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16)
모두가 굳어 있던 그때, 독고휘는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는 듯 남궁선을 노려보았다.
“……그래, 뭐? 감히 들어왔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본좌를 빼놓고 아주 잘들 노는군그래……. 땡중!”
독고휘는 혜윤대사를 불렀고, 혜윤대사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을 했다.
올해로 77세를 먹은 노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움직임이었다.
“예, 독고 시주!”
“넌 이걸 보고만 있었냐! 감히! 본좌를 빼고! 마교니 뭐니!”
독고휘의 호통에 혜윤은 쩔쩔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갈성천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차마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독고 시주, 아무래도 제가 소림을 이끄는 방장이다 보니까 저희 사정이란 것도 있고…….”
혜윤은 급하게 변명하려 했지만 독고휘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사정? 사아아아정? 무림 문파 중에 소림이 제일 돈 잘 벌어먹는 걸 누가 모르냐! 그러고 보니 여기 성천이도 있네……?”
갈성천은 이제 점점 말투도 옛날로 돌아가기 시작한 독고휘가 자신을 부르자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왜 하필 저 정파의 미친개가 나를……!’
“예! 갈!성!천! 여기 있습니다!”
“……성천아.”
“예!”
“……성천아.”
“예에에에!!”
나지막하게 계속 갈성천을 부르는 독고휘.
갈성천은 차렷 자세로 계속 크고 또박또박하게 대답했다.
“……많이 컸다? 마교 잡고 반? 나도 사파 잡고 반 가져가 봐? 아니지, 난 혼자 가니까 다 가져가도 되겠다. 어때? 네 계산대로 했어. 해 봐?”
“아닙니다아아아!!”
“해 보냐고 묻잖아. 성천아.”
“아, 아닙니다아아!!”
갈성천은 필사적으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땡중.”
“예, 독고 시주.”
빠르게 대답하는 혜윤대사.
독고휘는 손가락으로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갈성천을 가리켰다.
“너는 이놈 안 말리고 뭐 했어?”
“그, 그게……. 아미타불…….”
“지금 내가 말하고 있지 부처님이 말하는 거 아니잖아. 아미타불은 왜 해?”
“……그렇습니다…….”
독고휘의 행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하는 당가의 가주, 당조현이 뭐라 말하려 했다.
“아ㄴ…….”
텁!
도리도리.
그러나 옆에 있던 하북팽가의 가주, 팽자성이 그를 붙잡아 말리며 고개를 저었다.
“땡중 너는 아무튼……. 으음?”
독고휘는 잠깐 들린 작은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으나, 당조현과 팽자성이 필사적으로 아닌 척을 시전했다.
“……흐음, 어디까지 했지?”
그렇게 독고휘의 관심이 사라지자 가슴을 쓸어내리는 팽자성과 당조현.
팽자성은 당조현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절대. 절대. 대들지 마십시오. 절대로!!
-아니, 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도 법도라는 게…….
-절대! 안 된다고! 이 어린노무 새끼야! 너 혼자 죽는 게 아니라 다 뒈지는 거라고! 죽으려면 나중에 나가서 혼자 죽어!
-……뭐라고 했소?
-저 미친ㄱ…… 아니, 검황의 이야기는 알고 있나? 젊은 시절 정사칠룡으로 다닌 거?
-알고 있소. 마교와의 싸움으로 의형제를 맺은 일곱 정파와 사파의 후기지수…….
당조현은 나름 젊은 축이라 진실에 대해 모르는 듯했기에 팽자성은 진실을 알려 주기로 했다.
-그 일곱 명 중에 대장이 검황이시고, 나머진 거의 다 부하…… 아니, 노비였소.
-……?!
-다행히도 우리 아버지께선 검황을 처음부터 따르셨기 때문에 나름 동생의 위치를 차지하셨지만…… 나머진 그러지 못했지. 그나마 숨통이 트인 게 도사인 태극검과 불문에 귀의한 혜윤대사셨네. 뭐…… 그다지 숨통이 트이진 않은 것 같지만.
-뭐…… 뭐요……?
-내가 다섯 살일 때, 아버지를 찾아오신 검황을 보았지. 처음에는 인자하고 좋은 백부님 같은 느낌이었네. 본인의 독문무공은 못 가르쳐 줘도, 무공이 벽에 막히면 찾아오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으니. 하지만, 그날 두 분이 술을 드시고…… 검황께서 술에 취하고는 내 방에 찾아오셨지.
‘어이쿠, 딸꾹. 우리 조카 여기 있네~ 이 백부가 재밌는 걸 구경시켜 줄까?’
‘네, 백부님!’
-……그때까지만 해도, 난 그저 무공 초식을 몇 개 보여 주시거나 유명한 절기인 천뢰검을 보여 주시려나 싶었네.
‘일단 밖으로 나가자꾸나. 옷을 두껍게 입어야 한다~.’
‘백부님, 전 밤바람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이야~! 우리 조카 장하네! 그럼, 가자꾸나.’
-그때, 내 목덜미를 잡았을 때부터 불길함을 느꼈네. 물론 초식은 보여 주셨네. 직접적으로 눈앞에서……. 뇌전보로 산적의 소굴까지 단숨에 날아가셨고, 거기서 하늘로 뇌기를 몇 줄기 쏘아 올리시더니…… 산적의 산채에 벼락이 미친 듯이 떨어졌네. 그게 바로 검황의 절기로 유명한 천뢰검일세.
-……설마, 그럴 리가…….
-그리고 번개에 박살 나는 산채를 보며 검황께선 웃고 계셨지. 나는 어린 마음에 거기 사는 사람들이 있지 않냐며 물어봤지만…….
‘이젠 없단다. 아까 다 쫓아냈거든! 하하하!’
-내가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도 보여 주실 작정이었던 게야……. 지금은 나이를 더 먹고 본인에 대해 알기 때문인지 스스로 은거도 하시고, 또 가족한테는 안 그러시지만…… 젊은 시절에는, 사파보다 더 사파 같은 분이셨더랬지…….
팽자성은 그렇게 말하며 독고휘를 쳐다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교 쪽으로 가지 마라.”
독고휘의 말에 갈성천을 비롯한 회의실 내부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평생을 마교랑 싸워 온 양반이 자기 빼고 마교 토벌한다고 삐져서 온 건 줄 알았는데?
“……예?!”
“가지 말라고. 옛날처럼 몸으로 말해 줘?”
“아닙니다!!”
갈성천은 그냥 입 닫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빨리 이 재앙이 자신에게서 지나가길 기도했다.
‘부처님, 원시천존님, 또…… 누구 있냐? 아 천마든 누구든! 제발 이 미친개 좀 내 앞에서 치워 주기를…….’
그리고 그때, 모두의 구원자가 등장했다.
“아, 형님! 나 버리고 혼자 가기요? 거, 빠르다고 유세 떨기는…….”
“아, 왔나? 넌 너무 느려서 문제야. 하하.”
독고휘는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웃으면서 말했다.
“형님이 너무 빠른 거잖수!”
그리고 회의실 안의 모두는 문밖에서 나타난 덩치 큰 한 노인에게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저 사람 좀 진정시켜 주십시오!!’
……라고.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시중에 이상한 소문 돌더라? 나하고 쟤하고 말코 녀석하고 셋이 모여서 마교를 치네 마네…….”
“누, 누가 그런 소문을! 저희 십만 개방도가 그 소문의 진원지를 밝혀내겠습니다!”
개방의 방주, 취광개 화운이 그렇게 다급히 소리쳤다가 독고휘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다.
“……거지야, 너보고 말하라고 안 했다?”
“……꿀꺽.”
독고휘는 화운이 쫄자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하, 괜찮아! 소문 정도야! 근데…… 너희들은 그 소문 하나로 지금 이 난리인 거냐? 십만 개방도가 다 구걸 안 하고 누워서 자나 보다?”
“그…… 마교에서, 뇌전이 튀는 걸 봤다는 수하들의 정보가…….”
독고휘의 말에 화운은 두려우면서도 용기를 겨우 끌어내어 말했다.
“그래…… 뇌전, 뭐 튀었다고 치자. 근데 그럼 얘는? 말코는? 설마 권마랑 얘가 붙는데 땅이 멀쩡할 것 같아?”
독고휘의 말에 회의장의 모두가 깨달았다.
아, 그래…… 나머지 둘은 우리가 생각을 못 했구나…….
“그리고, 말코…… 아니지, 운광이랑 검마 놈이 싸우는데 검기랑 검풍이랑 검강이 막 날아다녀야 정상이지 않냐? 그런 거 본 수하는 있냐?”
독고휘의 말에 회의장 내부의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우리가 설레발 친 거야?’
‘천마와의 생사결은? 정과 마, 두 세력 최고수들의 희대의 대결은?’
그리고 거기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독고휘의 말이었다.
“그보다, 난 옛날 얘기 하려고 말코랑 얘랑 모인 거다. 나이 먹고 늙었는데, 추억거리라도 팔아먹어야 하루하루 살지. 안 그러냐?”
지금 장년과 노년들로 가득 찬 이 회의장에서 그나마 제일 젊은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하는 말이라 설득력이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있나. 안 그래도 괴물인 인간이 반로환동까지 했는데, 따라야지.
“맞는 말입니다. 시주. 그런데…… 어째서 소승은 안 부르신 건지…….”
독고휘는 혜윤대사를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말했다.
“넌 술, 고기 안 먹잖아. 그래서 안 불렀어.”
“……그럼 말ㅋ…… 아니, 운광 시주는…….”
“걘 말코 놈이잖아. 솔직히 말해 봐라, 여기 안에서 걔가 젊을 때 술 먹는 거 본 적 없는 사람?”
그리고 회의장 내부는 조용했다. 혜윤이야 몰래몰래 술을 마시긴 했어도 고기엔 절대 손을 안 댄 반면, 운광은 그 특유의 주사가 있었으니 싫어도 알 수밖에…….
“……이제 알겠지? 마교 침공이고 뭐고 없으니까, 다 해산해.”
“형님? 형님! 나도 뭔가 말 좀 합시다!”
“하고 와. 난 갈 거야.”
독고휘는 그렇게 말하며 바깥으로 나갔고, 그 뒤를 팽소운이 다급히 따라갔다.
그리고 회의실 내부는 정적만이 흘렀다.
“……그럼, 이렇게 모인 김에…… 비무대회 개최…… 같은 거나 논의해 보지 않겠습니까, 도우들?”
“……그럽시다.”
“그러지, 내 제자나 보내게…….”
과연 태극의 묘리를 잘 깨친 무당파 장문인답게 운성이 주제를 바꾸었고, 모두가 그에 찬성했다.
그러나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근데, 그럼 마교 쪽에서 보였다는 뇌전은 뭐죠?”
“……??”
듣고 보니 그렇네? 다른 둘은 몰라도, 독고휘가 혼자 가서 싸우고 온 걸 수도 있지?
“근데, 그거 말하면 저 양반 다시 들어오잖아. 난 그 말 하기 싫다.”
그러나 갈성천이 그 주제를 바로 멈추었다.
“아…….”
“허어…….”
“뇌전 따위 없었던 거로.”
“뇌령조라도 있었나 보지.”
“그래, 그날따라 마교에 비가 오려고 그랬나 보다.”
그렇게 무림의 명사들은 필사적으로 진실을 외면했다.
독고휘란 이름의 더 큰 폭풍을 맞기 싫어서…….
그리고 밖으로 나와 번화한 거리를 걷던 독고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에이, 씨…… 창피하게. 괜히 애들 앞에서…….”
“거, 형님. 그래도 잘 먹히지 않수? 젊을 적에 한번 난리 쳐 주니까 이렇게 후대가 편하지 않수! 만약 형님이 온화한 인상이었어 봐, 막 빠득빠득 대들고 말꼬리 잡고 그랬을 거요.”
“뭐, 나도 알지. 너도 덕분에 너네 가문 꽉 잡지 않냐?”
그랬다. 사실 둘은 어느 정도 계획을 가지고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이건 모두 정사칠룡이 젊었을 적의 일로, 거의 의형제였던 그 일곱이 미래를 생각해 미리 잡아 둔 설정이었다.
나중에 미래에도 후대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 공포의 상징인 독고휘를 놔두고 나머지들이 거기에 협조하는 것.
사실 회의실에 독고휘가 들어와서 그런 태도를 보이자마자 혜윤대사와 갈성천은 빠르게 눈치채고 협조했다.
“그렇지, 자성이 어릴 때 산채 하나 부숴 먹은 거로 제대로 각인시켰으니.”
“킬킬킬, 아직도 내가 가문에서 뭔가 하나 하고 싶으면 자성이가 달려와서 해결해 준다니까? 그리고 자성이도 애들한테 단단히 교육시켰는지, 검황님 좀 보게 해 달라고 절대 말 안 해!”
실제로 어느 정도 무림의 명숙과 친분이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말할 법하건만, 팽가의 가주인 팽자성이 독고휘의 위험성에 대해선 제대로 교육시킨 듯했다.
“뭐…… 성천이랑 땡중이한테는 나중에 사과해야겠지.”
“사과 말고, 그…… 술 남은 거 있지 않수? 그거나 보내 주시우. 이번엔 조금 더 젊은 애들 앞에서 그런 모습 보였는데……. 그리고, 땡중이는 나이가 거의 팔순이 되어 가는데…….”
팽소운의 말에 독고휘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 진짜…… 줘야 되나? 그러고 보니 혜윤이가 되게 빠르게 일어나긴 했는데……. 맨날 꿇어앉고 있어서 무릎도 안 좋을 녀석이…….’
“그래, 뭐…… 나중에 불러다가 술이나 주지. 말코까지는 어떻게든 대외적인 면모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그들의 자식 세대들은 팽소운이 그나마 제일 대접을 받고, 나머지 정파의 둘이 그럭저럭의 대접, 그리고 사파의 인물들이 대접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광을 편지로 옛날 얘기나 하자며 부른 것은 나름 설득력 있게 먹혔던 것.
“……근데, 성천이 놈은 옛날 얘기 하자고 부르면…… 좀 아니지?”
“형님은 혁련무강이 옛날 얘기나 하자고 마교로 부르면 갈 겁니까?”
“……갈 것 같은데?”
“…….”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기에, 팽소운은 잠시 침묵했다.
“대충 이런 얘기로 합시다. 옛날얘기나 하자고 부르는 거보단 패려고 부르는 게 더 말이 됩니다, 형님.”
“흐음…… 그럼 성천이는 뭘 어떻게 부르지…….”
“그냥 거, 퇴물 늙은이들 모아 두는 무림원로원 같은 거 못 만드나…….”
팽소운은 나지막하게 일이 덜 귀찮아지게 하는 자신의 소망을 그렇게 말했으나 독고휘는 그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훗날 경지에 오른 무인들이 등선을 앞두고 준비하는 곳이라는 등비각(登備閣)의 시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