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8)
혁련무강의 개인실은 넓고 화려했던 대전과는 달리 조금 소박했다.
물론 모든 물품은 최고급이었지만, 장식이 가득하다거나 색감이 화려하지는 않았다.
마치 물품 본연의 기능만 하면 충분하다는 듯 별다른 특징이 없는 가구들.
그리고 그런 가구 중 하나인 탁자 위에 영의는 보온 박스를 얹고, 치킨을 꺼냈다.
“……흠, 향은 좋군.”
보온 박스의 보온 기능 덕분인지, 사막 지역의 열기 덕분인지 아직도 따끈따끈한 치킨.
은박지에 싸인 그 붉고 찬란한 자태에 혁련무강은 내심 감탄했다.
“허어, 음식을 은으로 감쌌다? 환단을 금박으로 감싸는 것은 몇 번 보았지만, 음식의 포장에 저만큼 은을 쓰다니. 먹는 이의 품격을 손상시키지 않겠다는 건가. 본좌에게 대접할 정도의 격은 되는군.”
물론 그런 이유는 아니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는 것 같아 영의는 침묵했다.
지익- 탁.
치킨 무도 꺼내어 포장을 뜯고 내려놓는 영의. 혁련무강은 치킨 무에 대해선 잠잠했다.
그리고 기본 제공인 작은 콜라 캔을 하나 따고 내려준 뒤 영의는 뒤로 물러섰다.
“……드시죠?”
“크흠, 그럼…….”
사실 공복이라 나름 배가 고파 영의가 소면을 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던 혁련무강이었다.
하지만 천마라는 지위가 있지 않은가.
마침 다행히도 알루미늄이지만 색깔은 은이었으니…… 은으로 포장된 고급진 음식이었고, 또 향과 겉모습도 좋아 보였기에 혁련무강은 근엄하게 젓가락을 들었다.
‘……잠깐. 그래도 천마인데, 그냥 배고프다고 막 집어 먹으면……. 품위를 보여야겠군.’
사실 독고휘도 정신없이 먹긴 했지만 혁련무강이 알 리 없었다.
이내 젓가락을 내려 두고 허공섭물로 닭 다리를 들어 올려 입에 갖다 대는 혁련무강.
‘어떠냐, 허공섭물이다. 본좌는 식사도 허공섭물로 하는 존재란 말이다. 우러러볼 만하지 않나?’
사실 애초에 사막에서 검강 날리면서 눈 감고 싸운 그 순간부터 영의는 혁련무강에게 우러러보는 눈빛이고 자시고 없었다.
그리고, 영의는 각성자가 넘치는 현대인이었기에 손 안 대고 물건 옮기는 행위는 익숙했다.
당장 그도 전격계 능력으로 자석처럼 금속 물품은 잡아당길 수 있지 않은가.
이내 한 입 베어 무는 혁련무강. 그리고 그는 우주를 느꼈다.
‘이 맛은…….’
겉 부분은 양념으로 인해 달큰한 맛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빨이 파고드는 순간 내부의 바삭한 튀김옷이 입안을 자극하는 감촉을 준다.
튀김옷을 지나고, 이빨에 느껴지는 따스함.
갓 튀겨 낸 듯한 따뜻함이 고기에 돌고 있다.
고기는 또 어떤가. 부드럽고 잡내가 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묘한 향신료 맛도 나는 듯하다.
그리고 한 입을 베어 물고 씹기 시작하자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다가 역순으로 천천히 사라져 목으로 넘어가고, 입안에는 여운만이 남는다.
“…….”
한 입 베어 물고 삼키고 나서 움직임이 없는 혁련무강.
영의는 설마 치킨 먹다가 죽었나 싶어 그를 바라보았지만, 수염이 조금씩 흔들리는 거로 봐서 숨은 쉬는 듯싶었다.
‘참으로 대단하구나……!’
혁련무강은 순간적으로 양손을 이용해 집어 들고 뜯어 먹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그는 한 단체를 이끄는 수장. 늘 앞일을 예상해서 행동해야 했다.
“……거기 누구 있는가!”
혁련무강의 외침에 영의는 깜짝 놀랐다.
‘뭐지?! 치킨이 안 먹혔나? 이 영감, 괴식자야? 막 피 같은 걸 먹는 건가?’
영의는 놀라서 한두 발 물러섰으나, 이내 개인실 밖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지존이시여, 하명하십시오!”
“연화를 데려오라. 그리고, 최고숙수도 데려오도록 해라!”
“존명!”
이내 멀어져 가는 문밖의 발소리.
영의는 치킨이 실패했는지 놀라서 돌아보았으나, 혁련무강의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쩝쩝쩝.
닭다리를 손으로 집어 들고 뜯고 있는 혁련무강.
영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옆의 의자에 앉았다.
“참으로 훌륭한 요리로구나. 격을 갖춘 고급짐과, 그를 뛰어넘는 맛까지. 그래, 이 요리를 만든 숙수는 누구더냐?”
영의에게 약간 친근해진 혁련무강. 영의는 성공했구나 싶어 안도했다.
“음, 모르는데요.”
치킨집 사장님들이라고 다 닭을 튀기는 분들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대부분일지는 몰라도 다는 아닐 것이다.
“몰라? 허어, 참 안타깝구나. 본좌가 직접 신교로 초대하여 전속 숙수로 삼으려 했거늘…….”
혁련무강은 참으로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치킨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조각은 제법 남아 있었으나 계산을 해봐야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손과 입은 계속 치킨을 먹기 위해 움직였다.
‘숙수에게 연구를 시켜 봐야 한다.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서역을 오가는 중원 상단에 팔아먹어도 되고, 또 내가 먹을 수도 있다.’
아마 목적은 본인이 먹고 싶은 마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리고, 연화에게 둘…… 아니, 하나……? 그래도 딸인데 둘…… 아니, 하나만 주자.’
막내딸, 혁련연화에게도 맛보여 주고 싶었던 참아버지 혁련무강. 그러나 나눠 주는 개수엔 자비가 없었다.
“이것들도 드셔 보시죠. 너무 닭만 드시는 거 같은데.”
그때 영의가 치킨 무와 콜라를 내밀면서 권했다.
혁련무강은 네가 뭔데 내 식사를 방해하느냐라는 마음과 저걸 먹으면 이 맛이 변하는 게 아닐까……? 라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으나, 이내 한번 해 보기로 했다.
아삭, 아삭-
치킨 무 특유의 신맛과 아삭함이 입안에 돌며, 슬슬 치킨이 물리기 시작했던 혁련무강의 입안에 침이 배어 나오며 식욕이 다시 돋기 시작했다.
꿀꺽-
혁련무강은 두 번째 우주를 보았다.
‘달다! 달구나! 그리고…… 시원하구나! 이 황량한 지역에서 이런 시원함을 맛보다니……!’
물론 마교에도 음한 계열의 무공이 있긴 했지만, 북해의 것처럼 차가움을 만든다는 개념이 아닌 따뜻함을 빼앗는다는 개념이어서 얼음은 꿈도 못 꿨다.
그런 그에게 조금 미지근해지긴 했어도 바깥 날씨에 비하면 냉장고에서 막 꺼내 온 듯한 시원함을 주는 콜라는 새로운 체험이었다.
그리고 그 특유의 톡 쏘는 맛과 마시고 난 뒤의 묘한 피부의 얼얼함.
그 시원한 느낌에 혁련무강은 치킨을 다시 바라보았다.
‘마치 먹기 전의 상태…… 아니, 더 먹기 좋게 하기 위한 상태가 된 것 같구나. 하루 종일도 먹을 수 있어.’
그렇게 캡틴…… 아니, 천마 혁련무강은 딸이고 숙수고 그냥 다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치킨에 손을 댔으나…….
“지존이시여! 하명하신 임무를 완수했나이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혁련무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러면 나눠 줘야 하잖아……. 나 공복이다! 공복이라고!!
“……스그흤드.”
이를 악물며 대답하는 혁련무강.
“황공하나이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혁련무강처럼 검은 바탕에 금색 꽃을 수놓은 옷을 입은 한 여인과, 손에 상처가 많은 민머리의 노인이 들어왔다.
“지존을 배알하나이다!”
들어오자마자 땅바닥에 엎드리는 민머리 노인과 그저 서 있는 여인.
혁련무강은 마음을 다스리며 입을 열었다.
“……나에게 새로이 올라온 음식이다. 맛이 매우 마음에 드니, 먹어 보고 만들 수 있을지 얘기해 보도록.”
혁련무강은 나지막하게 말했고, 민머리의 노인은 크게 소리쳤다.
“성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지존이시여!”
그리고 일어나서 혁련무강의 앞으로 다가오는 노인. 여인은 그 뒤를 따라 걸어왔다.
“……아버님, 옆의 사내는?”
영의의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듯한 여인.
“……이 음식을 가져온 친구지. 독고휘의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이기도 하고.”
“아하…….”
혁련무강은 이내 치킨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먹어 보라. 그리고 얘기해 보도록 하라.”
“존명!”
민머리의 노인은 치킨을 집어 들고 우선 겉모습을 관찰하고, 냄새도 맡아 보는 등 분석하기 시작했으나 여인은 그대로 바로 집어 들고 귀퉁이를 베어 물었다.
“……!!”
“맛이 어떠냐, 연화야.”
방금 전 혁련무강처럼 잠시 굳어 있다가 이내 차분한 태도로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혁련연화.
그녀는 중원에서 사화로 꼽히는 아름다운 여인 중 한 명이었고, 또 요리에 재능과 취미가 동시에 있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리고 뒤에서 마찬가지로 분석을 끝내고 한 입 먹어 본 민머리 숙수가 입에서 분석을 내뱉었다.
“먹자마자 느껴지는 단맛과 걸쭉함은 아마 꿀로 추측되오나 꿀 특유의 꽃 향이 없사옵니다. 아마 비슷한 다른 무언가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겉 부분의 바삭함은 튀김의 형식 같사오나 일반적 튀김과는 다른 형태입니다. 아마 두 번의 반죽 또는 두 번의 튀김을 한 듯 보이며…….”
상당히 전문적이고 그럴듯한 추측을 해내는 노인.
마교 최고의 숙수라더니, 능력이 제법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옆에서 추가적인 설명을 하는 연화.
“이 고기는 상당히 연했습니다. 이건 손질을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죠. 아마 크게 자라지 않은 닭이나 영물의 고기를 쓴 듯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잡내의 제거입니다. 물에 담가 두거나 향신료만 사용해서는 안 되는 수준입니다. 상당한 시행착오가 필요하겠네요.”
그 둘의 설명을 들으며 혁련무강은 한쪽 눈으로 치킨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식지 않아야 하는데…….
“……그래서, 가능하겠나?”
“하오나 이 소인이 미천하여 두 가지는 불가능하옵니다!”
“……두 가지?”
“첫째로, 단맛 사이에 섞인 매운맛을 구할 수 없사옵니다! 다른 매운 향신료와는 달리, 이것은 소인도 평생 맛본 적이 없사옵니다!”
혁련무강은 조금 안타까웠으나 그래도 매운맛 정도야…… 싶어서 넘겼다.
정 안 되면 조금 타협해야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둘째는?”
“둘째는 튀김옷의 재료겠네요. 쌀가루나 다른 곡식 가루와는 다른…… 그런 맛입니다.”
두 번째는 연화가 대답했고, 민머리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마교는 대부분 쌀을 먹으며, 밀가루로 빵을 먹는 문화를 전파받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대충 반죽해서 구워 먹는 용도였지, 밀가루로 튀김을 하진 않았다.
“……끄응…….”
튀김의 바삭한 식감만큼은 매우 만족한 혁련무강이었기에, 그 부분의 이야기가 나오자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돈은 있다. 닭 따위 얼마든지 사들일 수 있다.
향신료나 기름도, 서역에서 얼마든지 구해 올 수 있다.
하지만 저 나이 먹도록 온갖 식재는 다 먹어 본 숙수도 못 먹어 본 걸 어떻게 구하지……?
“하아…… 알겠다. 일단 그 두 개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
“예, 지존이시여!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연구에 착수하여도 되겠는지요!”
민머리 노인은 말년에 열정을 발견한 것처럼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죽기 전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만들 목표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나.
저 음식을 만들어서 재현한다면 자신은 신교 숙수들의…… 아니, 중원 전체 숙수들의 전설로 남으리라.
“……허한다. 그리고, 연구 중 문제가 생기면 나의 명으로 진행 중이라 하도록.”
“존명!!”
민머리 노인은 혁련무강에게 인사를 올리고 곧바로 밖으로 나가 주방에 뛰어갔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과 다른 숙수들을 닦달하며 한참은 걸릴 기본 연구에 들어갔다.
그렇게 방 안에 셋만 남게 된 상황. 영의는 이쯤 되면 슬슬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지 않나 싶어 입을 열려 했지만…….
“……혹시, 나머지 재료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있나요……? 소협?”
연화가 영의에게 그렇게 물어보았고, 영의는 당황했다.
‘왜 안 나가고 여기 있는 거야……? 당신도 요리하는 거 아니었어?’
그러자 혁련무강도 내심 원하는지 나지막하게 말했다.
“흠, 흠. 혹시 아는 바가 있다면 말해 보게. 나는 상과 벌이 확실한 사람이니.”
“어, 매운맛……은…….”
영의는 여기에 고추장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만약 고추장이 있고 그게 동쪽의 땅에 있다고 하면 조선인지 고려인지 몰라도 멸망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 그러고 보니, 고추장은…… 임진왜란 이후 아닌가?’
영의는 국사 시간 때 들은 한 줄의 이야기를 기억해 냈다.
지금 한국인이 잘 먹는 고추나 감자, 고구마들은 다 왜란 이후 들어온 거라고.
그리고 지금이 조선 후기일 리는 없다고 생각한 영의는 모른다고 말하기로 했다.
“……모르겠는데요. 저도 그냥 전달만 받아서.”
영의의 말에 침음을 내뱉는 혁련무강.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어 봤지만 역시나였던가…….’
“으음…….”
“그럼, 혹시 두 번째는…….”
“아, 그건 밀가루요.”
두 번째는 너무 흔쾌히 답해 주는 영의.
밀가루 정도야 뭐 세계 어딜 가도 하나쯤 있을 거라 생각하고 내뱉은 말이었다.
“……??”
“……?!”
혁련무강과 혁련연화. 두 부녀는 영의가 너무 서슴없이 내뱉은 말에 놀랐다.
‘밀가루?! 그…… 돈 없는 이들이나 사 가지고 먹는 그거?’
‘밀가루면…… 빵을 구워서 바로 안 먹으면…… 돌보다 단단해지는 그…… 가루?’
그 맛있는 음식에 그런 저급한 재료가 들어간단 말인가.
아니, 그 저급한 재료가 제일 핵심이었단 말인가.
혁련연화와 혁련무강은 놀라서 영의를 뻔히 쳐다보았다.
“응? 왜요?”
영의는 어리둥절해졌다.
아니, 왜 날 빤히 쳐다보는 거지? 설마, 여기 밀가루 없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