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1)
영의는 지금 집 안에서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사고를 당했으면 말을 했어야지, 그냥 크게 안 다쳤다고 슥 넘어가? 넌 부모님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하길래…….”
체육관에서 지연을 제자로 맞이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한 영의.
독고휘에게서 배운 뇌격공과 팽소운에게서 배운 몇 기술에 대해선 그냥 생각해 낸 것이라고 하거나 어디서 봤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몸 안에 뇌기가 생기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차마 뭐라 설명할 도리가 없었기에 번개를 맞고 살아났더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버지, 정권은 영의에게 물어보았다.
“……그거, 번개…… 맞을 만하더냐?”
과연 무인답달까, 아니면 아들이 안 죽었으니 됐다고 생각하는 걸까.
정권은 번개에 대해서만 궁금해했고, 나머지에 대해선 금방 납득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도 설명해야 했고, 영의는 어쩔 수 없이 지연을 화연과 수연에게 맡기고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래? 다행이구나. 네가 범죄자가 아니라니.”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아버지처럼 쿨하게 넘기신 어머니.
아니, 오히려 들으려고도 안 하셨다.
그냥 제자로 맞이하면 된 거지, 뭐가 더 필요한 거냐며 이야기를 그냥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말실수만 아니었다면…….
아버지가 눈치 없게 번개를 맞고 살았다고 말하자 갑자기 태도가 급변하셨다.
“……여기 와서 앉아 봐라.”
마법의 말, 어머니의 ‘와서 앉아 보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은 영의.
그는 그렇게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물론 네가 독립해 나가서 살고 있는 건 알지만,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는 게 있는데…….”
여기서 뭔가를 더 말해 봤자 상황이 나아질 리 없다는 걸 아는 영의였기에 그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 몸에 흉터라도 남거나 하진 않았지?”
지금이 이 상황을 끝낼 타이밍이라고 직감한 영의.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네, 의사 선생님이 실력이 좋으셔서……. 그리고, 번개 맞고 더 건강해진 것도 같고…….”
영의의 말에 엄마 희정은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그래, 너도 어쩔 수 없는 최씨 집안이구나. 더 강해지기만 하면 뭔 짓을 당해도 신경을 안 쓰니…….”
그렇게 상황 종료를 예감한 영의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됐어, 이제 지연이한테 기술 몇 개 전수해 주고 배달 가면 되겠다!’
그의 시야 한구석에는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배달 알림이 있었다.
그렇게 이제 슬슬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영의.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지 않으려 하셨다.
“아무튼, 오늘 온 제자라는 여자애 말인데…….”
그러나 그때 끼어드는 아버지.
“영의야, 그 번개 말인데…… 나도 맞으면 너처럼 될까?”
희정은 영의에게 여자애를 어릴 적 수련할 때처럼 굴리지 말라고 충고하려 했으나 아버지 정권의 눈치 없는 말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버-언개? 번개? 이 사람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나 과부 만들려고 작정했어? 사람이 번개 맞고 살 거라고 생각해?”
“아, 아니…… 영의는 살았잖…….”
“영의는 각성자였잖아! 그리고, 바이크랑 같이 맞아서 바이크는 터졌다며! 거의 기적처럼 산 건데 당신은 그것도 모르고 애처럼……!”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엄청난 화를 받아 내게 된 상황.
영의는 지금이 기회라고 직감해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저, 그럼 전 지연이 가르치러…….”
“그래, 가 봐.”
“네!”
영의가 일어서서 나가려 하자 급하게 영의를 바라보는 정권.
“여, 영의야……?”
“…….”
영의는 내심 구해 주고 싶었으나, 방금 전 아버지의 눈치 없는 말실수로 인해 잔소리를 듣게 된 것을 떠올렸다.
‘……인과응보입니다, 아버지.’
“당신은 내 말 들어야지, 영의를 왜 불러요!”
영의는 그렇게 곧바로 밖으로 탈출했고, 영의를 바라보는 정권의 눈에는 살려 달란 신호가 가득했으나 영의는 애써 못 본 척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위기를 넘긴 영의. 그는 다시 체육관으로 향했고, 거기에선 화연과 지연이 함께 수련하고 있었다.
“여기서…… 이렇게.”
화연의 움직임을 지연이 따라 하면서 수련하는 둘.
“이렇게요……?”
“그래, 그렇게 몸을 빼면서 기습과 동시에 능력을 쏘는 거지. 생각지도 못한 기습이라서 지능적인 괴수한테 더 도움이 돼.”
적과 대치하는 듯 검을 쥔 양손을 샌드백 앞에 두고 있다가 이내 검에서 양쪽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왼손은 기습하듯 빠르게 얼음 칼날을 생성해 내지르며 오른손에서 작은 얼음덩이를 앞으로 쏘는 화연.
“아하, 이렇게 하는 거군요.”
방금 전은 천천히 시범에 가깝게 가르쳤으나, 지금 지연이 보여 주는 몸놀림은 상당한 속도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검이 없었으나 그녀의 손에서 방출되는 전격은 더 위협적으로 보였다.
“……잘 가르치네, 둘이. 나는 빠져 줘야 하나?”
영의의 말에 동시에 뒤를 돌아보는 둘.
둘은 영의를 보자 표정이 밝아졌다.
“선배!”
“선생님!”
둘에게 다가가며 웃는 영의.
그는 아까 미처 다 묻지 못한 것을 물으려 했다.
“그래, 그래. 근데 화연이 너는 왜 여기 있냐?”
“어, 그게…….”
옆에 지연이 있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지연은 나름 믿을 만했기에 이내 말을 꺼내기로 한 화연.
“그, 저 일주일 동안 휴가인데…… 시간 있으신가 해서요.”
얼핏 듣기에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지만, 영의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요즘 일이 많아서……. 얘도 가르쳐야 하고, 또 수연이도 봐줘야 해. 저녁쯤에는 배달 가야 하고…….”
“……아, 네에…….”
영의의 대답에 실망하는 화연. 그러나 영의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주말에는 될걸?”
“네?”
“주말은 시간 된다고. 그날은 나 쉬는 날이거든.”
영의도 나름의 휴일은 필요로 했기에 계약상 일주일 중 하루는 배달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지금까진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계속 배달을 뛰었지만, 수연의 등록금은 이미 마련했고 경매에 맡겨 둔 금화도 있었기에 이제는 여유가 있었다.
“그, 그럼 주말에 만나는 걸로 알게요……. 그럼 전 이만!”
화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갔고, 화연이 밖으로 나가자 지연은 눈에 띄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조금만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그래. 살펴 가!”
영의는 그렇게 화연을 보내 주고는 지연을 돌아보았다.
영의가 자신을 돌아보자 금방 정신을 차리고 표정을 관리하는 지연.
“그래…… 지난번에 뇌창 가르쳐 주고 끝냈지?”
“네.”
“그럼 이젠 방어 기술인데…….”
지연에게 방탄뇌격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 영의.
그는 이미 몸 안에 가득 쌓인 뇌기를 가볍게 방출하며 시범을 보였다.
“이게 방탄뇌격이라고…… 방어 쪽 기술인데……. 표정이 왜 그래?”
뭔가 뇌창 때와는 다르게 약간 신기해하거나 감탄하는 기색이 안 보이는 지연.
“아, 아뇨…… 전에 영상에서 본 적이 있어서…….”
“영상……?”
“잠깐만요…….”
지연은 자신의 휴대폰을 놓아둔 곳으로 가서 휴대폰을 가져와 동영상 사이트를 열어 보여 주었다.
참고로, 전격계 각성자의 능력으로 인해 고장 났을 경우, AS를 해 주지 않았다.
한 남자가 실험 가운 같은 걸 입고 이런저런 것을 하는 영상이었는데, 남자는 전격계 각성자인 듯 손에서 작은 스파크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건 뭐야?”
“모르세요? 그, 과학 교사 출신인데 전격계 능력을 각성해서…… 그걸로 인강 찍는 분이에요. 그리고, 전격계 능력자들도 이분 영상 보고 기술 몇 개 따오고…….”
과학 교사 출신이라 전기를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잘 아는 인물이었다.
그 영상에서 교사는 팔 주변을 타고 전기를 흐르게 해서 전자기유도를 보여 주고는, 그것으로 자신의 몸을 전자석으로 만들었다.
“오…….”
그렇게 남자의 영상을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한 영의.
남자는 간단한 실험들을 여러 가지 보여 주었고, 그리 등급이 높진 않은지 높은 출력을 요구하는 기술은 설명만 하고 넘어갔지만 어지간한 건 다 직접 몸으로 보여 주었다.
“이렇게 강의하면 돈은 잘 벌겠네.”
“네, 물리 부분에서만 특급 강사예요.”
이윽고 영상 마지막 부분에서, 남자는 눈앞에 배터리에 연결된 전구를 놔두고 실험을 했다.
-자, 이게 EMP라는 겁니다! 보세요!
반쯤 재미로 하는 거라는 듯, 큰 부가 설명 없이 그냥 전구 앞에서 박수를 치는 남자.
그리고 남자의 손에서 잠깐 스파크가 튀더니, 전구가 꺼졌다.
-보셨죠? 이게 EMP라고, 전기를 말 그대로 싹 벗겨 내는 겁니다! 대신 전자 제품이 많은 지역에서 이걸 함부로 남용하면 재물 손괴죄로 잡혀가니까 따라 하진 마세요! 그럼 구독과 좋아요…….
영상을 종료하는 지연. 영의는 방금 본 그 EMP를 보며 방금 전 자신이 사용한 방탄뇌격과 약간 비슷함을 느꼈다.
“……방탄뇌격이랑 비슷한데?”
“그렇죠? 물론, 선생님은 그냥 파동을 쏴 내고 끝내는 게 아니라 뭔가 더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전자기장을 뿜어내는 건 원리가 같으니까…….”
지연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과학적인 설명을 시작했고, 영의는 그쪽으론 영 재능이 없었기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니까, 전격의 열기를 이용해서 공기를 급가열시킨 뒤에 그 공기 팽창으로 튕겨 내는…….”
“잠깐, 잠깐…… 이론은 됐고…… 근데, 난 이론 없이도 나름 잘했는데…… 그건 뭐지?”
당연히 과학 지식이 현대만큼 발달하지 않은 중원의 무학이었기에 되니까 한다-라는 느낌으로 개발한 독고휘의 기술.
영의는 그걸 그대로 몸으로 배웠기 때문에 원리를 몰라도 잘만 썼다.
“어…… 음…… 선생님이 천재라서요……?”
“……그래, 아마도 그런 거겠지…….”
그렇게 영의는 지연에게 기술을 가르쳐 보려고 했으나, 아직까지 몸의 밸런스가 신경 쓰였기에 지연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아직은 몸이 완전하질 않아. 나쁘진 않은데, 기술을 완전히 펼치려면 시간이 필요하거나 몸에 무리가 갈 거야. 일단…… 몸부터 만들자. 기술은 일단 배우기만 해 두고, 나중에 연습하자.”
“네, 선생님!”
지연은 영의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이니 그가 시키는 대로 배우는 게 더 좋으리라.
“그럼 일단 스트레칭부터 하고, 운동 시작하자.”
“네!”
그렇게 오전에 시작된 육체 훈련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영의의 집에서 밥까지 얻어먹은 지연은 오후 늦은 시각, 태양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할 때 바닥에 쓰러졌다.
“더…… 더 못 하겠어요…… 선생님…….”
“흠, 체력은 이 정도인가. 대충…… 한 달 정도는 훈련해야겠네.”
“한 달……요?”
지연은 바닥에 쓰러져 헐떡거리며 영의를 올려다보았고, 영의는 그 많은 훈련을 함께했음에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한 달도 빠르게 친 거야. 그리고 내가 말한 것 잊지 말고.”
“고기 많이, 물 많이…… 또 가능한 한 마력은 덜 쓰고……?”
“그래. 일단 이렇게 쉬다가, 좀 괜찮아지면 집에 가. 나는 일하러 가 봐야 돼.”
“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그럼 쉬어!”
“네…….”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지연을 두고 체육관을 나서는 영의.
그는 바이크에 올라타기 전에 동생 수연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다.
지연을 좀 챙겨 주고 보내라고.
그렇게 뒤처리도 깔끔하게 한 영의는 바이크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에겐 가야 할 배달 주문이 있었기에.
한편, 대산의 한 동굴. 독고휘의 거처.
“……형님, 형님의 생각이 틀린 것 같수…….”
“……그런가 보다.”
“그러니까,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니까! 우리 간만에 옛이야기나 하자고 모인 것 아니었소?”
정파의 최고수 셋은 그렇게 동굴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 안 오지……?? 이게 아닌가?
-아씨…… 땡중을 데려왔어야 했나…….
-이 둘은 왜 나를 불러 놓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건지…….
“으흠…… 뭐,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모였으니 옛이야기나 해 볼까?”
“형님, 그냥 하시게? 술이라도 먹으면서 하죠.”
팽소운은 그렇게 말하며 벽에 있는 초록색 병을 가리켰고, 독고휘는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 하나다. 혹시 모르니 아껴야 하지 않을까?”
“아니, 거 사람을 불러 놓고 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요! 그리고, 대체 뭐 누굴 기다리길래 이러는 겐가! 이럴 거면 난 가겠네!”
참다못한 운광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팽소운이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아니, 형님. 그냥 푸시죠! 얘라도 달래 봐야지! 거, 옛 의리가 있잖소!”
팽소운의 말에 독고휘는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어차피 올 거였으면 지난번처럼 진작 왔을 것을.
이미 운광이 와도 안 오는 것을 보니 틀린 것 같았다.
“그래, 그래. 먹자. 먹어! 이 녀석아!”
독고휘는 그렇게 말하며 안의 벽에 기대어진 초록 병을 꺼내 왔고, 운광도 술이란 말에 내심 마음이 혹했는지 가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크흠, 커험…….”
“역시 말코야. 술이라면 빠지질 않지.”
“어허! 도인에게 그 무슨…….”
“그래서, 안 마시려고?”
“……주면 먹지.”
영의가 늦은 사유에 대해서 모르는 그들은 그렇게 쓸쓸하게 술을 먹으며 옛 추억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술이 한 병밖에 없으니 아끼면서 홀짝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