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화 (15)
바이크를 끌고 베키의 연구실로 들어온 영의.
물론 방범 장치는 나가는 길에 베키가 꺼 주었다.
대부분 박살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넘어지게끔 하는 트랩이나 최루가스는 여전했기 때문.
“……자. 어때 보여?”
영의는 그래도 나름 프로겠지 싶어서 바이크를 베키에게 내밀었고, 베키는 빠르게 바이크에 다가가……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스으읍-- 하아…… 어디 보자, 예쁜아…… 이 언니한테 한번 몸을 맡겨 보지 않을래……?”
“…….”
바이크의 냄새를 맡으며 간간이 이곳저곳을 더듬기도 하고, 또 살짝 맛보기까지 하는 베키.
영의는 그 모습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뭐라고 하려고 했으나 베키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이거, 하늘 나는 용도구나? 그것도 자체적 비행이 아니라 주변에 역장을 생성해서 역장째로 움직이게 하는 거.”
“……어떻게 안 거야? 그…… 향 맡고, 더듬고…… 하는 그런 짓으로.”
영의는 대체 뭐 어떻게 하면 저런 변태스러운 행동으로 바이크에 대한 분석을 끝낼 수 있나 싶어 말했지만, 베키는 그 말에 화를 냈다.
“그런 짓이라니! 우리 애기와 나 사이의 교감이야! 애기가 나한테 말해 줬다고!”
“……뭐라고 말하디?”
이쯤 되면 미친 소리도 재능이구나 싶어 흥미로웠던 영의는 조금 더 들어 보자 싶어 물었고, 베키는 바이크를 계속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얘가 말이지…… ‘언니, 저는 하늘을 날고 싶어요……. 하지만 허리가 아파서 못 날겠어요…….’라고 하는 거야!”
“……그래, 좀 더 해 봐. 어디까지 가나 보자.”
“그래서 보니까? 짜잔! 이 기계…… 음, 이름이?”
베키는 조금 더 설명을 하려다가 문득 바이크에 대해 듣지 못해 영의에게 물었다.
“바이크. 왜, 그건 말 안 해 주디?”
“성은?”
“……그런 게 필요해?”
영의의 말에 베키는 바이크를 갑자기 껴안으며 말했다.
“미안해, 바이크…… 네 아빠는 널 버리려나 봐.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기 싫대……. 이 언니랑 살지 않을래?”
영의는 그 모습을 보며 진짜 ‘더 크레이지’라는 말이 왜 붙었는지를 다시금 실감했다.
천마는 마 중의 마, 제일 높으니 하늘의 마라서 천마고, 검황은 검을 감탄이 나오게 잘 써서 검황이고.
그리고…… 저건 미친년 중의 미친년이라 더 크레이지인가…….
그렇게 바이크를 껴안던 베키는 껴안던 걸 멈추고는, 책상 서랍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다.
“……아, 찾았다!”
그리고 뭔가…… 공구 벨트 같은 것을 꺼내더니 허리에 감는 베키.
차르륵-
“아차, 살 빠졌지……. 아하하.”
물론 여성들이 들으면 적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것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밥이란 걸 안 먹고 물도 반쯤 썩은 걸 먹으면서 기절하기 직전까지 과로하다가 쓰러져 잠드는 생활을 하는 베키였다.
저런 생활을 하면서 살이 찐다면 그건 병을 한번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이내 벨트를 어깨에 걸치는 베키. 그녀는 벨트에서 넓적한 칼과 망치를 꺼냈다.
“설마 그걸…….”
“죽어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이크를 자식처럼 아끼더니, 이제는 눈이 뒤집힌 것처럼 칼을 바이크에 박아 넣는 베키.
그럼에도 칼은 바이크의 연결부에 정확히 박힌 것을 보니 프로는 프로였다.
“……미친년…….”
베키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바이크를 뜯고 그 안의 구조를 살피기 시작했다.
모터로 이루어진 것보다는 덜 복잡했지만, 공학이나 기계에 대해서는 영 무지한 영의가 보기엔 그게 그거였다.
“흐흠~ 으흠흠~ 우와! 전마석이네! 이 정도를 두 개나! 너 어어어엄청 부자구나!”
이젠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내부를 완전히 뜯어낸 베키.
그녀는 내부의 마정석을 보고는 감탄했다.
“저기, 부자님! 이거 보여?”
“……?”
베키는 바이크 내부에 든 두 개의 마정석 사이의 한 공간을 가리켰다.
혁련무강의 검강에 의해 파손된 부분 근처였다.
“……여기가 뭔데?”
“음, 그러니까 허리 같은 부분이야! 이 바이크란 아이는 두 개의 전마석을 동시에 이용해서 움직이는 구조거든? 그래서 규격이 거의 똑같은 두 개를 동시에 써야 한단 말이야. 두 개를 동일하게 써먹는 구조니까!”
“……모르겠는데.”
“아우~~! 이래서 부자 놈들은!”
영의가 설명을 못 알아듣자 베키는 머리를 마구 긁었다.
비듬이 흩날렸으나, 베키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그러니까! 둘 다 동시에 쓴다고! 그래서 중요한 게 이 두 개를 연결해 주는 허리 부분이야! 여기가 고장이 났다고!!”
성질을 마구 내며 손에 든 망치를 휘두르며 소리치는 베키.
물론 진짜 휘둘러도 맞아 줄 영의가 아니었지만 일반인이 옆에 있었으면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고칠 수 있겠어?”
“하, 고칠 수 있냐고? 이 베키 님을 뭘로 보고! 더 끝내주는 애로 탄생시켜 줄게!”
베키는 그렇게 말하며 영의를 바깥으로 쫓아냈다.
“꺼져! 여자아이는 섬세한 법이야! 수술 중엔 아빠라도 못 들어와!”
“……진짜 미친년인가.”
그렇게 문을 닫자, 영의는 베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흐흐흐…… 우리 귀여운 바이크…… 언니랑 단둘이네? 조금 더 예뻐져 볼까요? 히히히히…….”
영의는 못 들은 거로 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최대한 기도했다.
‘제발 저 돌아가면 옥션에 팔려고 맡겨 둔 금화 팔렸다고 해 주세요……. 저거 말고 새 바이크 뽑게…….’
* * *
그렇게 영의가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무림에서는…….
무림맹. 대회의실.
구파일방을 대표해서 온 인물들과 오대세가의 가주들, 그리고 몇몇 영향력 큰 무인들이 모여 있었다.
“크흠…… 본 맹주가 우선 먼저 말을 꺼내도 되겠소?”
무림맹의 맹주, 남궁선이 헛기침을 하며 먼저 안건을 꺼내려 했지만…….
“응, 안 돼. 일단 더 중요한 일부터 해야지.”
그를 가로막는 한 남자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아니, 유이하게 그에게 막 대해도 되는 남자.
사도련주 패왕 갈성천이었다.
“……허허, 갈 시주. 어찌 그리 성격이 급하신지요.”
맹주의 권위를 무시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인 소림의 방장, 신승 혜윤대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땡중, 넌 몰랐냐? 말코 놈이랑…… 덩치 놈이랑 너 따돌리고 지들끼리 노는 거?”
갈성천의 말에 눈에 보이게 동요하진 않았지만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내부.
대체 누가 소림의 방장에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혜윤대사는 인자하게 웃었다.
“허허…… 소승은 속세의 일에 대해선 모르는지라……. 아무튼, 우리가 모인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혜윤대사가 일단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회의의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갈성천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일어나서 외쳤다.
“아, 다 집어치우고! 검황, 권왕, 태극검! 그 셋이 모였었고, 그 와중에 마교 놈들 본거지에선 뇌전이 막 튀어 올랐고! 그리고 마교의 쥐새끼들이 자기네들 집으로 돌아갔다! 이거만 보고도 답이 안 나오냐!”
갈성천의 외침에 남궁선은 탁자 밑으로 작게 소리 없는 박수를 쳤다.
‘내가 할 설명 대신 다 해 줬네…….’
“……허, 허, 허…… 그건 얘기를 못 들었소만……?”
조금 전처럼 인자하게 웃고 있었으나 목소리는 웃고 있지 않은 혜윤대사.
그는 정말로 바깥소식을 몰랐으나 방금 갈성천의 말로 나름의 상황이 정리되었다.
‘나만 빼고 셋이 모여서 마교에 갔다고……? 그 와중에 재미는 독고 시주 혼자서 다 보고……?’
염주를 손에서 굴리며 내면의 번뇌를 다스리기 시작한 혜윤대사.
그리고 그의 모습에 주변인들이 긴장했다.
“……아무튼,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도우들, 한번 말해 보시오.”
무당파 장문인, 운성은 그리 말하며 속으로는 사형을 욕하고 있었다.
‘운광 사형, 그런 일이 있었으면 와서 말을 좀 해 주지……. 저한테도 굳이 거짓말을 하셔야 했습니까…….’
운광은 무당파로 돌아가서 사실대로 말했다.
진짜로 옛날이야기나 하면서 고기 좀…… 먹고 마셨다고.
사실, 술을 마셨다고 말하면 안 되지만 운광과 독대해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운성은 넘어갔다.
그래, 마시면 안 되는 술을 마셨고, 또 고기를 먹어서 화식도 했으니까 나름 진정성 있다고 생각해 눈감아 주었다.
사실, 그도 젊은 시절 운광을 따라 강호행을 할 때 한두 개씩 얻어먹고는 했다.
‘하지만 사형, 마교에 가서 생사결을 내고 왔다고는 한 적 없지 않습니까……. 차라리 원시천존께 제사를 올릴 때 고기를 구워서 올리십시오……. 그게 차라리 덜 문제입니다…….’
그런 내색을 하나도 하지 않고 회의를 진행하는 운성.
수많은 의견들이 오갔고, 갈성혁은 뭔 의견을 내든 간에 다 무시하고 자신도 마교로 가려고 했다.
그리고 회의장 내부의 의견도 마교 토벌 쪽으로 집중되는 듯했다.
“……좋소, 정파와 사파. 둘 모두가 힘을 합쳐 마교를 토벌한다. 동원 인원의 수는 사파가 더 많지만 고수의 수는 정파가 많으니 협업을 합시다.”
“……협업?”
“그렇소. 어차피 전장에서 사파는 사파의 방식대로, 정파는 정파의 방식대로 싸울 것 아니오? 하지만 그 전장에 마교의 고수나 원로들이 난입한다면 혼란이 벌어질 것이니, 고수들 따로. 전장에 서는 무인 따로 나눕시다.”
남궁선의 말에 갈성천은 이제야 뭔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각자 검강 뽑는 녀석들 뽑아다가, 마교 고수를 조지고 다니는 토벌대를 만들자…… 이건가?”
“……비슷하오. 사파 측에서는 병력을 주로 맡고, 정파 측에서는 고수들을 맡겠소. 아무래도 정파의 무공은 소수 대 소수의 싸움이 유리하니.”
조금 치사하고 더럽다는 소리를 듣는 사파의 무공들이지만, 혼란하고 어지러운 전장 속에서는 그게 더 생존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정파의 무공은 일대일 싸움에 최적화되어 있으니 고수들을 찾아다가 대결을 벌이는 데 도움이 될 거고.
“……분배는?”
“전리품에 대해선…… 개별적으로 챙길 건 챙기시오. 하지만 사안이 제법 큰 것 같으면…… 전공자 우선으로 하고, 나머진 양측의 협의로 챙겨 갑시다.”
갈성천은 머릿속으로 나름 계산을 해 보기 시작했다.
고수들을 척살하는 정파들은 마교 고수들이 갖고 있는 비급이나 영약을 챙겨 갈 것이다.
하지만 대외적인 모습을 신경 써야 하니 나름 점잖은 척 분배도 공평하게 한다고 하겠지.
사파는? 부하들이 많으니까 재물이나 자잘한 물품들을 많이 챙길 수 있겠지.
그리고, 자신들은 영약도 원하는 놈 주면 되니까 수량도 딱히 많이 확보할 필요는 없다.
“좋아, 계산 끝났다. 마교 잡고, 나오는 건 절반씩. 그럼 사도련도 하도록 하…….”
그렇게 계산을 끝낸 갈성천이 나중에 자신의 제자가 전장에서 살아남는다면 영약 하나쯤 챙겨 주고 후계자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때 회의장의 문이 벌컥 열렸다.
“누가 감히 회의 중에 기별도 없……. 어…….”
남궁선이 이제 갈성천이 하겠다는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문이 벌컥 열리자 짜증이 솟구쳐 소리를 치려 했으나 문이 열리고 나타난 사내를 보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뭘 봤……. 어…….”
갈성천도 남궁선이 굳어 있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은거하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아니, 더 젊어진 것 같은 독고휘가 서 있었다.
“계속해 봐, 재미있네. 마교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