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14)
영의는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베키는 공학은…… 뭐, 나름 잘하는 걸지 몰라도…… 나머지는 사람이 사는 꼴이 아니었다.
-잠은?
“그냥 안 자면 돼! 진짜 피곤하면 몸이 알아서 자거든!”
이라고 답했다.
-밥은?
“그딴 거 필요 없어! 가끔 당분만 머리에 채워 주면 쓰러지진 않아!”
라고 했고,
-설마 물은 저 녹조가 떠 있는 걸 마시는 건 아니지?
“먹고 나서 약 안 먹으면 배탈 나지만, 먹고 약도 챙겨 먹으니까 괜찮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씻는 건?
“사람은 안 씻어도 안 죽어!”
영의도 나름 남자라서 귀찮음을 제법 타고 무인처럼 살았기에 자취방 청소도 대충 하고, 수련 후 땀에 절었을 때 씻는 걸 조금 나중으로 미룬 적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베키란 여자는…… 그냥 야생인 아닌가. 아니, 야생인도 먹고 자는 문제는 챙긴다.
“넌 올바른 생활 습관이란 게 필요해. 그것도 아주 많이.”
영의의 말에 베키는 감자튀김을 오물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낭비하긴 싫은걸……? 아, 이건 맛있으니까 챙겨 먹을지도.”
감자튀김이 마음에 든 듯 계속해서 집어 먹는 베키.
영의는 그런 그녀에게 커피까지 내밀었다.
“자, 이것도 마시면서.”
‘그냥 빨리 줄 거 주고 받을 거 받고 손절을 해야겠어…….’
“오, 고마워. 근데 넌 어떻게 들어온 거야? 우리 집 방범 장치, 내가 설계해서 어지간하면 안 뚫리는데.”
베키는 커피를 받아 들고는 그렇게 말했고, 영의는 그 말에 다시 한번 깊은 빡침이 솟아올랐다.
“그…… 거지같이 사람 넘어지게 하고, 짜증 나게 하는 함정이…… 계산이었냐……?”
“응! 그래도 다치는 용도는 별로 없어! 다치면 배상해야 하니까!”
영의가 다시 내면의 분노를 다스릴 때, 베키는 커피를 한 모금 빨아 먹고는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써……! 브에에…….”
혀를 내밀며 표정을 찡그리는 베키.
그러나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한 모금을 더 마셨다.
“근데…… 묘하게 중독되네…….”
늘 피로감과 영양부족으로 혹사당한 베키의 몸은 커피에 든 카페인, 그 각성 효과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쭈우우욱.
쭈우우우욱.
빠르게 커피를 흡입하기 시작하는 베키.
그녀의 미각은 커피를 조금 꺼려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뇌는 미각의 의견을 무시하고 커피를 받아들였다.
쪼르르르륵.
어느새 다 빨아 먹어 버린 건지 빨대가 달라진 소리로 빈 잔에 대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의식을 다시 베키 쪽으로 돌린 영의.
“저기, 이거 더 없어? 먹으니까 뭔가 쌩쌩해지는데!”
[배달 완료. 보상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없어. 그보다, 이제 난 간다?”
영의는 보상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 뭘 주든 간에 받기 싫었다.
받으면 이 정신 나간 여자랑 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영의가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베키가 책상에서 일어서서 영의를 잡았다.
“잠깐, 떠나기 전에 몇 개만 말해 주고 가라! 응?”
“……또 뭔데?”
물론 베키는 맛있는 식사라는 것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었기에 살이란 게 거의 없었고, 가벼워서 한 팔로도 뿌리칠 수 있었지만 영의는 그러진 않았다.
육체 단련이란 걸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함부로 힘을 쓸 순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 아까 전에 내 턱을 막 건드려서 음식 씹게 한 거랑, 또…… 그, 저거 뭐야? 그 누런 음식이랑! 또…….”
이것저것 빠르게 말을 내뱉는 베키. 그녀는 그렇게 빠르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듯 손뼉을 짝 하고 쳤다.
“그래, 차라도 내올게! 차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자!”
“아니, 난…….”
“조금만 기다려, 금방 준비돼!”
영의가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베키는 곧바로 방 안의 어딘가로 뛰어갔고, 영의는 말할 타이밍을 놓쳤다.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페이스네…….’
그리고 이내 차가 든 것 같은 작은 양철통을 들고 나타난 베키.
그녀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양철통을 영의에게 보여 주었다.
“아리안델 직수입 고급 차야! 뭐…… 오랫동안 안 열긴 했지만. 한번 볼래?”
베키는 그렇게 말하며 양철통의 뚜껑을 열었고, 안에 있는 향기롭고 또 고급스러운 찻잎은…….
“……썩어 있는데?”
관리를 어떻게 한 건진 몰라도 이미 안에서 좋게 말하면 발효, 나쁘게 말하면 썩어서 반쯤 부엽토가 된 찻잎들이 보였다.
차는 적당히 보관해도 잘 변질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게 그만큼 오래됐거나 진짜 이상하게 보관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안에 물 같은 게 있는 걸 보면…… 명백히 후자일 것이다.
“아하하, 아하……하…… 혹시 물 좋아해?”
베키는 이미 찐하게 우러난 찻물…… 아니, 썩은 물에 적셔진 찻잎이 든 통을 옆으로 치우면서 컵을 들어 올렸고, 아까 그 물을 보았던 영의였기에 고개를 저었다.
“……물은 좋아하는데, 그 물은 아니야. 그게 어떻게 물이야?”
“아, 왜! 마실 수 있으면 물이야! 봐!”
그렇게 말하며 대수롭지 않게 컵으로 물을 떠서 입으로 들이켜는 베키.
“멀쩡하지? 마실 수 있어!”
“……그렇다기엔 얼굴이 조금 아닌데, 표정 관리라도 하고 그런 소리를 해라.”
물은 거칠 것 없이 당당하게 쭉 들이켰으나 그걸 먹은 그녀의 표정은 당당하지 못했다.
뭔가 구토감을 참는 듯 힘이 잔뜩 들어간 입 주변과 묘하게 눈물이 글썽이는 눈.
아무리 봐도 멀쩡하지 않은 듯했다.
“괜찮아, 약 먹으면 돼…….”
베키는 그렇게 말하며 책상으로 다가갔고, 서랍을 열어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어?”
서랍을 더 다급히 뒤지기 시작하는 베키.
“……어어어??”
“이번엔 또 뭔데?”
영의는 뭔가 짐작이 가면서도 설마…… 싶어서 물었다.
배탈은 약으로 막으면 되니까 걱정 없어! 라고 소리치는 여자가 설마 그 약이 떨어지게 놔둘 리가…….
“……약이, 없어……! 사 놓는 걸 까먹었나 봐……. 히잉…….”
“가지가지 한다, 진짜…….”
영의는 마른세수를 하며 진짜 여러 가지로 사람 피곤하게 하는 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그의 시야에는 이런 문구가 떠 있었으니.
[Alrim이 알립니다. 한 지역의 배달을 완료하기 전까지 다른 배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중 계약을 막기 위한 하나의 방법입니다.]
‘……알림아, 너 나 싫어하냐? 이런 애랑 날 붙여 놓게……?’
[Alrim이 알립니다. 보상을 수령해 주세요.]
‘……싫어하는구나? 알겠다.’
그렇게 알림과의 약간의 다툼을 끝내고 베키를 바라보자 베키는 약간 울상을 짓고 있었다.
“……괜찮아. 나중에…… 화장실에 좀 오래 있으면 되겠지……! 아무튼, 이야기 좀…… 해 줄래?”
영의는 이쯤 되면 베키가 오히려 불쌍해졌다.
대체 뭘 어떻게 살았길래 챙겨 주는 이 없이 이렇게 산단 말인가.
아니, 그중의 대부분은 본인이 선택한 거겠지만…….
“어휴…… 그래. 일단은 말이지…….”
베키의 턱을 강제로 다물게 해 음식을 씹게 한 것과 감자튀김에 대해 설명해 주는 영의.
베키는 그 모든 걸 눈을 빛내며 받아 적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사람을 아프게 해서 입을 다물게 했다는 거지……? 근데, 단순 고통과는 달랐어……. 몸에 자연스럽게 명령을 내리는 듯한……. 너, 혹시 주술사야?”
“……아니야.”
“음, 아니야? 근데 어떻게 몸을 움직이게 한 거지……?”
베키는 빠르게 뭔가를 궁리하는 듯했고, 영의는 조금이라도 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대답해 주었다.
“사람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걸 이용한 거지. 그보다, 왜 질문이 자꾸 늘어나는 건데?”
“아, 미안미안. 음…… 반사적이라…… 나중에 연구 소재로 삼아 봐야겠다! 아무튼, 음식은 대충 알았어! 감자를 기름에 튀기란 거지? 나중에 해 볼게!”
‘……제발 집은 태워 먹지 마라…….’
이젠 베키의 미래까지 걱정되기 시작한 영의.
둘이 만난 지는 불과 한 시간도 안 됐지만, 베키가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일단 말리고 생각해야 한다는 건 알 것 같았다.
“아,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너 여기 올 때 방범 장치 다 부순 거야?”
“어어, 으음…….”
물론 다 부수면서 오긴 했다.
그땐 베키에 대한 짜증과 그걸 굳이 배달을 해야 한단 분노가 합쳐진 빡침이 이중이었으니까.
근데 여기서 자기가 다 부쉈다고 하면 아마…… 배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던 그때, 베키가 웃었다.
“끼히햐핫! 내 방범 장치 다 부숴 먹었구나? 괜찮아! 더 발전시키면 되는 거지! 정답을 미리 알면 재미없으니까 내가 보고 한번 개선해 볼게! 다음에도 부탁해!”
뭔가 불길한 소리를 한 것 같았지만 어쨌든 방범 장치와 집 안 일부를 조금 부순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 같아 영의는 안도했다.
“그리고 너 처음 봤을 때 생각한 건데, 바깥에 있는 흰색 저거! 저거 마도구야? 막 마력이 감지되는데?”
베키는 영의에게 그렇게 말하며 한쪽 벽을 가리켰고, 그 벽에는 나무판자의 위에 바깥 풍경이 비쳐 재생되고 있었다.
“……감시카메라?”
“멋지지! 내가 만든 보안 체계야! 이름은 멀리 보는 눈! 영상 기록 마법 수식을 길게 늘여서 밧줄에 감고, 그걸 여기 벽에 있는 판자에 연결한 거야!”
다소 원시적이고, 마법적이지만…… 분명 감시카메라였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영상 하나에 비치는 베키의 집 앞 모습.
거기엔 은은히 빛나는 영의의 바이크가 놓여 있었다.
“원래 마법 기반이라 마력이 있는 건 빛이 조금 나거든? 근데 저건 빛이 제법 잘 나잖아! 내가 저걸 너한테 물어보려다가 힘 빠져서 쓰러진 거야!”
한편 계속 설명하기 시작하는 베키.
자신의 발명품을 소개하게 되자 신이 난 듯 마구 재잘거렸다.
“그리고, 내가 만든 게 좀 많은데……!”
베키가 뭔가를 더 설명하려 하자 영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비록 거지꼴로 살고, 살림도 안 하고, 그 이전에 자기 몸도 안 돌보는 베키.
그러나 거기에 쓸 열정과 시간과 에너지를 뭔가에 쓰고 있고, 그게 그녀의 직업대로 마공학이란 걸 알게 되자 영의는 뭔가 하나 가능할 것 같았다.
“잠깐. 그럼 혹시…… 내 물건 좀 봐줄 수 있어?”
“뭔데? 설마 저거야?!”
베키는 흥분한 기색으로 바깥 풍경에 보이는 영의의 마정석 바이크를 가리켰다.
“……저거야.”
“야호! 새로운 분해다! 조립이다!”
“분해하지 마!”
베키는 신이 나서 환호했고, 영의는 소리를 질렀다.
* * *
한편, 마교에서는…….
“……최고숙수님?”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야!!”
바닥에 닭을 내팽개치며 머리를 쥐어뜯……. 그러나 쥐어뜯을 머리가 없었던 민머리 노인, 장화관. 그는 주먹을 꽉 쥐며 비통해했다.
“하아…… 대체 이걸 어떻게 재현을 해야 할지…….”
성화제의 날, 모든 교인들은 그날의 일을 멈추고 축제를 벌이며 성화와 천마를 찬양하며 즐기고 논다.
본래엔 무인들만 살판나는 날이었으나, 혁련무강이 천마 위에 오르며 내린 명이 있었기에 모든 이들이 즐기게 된 것이었다.
-평생 쇠만 두드려 온 70세의 장인이 있다. 그런 장인을 무공 배운 지 2년 차인 수련생이 이겼다고 하자. 그럼 장인이 수련생을 떠받들어야 하나?
라고 말하며, 혁련무강은 강자존의 법칙을 조금 바꾸었다.
-강자존도 좋다, 하지만! 각자에겐 각자의 분야가 있는 법! 숙수는 요리로, 대장장이는 무기로! 무인은 당연히 힘으로 각자의 강함을 증명해라! 어디 가서 숙수를 때려눕혔다고 대접받을 멍청한 생각은 하지도 말고!
그렇게 교인들은 각자의 분야에 대해 나름의 존중을 해 주었고, 덕분에 성화제에서 일반 교인들도 눈치를 안 보고 즐기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성화제의 저녁때, 첫 재현 시도로 만들어 낸 양념치킨을 먹어 본 혁련무강.
그는 닭 다리를 들고 기쁘게 한 입 베어 물고는, 딱딱한 표정으로 닭 다리를 모두 먹어 치웠다.
-……그래…… 뭐, 잘……했네. 노력은 잘했어.
혁련무강의 그런 모습을 본 장화관은 절망했다. 잘 만들진 못했다.
하루 만에 어떻게 재현을 하겠나?
그러나…… 차라리 못 만들었다고 화를 내시든가, 아니면 그냥 침묵하시지.
애써서 칭찬하려고 하시는 모습을 보니 더 절망스러웠다.
그렇게 대외적 근신을 명받아 주방에 가끔 찾아오는 연화와 주방에서 오늘도 닭을 쪼개고 밀가루를 묻혀 튀겨 보며 답을 찾아보려 하는 장화관.
그들은 과연 황금의 치킨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