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3)
정파의 최고수 셋이 부딪치며, 대산이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사라지는 엄청난 대격돌! 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독고휘의 기감에 익숙한, 아니 정확히는 늘 기다리던 그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
“허어…….”
스르르륵-
독고휘가 발산하는 내력을 거두어들이자, 잠잠해지는 동굴 앞.
팽소운과 운광은 긴장한 채 계속 독고휘를 경계했다.
“……형님, 갑자기 왜 멈추시우?”
“……아무래도 노망이…….”
운광과 팽소운은 그리 말하였으나 독고휘는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녀석이 준 모든 것이 사라지니 비로소 오는구나……. 그래, 어쩌면 뭔가를 버려야만 뭔가를 얻는 걸지도……. 음?!’
독고휘는 자연스레 ‘버린 만큼 얻는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에게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주었다.
‘버린 만큼 얻는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살면서 뭔가를 완전히 털어 버린 적이 있었던가?’
독고휘는 갑작스레 찾아온 깨달음의 단초에 그 자리에서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상황이 파악된 두 노인.
“설마…….”
“아니, 방금 전에 그렇게 화내면서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고? 진짜 사기 치네, 저 형님…….”
운광은 그저 웃으면서, 또 팽소운은 투덜대면서도 독고휘의 호법을 서 주었다.
만약 여기서 정말로 독고휘가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그들도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결국 어쩔 수 없는 무림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현장에 도착한 영의. 동굴 앞에 내려선 그는 이미 밖에 나와 입구를 지키듯 서 있는 두 노인을 발견했다.
“……한 분은 아는 분인데, 다른 분은 누구신지?”
보온 박스를 들고 동굴 앞으로 다가온 영의는 그렇게 질문했고, 팽소운은 조용히 하라는 듯 그의 손가락을 입 앞에 갖다 댔다.
“쉿. 형님이 방금전에 깨달음을 얻어 명상에 들어가셨네. 방해하지 않는 게 좋아.”
“어어…… 네. 그럼 이건 일단 여기 둘게요.”
보온 박스에서 음식을 꺼내 앞에 내려 두는 영의.
음식에는 나름 초연한 태도를 보였으나 술이 나오자 팽소운과 운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병은! 그 술이 아직 더 남아있었던 건가!’
‘아…… 이번엔 다섯 병이네. 사실 술 맛도 좋긴 좋은데, 난 맛보다는 단순히 좀 많이 마시고 싶단 말이지…….’
그러나 둘은 호법에 충실해야 했기에 일단은 가만히 있기로 했다.
“……? 안 드세요?”
음식을 가져와 내려놓았으나 둘 다 손을 대려는 낌새가 없자 의아해진 영의.
“안 된다. 호법을 서는 이가 어떻게 식사를 하겠느냐. 깨달음의 순간은 방해받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허어…… 보잘것없지만, 이 도인이 알려 드리지요. 깨달음이란…….”
“뭐래, 말코가.”
운광은 자비로운 웃음을 지으며 마치 신선처럼 영의에게 설명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팽소운이 가로막으며 운광은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허허…… 팽 도우…… 그러깁니까……?”
“뭘 그러기야 그러기는. 방금 전까지 술 먹고 난리 친 놈이. 너 그러고 다니는 거 너네 일대제자 애들은 아냐?”
“윽…….”
비록 기억은 없었지만 방금 전 술을 먹고 난리를 피웠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운광은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운광의 기세가 죽자 팽소운은 기세등등해져 영의에게 이것저것 더 말하기 시작했다.
“이 말코 놈 말 믿지 마라. 광진자니 뭐니 추켜세워져도 본질은 말코 놈이야. 그리고, 이 녀석만큼 술버릇 나쁜 놈이 없다.”
“네……. 근데, 여기 아무도 안 올 거고 동굴 입구는 여기 하나인데, 그냥 여기 지키고 앉아서 밥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
“……어음…….”
그랬다. 다른 곳에서의 호법이야 보통 개활지나, 타인이 오가기 쉬운 환경이었는데 이곳은 그런 방해 요소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을 때엔 창작하는 것이 힘들 듯, 깨달음도 어떠한 계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주변에 사람이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세 노인 말고는 거의 아무도 안 오는 험준한 산자락, 입구는 하나밖에 없는 동굴.
그리고 결정적으로 앉은자리에서 돌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쏘아내도 초절정고수를 죽일 수 있는 두 고수까지.
갑자기 살수들이 뛰쳐나와도 둘이 짜장면 먹던 젓가락을 반으로 분질러 던지면 그중 여덟은 바로 즉사하리라.
“……틀린 말 없는데?”
“허허, 그러고 보니 나도 시장하구려.”
마침 두 노인도 식사 때가 다가오고 있었고, 술은 운광이 다 먹었기 때문에(기억은 없지만) 눈앞의 술병들을 보니 마음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 먼저들 식사하세요. 독고휘 영감님은 나중에 챙겨 드리면 되니까.”
“……그럴까?”
“그러는 게 좋지 않겠소?”
“그래, 그럼 먹고 있자.”
그렇게 팽소운과 운광은 동굴 입구 바로 앞에 앉아 음식의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어느새 익숙해진 건지 나무젓가락도 비비기 시작하는 팽소운.
운광은 영문을 몰랐으나 팽소운이 하는 행동을 따라 했다.
‘……현대에서 살다가 여기 다시 태어나셨나, 왜 저게 능숙하지……?’
팽소운이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젓가락 비비기를 하는 것을 보자 잠깐 의혹이 들었던 영의.
한편 독고휘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 내면의 모든 것을 비워 내면 그것은 언젠가 다시 찬다. 나의 몸에 있는 기운은 아무리 정순해도 자연의 것에 비하면 탁하고 삿된 것이다. 몸을 비워라. 모든 몸의 기운을 비워 내고, 자연의 것이 그것을…….’
그때 묘하게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
-나 부어 먹을 거다?
-마음대로 하시오.
……잘못 들은 거겠지, 싶어 계속 집중하는 독고휘.
그리고 그때 그의 머리가 뿌리부터 조금씩 검어지고, 피부의 주름도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내 몸을 아무리 잘 관리해도 단전이란 중심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단전을 포기한다면? 그 녀석처럼 단전 없이 몸에 내기를 축적시킬 수도 있다. 힘의 집중력은 떨어지겠지만, 내 온몸을 단전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집중력과 힘의 총량, 둘 다 잡을…….’
-그럼 부어야지. 흐하하, 어째선지 독고 형님은 지난번에 이걸 자꾸 찍어서 드시더라고. 원래 양념이란 게 있는 건 함께 버무려 먹어야 제맛…….
독고휘는 그 말에 곧바로 정신을 번쩍 차렸다.
뭐? 부어 먹는다고? 그럼 튀김의 맛이 사라지지 않나!
깜짝 놀란 독고휘는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최대한 빠르게 지금의 깨달음을 갈무리하고 저 사악한 손길을 막아야 한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그의 반로환동.
그러나 아무리 서둘러도 반로환동은 그의 마음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크윽…… 안 돼!’
“안 돼!!”
거대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외침 소리에 탕수육 소스를 부으려던 팽소운이 깜짝 놀라 소스를 살짝 흘렸다.
그리고 이내 동굴 안에서 급하게 뛰쳐나오는 독고휘.
“혀…… 형님?”
“부어 먹으면 안 된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독고휘의 겉모습은 노인의 모습에서 중-장년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름은 있지만 깊지 않았고, 흰머리와 검은 머리가 공존했지만 검은 머리의 비율이 조금 더 많은 상태가 된 독고휘.
“혀, 형님…… 그 모습은…….”
“허어…… 무량수불, 무량수불……. 전설상의 반로환동을 직접 보게 되다니…….”
운광과 팽소운은 독고휘의 변한 모습에 놀랐지만, 독고휘는 반로환동 따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다급히 탕수육을 향해 다가갔다.
“아아, 다행이다……. 아직 안 부었구나…….”
독고휘는 안심한 듯 거기에 주저앉았고, 이내 자연스러운 손놀림으로 탕수육 조각을 집어 하나를 입에 넣었다.
“……영감님, 왜 애매하게 젊어지다 마셨어요?”
팽소운과 운광이 보기에는 노년에서 중년으로 변한 것만 해도 충분히 기적이었지만, 영의에게는 반로환동이란 게 겨우 저 정도로 끝나는 건가 싶었다.
“어허, 반로환동이 그리 쉬운 줄 아나! 우리도 처음 보는 거라고!”
“허어…… 노년의 모습에서 저만큼이나 젊어지다니, 못해도 30년은 더 살 것 같구나, 무량수불…….”
운광과 팽소운은 반로환동을 처음 보았기에 저 정도만 해도 성공이라 판단했으나, 입에서 탕수육을 우물거리던 독고휘는 고개를 저었다.
“반로환동? 하다가 중간에 나왔다.”
“그래, 중간에..예?!”
“무, 무량수불…… 무량수부우울……!”
독고휘의 말에 놀라는 팽소운과 운광.
인생에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르는 반로환동의 기회를 그렇게 날려 버렸다고? 대체 왜?
“아니, 왜 중간에 끊은 거요? 그럼 무공도 그만큼 안 늘어났을 거 아니우!”
팽소운이 다그치듯 그렇게 물었으나, 독고휘는 매우 미운 사람을 쳐다보는 눈으로 팽소운을 노려보았다.
“너 때문이다, 너 때문! 안에서 깨달음에 집중하고 있는데 네가 부어 먹는단 소리를 해서 이렇게 달려 나온 것 아니냐! 튀김의 진수는 그 바삭함에 있거늘, 그 바삭함을 스스로 죽여 버리는 행동을 해서 내가 다급히 뛰어나온 거다!”
독고휘의 그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세 명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겨우 그딴 이유로?
“형님…….”
“허어…… 대체 음식이 얼마나 중하길래…….”
“……됐고, 먹자. 그리고 늘 하던 그거 시작해야지?”
“아아, 늘 하던 그거.”
독고휘는 그렇게 말하며 짜장면 그릇을 가져갔고, 이젠 그냥 젓가락도 안 쓰고 허공섭물로 짜장을 섞어 공중에 띄우는 독고휘.
팽소운과 운광은 그걸 바라보며 탄식을 뱉었다.
“허어…… 무공이 한발 나아가긴 했나 봐? 허공섭물을 저런 데에 쓰고.”
“과연 천하제일인답소……. 그보다, 늘 하던 그거라니?”
운광의 질문에 독고휘와 팽소운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고, 이내 친절한 미소를 띠며 운광에게 음식을 권했다.
“자, 자. 이 고기튀김 한번 먹어 봐. 맛이 끝내줘!”
“어, 어어…… 육식은 금하고 있는…….”
운광은 거절하려 했으나 팽소운이 입에다가 탕수육을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젊을 때는 야숙할 때 사슴 잡아먹겠다고 산을 제운종으로 타고 다녔냐! 먹어!”
“우웁……!”
그렇게 입에 억지로 탕수육이 들이밀어진 운광.
그래도 그의 혀는 솔직한지 씹어서 먹기 시작했다.
“오오……!”
“술도 한 잔씩 먹어 보게, 한 잔 먹고 취기만 날리면 향과 맛만 즐길 수 있지 않겠나!”
독고휘도 술잔에 술을 따라서 운광에게 주었고, 운광은 딱 한 잔만이면……이라는 눈빛으로 술잔을 받아 마셨다.
‘후후후후…….’
기존의 고수 둘은 새로운 고수의 영입에 신경을 썼고, 아무것도 모르는 태극검 운광은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던 영의의 시야 한구석에는…….
[새로운 업데이트 감지. 업데이트를 실시합니다.]
……벌써? 그보다, 돌아가야 시작하는 거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