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21)
침대에서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러 부엌으로 간다.
파닥파닥.
“삐요!”
물을 마시고 다시 침대로 간다.
파닥파닥.
“삑, 삐요!”
영의가 움직일 때마다 무조건 따라 하려고 하는 뇌영.
처음에 수연과 함께 있을 땐 그저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었다.
핫 팩에도 묘한 집착을 보였고.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영의를 따라다니며 하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고 있었다.
작은 날개를 앙증맞게 파닥이면서.
“그래, 내가 그렇게 좋니?”
영의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뇌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뇌영은 잠시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똑같이 따라 하듯 앞으로 기울였다.
“삐요! 삐!”
앞으로 기울이다 그만 무게중심이 쏠려 철푸덕 넘어지는 뇌영.
“앗.”
그러나 이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날개를 파닥이며 다시 일어섰다.
“바로 일어났네? 아이고, 잘한다. 우리 뇌영이…….”
“삐요!”
영의의 칭찬에 뇌영은 바닥에서 조금씩 팔짝거리며 뛰었다.
마치 영의의 칭찬을 알아먹기라도 한 듯이 이번엔 뭔가 더 보여 주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에이, 그래도 태어난 지 하루 차에 나는 건…….”
물론 알에서 태어나는 생물체들 대부분이 태어나자마자 어느 정도 활동할 줄은 안다.
하지만 태어난 지 하루 만에 날아다니는 건 불가능할 거라 여긴 영의.
실제로 뇌영도 파닥거리면서 점프 정도나 할 줄 알았지, 비행은 못했다.
“삐약! 삐익!”
파닥파닥!
“우와, 뇌영이 너……?”
그러나 역시 영물이라고 해야 할까, 바닥에서 날아올라 영의의 어깨 위에 안착하는 뇌영. 영의는 그 모습에 감탄했다.
“이야…… 역시 영물인가……?”
영의는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 옆에 놔둔 종이를 읽기 시작했다.
“삐익?”
영의가 종이를 보자 자신도 따라 하려는 듯 종이를 바라보는 뇌영.
[금년도 각성자 아카데미 입학식에 참여하여 자리를 빛내…….]
그러나 그 글자들을 알 리 없었다.
그냥 부모인 영의가 하니까 따라 한다는 수준.
조금 전, 수연은 영의네 집에서 자지 않았다.
물론 뇌영이 귀여우니 계속 있고 싶어 했지만, 영의가 돌려보냈다.
‘가방은 놔두고 갈게. 오빠 건지 의심은 가는데…… 그래도 일단은 믿어 줄게! 그리고, 나 입학식 때 꼭 와야 돼? 큰오빠도 둘째 오빠도 다 온다고 했단 말이야.’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고, 영의는 입학식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알아보니 생각보다 거창한 행사였다.
‘뭔 입학식에 가수 초청에, 유명인들 참석에…… 경호까지 붙여 놓냐? 그러니까 학교가 등록금을 그렇게 받아먹지…….’
수연의 등록금 마련을 위해 뛰었던 배달들을 생각해 보니 약간 짜증이 밀려오는 영의였다.
열심히 일해서 벌어 놨더니, 그중의 반은 저런 데 쓰일 게 뻔하지 않은가.
“아무튼 우리나라 있는 놈들 허례허식은…….”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종이를 옆에 대충 던져 놓았다.
어차피 입학식은 낮에 할 거고, 그땐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참석이 어렵진 않을 것 같아서였다.
영의는 오늘 아침에 잠깐 베키에게 다녀온 뒤 수연을 만나고…… 그런 다음 하루 종일 뇌영을 키우고 훈련시켰다.
“삐익!”
뇌영은 과연 어려서 그럴까, 낮에 훈련을 한 뒤 지금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활기가 넘쳤다.
“그래, 너도 자야지?”
“삐요!”
침대 위에서 날개를 파닥이는 뇌영. 영의는 자기 손만 해진 작은 새를 보며 미소 지었다.
‘뭐, 말을 못 알아듣지도 않고…… 나름 배우는 것도 빠른 것 같으니까…… 손 갈 일은 별로 없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 뇌영은 그 이불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영의에게 착 달라붙었다.
“삐익…….”
“그래, 잘 자라.”
그렇게 영의는 눈을 감았다.
“삐요! 휘이익!”
……라고 생각한 순간, 잠에서 깨고 말았다.
뇌영이 어느새 지저귀며 활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키울 때 고생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한 지 불과 하루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 지금 몇 시길래…….”
영의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전등을 켜 시간을 보았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서 켜기보다는 뇌기로 전등을 켜는 게 더 편했다.
[02:17]
“……참 일찍도 일어난다. 이만큼 일찍 일어나면 일찍 일어난 벌레도 없어…….”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뇌영을 재우기 위해 손으로 감싸 안았지만, 뇌영은 영의의 손길을 피했다.
“너 왜 그래? 벌써 사춘기야?”
영의의 말에 뇌영은 날개를 파닥거리더니 이내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삐요오! 휘약!”
그러고는 날아올라 창문에까지 날아가는 뇌영.
창문틀에 걸터앉아 영의를 돌아보았다.
“……와, 도약도 모자라서 이젠 진짜 날아다니네.”
“휘익!”
그러고 보니 지저귀는 소리도 뭔가 바뀐 느낌이었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또 한 단계 큰 건가……?
영의가 영물의 신비에 대해 잠깐 감탄하고 있을 때, 뇌영이 다시 날아와 영의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고는 뭔가 몸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는 듯했다.
“삐요, 휘욧! 휘이익!”
날개를 파닥이더니, 이내 바닥에 눕고는 다시 바닥에서 일어나는 등의 자세를 취하는 뇌영.
영의는 그걸 보며 나름의 해석을 해 보았다.
그러니까…… 날았다. 누웠다. 누운 사람…… 아니, 새가 일어난다?
“……모르겠는데?”
당장 사람이 사람한테 몸으로만 설명하려고 해도 알아듣는단 보장이 없는데, 하물며 짐승이 사람한테 설명을 한다고 해도…….
“휘요익…….”
뇌영은 자신의 설명을 영의가 못 알아먹는 듯하자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 나서 다시 잠들려는 듯, 침대로 내려가는 뇌영.
영의는 이제 자겠지 싶어 다시 전등을 끄고 누웠다가 문득 생각이 정리되었다.
‘잠깐, 그러니까…… 날았다. 그리고 자는 게 일어났다……. 자면서 날 리는 없을 거고. 자던 건 나였으니까…… 날 깨운 게…… 날아서? 자기 날 수 있다고 나한테 보여 주려고 깨운 건가?’
영의는 갑작스럽게 생각이 정리되자 다시 불을 켜고 뇌영을 깨웠다.
“뇌영아, 혹시 너 나는 거 보여 주려고 나 깨운 거야?”
“휘요! 휘이!”
파닥파닥.
뇌영은 영의가 그렇게 말하자 날개를 파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의는 그걸 보자 묘하게 진짜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뭔가 해내게 되니까 기뻐져서 부모님을 부르는 모습……이라. 근데, 얘는 뭐 먹어야 잘 크지……? 일단 쌀은 잘 먹긴 하던데.’
영의가 자신이 말하려고 하던 바를 알아주자 뇌영은 금방 만족한 듯 잠들었다.
그리고 영의는 다음에 혁련무강에게 가면 뇌령조가 뇌기 말고 뭘 먹는지 한번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잠에 들었다.
* * *
한편, 어두운 한 밀실.
서로 다른 체격을 지닌 네 명의 남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경계는 하지 않았지만…… 크게 친하지도 않은 듯, 친밀감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 계획은?”
의자의 등받이에 기댄 한 여자의 목소리.
“간단해요. 시선을 돌리고, 그 틈에 목표를 친다.”
제법 미성의 목소리를 가진 남자가 존댓말로 대답했다.
“어! 나 그거 알아. 홍동백서라는 그거 맞지?”
상당히 가벼운 듯한 목소리를 가진 키 작은 여자가 까불거리듯 그렇게 말했고, 나머지 세 명 중 두 명은 반응이 없었으나 한 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사자성어. 중요하지.”
팔짱을 끼고 의자에 앉아 있던 덩치 큰 남자가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고학력자들의 모임은 아닌 듯했다.
아니, 적어도 두 명은.
“……성동격서입니다. 홍동백서는 제사상 차릴 때나 하는 거고.”
“그게 그거 아냐?”
“네 글자 중에 두 글자가 맞으면 반은 맞은 거군.”
두 명이 그렇게 답하는 걸 듣고는, 등받이에 기대 있던 여자가 한숨을 내쉰다.
“하아…… 어쩌다 이런 놈들이랑 같이 일을 하게 된 거지……?”
“그거야 우리가 실력은 최고니까! 우리가 그…… 특출 난…… 현미! 현미니까!”
이번에도 정보를 수정해 주는 존댓말의 남자.
“……백미입니다.”
“백미야?! 그럼, 현미는 뭐에 쓰는 건데?”
가벼운 여자의 말에 덩치 큰 남자가 답해 주었다.
“운동할 때 먹는 게 현미다. 운동 안 할 때 먹어도 몸에 좋지.”
남자의 대답에 키 작은 여자가 감탄하며 소리쳤다.
“우와, 그럼 난 현미만 먹고 살래!”
그리고 늘 이런 풍경을 보아 온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나마 정상 쪽의 두 남녀.
“……나 진짜 이번에는 안 하면 안 돼?”
“안됩니다. 저래 보여도 임무만 하면 제대로 하니까…….”
“그 외에 모든 게 문제잖아!”
“그것만 잘해 주면 전 만족합니다. 그리고, 재밌잖아요?”
그저 재미라는 이유 하나로도 충분하다는 듯, 웃는 남자.
“……난 가끔 네가 제일 미친놈 같아.”
여자의 말에 존댓말을 하는 남자는 미소 지었다.
“저희 업계에선 칭찬입니다! 자, 그러면…… 소동을 일으키는 건 제가 알아서 맡죠. 나머지는 여러분이 해 주시면 됩니다.”
존댓말을 하는 남자의 말에 덩치 큰 남자와 가벼운 분위기의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이번엔 가면 쓰고 할래! 막 얼굴하고 머리카락하고 다 가리고!”
가벼운 여자의 말에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여자가 등받이에서 등을 떼었다.
생각보다 상식적인 언행이었기 때문이다.
“가면이라…… 나쁘진 않네. 웬일이래? 나름 정상적인 아이디어도 내놓고? 기밀 유지는 생각도 안 하는 것 같더니?”
“하하, 그래서 제가 좀 고생했지요.”
존댓말 남자도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으나, 가벼운 분위기의 여자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얼마 전에 영화 보고 인터넷으로 그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 가면 샀어! 나 그거 쓰고 할래!”
“……그럼 그렇지.”
“뭐, 그래도 인터넷에 팔리는 거면 추적은 안 당하겠네요.”
“응! 아저씨도 나랑 같이 가면 쓰고 하자!”
가벼운 분위기의 여자가 덩치 큰 남자에게 그렇게 말했고, 덩치 큰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할 거다.”
“엥? 왜?”
“가면 쓰면 숨쉬기 힘들어.”
생각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대는 덩치 큰 남자.
하지만 가벼운 분위기의 여자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권했다.
“그럼 내가 빨대 하나 줄게! 그걸로 숨 쉬어!”
정상인이면 받아들일 리 없는 제안.
“그럼 하겠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어두운 곳에서 수상쩍은 계획을 짜는 수상한 사람들답게 정상인이 아니었다.
“하아…… 진짜 째고 싶다…….”
“하하하, 캐릭터가 멀쩡한 것이길 기도해야겠네요.”
존댓말을 하는 남자의 말을 들은 것인지, 가벼운 분위기의 여자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공주님 캐릭터야!”
존댓말을 하는 남자는 그래도 공주님 가면을 쓰기는 싫었는지 슬쩍 회피했다.
“……전 계획이랑 시선 분산 담당이니까 안 써도 됩니다.”
“야! 너만 빠지는 거야?”
“그럼 머리를 쓰세요.”
어딘가 조금 모자란 듯한 네 명의 남녀.
믿기지 않겠지만 그들은 국제적 범죄 조직, <죽음으로 가는 빛>의 간부진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간부씩이나 되어서 저러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