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11)
혁련무강에게 다녀오고 나서 늘 그렇듯 배달을 하러 간 영의.
혁련무강에게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조금 피곤했으나 그래도 지금 퇴근하고 자러 가기엔 애매했다.
그렇게 그는 늘 모이던 그 장소에 도착하고 아래에 병찬과 병민, 병병 브라더스가 있는 걸 보고 내려갔다.
“오, 행님 왔어예?”
반갑게 그를 맞이하는 병찬과는 달리 병민은 약간 서운한 듯이 말을 꺼냈다.
“……영의 형, 근데 특별 주문 들어오면 우리 부른댔잖아……. 왜 안 불러?”
지난번에 영의가 혹시 모를 보험으로 말해 둔 이야기를 꺼내는 병민.
영의는 병민에게 뭐라 설명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음…… 내가 그사이에 다 다녀올 수 있으니까……는 좀 아니고, 그냥 없었다 해야겠다.’
“딱히 겹치는 일이 없어서……? 그때 말한 것도 혹시, 호옥시 모르니까 말해 둔 거고. 어지간하면…… 내가 다 처리하지. 내가 자리를 못 비울 때 연락받는 경우라고 했었잖아.”
“아…….”
“마, 행님 능력 모르나? 우리 중에 제일 빠른 기 행님 아이가! 엥간하면 행님이 다 처리한다. 우덜한테 말한 기는 그 뭐냐 그그…… 그 사자성어 뭐고?”
뭔가 말을 하려고는 하는데 떠오르지 않는 듯 물어보는 병찬.
“……유비무환?”
그리고 병민은 충분히 많이 겪어봐서 익숙한 듯 금방 대답을 해주었다.
“아, 그래. 그기다. 아무튼, 우리는 우리 할 일에나 집중하면 되는 기다. 그보다 행님, 요즘 뭐 으데를 그래 다니시길래 자꾸 자리를 비우심꺼? 아니, 이유는 지난번에 말씀해 주셔가 내 모르지는 않는데…… 그, 정도란 게 있지 않심까.”
물론 다른 차원으로 배달을 다녀오면 거기서 얼마나 있든 간에 떠났던 시간대로 돌아오긴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음식을 준비하고, 또 건너가기 전에 걸리는 약간의 이동 시간이 있었으니 영의는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좀 그럴 때가 있긴 해…….”
대충 얼버무리는 영의.
그러나 그 말을 다르게 받아들인 듯한 병찬은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이내 병찬은 영의에게 다가와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행님, 지는 다 압니더. 뭘 그리 숨기고 그랍니까? 우리 사이에. 지도 똑같심더, 행님이랑.”
“뭐?! 너……?”
설마, 이 녀석도 자신처럼 차원을 넘나들면서 배달을 하는 건가?! 아니,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한…….
“거…… 남들 보여 주기 좀 그런 거 있지 않습니꺼. 그 이쁘장한 가시나들 나오는 만화라든가…… 게임…… 그런 거. 뭔가 부끄럽진 않은데 떳떳하기도 그런 거 하러 다녀오시는 거지예?”
……병찬이 녀석이 조금 바보라 다행이었다. 그보다, 이 형은 네 취향을 존중해 줄게…….
“에이, 행님. 빼지 마시고. 사실 병민이 저노마도 다 합니더. 지는 게임 쪽으로, 저노마는 그…… 만화 쪽으로다가. 지난번에 점마 저거 그 이상한 복장 하고 영화관 가는 것도 봤심더.”
……그만해, 병찬아…… 더 존중해 주기 힘들어…….
“뭔데, 무슨 얘기 하는데?”
자신에 대한 얘기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도 끼워달라며 불쑥 끼어드는 병민.
“아, 행님이 가끔 자리 비우는 거 사실 니랑 내처럼…….”
그러다 갑자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병민과 병찬.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새로 나온 게…….”
그리고 영의는 그런 둘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형은 너희가 멍청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취향은 존중해 줄게……어느정도는..’
“그러니까 행님, 저희랑 같이하시지예. 그리고…… 가능하면 추천 코드에 제 닉네임 좀……. 아, 제 닉네임은 ‘핑키공주 핑짱이’입니더.”
“아, 저는 게임은 안 하고…… 그, 만화 쪽인데…… 형, 나중에 저랑 일본 같이 가실래요……?”
“맞다, 맞다. 행님, 지금 신규 유저 이벤트도 막 하고 있는데. 지랑 가챠나 하실랍니까? 핑키공주 핑짱…….”
알겠어, 핑키공주 핑짱…… 아니, 병찬아. 그만해, 화내기 전에.
그렇게 핑키공주 핑짱…… 아니, 병찬과 병민…… 두 동생들의 은밀한 취미를 알게 된 영의.
그는 혁련무강을 만나고 나름 괜찮아졌던 정신적 피로가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피곤해졌어……. 자러 가야겠다.”
“에엥? 행님? 추천인은 해 주셔야……!”
“핑…… 아니, 병찬아. 나중에…… 나중에 해 줄게……. 아니면 병민이한테 해 달라 그래…….”
영의는 병민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으나 병민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미 해 줬는데요. 그 게임 지금 끊긴 했는데…….”
“복귀 유저 이벤트도 한다 아이가! ‘골디골디 미니’ 계정 복귀해라!”
설득의 대상을 영의에서 병민으로 바꾸는 병찬. 그는 병민을 열심히 설득하려 했다.
“아, 가챠 망겜 안 한다고…….”
……설마 그 골디가 황씨라서 골디고, 미니는 병민이의 민은 아니지?
영의는 더 피곤해졌다. 그냥 얼버무리지 말고 그럴듯한 거짓말이나 할걸…….
“……나 간다. 찾지 마…….”
곧바로 바이크를 몰고 떠나는 영의.
배달이고 자시고, 그는 그냥 집에서 자고 싶었다.
“아, 행님 갔다…….”
“……네가 너무 과하게 설득해서 그래. 아니, 얘기 나오자마자 갑자기 급발진하면서 바로 스카우트하면 어떡해! 그리고 추천인부터 얘기가 나오냐!”
“아, 우짜라고 그러믄! 다짜고짜 가시나들 나오는 만화 영화 보러 가자꼬 영화관에 손잡고 끌고 가는 거보다는 게임 재밌는 거 있는데, 해 보실래예-? 라고 묻는 게 더 그럴듯하지 않나!”
“……그건 일리가 있다.”
별로 일리가 없지만 병찬의 논리에 병민은 나름 설득되기 시작했다.
이래서 둘이 친구인 듯했다.
“그렇제? 내 보니까는 행님도 별로 큰 거부감은 없는 거 같드라. 지금 사람 많아가가 부끄럼 타서 그런 거 같은데, 난중에 내가 다시 한번 권해 보께.”
“그래, 잘되면 내 쪽으로도…….”
병민의 나지막한 말에 병찬은 표정을 굳히며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그거는 행님이 정하는 기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이다. 그건 니가 노력해 봐야지.”
“……그래. 근데, 영의 형 바이크에 기스 난 거 봤냐?”
혁련무강에 의해서 파손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둘.
그들도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었기에 나름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었다.
“어, 쪼매 크게 파였드만. 뭐 날아댕기다가 새에 치있나?”
“……새 정도는 박살 내고 날아가지 않을까?”
“그라믄 뭐겠는데? 뭐 밑에서 어떤 미친놈이 총으로 쏴 갖고 맞힌 기가? 그랬는데 터지거나 행님 다치는 거 없이 그냥 기스만 났다고? 차라리 행님이 공중을 걸어서 배달을 할 수 있다 카지?”
“아니, 뭐 말이 그런 거지……. 비행기들도 새랑 부딪치면 사고 나잖아…….”
거짓말처럼 대부분을 맞혀 버린 병찬의 말이었지만, 병민은 그 기세에 주눅이 들었다.
한편, 두 동생들의 숨겨진(?) 취미를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게 된 영의는 피곤함을 크게 느끼며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늘 입던 라이더 재킷을 벗고 그 안의 주머니에서 알을 꺼내는 영의.
바깥 주머니에 넣기에는 너무 불룩하고, 또 눈에 띄었기 때문에 그는 안주머니에 알을 넣었었다.
“……근데, 이거 부화하긴 하는 거지……?”
간간이 뇌기를 알에 주입하며 옷을 갈아입고, 또 씻는 영의.
그는 지금까지 뭘 제대로 키워 본 적이 없었기에 조금 어색했다.
‘……초등학교 때 사 온 병아리는…… 강하게 키운다며 날렸다가 그대로 떨어져 죽었고. 금붕어는…… 아, 그건 그냥 잘 키워 보려고 해도 죽는 거구나. 수조가 없었지.’
지금껏 살아오며 뭔가를 성공적으로 키워 본 기억이 없는 영의.
그나마 뭔가를 잘 키워 냈다 싶은 건 그의 여동생 수연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 뇌령조였나? 그 병아리를 때리면서 훈련시킬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강하게 키우는 집안이었기에, 무려 여덟 살 차이가 나는 오빠인 영의도 막내 여동생 수연을 대련으로 강하게 키웠다.
용케 엇나가지 않은 게 이상했지만, 첫째인 영웅과 둘째인 영환은 영의보다 더 정신 나간 인물들이었기에 그나마 영의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침대에 걸터앉아 휴대폰으로는 병아리 부화시키는 법을 검색하며 다른 손으로 알에 뇌기를 주입하는 영의.
“……따뜻한 곳이라.”
영의는 이 집에서 그나마 따뜻한 곳이라면 침대뿐일 거라 생각했다.
따뜻하게 하겠답시고 난로 같은 걸 썼다가는 그냥 맥반석 계란이 될 것 같았고, 또 뜨거운 물을 받아 두고 거기에 두면 뭔가 삶은 계란이 될 것 같았다.
“……초보 아빠라 미안하다.”
그리고 자는 동안은 뇌기 주입이 힘들기에 일라이저에게서 받아 왔던 마력 주입기에 뇌 속성 마정석을 세팅하고, 알에 맞게 조금 조정해서 매어 둔 영의.
실제로 마력 탈진에 걸린 사람을 위한 도구였기에, 몸에 축적시키기보다는 당장의 몸에 마력을 순환시키는 용도였다.
그래서 체내 뇌기의 증진은 몰라도 당장의 뇌기 충전에는 쓸 만했으니 알에다 연결해 둔 것.
영의는 그렇게 세팅을 마쳐 주고, 핫 팩을 하나 뜯었다.
지금은 겨울철에다, 운행을 안 하고 대기할 때는 제법 추우니 핫 팩을 충분히 구비해 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독고휘를 만나 뇌기를 전수받고 난 이후에는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따뜻함과 뇌기, 둘 다 충족시킨 채 알은 영의와 함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영의는 곧바로 일어나서 옆의 알을 확인했다.
“음…… 뇌기는 다 주입된 거 같은데.”
마력 주입기도 뇌 속성 마정석이 없어져 있었고, 핫 팩도 어느 정도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알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내가 주입해 봐?”
그렇게 알을 마력 주입기에서 빼고 손에 들어 뇌기를 주입하는 영의.
그러나 알은 뇌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옆으로 흘려 냈다.
“……어라?”
받아들이지도 않고, 일반적으로 물체에 뇌기를 쏘았을 때 튕겨 나오듯 하지도 않고…… 흘려 낸다고?
“뭔가 되긴 한 거 같은데…….”
영의는 알을 지켜보며 뭔가 고민을 해 보려 했지만, 그때 그의 시야로 알림이 새로 떠올랐다.
[Alrim이 알려 드립니다. 새로운 주문인에게서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어……? 새로운 주문?”
영의는 곧바로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알이야 잠깐 놔두면 될 거고, 지금은 주문이 더 중요했다.
‘이번엔 뭐 어떤 인물이려나? 무협 한 번, 판타지 한 번, 무협 한……. 아니지, 지연이가 있었으니까……. 아, 뭐 어때. 언젠 규칙적이었나.’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세수만 대충 한 뒤 바깥으로 나가려던 영의.
그는 일단 뇌기는 충분한 듯하니 알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핫 팩을 뜯어 알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낡은 핫 팩은 쓰레기통에 던지고 영의는 바로 바깥으로 나갔다.
부들부들…….
그가 나가고 대략 3분 뒤, 뇌령조의 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