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5)
그렇게 한참을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세 노인의 회의가 끝났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직접 한번 개량을 해 보도록 하지.”
“형님, 일단 뇌기로 주변을 찍어 누르는 것부터 해 보지 않겠수? 그게 중점인데.”
“으흠, 그렇군.”
독고휘와 팽소운은 운광을 빼고 둘이서만 대화를 했다. 거기에 약간 심통이 난 건지 운광이 슬쩍 말을 꺼내 보았다.
“크흠. 왜 본 도우는 안 끼워 주는 것이오?”
“……제운종은 별로 안 어렵잖나.”
“제운종은…… 그, 뭐냐? 그…… 솔직히, 나도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내 맹호파산보에 쓰는 내력을 뇌기로 바꾸는 그 과정이 제일 까다롭지, 제운종은…… 그냥 배우면 되는 거잖아? 그 휘적휘적 걷는 게 뭐가 힘들다고.”
독고휘와 팽소운의 말은 몹시…… 자비가 없었다.
구름을 밟고 오른다는 이름을 가진…… 그런 만큼 뛰어나고, 또 부드러운 움직임이 특징이었기에 겉보기엔 쉬워 보였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신법이었다.
물론 제운종은 신법이었고, 지금 그들이 개발하고 있는 것은 보법이었기에 큰 연관은 없었지만 중요한 건 무당 특유의 움직임 아닌가.
운광은 무당의 무공에 자부심이 있었기에 제운종을 무시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제운종을 무시하다니! 비록 둘의 독문무공에는 못 미쳐도, 역사와 뿌리가 깊은 무당의 절학이란 말이오!”
운광은 성질을 내면서 말했으나 팽소운은 영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한번 가르쳐 보고 오든가.”
“좋소! 제운종을 뭐 얼마 만에 터득하는지 한번 보고 오겠소!”
그렇게 운광은 영의에게 다가가 제운종에 대해 대략적인 강의를 하고, 또 기본 동작과 움직임에 대한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 그런 다음 영의가 실제로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 시켜 보았다.
“자, 보여 줄 만큼 보여 주었네. 한번 해 보게나!”
운광은 기세등등해져서 영의를 쳐다보았다.
‘무당에는 태극혜검, 태극권, 장삼봉 조사께서 만들고 수많은 선대 무당파 도인들께서 발전시킨 무학들이 있다! 다시는 무당을 무시하지 마라!’
그러나 운광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흠, 이렇게…… 이렇게? 아닌데, 조금 투박한가……. 그럼 이렇게.”
“……아니, 저걸 어떻게…….”
분명 자신의 제운종에 비하면 투박하고, 신법이라기엔 제대로 된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저 움직임, 그리고 그 안에 든 묘리는…….
“허어…… 참으로 기재로다…….”
무당의 무학이 이토록 보잘것없었던가.
그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며 발전한 게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10년…… 아니, 5년만 빨리 저 청년을 만났다면……. 허허, 무량수불…….’
운광은 그리 생각했다.
진작에 만났다면 제자로 삼고 무당의 이름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르신,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리고 그때 영의는 운광을 돌아보았다.
“그래. 비록 느리고 투박하지만…… 제운종의 필수적인 묘리는 다 들어가 있구나. 나머지는 익숙해지면서 고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운광은 그제야 독고휘와 팽소운의 행동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둘이 좋아서 이 청년을 가르치게 된 건 아닐지라도, 가르치고 나니 이 청년이 좋아진 것이구나…….
물론 음식과 술에 대한 건 취했을 때라서 기억에 없는 운광.
하지만 크게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팽소운과 독고휘가 있는 곳에서 전격이 튀어 올랐다.
“오오, 이렇게 하면 되겠구만!”
“됐다. 자, 영의야! 이리 와서 한번 해 보거라!”
“어, 네!”
이제 뭔가 완성된 듯한 둘의 분위기에 영의는 독고휘에게 다가갔다.
“자, 일단 이렇게 뇌기를 하체에 집중시킨다.”
그리고 독고휘는 발에 뇌기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반신 쪽에 뇌기가 들어차 스파크가 튀기 시작하자, 독고휘는 힘찬 움직임으로 바닥에 발을 굴렀다.
파직-
힘차게 내디뎠으나 땅에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되려 독고휘가 발을 디딘 곳엔 전류가 튀어 오르기 시작했고, 그 반경이 대략 5미터 정도 되었다.
“이게 첫걸음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똑같이 하면 된다!”
중간 설명이 많이 생략된 듯했지만, 그 부분은 팽소운이 설명해 주었다.
“내기를 가득 실어 땅에 발을 디딜 때, 하체의 내력을 그대로 용천혈…… 그러니까, 발바닥을 통해 내뿜는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그때 내뿜는 내력은 그대로 뿜는 게 아닌, 주변을 향해 퍼져 나가게 뿜는 것이다. 그 내력으로 앞으로 나가는 힘을 얻고, 또 동시에 주변을 뇌기로 제압하는 거다.”
영의는 팽소운의 설명과 독고휘의 시범을 보자 나름 이해가 되었다.
부스터처럼 발바닥 쪽에서 뇌기를 방출하고, 그걸 추진력이랑 주변 제압에 동시에 사용하라는 뜻.
찍어 누르는 맹호파산보와 달리 이 보법은 내기가 그저 퍼져 나가는 게 특징이었다.
“어, 잠깐만…….”
주변에 뇌전을 퍼트리며 걸어가는 독고휘를 보며 영의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뇌기를 퍼트리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일종의…… 발판처럼 쓴다면?
뇌전보처럼 뇌기를 저렇게 깔아 두고 공격용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디딤대로 쓰면 더 빠른 이동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 보법의 이름은…… 뭘로 할까?”
“지적무쌍패왕단공극뢰파천군림보 어떻수? 천마 놈 기술이랑 비슷하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소만…….”
이제 개발도 끝났으니, 이름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는 세 노인.
팽소운은 당연히 작명에 센스가 없었고, 독고휘는 천마의 기술 이름을 붙이기 싫어 군림보가 아닌 다른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다.
세 노인이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영의는 방금 떠오른 생각을 즉시 실행에 옮겼다.
파직-
우선은 발을 내디디며 뇌기를 바닥에 뿜어내는 영의.
그리고 동시에 뇌기를 앞으로 끌어당기는 발판으로 이용하며 허공에 뇌기를 유도해 다음 발판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응?”
“어엉?”
파직-
파직, 파직, 파직-
“허어, 능공허도……는 아니고, 뇌기로 발판을 만들어 허공답보를 구현해 냈구나!”
“저런 사용법도 있었수?”
“뇌기는 흐르고 퍼지는 성질이 있지, 뭉치는 성질은 없어 저런 생각은 못 했지만…… 참으로 천재로구나!”
‘그래, 뇌전보는 움직이는 뇌기에 자신의 몸을 싣는 방식이다. 움직이는 방향을 하늘로 두면 저런 것도 가능하겠구나!’
영의는 공중에서 계속 뇌기의 발판을 밟아 가며 하늘을 뛰어다녔고, 상쾌한 기분을 느꼈다.
‘직접 몸으로 바람을 맞는다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았구나……!’
그리고 그 광경을 보여 운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뇌룡, 마치 한 마리의 용이 뇌전을 흩뿌리며 나는 것 같구나…….”
“……그래, 뇌룡보. 뇌룡보라고 하자.”
“……뇌룡무쌍파천황…….”
팽소운이 아직도 긴 이름에 집착을 못 버리자, 독고휘가 단호하게 말했다.
“뇌룡보. 뇌룡보!”
그렇게 한참을 공중 산책을 즐기던 영의는 이내 바닥으로 내려왔고, 세 노인은 인자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세요……?”
갑작스럽게 손주를 바라보듯 보는 노인들의 태도에 당황한 영의.
“허허, 아니다. 아니야.”
“그래…… 아무것도 아닐세.”
영의는 그저 가만히 미소 지으며 자신을 보는 세 노인에게 뭔가 섬뜩함을 느꼈고, 이내 다급히 그들에게 인사를 올린 뒤 바이크를 타고 도주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렇게 영의는 공중에 떠올라 날아가기 시작했고, 그의 시야에 알림 창이 떠올랐다.
[보상 : ‘뇌룡보’ 수령 완료! Alrim이 길을 안내합니다!]
그렇게 다급히 그곳을 떠나며 영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다음부턴 좀 적당히 배달해야겠어……. 약발이 너무 셌나……?’
그리고 영의가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세 노인.
그때 운광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근데, 어디로 가는 거지?”
“나는 모르는데. 형님은 아시우?”
“……나도 모른다.”
독고휘의 말에 둘은 침묵했다. 최소한 소재라도 아는 거 아니었나?
“……아니, 그보다 저렇게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르는 녀석은 어떻게 받아 준 거요? 난 이름은 몰라도 그 부분은 나름 확실할 줄 알았지!”
“나도 몰라! 일단 확실한 건 중원 무림의 생리에 대해 모르는 녀석이라는 것뿐이야!”
“아니, 그럼 마교에서 온 것 아닌가?! 복색도 중원의 것은 아니었는데!”
영의가 사라지자 나름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세 노인.
세상만사에 별 관심 없는 데다 신선인 줄 알았기 때문에 그 부분은 생각을 못 했던 독고휘.
그들은 그나마 정상인인 운광 덕분에 당연했던 의문을 이제야 떠올렸다.
“나는 신선인 줄 알았지! 하늘에서 내려오고, 그 진미를 맛보여 주고!”
“아니, 세상 무슨 신선이 그리 영험함이 없수? 누가 봐도 그냥 사람이구만!”
“허어…… 무량수불, 신선이셨던가……. 무량수불…….”
“넌 또 왜 거기서 설득을 당하냐, 말코 놈아!”
그렇게 세 노인은 갑작스럽게 티격태격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머릿속에 생각하는 바는 다 달랐으나 하나의 생각만은 동일했다.
‘어디서 온 녀석이지??’
한편, 돌아가기 위해 하늘을 가로지르던 영의.
오늘 하루 동안 지연의 훈련도 봐주었고, 또 세 노인들의 무공 지도도 받았으니 그는 조금 피곤했다.
‘아, 오늘은 배달 대충 뛰다가 자러 가야지……. 정신적으로 좀 피곤하네.’
그렇게 연동된 자신의 알림을 이용해 배달 주문을 받기 위해 시야 한구석을 흘끔거리던 영의는 때마침 떠오르는 알림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오, 생각하자마자 뜨다니. 양반은 못 되는구나?”
제법 운이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영의는 알림을 확인했고, 그는 갑자기 운이 좋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문인 : 천마 혁련무강]
[주소지 : 명교 본단]
[배달 물품 : 양념치킨]
[예상되는 보상 목록 : 영약, 무공비급, 재화, 여자 중 택 1]
……뭔 미친 주문이야, 이게……? 그보다, 여자……? 저게 왜 있…….
영의가 방금 받은 주문에 당황해하던 그때, 집에서 피부 관리를 위해 얼굴에 마스크팩을 하던 화연은 순간 깜짝 놀랐다.
“아, 차거!”
냉장고에 넣어 둔 마스크 팩이 너무 차가웠던 것이다. 얼음을 다루는 각성자면서도…….
한편, 마교에서는…….
“……아직 안 오나?”
혁련무강은 의자에 삐딱하게 기대어 하품을 내뱉고 있었다.
“아직은 안 오는 것 같습니다, 지존이시여!! 그러나, 저의 계산은 틀림없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믿는데…… 이놈들, 길을 잃었나……?”
마뇌의 말을 일단은 계속 믿어 보기로 한 마교의 중추들.
마뇌가 지금껏 틀린 적은 없었기에 지금 이 상황도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일단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이놈들, 머리 굴릴 줄 아는데……? 이렇게 시간 끌면서 우리가 지치면 기습하려고……! 역시 비열한 정파 놈들답구나!”
“아아, 그런 방법이…….”
“권마답지 않게 엄청난 발상이로다!”
“나다운 게 뭔데?!”
……아직도 세 노인이 마교에 복수하러 오는 줄 알고 준비를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