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19)
집을 비운 사이에 난장판이 된 집 안에 우선 당황했던 영의.
‘바닥도 개판에, 침대도 엉망이고…… 쓰레기통까지 엎어져 있……. 음?’
그러나 집 안을 살피자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분명 뭔가를 뒤졌다면 찬장이나 서랍 같은 게 열려 있었어야 하는데…….
“……바닥만 어지럽다? 특이 취향 도둑인가? 일단 병찬이는 아닌 것 같네.”
병찬이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고 약간 모자란 동생이지만 나름 청결한 타입이었다.
그렇게 용의선상에서 병찬을 제외하는 영의.
그때,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삐익.
“……?”
소리의 진원지는 쓰레기통이었다.
쿠르륵-
화장실에서 급한 볼일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수연.
그녀는 이제 내면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녀도 난장판이 된 집 안의 꼴을 보고는 당황했다.
“뭐야, 이게? 오빠 청소 좀 하고 살아!”
수연은 그렇게 소리치며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바닥에 앉아 있는 영의와 그의 손에 올려진 작은 생명체를 보았다.
“……그게 뭐야? 병아리?”
삑-
삐익-
몸에 알껍데기를 붙인 채 영의의 손바닥 위에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작은 황갈색의 병아리.
“귀엽다…….”
삐요.
영의를 바라보고 있다가 수연이 나타나자 고개를 돌려 수연을 바라보는 작은 병아리.
수연이 신기한지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날개를 파닥거렸다.
“어떡해, 너무 귀엽다……. 오빠 병아리 키웠어?”
수연은 영의의 손 위에 있는 작은 생명체에 감탄했다.
역시 모든 생물은 새끼 때엔 귀여운 법이구나…… 하면서.
“……그렇게 됐어.”
“근데 알껍데기를 왜 붙이고 다니는 거야? 떼 내자.”
그리고 그때 수연이 병아리에게 손을 살며시 갖다 댔다.
알껍데기를 떼는 김에 교감을 하고 싶었던 모양.
“아, 잠ㄲ…….”
갓 태어난 듯 보이는 병아리에게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고 말하려 했던 영의.
그러나 그의 양손은 병아리를 받치고 있었으며, 자리에서 일어서기에도 애매했다.
하지만…….
삐요!
“아! 왜 그래? 괜찮아요~ 안 위험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연의 손을 공격하는 병아리.
그녀는 병아리를 달래듯 나긋나긋하게 말하며 계속 손을 뻗었지만, 병아리는 계속 쪼아 댔다.
삐!
삐요!
“……얘 성깔 있는데?”
알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경계심 가득한 태도를 보이는 병아리.
“……태어났을 때 옆에 없어 줘서 그런가……?”
영의는 혹시나 자신에게도 까칠할까 싶어 한쪽 손 위에 병아리를 옮기고 다른 손을 가져다 댔다.
천천히 다가가는 영의의 손과 그걸 지켜보는 남매.
“…….”
“…….”
두 남매는 침묵한 채 느릿느릿 다가가는 손을 쳐다보았고, 병아리는 그 손을 내치지 않았다.
삐- 삐이-
오히려 영의의 손을 좋아한다는 듯 머리를 갖다 대려 하는 병아리.
“……오빠를 엄마로 아나 본데?”
“그래, 그런가 보네.”
영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병아리의 몸에 붙어 있는 알껍데기들을 툭툭 털어 냈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모습을 드러내는 병아리.
삐요!
알껍데기가 없어지자 이젠 자유라는 듯 날개를 더욱 활기차게 움직이는 병아리였다.
그리고 영의의 손에서 뛰어내리려 하는 병아리.
영의는 다급히 손을 바닥에 내려 병아리가 다치지 않게 했다.
툭툭툭.
손바닥에서 내려와 주위를 둘러보며 걷는 병아리.
이내 아까 영의가 병아리를 발견했던 쓰레기통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우와, 태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렇게 걷지……?”
“그건 나도 조금 신기한데……. 아, 쓰레기통으로 가지 마.”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길을 팔로 가로막는 영의.
그러나 병아리는 그 자리에서 가볍게 점프해 날개를 파닥이며 팔 위로 올라탔다.
원래 알에서 태어나는 생물들은 태어난 뒤의 움직임이나 성장이 빠른 편이었으나, 직접 부화시키고 키워 본 경험이 없는 영의와 수연.
그리고 영의와 수연은 그 움직임에 경악했다.
“……원래, 새라는 게 태어나자마자 저렇게 움직여?”
“그게 됐으면 병아리라는 명칭이 따로 없지 않았을까?”
영의는 과연 영물의 새끼여서 비범하다는 생각을 했고, 수연은 머릿속 한편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귀여우니 됐다고 생각하며 넘어갔다.
“근데, 얘는 왜 쓰레기통으로 간 걸까?”
넘어진 쓰레기통 안에서 부스럭대는 병아리를 보며 수연은 의문을 품었고, 영의는 그 말에 쓰레기통 안을 들여다보았다.
삐요. 삐이…….
안을 들여다보니 온기가 조금 남은 핫 팩에 몸을 기댄 채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는 병아리.
영의는 그걸 보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네가 알일 때 그 핫 팩이 따뜻하게 해 준 걸 기억하는 거야? 기특하네.’
그렇게 묘한 감동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보다, 내가 없는 사이에 집 안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정도면…… 태어났을 때부터 걸어 다니고 힘이 엄청났다는 건데……?’
쓰레기통은 소형이긴 했지만 그래도 높이가 20cm 정도는 된다.
그만큼 높게 점프하거나 날아오를 수 있었다고……?
영의가 영물의 생태에 대해선 잘 모르니 나중에 실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그때, 수연이 대뜸 물었다.
“오빠, 근데 얘 이름은 뭐야?”
“……이름?”
“응, 키울 마음으로 데려온 거면 이름 정도는 지어 놨을 거 아냐.”
수연의 말에 영의는 당황했다.
그건 아직 정해 둔 게 없는데?! 그보다, 하루 만에 태어날 줄은 나도 몰랐지…….
영의는 핫 팩과 병아리를 집어다 쓰레기통 밖에 놔두었다.
병아리는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핫 팩이 옆에 있단 걸 깨닫자 핫 팩 위에 앉아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없구나? 이름.”
“뭐, 그렇지……?”
영의의 말에 수연은 미소 지었다.
비록 지금은 자기를 안 따르지만 이름을 지어 주고 불러 주면 자신도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럼 삐약이는 어때?”
좋다. 나쁘진 않다.
그게 일반적으로 3주도 못 살고 죽을 500원짜리 병아리였다면 말이지.
“……얘가 나중에 커서도 삐약이로 부르라고?”
“으음…….”
이 병아리는 이래 보여도 영물인 뇌령조의 새끼다.
그냥 자연에 놔둬도 알아서 잘 자랄 녀석인데, 사람이 보살피면 성체는 당연히 보장된 녀석이니…….
‘잠깐, 근데 얘 나중에 크면 어떡하지?’
영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야 작고 귀여운 병아리지만, 나중에 크면? 물론 영의도 그렇게까지 경우가 없진 않으니 새장 같은 거도 사고 훈련도 시킬 거다.
하지만 설명은?
그냥 마트에서 산 유정란 부화기에 넣고 키웠더니 영물이 나왔어요- 와! 가챠 대성공! 이라고 말할 순 없는 노릇.
영의는 일단 믿어 볼 만한 동생에게 먼저 설명을 해 보기로 했다.
“……잘 봐.”
영의는 손에서 작고 미미한 뇌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손을 타고 조금씩 튀어 오르는 스파크.
수연은 갑자기 이 오빠가 왜 느닷없이 자기 능력 자랑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 손을 병아리에게 가져다 대자 경악했다.
“미쳤어?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병아리를 바로 튀겨 버리게?!”
“아니니까 보고 있어 좀. 얘는 보통 병아리가 아니야.”
조금씩 뇌기를 뿜어내는 손이 병아리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수연은 지금이라도 오빠의 머리통을 후려치고 병아리를 구해 내야 하는 게 아닐까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병아리가 먼저 움직였다.
삐익?
눈을 감고 앉아 있다가 뇌기가 느껴지자 눈을 번쩍 뜨고 돌아보는 병아리.
이내 영의의 손에 휘감긴 뇌기를 보고는 오도도 달려와 손을 물었다.
“어……?”
금방이라도 튀겨지거나 탈 줄 알았던 병아리였지만 너무나 멀쩡했다.
히요. 히이-
영의의 손을 문 채로 계속 삐약거리는 병아리.
이내 병아리도 몸에서 스파크를 조금씩 튀겨 내기 시작했다.
“……봤지? 얘가 보통 새는 아니야.”
“우와…….”
이내 배가 부른지 영의의 손에서 입을 떼고는 날개를 파닥거리는 병아리.
날개를 접었다가 펼 때마다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파짓, 파직-
“얘 보니까 갑자기 생각난 이름이 있어!”
“……뭔데?”
별거 없을 이름 같았지만, 영의는 그래도 일단 들어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말했다.
“피카…….”
“안 돼.”
전기 하면 누구나 떠올리고, 또 그만큼 친숙한 이름이지만 차마 자기가 키울 아이를 그런 이름으로 부르긴 싫었다.
“그럼 전설인 썬ㄷ…….”
“그것도 안 돼.”
나름 맞는 듯한 네이밍인 것 같긴 하지만 그것도 조금 그랬다.
영의는 병찬이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핑키공주라고 말하는 것만큼의 뻔뻔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만약 나중에 데리고 다니다가 불러야 할 때 썬더라고 외쳐야 하는데, 그걸 대놓고 외칠 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그럼 뭘로 할 건데? 영의 주니어는 아닐 거 아냐.”
영의는 순간 그 이름에 잠깐 혹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흐음…… 뭘로 하지?”
“근데 얘 종이 뭐야? 애완용 괴수면 그런 거 있지 않아?”
종종 게이트에서 발견되는 괴수 중에도 나름 온순하거나 외형이 괜찮아 바깥에서 키우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허가도 받고 신고도 하고 해야 하지만…….
“……뇌령조, 라던데?”
순순히 이름…… 아니, 종을 말해 줬으나 수연은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뇌령조…… 음, 모르는데? 아, 영조 어때? 우리 집 남자 돌림자처럼! 영웅, 영환, 영의, 영조!”
수연이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부르기에도 썩 나쁘진 않았고, 무엇보다 그의 가족 이름에서 따왔으니 제법 그럴듯한 이름 아닌가.
“으음…….”
영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게임할 때도 외모는 대충 설정하지만 닉네임만큼은 한 시간을 고민하는 타입인 영의는 수연이 말했던 것에서 추가로 생각을 해 보기로 했다.
‘영조…… 령조…… 흠, 좀 아닌데……. 바꿔 볼까? 뇌기랑 친하니까, 뇌전영……은 아니고, 뇌영…… 으음…….’
“그냥 뇌영으로 할까?”
“뇌영? 뇌령조라서 뇌영인 거야?”
차라리 이럴 거면 그냥 영조라고 부를 것이지……라고 생각한 수연.
그러나 영의는 다른 발상이었다.
“뇌령조에서 하나, 내 이름에서 하나. 그렇게 뇌영. 뇌의는 조금 아닌 것 같아서.”
“……뭐, 그래. 아빠가 짓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그치, 뇌영아~? 고모…… 아니, 누나 좀 볼까요~.”
삐익.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뇌영에게 손을 가져다 댔으나 여전히 뇌영은 수연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너무하네, 내가 네 이름도 지어 줬는데…….”
“이름은 내가 지었고.”
“아이디어는 내 거였잖아!”
그렇게 따지고 들면 끝이 없을 것만 같아 영의는 대충 무시하고는 수연이 왜 여기 있는지 물었다.
“그건 나중에 따지고, 여긴 왜 온 거야? 그리고 왜 내 집에서 자겠단 건데? 가출이야?”
“어, 어어…… 그게…….”
그때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는 수연.
분명히 내가 들어올 때 가방을 던져 놨었는데…….
그리고 뇌영의 옆에 있는 가방을 발견했다.
뇌영은 가방에 호기심이 생긴 듯 주의 깊게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가방을 쪼아 보기 시작했다.
“얘, 안 돼! 안에 있는 게 다 돈이란 말이야.”
금 같은 안전 자산의 느낌으로 취급되는 마정석이 가득 찬 가방이었으니 돈이라고 말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리라.
수연이 가방을 급히 가져가 갑자기 눈앞의 큰 것이 사라지자 놀라서 가방이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는 뇌영.
삐익? 삑?
“……그 가방 가져다주러 온 거야?”
“응. 지연이 거 같아서…….”
수연은 거의 다 알고 지내는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체육관에서 이런 걸 두고 다닐 사람은 새로 온 지연밖에 없을 거라 여겼다며 설명을 하려 했으나…….
“……그거 내 건데.”
“……?”
수연은 영의가 한 말에 잠깐 멍해졌다.
그런 거 집에 막 놔두지 마 오빠……. 아니, 물론 집이니까 믿고 놔둔 거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