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12)
바깥으로 나와 바이크에 올라타는 영의.
지금은 아침 9시 30분. 어지간한 가게들은 거의 다 문을 닫고 있을 시간이었다.
“……뭐,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영의는 공중을 날아가며 알림을 확인했다.
“알림, 띄워 줘.”
[Alrim이 알립니다. 새로운 주문!]
뭐 언제는 파격적이지 않았냐마는, 이번 주문은 조금 특이했다.
[주문인 : 마공학자 ‘더 크레이지’ 베키입니다.]
우선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은데……?
[주소지 : 베키의 연구실입니다.]
뭐, 이거야 자동 운행으로 가면 되겠고.
[배달 물품 : 대략적인 한 끼. 그리고 피로를 쫓아줄 무언가. 입니다.]
……뭐야, 나랑 퀴즈나 하자는 거냐? 왜 이렇게 대충 해 놨어?
[예상되는 보상 목록 : 베키의 재량과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입니다.]
……그래, 뭐…… 상황 따라 다를 수도 있지.
영의는 약간 짜증이 날 뻔했으나 이내 참아 냈다.
그래, 지금까지가 되게 편하고 좋았던 거다.
당장 주문한 사람 이름부터가 크레이지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설명이 나름 쉬웠다.
“한 끼……는 뭐, 샌드위치나…… 햄버거나…… 토스트?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한 끼에 대해서는 영의도 잘 이해가 안 갔다.
누군가에게 한 끼는 뜨끈한 국에 밥과 반찬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에게 한 끼는 프로틴 바 두 개면 되는 것이니.
하지만 뒷부분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커피구만? 보자, 커피가 되면서 음식도 되는 곳이…….”
영의는 머릿속으로 일단 커피라도 나름 집중해서 구해 보자는 생각을 하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
영의는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의 바이크에서 미묘한 스파크가 튀는 것을 모른 채…….
오늘 호찬은 기분이 몹시 좋았다. 어제 단체 주문이 들어왔었기 때문이다.
“흐흠~ 흐음~ 역시, 학생들 단체 주문은 햄버거지! 치킨은 싸우고, 피자는 분배 문제가 있지만~ 햄버거는 한 사람에 한 개!”
호찬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주방을 돌아다녔다.
주문은 점심까지 해 주면 되지만, 좋은 일을 앞두면 괜히 들뜨는 게 사람 심리 아닌가.
호찬은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내려 먹으러 커피 머신 앞으로 갔…….
콰앙!
“호찬 아저씨!”
“엄마야!”
깜짝 놀라 머그잔을 무심코 던져 버리고 만 호찬.
그리고 문을 다급히 열며 나타난 건 영의였다.
“컵 던지지 마세요, 아저씨. 맨날 놀라면 뭐 던지더라.”
“놀라게 하지를 말라고!”
호찬이 던진 컵을 받아 들고 카운터로 다가오는 영의.
물론 가게는 9시부터 열지만 누가 아침에 햄버거 가게가 문을 열자마자 와서 시켜 먹겠나? 밤을 새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호찬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영의가 아침부터 햄버거를 먹자고 온 건 아니겠고…… 얘기나 하러 온 건가? 싶은 생각을 하던 그때.
“아저씨, 햄버거 아무거나 하나 포장요. 그리고 커피도 제대로 내려서 한 잔 테이크아웃.”
먹으러 온 거 맞구나?
“아니, 뭐…… 내 햄버거 맛이야 너도 잘 알지만…… 아침부터 햄버거라니? 그리고 너, 커피는 잘 안 먹지 않았어?”
일단은 주문이 들어왔으니 계산하고 커피 머신부터 준비시키는 호찬.
과연 그 부분에 대해선 프로다웠다.
“……아침부터 시켜 먹는 빌런이 있더라고요. 대체 뭐 하는 인간인지는 몰라도…….”
“아, 배달이구나…….”
그래서 이렇게 다급하게 쳐들어오고, 또 아무거나라고 했구나…….
“뭐…… 그래, 맛있게 만들어 줄게.”
호찬은 주방 안으로 들어서며 불판에 불을 올리고, 적당히 유지해 뒀던 튀김 기름의 온도도 올렸다.
본래 10시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하고 알바생들도 출근했지만, 오늘 이런 주문이 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행이야. 오늘 오후에 단체 주문이 있어서 재료 준비는 미리 다 해 놨거든. 금방 나간다!”
불판에 패티와 빵을 올리고 기름에도 감자튀김을 집어넣었다.
오늘의 첫 햄버거이니만큼 맛은 제대로 나오리라.
그리고 익기를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 동안 그는 커피 머신 앞에서 상태를 체크했다.
“……아직이군.”
그리고 다시 돌아가서 빠르게 햄버거 패티를 뒤집은 호찬.
그는 튀김의 상태를 확인하다가 감자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잠깐 뜸을 들이고는 빠르게 건져 내 걸쳐 두었다.
그렇게 호찬은 혼자서 모든 조리 과정을 빠르게 진행했다.
그럼에도 패티가 타거나, 뭔가 하나 어긋나는 것이 없는 것이 그의 실력을 증명했다.
‘……역시 베테랑이야…….’
영의도 그의 전문성을 보고는 나름 감탄했다.
역시 어떤 분야든 그 분야의 고수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구나…… 하면서.
“자, 완성이다! 감자는 두 번 튀겼고, 패티는 완벽하게 구웠지! 감히 햄버거를 시키면서 아무거나라니! 내가 용납 못 한다!”
호찬이 그렇게 열심히 조리한 이유가 밝혀졌다.
차마 햄버거를 아무렇게나 취급하는 손님의 태도에 열받았던 것.
그의 장인 정신 가득한 햄버거 세트가 봉투에 담겼다.
“……커피는요?”
“거의 다 됐어.”
이내 커피도 전부 내려져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겨 봉투에 들어갔고, 영의가 그것들을 보온 박스에 넣자 호찬이 소리쳤다.
“가서 감상 한번 듣고 와! 물론 뭐 배달하고 바로 오겠지만.”
“……네, 감상 듣고 와 볼게요.”
호찬은 그저 영의가 맞장구로 한 소리인 줄 알고 미소 지었지만, 영의는 정말로 감상을 들을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꼭 들려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늘 하듯이 바이크를 타고 날아올라 자동 주행으로 가는 영의.
그는 이번엔 또 어떤 신비한 광경이 자신을 반길까 기대를 가득 안고 밑을 내려다보았지만…….
“……뭐지?”
넓고 황량한 평야. 곳곳에는 땅이 파인 자국이나 어딘가 그슬린 자국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평야의 한 중간, 제법 큰 집이 덩그러니 서 있었다.
“이것도, 나름 개성 넘치네…….”
그 집으로 다가가는 영의.
그러나 그때 바이크가 느닷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영의가 당황하여 다급히 작동시키려 했으나 반응이 없는 바이크.
그는 혁련무강의 검강으로 파손됐었던 바이크가 멀쩡한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문제가 있었구나…… 싶었다.
‘……이런!’
다급히 몸에 순환하는 뇌기를 가속시켜 뇌룡보를 시전하는 영의.
파직, 파직, 파앗-
그는 바이크를 짊어지고 공중을 밟으며 땅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집의 외관을 둘러보는 영의.
“……겉은, 생각보다 깔끔한데?”
주변 평야는 뭔가 그슬리거나 땅이 파인 자국이 많았지만, 집은 관리를 하는 듯 제법 멀끔한 외관을 자랑했다.
물론 집주인이 게으른 듯 정원은 손질이 안 되어 있었고, 우물도 낡은 채 방치되어 있었지만…….
이내 집의 문을 두드리는 영의.
똑똑.
“계세요-.”
그러나 응답이 없었다. 두어 번 정도 더 두드려 봤으나 응답이 없는 집. 영의는 고개를 갸웃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이 안 사는 곳은 아닌데……?’
그리고 풀숲의 한구석, 무언가 반짝거리며 영의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흐음, 다른 주소인가……?”
영의는 여기가 아닌가 싶어 알림을 불렀다.
‘알림, 지도 좀 띄워 봐.’
[Alrim이 현재 위치를 표시합니다.]
하지만 지도에 나온 주소는 여기가 맞았다.
여기 부근은 죄다 황량했으니, 만약 주문인이 유령이 아니고서야 이 집밖에 없지 않은가.
“……없나?”
설마 지금 주문시켜 놓고 자리를 비웠다거나 하는 그런 경우는 아니겠지 싶어서 다시 한번 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넌 뭐야? 꺼져! 환불, 교환, 수리 다 안 돼! 사 갈 때 얘기는 들었을 텐데!
조금 성깔이 있는 듯한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
베키라는 이름에서부터 짐작했지만, 마공학자 베키는 여자였다.
‘……그럼 대체 얼마나 미친년인 거야……?’
도대체 무슨 인물이길래 별호가 더 크레이지인가.
일단 영의는 음식 배달을 왔다고 말하려 했다.
“저, 일단…….”
-일단이고 자시고 없어! 협회 놈이면 꺼져! 내 기술은 죽기 전에 절대 못 넘겨! 그리고 손님이어도 꺼져! 당분간은 장사 안 해!
“……네?”
그럼 뭐 누가 들어온단 말인가.
아니, 진짜 손님이었으면 어쩌려고 쫓아내? 돈 많이 벌었나?
-지금 당장 안 나가면 네 몸을 써서 자동으로 움직이는 마도 인형을 만들 거야! 썩 꺼져!
갑자기 정원과 집의 벽에서 튀어나오는 총구들.
영의는 진짜 총인가 싶었지만,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었기에 순순히 물러나기로 했다.
“네, 갑니다. 간다고요!”
배달도 정도가 있지, 미친 인간한테 배달할 마음은 들지 않아서 영의가 곧바로 돌아가려던 그때,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너 그거 뭐야?
“……뭐요?”
영의는 퉁명스레 말했다
차라리 배달 안 해 먹고 말지, 이젠 또 뭐야?
-네 뒤에 있는 흰색 그거, 그거……. 아.
-털썩.
갑자기 뭔가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끊긴 베키의 음성.
영의는 미친 인간이 또 다른 미친 짓을 하나 싶어 다급히 떠나려 했으나, 그때 눈앞에 알림이 떠올랐다.
[배달 제한 시간 : 01:00:00]
“……알림아, 좀 아니지 않니? 저건 미친년이야! 피하는 게 보통이라고!”
[Alrim이 알립니다. 제한 시간 내에 배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대답하는 알림이. 영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그래, 뭐 얼마나 미쳤는지 얼굴이나 보자……. 자동 안내 해 줘 봐. 지도 키우고.”
[지도와 경로를 표시합니다.]
이내 영의의 시야 한구석에 미니 맵처럼 표시되는 지도.
그것을 확대해 보자, 집 안의 구조는 생각보다 복잡…… 아니, 아예 괴랄했다.
어딘가는 막혀 있고, 어딘가는 또 갑자기 계단이 나오고…….
“가지가지 하네. 문 앞에 두고 가세요- 하면 얼마나 좋냐고!”
영의는 지금까지의 진상은 그나마 양반이었다고 생각하며 보온 박스를 챙기고는 문을 발로 걷어차 열었다.
“좋아, 진상 고객 놈아. 보상을 제대로 뜯어내 주마.”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손에서 뇌전을 튀기기 시작했다.
* * *
한편, 독고휘 일행은…….
“……형님, 다음은 누구 할지 생각하셨수?”
동굴로 걸어 들어오는 팽소운.
운광은 무당파로 돌아갔지만, 팽소운은 지겹지도 않다는 듯 매일 독고휘의 동굴로 찾아왔다.
“……모르겠는데?”
“아, 맞다. 오늘 아침에 객잔에서 소문을 들었는데 무림맹에서 뭔가 준비한다던데?”
“준비? 뭘?”
“그 왜, 얼마 전에 우리가 모였지 않수.”
“……그거는 그냥 운광 녀석이 말 조금 해 주면 조용하지 않을까?”
독고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거 아무리 최고 어른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우린 옛날 얘기 하면서 술도 마시면 안 되나?
“근데 무림맹에서 그…… 마교에 심어 둔 세작이, 한창 바깥으로 보내 둔 첩자들이 다 돌아왔다고 했고. 어, 그리고…… 마교의 상공에서, 천마와 누군가의 격돌을 봤답니다. 그리고 거기선 뇌기가 막 보였다고…….”
“……설마.”
이 중원에 뇌기를 쓰는 무공은 많다.
근데…… 그걸 하늘에서 쓸 수 있고, 천마 혁련무강이랑 맞상대가 가능한 건…… 나밖에 없는데?
“……그 설마가 맞는 것 같수.”
“내가 마교에서 혁련무강이랑 싸웠고, 그래서 무림맹이 뭔가 준비를 한다고?”
“……그런 것 같수. 그 이후로 세작들이 싹 돌아갔으니 천마가 죽진 않아도 패배한 거로 본 것 같은데?”
혁련무강은 독고휘와 그 일행이 싸우러 오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자 신교로 오는 길에 깔아 둔 부하들을 철수시켰다.
오면 맞이하라고 보낸 거였는데, 안 온다니 둘 필요가 있나? 하지만 그걸 본 무림맹은 다르게 판단한 듯했다.
팽소운의 말에 독고휘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됐으면 진작 했겠지, 그리고 난 걔랑 크게 싸우고 싶진 않다고……. 절대자의 고독이란 걸 알긴 하는 거냐?!’
팽소운의 말은 이어졌다.
그도 상당히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진짜 독고휘가 가서 싸웠으면 말이라도 하기 편하지, 그게 아닌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아마 마교를 싹 밀자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 사도련 놈들도 정파를 좋아하진 않아도 마교보다는 덜 미워하잖수.”
자신은 계속 여기 있었으니, 아마 영의이리라.
‘혁련무강 녀석에게도 요리를 갖다 줬단 말인가……! 그보다, 뭔 짓을 했길래 싸울 때 말곤 침착한 그놈이랑 부딪친 거지?’
“하아…… 내가 하산을 해야 하나…….”
“그래야 하지, 않겠수……? 그, 옛날처럼 한바탕해야…….”
“하아아아…….”
독고휘는 영의 때문에 은거를 풀게 생겼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천마와의 생사결에 대해 해명을 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