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6)
굳이 보상 목록의 여자를 고를 이유도 없었고, 또 그럴 일도 없었기에 영의는 늘 그랬듯이 치킨을 포장해서 배달길에 올랐다.
그렇게 치킨을 보온 박스에 넣은 뒤 하늘로 날아오를 때 문득 든 생각.
“……근데, 영약을 먹어도 내가 효과를 볼까? 아니, 천마한테 배달하는데 내가 살기는 할까……?”
만약 죽을 것 같으면 전속력으로 튀기로 하고 영약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영의.
영약, 영약 말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정작 자신이 먹어 본 적은 없었던 영의.
그는 얄팍한 무협지 지식을 머릿속으로 뒤져 보았다.
-주인공이 절벽에서 전설의 영초를…….
-이 장보도에는 영약의 위치가…….
-악당들이 빼앗아간 것은 저희 문파에서 내려오는 비전의 영약으로…….
‘……일반인이 먹으면…… 뭐 어떻게 된단 소리는 없었던 것 같은데…….’
늘 주인공이나 악당, 그리고 무림인들이나 영약을 찾아서 먹었지, 일반인이 먹는 장면은 잘 못 본 것 같았다.
내공심법이나 단전이 없는 영의로서는 일반인과 별다를 바 없었으니 그런 쪽의 해답이 필요했다.
‘……나중에 영감님한테 물어보자. 그러고 보니, 지연이 가르치는 거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하는데…….’
독고휘에게 물어볼 내용이 하나 더 늘었다고 생각하는 영의.
그리고 눈앞에 뜬 알림 창이 그의 생각을 멈추게 했다.
[전방에 목적지가 있습니다. 직진하세요.]
“오오…….”
저 멀리 보이는 사막지대, 그리고 뒤로 멀리 있는 산들과 평야.
그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듯 세워진 도시가 보였다.
의외로 제법 발전해 있는 형태의 도시. 크게 낡은 건물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저게 그 마교인가…….”
늘 악당의 위치에 미친 마인들이 가득한 마교이니 상당히 무서운 분위기일 거라고 생각했던 영의.
마교란 것도 무협지에 나오는 것밖에 못 봤으니 무의식적으로 그런 고정관념이 있었다.
“……생각보다 깔끔한데?”
자세히는 안 보였지만 높은 성벽에 둘러싸여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만약 피에 미친 마인들이 있었다면 저렇게 평화롭게 걸어 다닐 리는 없었을 거고.
영의는 나름 안심하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에이, 뭐야. 결국 마교도 사람 사는 곳이잖아. 괜히 쫄았네.”
천마에게 배달해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 쫄았던 그였지만 마교가 생각보다 평화로운 걸 보고 마음을 편히 먹었으나…….
쌔앵-
그의 머리 옆으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뭐지?”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영의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또다시 빠르게 날아온 무언가.
퍼억!
그리고 영의의 바이크가 날아온 무언가에 맞아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검강 정도론 역시 끄떡없구나! 독고휘!! 승부를 가리자!!”
그리고 무언가 날아온 방향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장년인이 검을 뽑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 검엔 시퍼런 기운이 눈으로 보일 정도로 확연히 서려 있었다.
아마도 저게 그 말로만 듣던 검강이 틀림없었다.
‘사람 사는 곳은 개뿔, 결국 마교잖아!’
영의는 바이크를 버리고 뇌룡보를 사용해 전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딘가 부서지긴 했어도 망가지진 않은 듯 바닥으로 느릿느릿 떨어지기 시작하는 바이크.
“도망치는 거냐! 거기 서라!!”
그리고 그 뒤를 천마, 혁련무강이 바짝 쫓아갔다.
영의의 바이크가 격추되기 전, 마교의 대전에서는 천마가 나른함을 느끼며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권마를 비롯한 다른 부하들은 식사를 하러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
혁련무강은 몸보다는 정신이 굶주렸다며 식사를 거절했다.
“……아직인가?”
“주변을 경계하러 보낸 부하들에게선 연락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칠 주야도 지나지 않았으니…….”
마뇌의 보고에 혁련무강은 한숨을 쉬었다.
반평생 가까이 싸워 온 상대이거늘, 죽기 전에 결판내러 오는 것도 이리 주저한단 말인가.
“하아…… 나만 벗에 가깝다고 생각했던가…….”
본디 절대자란 고독한 법.
그러나 자신을 이해해 줄 법한 다른 절대자인 독고휘가 이 천하에 그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었고, 그렇기에 지난번에 술을 마시자는 서신까지 보냈었다.
‘결판을 내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한 번쯤 검을 맞대는 일 없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나……. 음?!’
나이를 먹어서일까, 감상적인 생각을 하던 혁련무강은 그의 기감에 걸려든 미세한 뇌기를 느꼈다.
하늘 어딘가에서 이 마교를 향해 다가오는 뇌기.
“……마뇌. 오늘은 날이 어떻지?”
“……아주 맑고 화창합니다만.”
“…….”
맑고 화창한 날에 느닷없는 뇌기라? 혁련무강은 확신했다
이 천하에 뇌기를 상시 몸에 지니는 것은 뇌기를 지닌 몇몇 영물과 독고휘의 무공을 전수받은 이들뿐이라고.
하지만 지금 그가 느낀 이 뇌기는 하늘에서 느껴졌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영물인 뇌령조는 늘 먹구름을 따라다니며 빠르게 대륙을 가로지르는 새였다.
그리고 맑은 날에 느닷없이 나타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왔구나!!”
혁련무강은 곧바로 얼굴에 화색을 띠며 그의 검을 집어 들고는 곧바로 대전의 지붕을 부수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당장 뇌기가 느껴지는 곳을 향해 검강을 두어 번 쏘아 날렸다. 환영 인사 대신이었다.
그리고 공중에서 다가오는 무언가는 그 검강을 피했고, 두 번째에는 피하지 못한 듯 검강에 맞았으나 뇌기는 건재했다.
바닥으로 무언가가 떨어지는 듯했으나 거기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바로 신경을 껐다. 눈앞의 호적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집중력을 허비할 수 없었기에.
“검강 정도론 역시 끄떡없구나! 독고휘!! 승부를 가리자!!”
혁련무강은 천마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고수였다.
그러나 독고휘의 기술은 압도적인 속도가 자랑이었기에 그는 시야에 의존할 수 없었다.
사람이 빨라 봐야 뇌전만큼은 못했기에.
그래서 그는 눈을 감고 기감에만 의존하기로 했다.
이윽고 눈앞의 뇌기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자 혁련무강은 공중을 밟으며 쫓기 시작했다.
눈을 떴다면 독고휘가 아니란 것을 알았겠지만…….
그렇게 눈을 감은 천마와 영의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파직, 파직, 파직-
뇌전보로 가속력을 부여하며 뇌룡보로 공중에서의 압도적 기동성을 확보한 영의.
그러나 뒤의 상대는 괴물이었다.
“아하-앗! 하하하하! 독고휘! 보법을 개량했구나! 그걸 보여 주기 위해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니겠지!”
혁련무강은 공중에도 땅이 있는 것처럼 허공을 밟으며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옷자락도 별로 펄럭이지 않는 걸 보면 별도의 기막을 자기 주변에 펼쳐 공기저항도 덜 받는 모양이었다.
둘의 사이가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저 미친! 아무리 내가 진짜 번개만큼 안 빨라도 그렇지, 이 속도를 따라온다고?’
영의는 다급히 도망치며 황급히 몸의 뇌기를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2배속, 2배소옥!!’
[현 사용자의 상태를 Alrim이 알립니다. 체내 에너지 : 60%]
‘알리지 말고 그냥 눈에 띄워!’
[Alrim이 요청을 확인합니다.]
[체내 에너지 : 62%]
뇌룡보로 이동하면서 급하게 몸의 뇌기를 끌어 올리는 영의.
2배속으로 출력을 올렸기에 그의 몸에 부담이 가해지고 있었으나 당장 뒤의 천마에게서 도망치는 게 더 중요했다.
“독고휘! 더 빨라졌군! 그럼 나도 조금 더 빠르게 가 볼까! 하하하!”
혁련무강은 이 상황도 즐거운지 웃으면서 아까보다 빠르게 영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아까처럼 좁혀지기 시작한 둘의 거리.
“으아아아! 뇌창!”
너무 다급해진 나머지 영의는 급하게 뇌창을 생성해 뒤로 집어 던졌고, 눈을 감고 있다 갑자기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뇌기를 감지한 혁련무강은 살짝 감탄했다.
그리고 뇌창의 의도를 생각하느라 영의의 목소리도 의식하지 못했다.
‘도망치는 척하며 날 유인하고 더 빠르게 도망쳐 속도를 올리게 만든 뒤 바로 공격을 던지다니! 과연, 적은 힘으로 피하기 힘들고 더 강하게 날 공격하겠다 이건가?’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혁련무강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고 싶나? 의도대로는 안될 거다!’
그리고 이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신강기.
“하앗! 시도는 좋았다, 독고휘! 하지만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지!”
혁련무강이 호신강기로 흩어 내 버리자 영의는 당황했다.
‘대충 쏘긴 했는데 저걸 몸으로 때운다고? 괴물 같은 놈……. 아니, 천마니까 저 정도는 당연한 건가…….’
뇌창 말고 다른 원거리 기술은 배운 게 없는 영의.
그는 원거리 기술의 필요성을 마음속 깊이 느끼며 계속 물러나며 뇌창을 던졌다.
“크하하하! 뇌창만 던지다니. 자신이 없는 건가? 독고휘!”
혁련무강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으나 속내는 달랐다.
‘뭐지? 뭔가 계획한 게 있나? 아닌가? 진짜 자신이 없나? 아니지, 그랬으면 여기 올 리도 없을 텐데. 뭐냐, 뭘 숨긴 거냐, 독고휘!!’
혁련무강과 독고휘가 젊었던 시절, 독고휘는 명문의 제자도 아니고 딱히 정파스럽게 살지도 않았다.
그랬던 독고휘였기에 혁련무강은 독고휘보다 약간 우세한 무공 수위를 가졌어도 독고휘의 돌발 행동이나 예상치 못한 수법에 당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그걸 경계해서 섣불리 다가가지 않았다.
“아, 진짜! 저 영감이 미쳤나! 나이 먹고 노안이 온 거야 뭐야!”
계속 뇌창을 던져 봤지만 호신강기로 밀고 들어오는 혁련무강의 모습에 영의는 분노하여 소리쳤고, 그 목소리에 혁련무강은 다시 한번 경계했다.
‘뭐지?! 젊은 목소리? 설마…… 전설상의 반로환동!! 그렇군, 그랬으니 여기로 온 것이고, 또 몸이 익숙지 않으니 수법이 바뀐 거야!’
물론 독고휘가 반로환동을 하기는 했다. 절반쯤…… 반만 환동했다.
하지만 혁련무강은 다르게 이해해서 영의에 대한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 올렸다.
“독고휘! 반로환동이라니, 엄청난 성취로구나! 허나 정면 승부를 하지 않는 걸 보니 너도 지금의 몸에 익숙하지 않은가 보군!”
그때쯤 되자 둘의 거리가 상당히 좁혀졌고, 영의는 혁련무강이 눈을 감고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금 저거…… 아니, 저 영감 눈 감고 싸우는 거야?
“으아아! 미친 영감아! 눈을 뜨고 보라고!”
“젊어진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 하지만 난 네 말에 속지 않을 것이다!”
“으아아악! 악! 으아아아악!”
영의는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마구 질렀고, 그쯤 되자 정말 이상함을 느낀 혁련무강이 눈을 살짝 떴다.
눈앞에 있는 옷은…… 중원의 복색이 아니었고, 머리에는 은색의 무언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리고 골격은…… 젊은이? 독고휘 놈보다 키가 큰 것 같은데……?
“……네놈은 누구냐. 독고휘는 어디 있지?”
눈앞의 상대가 독고휘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오자, 혁련무강은 살기를 피워올렸다.
“빨리도 물어본다 진짜…….”
영의는 이 동네 영감님들은 하나같이 멀쩡하지가 않다고 생각하며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