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2)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확인.”
영의는 바이크에 올라타자마자 곧바로 알림 창을 불러왔고, 바로 주문을 확인했다.
지난번처럼 제한 시간이 있을까 봐 아까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던 영의.
[주문인 : 독고휘]
여기까진 나름 안심이었다.
‘남는 게 시간뿐인 어르신들이니까…….’
그러나 그다음 내용이 조금 문제가 있었다.
[배달 물품 : ‘???’, ‘???’, ‘???’, ‘???’]
“……뭔데, 뭔데 이번엔! 이번엔 뭐 어쩌자는 건데!”
영의는 전부 물음표로 표시된 주문을 보고는 공중에서 멈췄다.
그렇게 하늘에 뜬 채로 알림 창을 주시하는 영의.
지난번에야 나름 확정된 물품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부 물음표였다.
“아니…… 뭐, 예능 프로야……? 상대방이 먹고 싶은 걸 맞히고 둘 다 맞혀야 먹는 거냐……?”
음식은 주문했으면서 정작 그 음식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상태.
영의는 당황하면서도 일단 기존의 주문대로 가 보기로 했다.
‘아마…… 짜장에, 탕수육에…… 술 정도겠지? 나머지 하나는 모르겠네.’
그렇게 일단은 지난번에 갔던 그 중국집으로 향하는 영의.
그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주문을 외쳤다.
“짜장 둘…… 아니, 셋에 탕수육 대 자 하나, 고량주 네…… 다섯 병요! ……만두 서비스 돼요?”
느닷없는 주문에 사장은 당황할 법했지만 지난번에도 비슷한 주문을 받은 적 있었고, 또 배달부들은 안 급한 법이 없었기에 이내 차분하게 주문을 받았다.
“자, 여기. 안 늦었지? 만두는 서비스로 줬어.”
불과 5분 만에 준비된 음식들.
영의는 주방장의 실력에 감탄하면서도 곧장 배달용 보온 상자에 음식들을 넣기 시작했다.
일단 술병부터 넣는 영의.
[배달 물품 : ‘???’, ‘???’, 고량주, ‘???’]
지금은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탕수육까지 넣자 변화가 영의의 눈에 들어왔다.
[배달 물품 : ‘???’, 탕수육 (대), 고량주, ‘???’]
“……어?”
보온 상자에 음식을 넣자 배달 물품 부분이 바뀌었고, 영의는 그것을 보며 잠시 행동을 멈췄다.
“……설마.”
보온 상자에서 탕수육을 꺼내는 영의.
그러자 알림 창은 다시 바뀌었다.
[배달 물품 : ‘???’, ‘???’, 고량주, ‘???’]
“……정답이면, 표시가 되는 건가…….”
영의는 곧바로 보온 상자에 모든 음식을 넣었고, 그러자 알림 창이 변했다.
[배달 물품 : ‘???’, 탕수육 (대), 고량주, ‘???’]
“……뭐야? 대체! 짜장면이 아닌가?!”
영의는 그렇게 혼란스러워져 일단 휴대폰을 꺼내려 했다.
중식에 대해서 검색하려 휴대폰을 꺼낼 때, 그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지만 까먹었던 마정석 하나가 보온 상자에 떨어졌고, 그때 또다시 알림 창이 바뀌었다.
[배달 물품 : ‘???’, 탕수육 (대), 고량주, 마정석]
“…….”
진짜로? 진심? 저걸 배달해? 아니, 그…… 먹으려는 건가? 아니지, 뭐 흡수라거나…… 그걸로 뭔가를 만든다거나…… 하겠지?
영의는 일단 당황스러우면서도 애초에 이렇게 차원을 막 넘어 다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당장 무림인한테 짜장면을 배달하고, 대마도사한테 피자를 배달하는 시점부터 뭐가 더 이상해지겠어? 막 벌레를 먹는 사람처럼 마정석이 취향일 수도?’
영의는 그렇게 개인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다른 대용은 없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시킨 짜장면은 간짜장이 아닌 그냥 짜장으로, 그냥 두면 면이 퍼질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영의는 일단 음식들을 챙겨 독고휘에게로 향했다.
‘……그래도, 4개 중에 3개는 만족시켰잖아…….’
독고휘의 거처. 세 노인들은 서로 술을 마시며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으하하하, 이렇게 오랜만에 모이니 참으로 기분이 좋소! 하하하!”
“그래…… 기분이 좋긴 하지! 네가 똑같은 말을 계속하지만 않는다면!”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술에 취한 듯 얼굴이 붉어진 운광.
“크히히, 내가 언제 그랬소? 내가 언제?”
그리고 독고휘와 팽소운은 그런 그를 보며 옛 추억을 떠올렸다.
“저 모습 간만이구만…….”
“크으…… 처음에 장난으로 물이라고 속여서 먹였을 때 재밌었는데……. 안 그렇수, 형님?”
“거…… 둘이 왜 나 빼고 얘기하시오? 그보다, 이렇게 오랜만에 모이니 참으로 기분이 좋소! 하하하!”
술에 매우 약한 듯, 금방 취해서 주사를 부리는 운광.
그의 주사는 했던 행동을 또 하는 것이었다.
술이 아까운지 홀짝이는 팽소운과 독고휘와 달리 그는 술잔을 보자 일단 가볍게 한잔하고, 그다음에 그 맛에 한잔을 더 해 버렸다가 결국 취했다.
“어…… 그러니까, 우리가 말이야…… 딸꾹! 어…… 뭐 때문에 여기 있게 됐다고? 아아, 그래 옛날 얘기지. 오랜만에 모이니까 기분이 참 좋소…….”
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중원의 술에 비해 도수가 제법 되는 고량주였기에 운광은 더 빠르게 취했다.
“……그냥 부르지 말 걸 그랬나?”
“내버려 두시우, 형님. 뭐…… 처음에만 이렇지, 시간 좀 지나면 금방 깨잖수?”
“……그건 그랬지.”
운광은 그들이 젊었을 적 협행……이라고 말하고 그냥 유람을 다닐 때도 저녁 식사 반주에 가장 먼저 술에 취했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자기 전쯤 술을 깨고는 밤새 후회했다.
그러고는 다음 날 저녁 식사 때 또 술을 마시던 운광이었기에 팽소운과 독고휘는 운광을 그냥 놔두기로 했다.
“으아- 맛 좋다. 한 잔 더 해야지…….”
그때 운광이 술병으로 손을 가져갔고, 팽소운이 그걸 제지하려 했지만 독고휘가 눈빛으로 말렸다.
-아니, 형님! 저놈이 술 다 먹게 생겼소! 혼자 세 잔째 먹고 있는 거 안 보이시우??
-기다려 봐라, 옛날에도 백주 한 병을 못 비우던 녀석 아니냐. 이 정도 술이면 금방 먹고 뻗겠지.
그렇게 전음으로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운광이 뻗기를 기다렸으나…….
“어우, 맛 좋다……. 그보다 휘 형님, 이런 술은 어디서 구하셨소?”
……도통 멈추지를 않았다. 계속 술잔에 술을 따라서 먹는 운광.
술병에 남은 술은 이제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대체 뭐요, 형님? 안 뻗는데?
-……저놈 우리가 안 볼 때 매일 술 먹었나?
그리고 또다시 운광이 술병에 손을 뻗을 때, 팽소운이 급하게 그 손을 제지했다.
“그만, 그만. 혼자 다 먹기냐? 형님도 있고, 나도 있는데, 너 혼자 다 처먹을 거냐고!”
팽소운은 운광이 허락 없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에 화를 내기보다는 자기가 먹을 술이 줄어드는 것에 화를 내는 타입이었다.
“……딸꾹.”
운광은 팽소운의 말에 잠깐 멈추고 술병에서 손을 뗐으나, 이내 다시 술병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니, 왜 또 손대고 지랄이야! 한 번만 더 해 봐! 내가 아주 그냥……!”
“내가……? 술병에 손을 대? 나 두 잔밖에 안 마셨는데……?”
운광의 주사인 했던 행동을 반복하는 것.
다시 말해 방금 전 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이 술을 두 잔밖에 안 마셨다고 주장한 운광은 다시 술병에 손을 뻗었고, 팽소운이 손을 쳐 냈다.
“안 된다. 그만 마셔라.”
운광은 팽소운의 그 말에 갑자기 울상을 지었다.
“마실…… 거야…….”
“응?”
“나도…… 나도 마실 거야……!”
운광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술병으로 손을 뻗었고, 팽소운은 다급히 그 손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운광의 손을 잡아채자마자 팽소운은 그 자리에서 공중에 떠올라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쿠당-
“커헉! 으윽…….”
“……말코 놈, 무공이 더 발전했구나……!”
독고휘가 감탄하며 운광을 보았고, 팽소운은 빠르게 몸을 일으켜 운광에게 달려들었다.
“이놈이……!”
팽소운은 열심히 손을 놀리며 운광을 붙잡으려 했지만, 운광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 모든 호흡 하나하나에 태극의 묘리가 깃들어 있었다.
방금 전 팽소운을 던져 버린 것도 그것에서 비롯되었다.
“으아아악! 태극 쓰지 말라고, 비겁한 놈아!”
“딸꾹, 나 태극검인데…… 태극 쓰지 마?”
“그래, 쓰지 마!”
“아라써, 아라써. 안 쓸게. 대신, 너도 손 쓰듸 마. 태극검에서 태극을 빼며는…… 권왕은 권을 빼야지이…….”
술병을 들고 팽소운을 가리키며 반쯤 혀가 꼬인 발음을 하는 운광.
독고휘는 둘의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그도 술이 좋긴 했지만, 이걸 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너도 태극 없으면 그냥 검수 놈이지! 내 각법을 보여 주마!”
굳이 그럴 필요 없음에도 양손을 뒷짐 지고 운광에게 다가가는 팽소운.
그가 통나무 같은 다리를 휘둘러 운광에게 공격을 할 때, 운광은 또다시 그 다리를 받아 넘겨 던져 버렸다.
“아오, 태극 쓰지 말라고!”
“나 태극 안 써써……. 거짓말하지 마……. 딸꾹!”
운광은 이젠 아예 술병을 입에 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에 더 화가 치밀어 오른 팽소운이 운광에게 달려들려던 그때, 독고휘가 움직였다.
독고휘는 이쯤 하면 됐다는 듯, 뇌기를 일으키며 빠르게 운광의 뒤로 다가가 그의 등에 손을 대고 취기를 몰아냈다.
“……왜 술 마시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소? 또, 휘 형님은 왜 내 뒤에 계시고?”
“역시, 명불허전이구만……?”
팽소운은 짜증을 풀고 화를 내고는 싶은데 지금 운광에게 화를 내 봤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속으로 분을 삭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술 취한 놈이 문제는 다 일으켜 놨는데 술 깬 놈한테 뭐라 해 봤자 뭔 의미가 있겠나.
그리고 운광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없어 어리둥절해졌다.
“……설마 내가 또 취했소?”
“그래, 이 무당취선 놈아……. 개방주보다 술 먹고 무공 더 잘 쓰는 놈아……. 넌 진짜 거지로 태어났어야 했어. 그랬으면 개방의 홍복이었을 텐데……. 이 술쟁이 말코 놈아…….”
팽소운은 감정이 가득 담긴 말을 운광에게 쏟아 내었고, 운광은 손에 들린 술병을 보고 탄식했다.
“아아…… 또 저지르고 말았구나, 무량수불…… 무량수불…….”
“그래, 이 술쟁이 도사 놈아…… 원시천존은 너 이렇게 술 먹고 다니는 거 아시냐?”
팽소운은 까칠하게 말했다. 어찌 되었건, 술은 운광의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허어…… 왜 여기서 원시천존을 언급하고 그러나……!”
“……그보다, 술…… 남긴 했나?”
팽소운이 계속 쏘아붙일 때, 연장자다운 태도로 침착하게 둘을 지켜보던 독고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남았겠지……? 싶은 마음이었지만, 운광은 손에 들린 술병을 들어 보이더니 말했다.
“어…… 없소만……?”
파지직-
파직-
쿠르르릉!
“그래…… 다 처먹었다 이거지……? 무공도 다들 늘어난 것 같으니, 서열 확립 한번 다시 해 보자고.”
“어…… 혀, 형님?”
“아니지, 이젠 너희가 형님이 될 수도 있잖아? 다들 옛날처럼 한번 해보자고!”
독고휘의 몸에서 사방팔방으로 엄청난 뇌전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참으로 연장자답고 강자의 여유로운 자세를 보여 주는 독고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