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20)
영의와 수연이 뇌영을 데리고 흐뭇해하는 동안, 마교 쪽은 어떻게 됐을까?
명교의 대전. 지난번 혁련무강이 부숴 먹은 구멍은 깔끔하게 수리되었다.
이미 성화제도 끝났고, 무림맹에서 독고휘가 난리 친 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며 소문이 퍼진 상황.
“지존이시여! 중원에서의 비보가 있습니다!”
바닥에 엎드리며 소리치는 남자.
이 남자는 지난번, 혁련무강에게 정보를 전해 주었던 남자였다.
“비……보라고? 그래, 말해 봐라. 지난번처럼 엉터리 정보라도 내 심심함을 달랠 정도는 되겠지?”
혁련무강은 빈정대듯 그렇게 말했고, 바닥에 엎드린 남자는 그 말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지난번 정보의 오류로 그와 그가 속한 정보부인 마영각은 대대적인 질책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번엔 그도 정말 억울했다.
‘대체 왜 그런 최고수들이 모여서 동네 노인처럼 술 한잔하면서 옛 추억이나 나누는 거냐고!’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정말로 확실한! 진짜로 확실한 정보를 가져온 것이었다.
“예, 무림맹 측에서 비무대회를 연다고 하였습니다. 삼십 세 밑으로는 전원 참여가 가능하며, 그 출신은 정, 사, 마를 가리지 않겠다고…….”
남자의 보고에 혁련무강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의 겉모습은 흰머리가 다 사라진 상태.
물론 얼굴은 중년쯤 되었을 때의 얼굴이지만, 머리카락만큼은 제대로 반로환동했다.
“……비무대회? 정, 사, 마 가리지 않고?”
“예! 그리고 무림맹의 회의장에 검황이 난입하여 신교로 쳐들어온다는 계획을 망쳤다는 이야기도…….”
남자는 그 말을 하며 가슴을 졸였다.
말을 안 하자니, 중요 정보이고. 말을 하자니…… 그 후폭풍이 두려웠으나.
눈앞의 남자, 천마 혁련무강은 짜증 나는 정보를 말하는 것보다는 정보를 숨기는 것에 더 분노하는 남자였다.
“뭐, 그럴 만하지.”
혁련무강은 별것 아니라는 듯 넘겼다.
그 반응에 얼이 빠져 자신도 모르게 말이 입 밖으로 나와 버리는 남자.
“……예?”
“독고휘는 그런 남자다. 그리고……. 아니, 이건 중요한 게 아니지. 아무튼, 비무대회에 출신을 가리지 않는다고?”
자신이 혹시나 내뱉은 말이 심기를 거스르지나 않을까 싶었으나 혁련무강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예! 확실합니다! 출신을 가리지 않겠다고 공표했으니, 대외적으로는 초대도 올 것이 아닌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혹시 몰라 혁련무강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다행히도 표정에 큰 변화는 없었다.
“흐음…… 그래, 그렇단 말이지……?”
사실 비무대회는 그저 정파와 사파 간에만 이뤄지려 했으나, 정사 간의 비무대회를 연다는 이야기를 슬쩍 들은 독고휘가 다시 무림맹에 쳐들어갔다.
거기서 대외적으로는 공평한 비무대회이고, 또 평화를 추구하자는 말을 하며 현 마교의 전력 측정이라는 명목으로 초대까지 하자고 했다.
초대에 응한다면 상당히 고위급 인물이 올 것이니 그걸 기준으로 동태를 살펴보자는 독고휘의 말에 무림맹은 수긍했다.
그렇게 진행된 천하제일무술…… 아니, 비무대회.
그 규모와 소식에 중원과 마교뿐만 아니라, 새외의 세력들까지 관심을 보였었다.
그리고 그걸 거절할 리 없었던 무림맹과 사도련.
그들은 이참에 제대로 뭔가 해 보자는 마음으로 상단들에도 접촉했고, 상단 측은 흔쾌히 수락했다.
새외의 문물들을 사들일 수도 있었고, 마교의 부는 중원이 다 알지 않던가.
정마대전으로 양측이 피폐해져도 전 중원에서 회복하는 그들보다 빠르게 돈의 힘으로 회복하는 마교.
그리고 지금은 정마대전이 다시 일어나도 그들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하제일인 독고휘가 반로환동의 경지를 이루어 고금제일인에 다가섰다!
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상 지난번에도 누군가의 대패로 끝난 정마대전이 아니었다.
하필 최고수들도 역량과 수가 비슷했고, 병력들은 질에선 밀렸어도 수에서 압도했으니 비등한 싸움이었다.
다만 서로가 서로의 견적이 안 나오자 자연스레 멈춘 것일 뿐.
지금은 더 강할 거란 자부심이 있었으니 그들은 용감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혁련무강이 반로환동을 했다는 사실은 몰랐지만…… 하지만 마교 측은 그걸 알았다.
무영각이 가져온 정보 중에 독고휘의 반로환동 사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다! 이번 천하제일 비무대회에서 우승하는 녀석에게 소교주의 위를 주겠다! 그리고, 각자 성적을 거두는 만큼 상을 내리겠다고 하여라!”
혁련무강은 대전에서 일어서며 그렇게 외쳤고, 대전 내부의 모든 인물들이 바닥에 엎드렸다.
“명을 받드나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마침내 때가 왔군. 천하의 모든 이들 앞에서 나와 독고휘, 누가 더 강한지 가리는 거다……!”
혁련무강은 이번 비무대회에서 중원으로 당당히 나가 독고휘와 결판을 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들은 몇몇 원로들도 엎드린 채 미소 지었다.
‘이번에야말로 권왕 놈과……!’
‘후후…… 이번에 얻은 정보에 따르면, 태극검은 제자가 없다고 했지……? 아들에게 내 무학을 전수해 줬으니, 후계자가 있는 내가 일 승 추가로군……!’
그리고 그 소식은 주방에도 전해졌다.
“그, 최고숙수님…… 지존께서, 중원으로 향하신답니다. 천하제일 비무대회에 가시겠다고…….”
“……그래서 어쩌란 거냐.”
최고숙수이자 한때 거마로 이름 날렸던 폭혈도 장화관.
그는 지금 닭을 튀길 튀김옷을 연구하고 있었다.
“흐음…… 고기는 어떻게든 해냈다. 하지만 이 튀김이 문제인데……. 양념은 공녀께서 해 주실 거고…….”
아버지인 혁련무강에게 혼난 뒤, 허가 아래 약간의 양념을 맛본 연화가 자신보단 더 양념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라고 생각한 장화관. 그는 약간 갈색을 띠고 있는 밀가루를 잘 섞어 반죽의 농도를 맞춰 보고 있었다.
“저어, 비무대회에는 소림도 반드시 나올 것인데…….”
“…….”
장화관은 반죽을 섞다 말고 잠시 멈추었다. 먼 옛날 정마대전 당시, 뇌리에 강하게 남은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혜윤. 지금은 신승이라고 불리지만, 그때만 해도 나름 젊은 축이었다.
“……나도 따라가야겠군.”
“최고숙수님…… 아니, 폭혈도님! 드디어 과거의 연을……!”
“착각하지 마라! 지존께서 따라가시니, 그분의 식사를 내가 책임지려는 것뿐이다. 중원 놈들이 독이라도 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난 숙수로서 따라간다.”
장화관은 머리에 두른 두건을 벗고 그의 머리에 맺힌 땀을 닦아 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채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옛 부하.
“예……! 그렇겠지요……!”
지금은 숙수로 일하고 있지만, 전성기의 폭혈도는 검마마저 뛰어넘는 힘을 보였다.
그러나 어째선지 신승을 만나고 싸운 뒤 돌연 숙수의 길을 걷겠다고 했지만.
과거의 일을 잊지는 않은 듯, 다시 중원에 나가겠다고 하는 그를 보자 감격이 밀려오는 듯했다.
한편, 독고휘의 동굴 앞. 네 명의 노인이 작은 탁자를 두고 둘러앉아 있었다.
“크으…… 이번 연기는 대단했어, 성천이! 물론 난 전부는 못 봤지만, 기감이랑 소리로 들었지! 울먹이는 소리까지 내더라니까?”
팽소운이 박수를 치자 검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이래 보여도 사도련주요. 사도련주! 연기야 기본이지!”
“허허…… 이번에 고생은 내가 한 것 같습니다만…….”
그리고 갈성천의 옆에 있는 승복을 입은 스님, 혜윤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암, 그래. 땡중아. 이번엔 진짜 빠르게 일어서더라. 아무튼…… 덕분에 잘 넘긴 것 같다.”
독고휘가 그렇게 말하며 녹색의 술병을 탁자 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보자 눈이 동그래지는 갈성천과 혜윤대사.
“오오……!”
“저건 내가 사도련에서도 본 적이 없는 술 같은데…….”
스님답지 않게 술을 보자 침을 꼴깍 삼키는 혜윤대사와 감탄하는 동시에 분석해 보는 갈성천.
그 둘의 태도를 보자 팽소운이 웃으면서 자랑했다.
“저게 내가 말한 그 술이지. 어때, 탐나지 않아? 형님! 한 잔 따라서 향부터 맡게 해 보시우!”
“그래 볼까?”
이내 잔에 따라지는 고량주.
갈성천과 혜윤대사는 잔을 들고는 향을 맡아 보기 시작했다.
그냥 잠깐 맡고는 음미하듯 눈을 감는 갈성천과 달리 혜윤대사는 코로 들이마시려는 듯 엄청난 기세로 향을 맡았다.
“이것 봐라, 이것 봐. 역시 땡중 어디 안 간다니까?”
“허허…… 육식은 살생이라 어쩔 수 없지만, 술은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고마운 것이지요. 기쁨을 잠깐 맛본다고 땡중이라니…….”
팽소운이 깐족대듯 혜윤에게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술을 독째로 마시고 그랬냐?”
“……허허허, 옛이야기를 꺼내면…….”
혜윤은 애써서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갈성천도 거기에 끼어들었다.
“넌 진짜 사파였으면 대성했을 거다, 땡중아. 지금이라도 사도련 오지 않을래? 부련주 자리는 줄 수 있다.”
놀리는듯한 갈성천의 말에도 혜윤은 그저 웃고 있었지만, 점점 눈이 웃지 않게 되었다.
“허허허…….”
그렇게 혜윤이 폭발하기 직전, 갈성천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독고휘에게 물었다.
“아, 맞다 독고 형님. 그…… 반로환동한 거, 맞소? 전설에 따르면 완전 젊어진다고 했는데…….”
갈성천의 말에 혜윤은 허허 웃었다.
“허허,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요. 사실, 저 정도로 젊어진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할 정도지요.”
혜윤은 청년으로 돌아가는 건 현실성이 떨어졌지만, 차라리 저 정도가 그나마 현실성 있다고 생각하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독고휘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들은 경악했다.
“……하다가 멈췄다.”
“……예?”
주르륵.
마시려던 술잔에서 술이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굳은 혜윤과 못 믿는다는 듯, 귀를 한번 파는 갈성천.
“아니, 거짓말……이죠? 반로환동을 하다가 멈췄다니……. 그보다, 멈추고 그런 게 됩니까?! 무아지경에서?”
“허허허…… 아미타불, 아미타불…… 부처님! 저를 꿈에서 깨어나게 해 주십시오! 검황시주가 무공 증진을 포기하다니! 이건 꿈입니다! 부처니이이임!!”
혜윤은 꿈이라 생각하고 부처님을 부르짖었고, 갈성천은 설마……? 싶은 마음을 계속 다스리며 독고휘를 바라보았다.
제발 농담이라고 해 줘. 농담이면 옛날보단 재밌어졌다고 웃어넘기게……!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현실은 냉혹하고 비정하게 다가왔다.
“어…… 그게, 말하려면 복잡한데…….”
“중요한 일이었다. 아주 중요했지. 목숨 걸고 막아야 하는 그런……!”
독고휘는 그렇게 말하며 팽소운을 쳐다보았고, 팽소운은 죄지은 사람처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보며 둘은 깨달았다.
‘아, 쟤가 또 뭘 했구나……. 그래서 저러는 거구나…….’
“그래서, 그게 무슨 일이었던 겁니까?”
“……지금은 말 못 해.”
“나도.”
“응?”
팽소운과 독고휘는 침묵을 선택했고, 그건 나중에 영의가 이곳을 찾아와 그들과 마주치기 전까지 그들 인생 최고의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