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10)
영의는 눈앞의 알림 창에 당황했다.
‘지금 분위기는 받을 거 다 받고 이제 집에 가면 되는 분위기인데…… 아직 보상 수령이 덜 끝났다고……?’
지금은 혁련무강의 개인실로 향하는 길이었고, 조금 더 가면 대전이 코앞이었다.
옆에서 백청옥을 껴안고 있는 연화를 잠깐 보고는 혹시나 싶은 가능성을 떠올린 영의.
‘……설마.’
그래도 정말 모르는 일이니 영의는 알림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알림아, 추천 보상…… 있니?’
[Alrim이 보상을 추천합니다.]
[수령 가능 보상 : 재화, 무공, 여자(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영약(품질이 낮습니다.)]
[추천 보상 : 재화, 무공]
‘아, 다행이다.’
영의는 알림의 목록 표시를 보며 안도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원래 더 비싼 걸 받을 수 있었는데 뇌령조의 알이 그만큼의 가치는 안 된 거였구나…….
“음, 천마님? 어르신? 뭐라 불러야 하나…….”
영의는 괜히 재화를 얘기했다가 금이나 은을 받게 될 것 같아 두려워졌다.
지난번의 금화야 그냥 예술품 같은 느낌으로 팔 수 있을지 몰라도, 이곳이면 금을 궤짝으로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혁련무강은 영의가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자신을 꺼려 하는 느낌은 조금 있는 것 같아도, 일단 가까워지려고는 하는 거 아닌가.
“크흠, 본좌를 그렇게 함부로 부르는 건 허가할 수 없지만…… 자네는 별 상관 없겠지. 편한 대로 부르게.”
“아, 네. 그럼 천마님으로 하겠습니다.”
혁련무강의 말에 연화는 깜짝 놀랐다.
막내딸인 데다 혁련무강이 친히 아끼는 연화였다.
그런 연화도 혁련무강과 가족처럼 가까운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면 아버님 소리를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외부인에게 저렇게 편한 호칭을 허락한다고?
“……그래서, 나한테 말은 왜 걸었나?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니 물어본 것이겠지?”
“네, 그게…….”
영의는 그때 잠깐 고민했다.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해? 근데, 그러면 아까 비고에서 왜 비급을 안 골랐냐고 물을 거 아냐? 아니, 그 이전에. 천마라고 해도 결국은…… 마공 같은 거 아닌가?’
물론 천마신공은 패도적이고 흉악한 위력을 자랑하지만 정신에 문제가 생기게 하는 마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쪽의 지식이 얕았던 영의는 그냥 금으로 받아 버릴까 생각하다가 문득 팽소운과 독고휘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뇌룡보는 천마군림보를 흉내 내기 위해 만든 거야. 그럼, 직접 전수받는다면? 그럼 더 완전해지지 않을까?’
“그, 천마군림보 그거 가르쳐 주실 수 있어요? 비슷하게 만든 건 쓸 줄 아는데, 아무래도 원조가 더 나을 것 같아서…….”
영의의 파격적 요청. 연화는 이제 영의를 미친 사람 보듯이 하고 있었다.
“당신 제정신입니까?!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천마신공을, 게다가 가장 대표적인 천마군림보를 가르쳐 달라니!”
연화가 영의에게 소리치며 슬쩍 혁련무강의 눈치를 보았다.
‘어……?’
딱히 감정의 변화 같은 게 보이지 않는 듯한 혁련무강.
오히려 그는 은은한 미소를 품고 있었다.
“허허…… 천마군림보를? 그래, 그러고 보니 아까 처음 만났을 때 조금 특이한 보법으로 공중을 날아다녔지. 그건…… 독고휘가 만든 건가?”
“어어, 네. 그 제운종에, 맹호…… 뭐시기랑…….”
영의가 과거를 떠올려 보며 설명을 하려 할 때 연화가 놀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맹호파산보! 권왕의 독문 보법을……!”
신교에 천마군림보가 있다면, 정파에는 맹호파산보가 있다는 말이 있다.
넓은 전장을 그대로 찍어 누르는 천마군림보와 다르게 일대일에서 적에게 엄청난 중압감을 주는 권왕의 성명절기 중 하나 아닌가!
“……그리고 그 뇌전보라는 거 합쳐서 천마군림보랑 비슷하게 만들어 본다고 했던 게 그거였거든요. 근데, 땅에서 쓰는 것보단 공중에서 쓰는 게 더 쓸 만한 것 같아서 그렇게 쓰는데…… 원조가 어떤가 궁금해서요.”
영의는 딱히 큰 관심은 없었다.
애초에 하늘을 직접 뛰어다니는 시점부터 그는 뇌룡보가 너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의의 설명을 듣던 혁련무강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부심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보이느냐, 독고휘?! 내가, 이 천마 혁련무강에게! 네놈과 네놈 친구들이 힘을 합쳐 만든 보법을 배운 녀석이! 천마군림보를 배워 보고 싶다고 하지 않느냐!’
연화는 놀라면서도 아버지가 영의에게 나름 호감이 있어서 화를 안 내지, 적당히 거절하거나 다른 보법을 가르쳐 줄 거라 생각했다.
천마신공은 소교주의 직위를 차지하고도 교주의 명이 있을 때나 전수받을 수 있는 희대의 절기였다. 외인에게 그 절기의 한 자락을 전수할 리가…….
“좋다! 본좌가 직접 친히 가르쳐 주마! 맹호파산보니, 제운종이니, 다 필요 없다! 천마군림보 하나면 부드러움이니 속도니 모든 걸 무시할 수 있다!”
혁련무강은 그렇게 외쳤고, 연화는 그때부터 생각이라는 걸 포기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렇게 혁련무강이 친히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꺼내자, 영의의 시야에 알림이 떠올랐다.
[보상 수령 완료! 이제 복귀하셔도 된다고 Alrim이 알립니다!]
“허어…… 해가 지기 시작하는구나.”
그때 혁련무강이 대전의 뚫린 구멍으로 하늘을 잠깐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음, 그러고 보니 내일은 성화제로군. 본좌가 지금 가르쳐 줄 순 없겠네. 다음에 다시 오면, 그때 천천히 가르치도록 하지.”
‘……어? 뭐야, 안 배워?’
영의는 잠깐 당황했으나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
이름부터 천마가 들어가는 엄청난 무공 아닌가.
평소라면 그거 하나로도 보상은 차고도 남았겠지만, 이번엔 다른 보상을 먼저 받고, 남는 부분을 받는 거였다.
그러니까…… 분할 지급, 뭐 그런 건가?
“……네, 뭐. 그럼 저도 돌아가 볼게요. 천마님.”
“그래, 그리고…… 혹시, 다음에는 다른 요리……. 아, 아니네. 그대로 가져와도 된다네.”
혁련무강은 혹시 더 맛있는 게 있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물어봤지만, 만약 맛이 더 떨어지는 걸 가져오면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아 손을 내저었다.
“네, 알겠습니다. 더 맛있는 거로 갖다 드릴게요. 혹시, 순살은 좋아하세요……?”
“……순살?”
혁련무강은 영의의 말에 의문을 느꼈다. 순살? 그건 뭐지?
“네, 뼈 없는 거요. 젓가락만으로 집어 드시게. 아, 뭐 손 안 대고 드실 수 있긴 한데…….”
혁련무강은 영의의 말에 감탄했다.
젓가락만으로 먹을 수 있다니, 그럼 손에 안 묻히고 먹어도 된다는 말 아닌가!
‘품위를 지킬 수 있겠군!’
“그럼 더 좋지. 기대하고 있겠네.”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바이크에 올라탔고, 바이크는 겉이 부서지긴 했어도 나름 멀쩡한지 일단은 떠올랐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천마님!”
“그래, 잘 가도록 하게!”
영의는 손을 흔들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혁련무강과 연화는 천장에 뚫린 구멍을 보며 작게 손을 흔들었다.
“……아버님, 혹시 아까 먹다 남은…….”
“안 된다.”
“……네.”
그리고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연화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주방을 갈 기분이 아니야…….’
평상시였다면 그녀는 주방에서 치킨의 재현을 구경하거나, 직접 시도해 봤겠지만 남은 양념을 먹는 것을 거부당했기에 그녀는 의욕이 나지 않았다.
“하아…… 다시 한번, 가볼까…….”
그리고 혁련무강은 그의 개인실에서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지금 먹는 게 좋은가? 아니다, 나중에 식사 때 먹어야 한다! 하지만…… 조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안 돼, 참아야 하느니라……!’
차라리 없었다면 이런 갈등도 없었을 것을, 혁련무강은 왜 저게 남아 있어서 이런 고뇌를 겪는 건가……!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래, 있으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다. 내공도, 재물도, 심지어는 가족도! 재물도 가족도 없는 거지는 밥 한 덩이에 모든 만족과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난 어떤가? 가족과 재물, 내공마저 넘쳐 나지만 나는 행복했었나?’
물론 치킨 먹을 때는 행복했지만 평소의 그는 행복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가부좌를 튼 채 계속 깨달음을 이어 나가는 혁련무강.
‘그래, 버리는 거다. 가족은 버리는 의미가 없다. 내가 죽을 때 바로 함께 죽진 않으니. 재산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의 모든 재산은 전대로부터 받은 것. 후대로 물려질 것이다. 그러니…… 내공을 버린다. 단전을 버린다. 모든 것을…… 버리고 비운다…….’
혁련무강은 깨달음을 얻어 점점 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깨달음만 뇌리에 남았다.
그리고 그때 그의 개인실에 찾아오는 연화.
똑똑.
“……아버님……? 주무십니까?”
내일이 성화제였기에 조금 일찍 주무시나 싶어 문을 빼꼼 연 연화.
그녀는 자고 있다면 그냥 나가기로 하고 자는 모습만 확인하기 위해 문틈으로 안을 바라보았다.
안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는 혁련무강.
그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빠져나오고 있었으나 기세가 거칠지 않았고, 오히려 부드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머리가 조금씩 검게 변하고 주름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을 본 연화.
‘바…… 반로환동!’
연화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이내 입을 스스로 틀어막았다.
전설상의 반로환동을 지금, 눈앞에서 아버지가 하고 있다니!
그녀가 무공에 모든 걸 건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입지가 있으니 무공을 제법 익히고 지식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것은 젊을 때의 육체로 돌아간다는 반로환동!
물론 무공을 사용하기에 최적의 육체로 바뀌는 환골탈태에 비하면 약간 손색이 있었으나, 나이를 먹는 게 당연한 무림인들에겐 반로환동이 더욱 좋았다.
“……지금이다!”
그러나 감동하거나 호법을 서기보다는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한 혁련연화.
그녀는 지금 아버지가 무아지경의 상태일 때 빠르게 양념을 탈취하기로 했다.
‘조금만, 먹고 연구해 볼 조금의 양만 있으면……!’
조금의 양이라고 하면서 품에서 꺼낸 병은 주먹만 했으나 연화에겐 그게 조금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혁련무강이 잠가 둔 서랍장을 따기 시작하는 그녀.
‘다행이야, 아버님이 이런 쪽에 큰 관심이 없으셔서……. 그냥 약간만 좀 쑤셔 주면…….’
잠금 기능만 있지, 확실한 보안 기능까진 없었던 서랍장이었기에 그녀가 가지고 다니던 작은 침을 조금 쑤셔 주자 잠금장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짤깍, 짤깍-
혁련무강은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고, 주변의 소리와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기에 아직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본래 늙음을 억제하고 있었기에 독고휘와 달리 느린 속도로 사라지고 있는 주름과 흰머리.
탁!
스르륵-
서랍장이 열리고, 그 안에서 영롱하게 빛을 반사하는 은박지를 본 연화.
그녀는 마음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내 은박지를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병으로 기울이던 그때!
바스락-
은박지 특유의 구겨지는 소리가 났고, 연화는 마음을 졸였다.
“…….”
다행히 혁련무강은 가만히 있었다.
내뿜어지는 기운은 조금 줄어든 것 같았지만, 반로환동 과정 중의 변화겠지 싶어 넘겼다.
“후우…….”
물론 무아지경이라 못 들으시는 건 알지만, 언제 아버지가 일어날지 모르니 일단 빠르게…….
“……뭐 하는 거냐.”
“……꺄악!!”
지금껏 살아오며 적응된 수많은 소리가 있다.
어느 누구에겐 물소리, 어느 누구에겐 바람 소리……. 하지만 사람은 익숙지 않은 소리가 들리면 거기에 신경이 쏠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은박지처럼 얇은 금속이 구겨지는 소리를 들은 혁련무강은 무아지경에서 깨어났고, 그의 기감에 연화가 느껴졌다.
‘……연화? 왜 내 앞에 있는 거지? 아, 호법인가?’
그렇게 일차적으로는 웃어넘기거나 나중에 상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방금 전 들은 소리가 신경 쓰였다.
‘그보다 내가 뭣 때문에 무아지경에서 벗어난 거지? 음?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요리를 먹을 때 포장해 둔 은이…….’
그리고 혁련무강의 머릿속에서 모든 것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무아지경의 상태, 절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을…… 아니, 일단 자신의 방 안에서 나는 금속이 구겨지는 소리.
그리고 호법을 방 밖이 아닌 굳이 자신 앞에서 서고 있는 연화.
마지막으로…… 서랍에 보관해 둔 양념!!
혁련무강은 그 사실에 가부좌를 풀고 눈을 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은박지를 손에 들고, 다른 손에 병을 들고 있는 연화.
사실 혁련무강도 그냥 찍어 먹고 있는 모습을 봤으면 크게 화를 안 냈을 거다.
양념의 양은 제법 됐고, 자신도 딸에게 한 조각 줬으니 그리 못 줄 건 없었다.
하지만…… 그 손에 들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병은 양심이 조금 없지 않느냐, 딸아?
그거면 다 담아 가고도 남겠구나.
혁련무강은 곧바로 입을 열었고, 그의 말소리에 연화는 깜짝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 하는 거냐.”
“꺄악!”
그렇게 혁련연화는 오늘 받았던 백청옥을 빼앗기고, 당분간 근신하라는 징계를 받아 쫓겨났다.
그리고 혁련무강은 반로환동을 반쯤 포기하고 양념을 지켜 냈다!
한편, 독고휘의 동굴.
독고휘는 동굴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때 반로환동을 어떻게 했던 거지…….”
깨달음의 때를 놓쳐 버린 독고휘는 반로환동을 다시 해 보려 애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