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화 (9)
한편, 주방에선 민머리 노인, 장화관의 외침이 이어지고 있었다.
“닭은 최대한 어리고 부드러운 것으로!”
“예, 최고숙수!”
장화관은 아까 먹었던 치킨의 맛을 떠올리며 한번 황홀감에 젖었고, 이내 황홀했던 시간에서 빠져나오며 다시 소리쳤다.
“아니지, 잡내부터 없애야 한다! 지금부터 태어나는 병아리들에게 전부 최고급 모이와 깨끗한 쌀을 먹이면서 키워라! 지존께서 드실 최고의 닭이어야 한다!”
“예, 최고숙수!”
그렇게 마교에선 병아리들이 일반 교인들도 못 먹는 최고급 쌀을 먹으면서 키워졌으나 그건 다른 이야기였다.
다시 혁련무강의 개인실.
“……상을, 주셔야겠네요.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야겠군. 비고로 가도록 하지.”
연화와 혁련무강은 눈앞의 영의에게 상을 내려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혁련무강은 처음부터 상을 줄 마음이 있었다. 치킨에 만족했으니까.
하지만 한 번으로 끝나고 말 음식을 계속 먹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주지 않았나.
“그럼, 비고로…… 가기 전에. 먹던 건 먹어야겠군.”
혁련무강은 더 빠르게 치킨을 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자신의 것을 다 먹었으나 혁련무강의 앞에 남은 치킨 조각들을 보며 아련한 표정을 짓는 혁련연화.
그러나 혁련무강은 치킨 앞에서 자식을 무시할 수 있는 단호한 아버지였다.
“……잘 먹었네.”
‘……진짜 끝까지 안 주시네……?’
손에 묻은 양념을 빨아 먹으며 일어나는 혁련무강.
그는 체통이고 뭐고 이미 잊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노려보는 연화.
그러나 이내 연화는 생각을 바꿨다.
닭은 다 사라졌지만, 저 양념은 남아 있지 않은가.
저것만 잘 얘기해서 받아 보면…….
“아, 저 남은 건 나중에 따로 아껴 먹어야겠군.”
이라고 말하며 혁련무강은 은박지를 꺼내어 자신의 방 서랍장 안에 고이 모셔 두고는, 그 서랍장을 잠가 버렸다.
그리고 한층 더 날카로운 눈매로 아버지, 혁련무강을 노려보는 연화.
“……설마 거기에 밥이라도 비벼 드시게요?”
“좋은 생각이군!”
연화는 이내 영의도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냥 꿀 드시듯 숟가락으로 먹으면 얻어먹어라도 보겠는데, 밥에 비벼 먹으라니……!’
한순간에 은인을 보는 눈에서 갑자기 적을 바라보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연화에게 당황하는 영의.
‘뭐야, 쟤는……? 갑자기 노려보고……. 역시 마교인가……? 멀쩡한 인물이 없네…….’
이내 혁련무강이 깔끔히 빨아 먹은 손을 닦고는 개인실의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최측근들.
“……다들 여기 모여 있었군.”
“예, 지존이시여!”
혁련무강은 그들을 지나쳐 그냥 가려고 했으나 권마가 가로막았다.
“지존이시여, 지금 어디로 가시는지 여쭈어도 되겠나이까!”
“……비고로 간다. 비켜라.”
“비고라 함은…….”
“천마비고다.”
천마비고, 마교의 모든 귀중품이 든 거대한 금고와도 같은 곳이다.
역대 유명한 마인들의 무공과 심득이 담긴 비급에서부터, 중원에서 몰래 들여온 영약이나 주변 지역에서 발견한 영초들이 있는 곳이었다.
물론, 그 외에 보검이나 몇몇 귀한 신물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보검의 경우에는 거의 다 고위 마인들이 대대로 물려주면서 쓴다고 가져가 버려 몇몇 신물들이나 조금씩 굴러다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천마비고란 이름이 가지는 가치 때문에 어지간해선 개방하지 않았다.
그것도 외부인에게는!
“지존이시여, 설마 저 외부의 청년에게 비고의 보물을 넘기실 작정이십니까!”
“맞습니다! 그냥 저 외부인을 금과 은으로 목욕시켜 버리십시오! 위대하신 옛 선인들의 무공을 넘길 수는 없습니다!”
“아닙니다, 차라리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영단을 바치겠나이다! 비고를 여는 것을 재고해 주십시오, 지존이시여!”
차례대로 권마와 검마, 마뇌의 의견이었다.
포상은 하되, 그냥 재물로 줘 버리라고 하는 검마와 그냥 자기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마뇌.
그보다 그 이전에 그들은 영의가 상을 받는 이유도 몰랐다.
“……잠깐. 근데 뭣 때문에 비고를 여시려고 하는 겁니까?”
권마의 말에 잠시 고민하기 시작하는 혁련무강.
이걸 말을 해야 돼?
‘……내가 왜 포상한다고 하지? 아, 그래.’
“독고휘의 행방과, 근황을 말해 주지 않았나. 그것만으로도 중원에 보내 둔 저 쓸모없는 정보원 놈보다 훨씬 낫다.”
혁련무강의 말에 검마와 권마는 수긍했고, 마뇌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우리 애들도 무능하고 싶어서 무능한 게 아닙니다, 지존이시여…….’
“그럼 저희도 하나 물어도 되겠습…….”
“안 된다.”
권마의 물음도 혁련무강에 의해서 막혔다.
그리고 눈치 빠른 검마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마침 옆에 연화도 있으니 나중에 따로 물어보면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이내 부하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비고로 향하는 혁련무강.
감히 천마의 비고를 건드는 이는 없을 거라는 듯, 비고 앞을 지키는 인원은 없었다.
“……경비나 수문장이 없네요?”
“있어도 없어도 의미가 없다. 세상 어느 누가 감히 천마의 비고를 털겠나? 그리고…….”
혁련무강은 비고의 문에 손을 대고 진기를 주입했다.
그의 몸 안에 가득한 천마신공의 기운이 문에 흘러 들어가자, 육중한 소리를 울리며 좌우로 열리는 비고의 문.
“……천마가 아니면 그 누구도 열 수 없다.”
“오오……!”
물론 자동문이나 인식 장치 따위 얼마든지 보고 자란 영의였지만, 사람의 기운을 주입해서 인식하는 것은 처음 보았기에 놀랐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약간 뿌듯해진 혁련무강.
‘선조님께서 왜 이딴 장치를 하셨나 했는데, 이런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였나 보군.’
물론 보안 용도가 주된 목적이었겠지만,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비고 안에 들어가는 혁련무강. 영의와 연화는 그 뒤를 따랐다.
“와아……!”
연화는 천마비고를 처음 들어와 보았다.
그녀의 오빠들은 소교주 자리를 경합하기 위해 성인이 될 때 혁련무강과 함께 비고에 출입을 했었다.
단 한 번, 선대들의 무공비급이나 자신의 내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영약을 내려 받을 때만 허용해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소교주의 자리에 관심도 없었고, 또 비고 안의 것이 아니어도 어지간한 영약은 구할 수 있었기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비고에 직접 들어와 보는 경우는 또 다르지 않은가. 그녀는 비고 안의 광경에 감탄했다.
한쪽에는 안쪽까지 쭉 늘어선 비급으로 추정되는 서적의 선반들이.
다른 쪽에는 각자 다른 기운을 안에 품은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목갑과 보관함들이.
그리고 중앙에 있는 몇몇 선반들에는 신교가 지금껏 모아 온 신물들이 존재했다.
“음? 하하, 연화야. 지금껏 관심이 없는 듯했는데. 막상 비고 안에 와 보니 좋아하는구나.”
“예, 아버님……. 비고의 내용물을 필요로 하진 않아도…… 정작 들어와 보니 대단합니다…….”
그렇게 기뻐하는 연화와 내심 뿌듯한 혁련무강과 달리 영의는 조금 심드렁했다.
무공비급이야 별 필요가 없었고, 사실 있어도 쓰기 싫었다.
‘저거 다 마공 아냐? 막 사람 피 보고 싶어 하고 미치는…….’
사실 마공이라 불리는 것들 중 정말로 피나 광기를 불러일으키는 괴상한 것들도 많았으나, 그런 것들이었으면 비고 안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의는 마교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비급을 무시했다. 그에게는 뇌격공(미완)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비급에는 관심 없다는 듯 바로 고개를 돌리는 영의를 보며 혁련무강은 감탄했다.
‘저 중에 하나만 들고 가도 바로 절세고수가 되거나 팔아서 부자가 될 수 있건만, 비급에 관심이 없다니. 그만큼 독고휘의 무공에 자신이 있는 거거나…… 아니면, 영약을 노리는 건가?’
“영약들은 어떤가. 정파에게서 가져온 것들도 있고, 자연의 것들과 영물의 내단까지. 얼마든지 있지!”
실제로 혁련무강은 천마비고를 비급보다는 영약에 더 치중해서 생각했다.
당장 자신의 아들들만 봐도 세력을 이끌어 부하들을 키워 내고 싶어 하는 첫째를 제외하고는 전부 영약을 골랐고, 아직도 은근히 영약을 더 원하는 눈치가 아니던가.
그리고 무공비급에 대해서 잘 모르는 백성들도 영약만큼은 비싸고 중요하단 걸 알기에 욕심을 낼 거라 생각했다.
“음…….”
사실 영약도 딱히 필요가 없었다. 이전이었으면 모를까, 일라이저와의 거래에서 마력 주입기를 받아 왔던 영의였다.
앞으로 일라이저와 꾸준히 관계만 유지하면 체내의 뇌기를 얼마든지 늘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것들은 다 뭐죠?”
영약에서도 고개를 돌려 신물들이 모인 곳을 바라보는 영의.
그는 몇몇 물건들이 신경 쓰였다.
“……허어, 영약도 신경을 안쓴다라……. 혹시, 뇌령(雷領)조의 내단에는 관심 없나? 뇌기가 가득한 영단인데!”
영업을 하듯 한 목갑을 들어 내미는 혁련무강.
영의는 그 목갑을 보고는 약간 감탄했다.
‘와, 뇌기가 가득해……. 그리고 저건…… 어째선지 먹으면 다 내 힘이 될 것 같은 기분이…….’
그렇게 뇌령조의 내단에 묘하게 홀려서 몸에서 무의식적으로 뇌기를 뿜고 만 영의.
그의 몸에서 살짝 빠져나온 뇌기가 공중으로 흐르려다 어디론가 향했다.
“……응?”
뇌기가 흩어지지 않고 갑자기 어디론가 이동하자 의문이 든 영의.
그는 이내 뇌기가 이동한 곳을 살펴보다가 신물들이 올려진 선반 위의 한 물체를 바라보았다.
“이건…… 알?”
약간 달걀보다는 확실히 큰 사이즈의 알을 발견한 영의.
뭔가 사람의 손 위에 올려두면 딱 맞을 것 같은 마우스 정도의 크기였다.
“……뇌령조의 알이네요. 아마 저 내단이랑 같이 들어온 것 같은데…….”
연화는 그 알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며 혁련무강은 살짝 아까워졌다.
‘……독고휘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건데……. 녀석이 뇌령조의 내단을 찾아다니는 걸 알고 교도들을 동원해 찾아온 것이거늘…….’
뇌전지체를 만들기 위해 뇌령조의 내단을 탐낸 적이 있던 독고휘.
혁련무강은 그걸 알았기에 폭풍우 치는 날 낙뢰에 세 명의 교도들을 희생시켜 가며 뇌령조와 그 알을 포획해 내단과 알을 여기에 보관한 것이다.
“……근데, 이건 왜 여기 둔 거예요? 부화 못하지 않나?”
영의의 물음에 연화가 답해 주었다.
“뇌령조는 새끼를 부화시키기 위해 폭풍과 번개가 몰아치는 날, 번개 구름 속으로 알을 가지고 달려들어요. 그리고 그 번개의 뇌기로 알을 부화시키는 거죠. 그 전까지 알은 깨어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뇌령조는 이름부터 번개를 거느린다는 이름이었다.
뇌기를 품고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며 뇌기가 가득한 먹구름을 쫓아다니는 영물이었는데, 그 속도 탓에 보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다만 유일하게 관측하거나 포획할 수 있을 때가 새끼를 부화시킬 때였다.
그때만큼은 뇌기를 알에 주입시키며 번개가 가득한 폭풍우 속을 날기 때문에 때론 어미 새가 먼저 죽는다 하였다.
그렇게 되면 알이 부화 못할 때가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부화하도록 알 상태에서도 뇌기를 받아들이는 성질이 있는 것.
충분한 뇌기를 받아들인다면 그때 알이 깨어날 거라고 설명했다.
“……흠, 그럼 이걸로 할게요.”
“……?”
“정말요?”
영의는 갑작스러운 충동으로 정한 게 아니었다.
솔직히, 영약이고 영단이고 잘못 먹으면 어떻게 될지도 두려웠고, 신물이나 보검들은…… 아무리 신기해 봤자 현대 문물만큼 신기하겠나?
그리고, 영의는 칼은 쓰지 않았기에 지금 여기서 그나마 흥미가 가고 신기했던 게 이 알이었다.
“……그래, 알겠네. 그럼 이 뇌령조의 알을 가져가게.”
혁련무강은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했지만 뇌령조의 내단은 아직 있으니까 나중에 독고휘하고 마주해서 술이라도 한잔하게 된다면 그때 말을 꺼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내 비고의 문이 닫히고, 연화와 영의의 손에는 각자 뭔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영의는 뇌령조의 알을, 연화는 백청옥을 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뭘 그러느냐. 네 오빠들에겐 다 하나씩 주었는데, 너만 안 주었지. 그보다, 정말 그거면 된 거냐?”
“예, 아버님.”
백청옥은 북해의 빙정처럼 한기를 뿜어내는 물건이었는데, 빙정만큼의 냉기를 뿜진 않았다.
그러나 빙정보다 안전하고, 또 안정적인 냉기를 뿜어냈기에 연화는 그걸 자신의 방에 두기로 했다.
그렇게 보상을 대충 받은 듯했으니 이제 슬슬 가야겠다고 생각할 때, 영의는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쯤 되면 알림이 떠야 하지 않나?’
뇌령조의 알을 손에 넣었고, 또 비고에서 나와 혁련무강의 개인실로 향하고 있음에도 알림이 뜨지 않았다.
‘설마…….’
[배달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을 수령하세요.]
보상 수령은 끝난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