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17)
쐐애액-
흰색과 검은색의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공기를 가르며 하늘을 날아다녔다.
“우와-하하하하! 최곤데? 역시 이 몸은 천-재야! 히야핫!”
그리고 그 검은색의 뒤에 붙은 작은 그림자. 마공학자 베키였다.
베키가 수리…… 아니, 개조해 준 바이크는 예상 이상의 성능을 자랑했다.
기존보다 빠른 속도는 물론이고, 추가적으로…….
“내가 개조해 준 거 눌러 봐!”
베키가 잔뜩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아니, 그건…….”
영의는 그 개조가 어떤 의도에서 한 어떤 것인지 알았기에, 만류하려 했으나 베키의 행동이 더 빨랐다.
“에잇!”
파-앗!
슈아아아아악-
아까보다 더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하는 바이크.
그야말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속도였다.
“와! 성능 최고! 역시 부스터가 최고야!”
마냥 즐겁게 소리치며 팔을 흔드는 베키. 그러나 영의는 즐겁지 못했다.
“이거 어떻게 멈추는 건데!!”
멈추기 위해 개발자에게 문의를 넣었으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런 건 몰라! 달려어어!!”
그렇게 티 없이 맑고 화창한 하늘에서의 광란의 질주는……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은 채, 베키의 추억과 영의의 악몽으로 남았다.
“……난 간다.”
마치 주말에 놀이공원에 아이를 데리고 다녀온 아빠처럼 급격히 피곤해진 영의.
“잘 가! 다음에 또 오고! 그땐 잠 깨는 거 더 갖다 주라!”
베키는 활발하게 팔을 빙빙 휘두르며 영의를 배웅했다.
그리고 영의는 도망치듯 하늘로 날아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정신 나간 여자가 있는 정신 나간 곳에 다시 오라니…….
“하아…… 오기 싫어…….”
그렇게 배달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친 영의.
알림도 그에 응답하듯 메시지를 띄워 주었다.
[보상 수령 완료! 첫 주문 혜택이 종료됩니다.]
“……알림아, 설마 저 미친 여자한테 배달 자주 가야 하고 그런 거 아니지?”
[Alrim이 잘 이해할 수 없다고 알립니다.]
“대답 회피하지 말고…….”
영의가 알림이를 재차 추궁하려 하자 갑자기 주문이 다시 들어왔다.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너 이거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러자 아직 하겠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활성화되는 주문 창.
[주문인 : 대마도사 일라이저]
영의는 눈앞에 배달 주문 창이 나타나자 멈칫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몇 개 더 나타난다면? 아니, 또 베키에게 보내 버린다면?
‘아니, 그건 싫다. 진짜로.’
영의는 그 정신 나간 여자와 만나고 1시간도 안 돼서 다시 보기는 싫었다.
“……좋아, 지켜볼 거야.”
영의는 곧바로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이 받진 않았어도, 일단 받기는 했으니 배달은 완수해야지 않겠나.
그렇게 영의는 이번엔 고구마 피자를 배달해 갈 준비를 시작했다.
한편, 그가 배달을 뛰고 있을 때…….
영의의 집에서는 수연이 체육관을 정리하다가 뭔가 이상한 가방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가족 중에 그 누구도 쓰지 않을 디자인의 가방이 탈의실 주변에 놓여 있었고, 모두가 다른 사람이 두고 간 것이겠거니 싶어 방치된 가방.
그리고 수연은 매일같이 오가다가 그 가방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껴 한번 열어 보았다.
그리고 가방을 열자 엄청난 것을 목격하게 된 수연.
“……와.”
가방 안을 가득 채운 마정석들이 빛을 반사해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물론 작은 것들 하나나 둘 정도는 그녀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었으나, 그게 가방 하나 분량이면 얘기가 다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가끔씩 보이는 큰 사이즈의 마정석들. 수연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빠! 여기 이거 가방 주인 누군지 알아요?”
“음? 가방? 무슨 가방?”
정권은 체육관 청소를 하다가 수연의 말에 고개를 돌려 가방을 보았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는데? 한참 옛날에 등록해 놓고 이제 발걸음 끊은 회원이 두고 간 거 아니냐?”
헬스장이나 체육관에 방치되는 짐의 대부분의 원인을 언급하는 정권.
하지만 수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것치고는 얼마 전부터 있었는데…….”
그냥 안에 든 것이 운동복이나 신발 정도면 모를까, 가방을 가득 채운 마정석이 있는데 아무도 모르는 건 수상했다.
솔직히, 누가 돈다발이 가득한 짐을 까먹고 다니겠는가.
그리고 정권이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음…… 아니면, 신규 회원 물건일지도 모르지.”
신규회원이라고 하자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지연이요?”
“그래, 얼마 안 됐다며?”
그 말에 수연은 가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던 때를 대략적으로 떠올려 봤다.
아마 지연이 찾아온 그때쯤부터 보였던 가방.
‘음, 회원권을 한 번에 끊은 걸 보면 집에 돈도 많아 보였고…… 또 나중에 오니까 놔둔 거겠지……?’
“그럼 이거 관장실에다가 놔둘게요.”
수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을 관장실에 놔두려고 했으나, 정권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아니, 네가 갖다 줘라. 주소는 있으니까.”
“아, 귀찮은데! 그냥 나중에 왔을 때 주면 안 돼요?”
“어허, VIP 회원님이시다. 이 정도는 갖다 줄 수 있지!”
물론 그러면 회원 관리에 좋기는 하겠지만…… 왜 자신이 가야 한단 말인가.
“그럼 아빠가 가세요!”
수연은 앙칼지게 소리쳤으나, 정권은 상당히 뻔뻔한 아저씨였다.
“미안하지만 아빠는 10대의 소녀들과 친해질 수 없는 병에 걸렸단다……. 네가 가 주지 않으련?”
“그게 뭔 병이야! 아빠, 솔직히 말해 봐요. 왜 가기 싫은 건데요?”
“이 아빠는 그저 네가 또래 여자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걸 원했을 뿐이야……. 네 주변에 친구라고 부를 만한 애들은 있니……?”
“…….”
정권의 묵직한 팩트 일격에 수연은 뼈가 박살 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맨날 수련하고 무시하는 애들은 잡아 패서 애들이 섣불리 못 다가오긴 했지만…….
사실, 수연은 상당히 높은 등급의 각성자로 각성했다는 게 학창 시절 주변에 알려졌기 때문에 자신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선을 그은 아이들이 그녀 주변에 잘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히 이득만 보고 그녀 주위로 다가온 아이들은 그녀가 물리적으로 내쫓았고.
어쩌면 한두 명 정도는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높은 등급의 각성자와 주먹이 잘 나간다는 이미지 두 개가 그것마저 가로막았다.
“친구가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지만, 있는 게 더 좋단다.”
아빠의 팩트에 뼈가 박살 나다 못해 순살이 되어버린 수연은 가방을 등 뒤로 둘러메며 신경질을 냈다.
“아, 알았어요! 가면 될 거 아냐! 흥!”
수연은 그렇게 짜증 내며 오늘은 집에 안 들어오고 영의의 자취방에 가서 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에 대한 그녀 나름의 소심한 복수였다.
그렇게 수연은 일단 제일 만만한 영의부터 찾아가기로 했다.
일전에 이사할 때 들러 봤기에 영의의 자취방 주소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 비밀번호는 몰랐으니 문자부터 보내 보기로 했다.
[오빠, 자취방 비밀번호 좀. 나 오늘 오빠 집에서 잘 거야.]
그러나 답장을 하지 않는 영의.
“……답이 없네, 칫.”
수연은 혀를 차며 그냥 직접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이나 버스보다는 직접 발로 뛰는 게 빨랐기 때문에 달리면서…….
* * *
한편, 마탑주의 방.
“음, 으음!”
“……체하겠네. 천천히 드시죠?”
일라이저는 피자를 거의 씹지 않고 삼키듯 흡입하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은 것으로 보아 그도 베키처럼 작업에 열중하면 잘 쉬지 않는 듯했다.
“자네는 밤샘 작업 하면서 굶어 본 적 없지? 그랬는데 아침쯤…… 아니, 점심인가? 아무튼, 이런 맛있는 걸 갖다 주면 천천히 먹겠나?”
“……밤샘 작업은 몰라도, 굶어 본 적은 조금 있죠. 그래도 그렇게 빠르게 욱여넣진 않아요.”
과거 수련의 일환이라며 국립공원 산속에서 생존하기를 시도해 본 적 있던 영의였다.
‘벌레도 많고, 춥고 불편했지.’
물론, 한 이틀 차에 공무원들한테 걸려서 쫓겨났지만.
“자네는 내가 이 음식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걸세. 그리고 당분이 몸에 들어오니 더욱 활기가 넘치는군! 음!!”
오늘의 피자는 고구마 피자였다.
그리고 고구마 특유의 단맛이 지금의 일라이저에겐 딱 맞는 듯했다.
영의는 일라이저가 피자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이번에도 보상은 금화로 받을까, 아니면 마정석으로 받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옥션과 마정석, 둘 모두에 생각이 미쳤다.
‘……아, 마정석 안 가져왔네.’
영의는 마정석의 행방에 대해서 떠올리려 했다.
‘분명 옥션에서 집으로 갈 때…… 놔두고 와서…… 가지고 다시 집으로 갔지. 그런 다음……. 응? 그런 다음 어쨌지?’
물론 지금 그 가방은 수연이 메고 지연에게 갖다 주려 하고 있었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영의.
그는 조금 이따 돌아가면 수연에게 연락해서 가방을 못 봤냐고 물어보기로 했다.
“크흠, 큼…… 이런. 지난번처럼 좀 남기려 했네만…… 두 끼 치를 한 번에 먹어서인지, 다 먹었군그래. 끄읍.”
깔끔하게 비워진 피자 판. 일라이저는 콜라로 인해 나오는 트림을 작게 내뱉고는 다시 근엄한 마도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책상 위에 팔꿈치를 놓고 피자 기름과 고구마 무스가 묻은 손을 깍지 끼는 일라이저. 영의는 저 손만 어떻게 하면 참 분위기가 살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이번엔 내가 대금을 어떻게 치러 주면 좋겠나? 아, 뇌 속성 마석은 내가 아주 많이 쟁여 뒀다네.”
지난번 영의의 방문 이후로 뇌 속성 마석만큼은 아주 꽉꽉 쟁여 둔 일라이저였다.
주변에선 대체 뭘 연구하려고 저걸 저만큼 주문한 건가에 대해 의혹의 눈빛으로 보았으나, 대마도사시니까 뭔가 우리가 모르는 큰 뜻이 있겠지 싶어 넘어갔었다.
영의는 그냥 자잘하게 몇 개 받아나 갈까 싶었다가, 문득 지난번 배달이 떠올랐다.
혁련무강에게 쫓기며 뇌창이나 몇 발 툭툭 던졌던 그때의 일이.
영의는 게임이나 만화 속의 마법 하면 일단 거의가 다 원거리나 광역 기술이라고 생각하며 일라이저에게 나지막하게 물었다.
“저기…… 혹시, 마법을 쓸 수 있을까요? 저도?”
“마법…… 흠, 그건 또 모르겠군. 나도 개인적으로는 가르쳐 줄 수 있으면 가르쳐 주고, 또…… 어지간해선 마법적 재능이 있는 이들은 가르치고 있네. 자네의 재능은 얼마나 될지 한번 보도록 하지.”
일라이저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영의에게 다가와, 그의 몸에 손을 대려던 순간.
“아, 손은 닦으셔야…….”
영의의 말에 일라이저는 아주 살짝 빈정이 상했다.
손에 뭐가 묻어있긴 해도 그렇게 바로 피하려고 하는 건 조금 상처받지…….
“……그러지.”
아무리 그래도 기름이랑 고구마 무스가 묻어 있는 손으로 자신을 만지는 건 조금 꺼려졌던 영의였다.
한편, 영의의 자취방 안에서는…….
달각. 달각.
알이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다.
툭.
툭툭.
빠지직.
작은 소리와 함께, 뇌령조의 알에……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