부에 있는 마교와 달리 독고휘 쪽, 그러니까 중원은 온 사방에 퍼져 있으니 누구인지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번 베키에게 갔을 때 배달은 두 건을 한 번에 못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같은 계열이라 되는 건가?’
그나마 하나 알 수 있는 건 간부직이란 걸 보면 아마 사도련의 높으신 분 중 하나일 듯하단 것이었다.
‘……사도련이 뭔진 모르겠지만.’
“얘들아, 나 간다!”
그리고 이내 말다툼을 하던 병찬과 병민에게 짧게 말하고는 날아오르는 영의.
“어어, 네.”
“행님, 욕 보십니더.”
둘은 그렇게 말하고 영의를 돌아보았으나, 과거보다 훨씬 빨라진 영의의 속도를 보고 당황했다.
“……뭐고, 방금?”
“형이 뭔가…… 더 빨라진 것 같지 않아?”
사실 베키의 수리……란 이름을 앞세운 개조 덕분이긴 하지만, 둘은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한편 날아올라 주문을 이행하기 위해 치킨집부터 가는 영의.
그는 날아가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두 개가 동시에 왔어. 일단 보온 박스에 넣어 두기만 하면 식는 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아, 면이 불 텐데 독고휘 영감님한테 먼저 가야 하나?’
영의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눈앞에 알림이 떠올랐다.
[Alrim이 알립니다. ‘천마 혁련무강’ 님에게 가는 배달을 추천합니다.]
“뭐……? 면이 불잖아.”
[Alrim의 계산에 따르면, 그쪽이 좋은 선택지입니다.]
“그게 대체 무슨…….”
그러나 그때, 알림이가 대화를 멈추었다.
[Alrim은 업데이트를 감지, 업데이트를 실시하겠습니다. 지도와 운행 기능은 정상 작동합니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도 없는 알림이.
영의는 이쯤 되면 진짜 수상하다고 생각하며 치킨을 픽업하고, 중국집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안 불게, 면하고 국물을 따로 담아 달라고?”
“네.”
중국집에서 사장님에게 짬뽕을 따로 담아 달라고 말하는 영의.
물론 못 할 부탁은 아니었다.
“짬뽕을?”
“네!”
불지 않게 하려면 필요한 절차이니 이해는 하는 사장.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배달 전문 각성자 아닌가.
1시간 안에 전국을 다 왕복할 수 있는. 근데 왜 그런 조치가?
“……뭐, 안 될 거 없지. 아니지, 짜장도 똑같겠지?”
“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관두는 사장.
‘그래, 단 한 치의 불은 면도 용납할 수 없다는 그런 고객이겠지……. 배달부가 무슨 잘못이겠어……?’
이것은 전적으로 배달부의 의지였다.
“해 줄게.”
“아, 감사합니다. 그, 짬뽕은 간짜장처럼 추가 비용은 드릴…….”
짬뽕을 따로 담아 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받은 사장에게 추가 비용을 주려던 영의.
그러나 사장은 손을 내저었다.
‘에휴, 개인 돈까지 쓰면서 그러려고……. 너도 손님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구나…….’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은 건 영의보다는 손님 측이었다.
“괜찮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아, 짜장은 간짜장 비용 줘야 돼. 그건 있는 메뉴니까.”
“……네.”
그렇게 중국집과 치킨집을 돌고는 이내 다시 무림으로 향하는 영의.
치킨 쿠폰은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양심에 조금 찔리긴 하는데, 이 부분은 내가 모아 놨다가 10장 모이면 그때 한 마리 더 갖다 주자.’
물론 10번을 다 채울까 싶기도 했지만, 영의는 다 못 채우면 그땐 그때 가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영의는 사막과 산의 풍경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마교의 본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시각, 마교의 주방.
“으하하하! 해냈다아아!!”
폭혈도 장화관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땀에 젖어 빛이 나는 그의 머리.
그리고 그의 앞에는 노릇노릇하게 잘 튀겨진 닭 조각들이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한 입쯤 베어 문 닭 조각.
“드디어, 드디어 튀김의 비밀을 알아냈다! 밀가루의 품질이 정답이었구나!”
지금까지의 밀가루는 모두 제분을 대충 한 굵은 입자의 형태로, 장화관이 연구를 시작하던 초반까지만 해도 굵은 입자였다.
그러나 모든 재료를 최고급으로 바꾸라는 지시에 고기부터 채소까지 전부 최고급으로 바꿔도 뭔가 부족함을 느꼈던 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찰나, 그의 눈에 껍질째로 갈려서 약간 갈색을 띠게 된 밀가루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그 자신이 밀알들을 가져와 직접 도정하듯 껍질을 제거하고 밀을 빻았다. 그 결과, 고운 흰 밀가루가 나온 것이다.
그런 다음, 그걸 사용했더니…… 정확히 그 식감이 재현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세세한 맛 조정과 양념의 문제였다.
“맛 조정은 금방 해결된다. 밑에 있는 애들을 시켜 보면 시간이 단축되니까. 하지만 양념은…….”
장화관은 지금도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혁련연화를 떠올렸다.
이상하게 요리에 취미를 붙인 교주님의 혈육이자 애지중지하는 딸.
어쩔 수 없이 호위 겸 요리를 가르치는 선생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키우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양념이란 게 하루 이틀 만에 나오는 게 아니란 걸 아는 그가 일단 이 닭튀김만이라도 어떻게 진상해 보면……이란 생각을 하던 찰나.
“대체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연화가 활짝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붉은 액체가 담긴 통이 빛나는 듯했다.
그들은 기뻤다. 이제 그때의 감동을 다시 맛볼 수 있었고, 또 이걸 완성했다고 보고하면 엄청난 상을 내려 줄 것이었으니까.
그래, 만약 그날 영의가 오지만 않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