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23)
아침이 밝고, 영의는 침대에서 눈을 뜨며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효과 죽이네.”
오른손을 쥐었다 펴 보며 힘을 확인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영의.
그의 왼팔에는 어제 일라이저에게서 받아 온 마력 주입기가 달려 있었다.
지난밤, 자기 전에 마력 주입기를 시험해 보기 위해 소형 뇌 속성 마정석을 자신에게 주입시킨 영의.
어젯밤과 지금, 영의는 자신의 몸이 달라진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힘이 넘치는 기분이야. 근데, 이렇게 주입해도…….’
영의는 자신의 몸에 넘치는 이 힘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 것을 직감했다.
물론, 어느 정도는 그의 몸 자체에 제대로 흡수되었지만…….
“……대부분이 그냥 순환에 사용됐어.”
영의의 몸 구석구석에 조금씩 축적되어 뇌기의 생성에 더욱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마력이 그저 그의 신체 내부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현 사용자의 상태 : 98%]
“별로 이득은 아닌 건가……. 뭐, 나만 이런 걸지도…….”
나중에 독고휘에게 찾아가거나 지연에게 실험해 보기로 하고, 영의는 팔에 붙여 둔 마력 주입기를 떼어 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영의.
[병찬 : 행님 이번 주말에 시간 되시면…….]
[신화연(약한후배) : 혹시 다음 주에, 시간 있나요……?]
[수연 : 다음 달에 입학인데 보러 오는 거 까먹지 말…….]
“많이도 보냈다…….”
휴대폰에 온 수많은 메신저 알림을 대충 옆으로 넘겨서 무시하는 영의.
어차피 나중에 확인할 것이기에 일단은 옆으로 넘겼다.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며 부엌으로 향하는 영의. 그는 우유를 꺼내 그대로 마시며 오늘의 스케줄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보자, 오늘 할 일을…….”
영의는 오늘의 일정을 확인하며 휴대폰에 할 일을 작성했고, 네 가지가 나왔다.
[1. 배달 확인하기]
[2. 금화 처분하기]
[3. 마정석 확보]
[4. 수련하기]
물론 영의도 배달 업무를 겸임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걸 완벽히 할 순 없었다.
그러나 시간을 절약할 방법은 있었다.
‘2, 3을 동시에 하면 되겠지. 메모 등록.’
[메모를 화면에 표시합니다.]
이미 자신의 알림 시스템은 휴대폰과 동기화가 되었기에, 휴대폰에 작성한 메모를 자신의 시야 한구석에 표시할 수 있었다.
“……그럼, 대충 됐네.”
이제 대충 정리됐다고 생각한 영의는 샤워를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자신의 자취방을 나섰다.
“경로 설정, 옥션으로.”
바이크에 올라타며 목적지를 말하는 영의.
이내 그의 시야에는 지도가 표시되었고, 3개의 붉은 점이 나타났다.
[옥션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3건)]
영의는 그중 하나를 고른다는 생각을 했고, 이내 그의 생각을 읽은 알림 창이 경로를 설정해 주었다.
“가 보자고.”
[자동 주행을 시작합니다.]
영의는 그렇게 각성자들의 거래처, 일명 옥션으로 향하게 되었다.
용산 옥션.
예전에는 컴퓨터 부품을 파는 전자 제품 가게들이 수없이 들어차 있었지만, 대외적 이미지의 실추와 훨씬 더 큰 자본인 각성자 물품 시장이 들어왔다.
그렇게 일명 용던으로도 유명했던 전자 제품 시장은 한쪽으로 밀려나고, 이제 용산이라 하면 각성자들의 거래 장소로 들어선, 일명 옥션이라 불리는 곳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그 이름 탓에 동명의 다른 곳의 주가가 조금 올랐지만, 영의의 볼일은 그게 아니었다.
바이크를 세워 두고 주차 표를 끊은 뒤 건물 안으로 바로 들어서는 영의.
문을 지나자 수없이 많은 점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정석 사고팝니다.
-보조 계열 인챈트 장인. 품질 보증.
-속성 마정석 고가 매입.
이러한 내용의 간판들이 수없이 들어선 옥션.
그리고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각성자들과 각성자들의 물건을 구경하러 온 비각성자들이 몰려다녔다.
“……일단, 금화 처분부터 해야겠지.”
지금 그가 있는 곳은 마정석 계열의 1층으로, 게이트 내부에서 나온 산물을 팔거나 사는 곳은 2층에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그곳은 나름 깔끔했던 1층과 다르게 좀…… 특이했다.
-소규모 괴수 부산물 사고팝니다.
-중형 괴수 부산물 팝니다.
-기타 부산물 사고팝니다.
가게별로 앞에 장식 용도인지, 아니면 정말 팔 물건으로 전시해 둔 것인지 괴수의 사체 부분을 걸어 둔 가게들.
영의는 그 가게들을 지나쳐 나름 앞이 깔끔한 가게로 들어갔다.
딸랑-
손님을 알리는 문의 작은 종이 울리자, 가게 안에서 TV를 보다 고개를 돌리는 사장.
그는 영의를 보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살 거야? 아니면, 팔 거야?”
손님에게 조금 불친절한 듯한 사장.
그는 영의가 그저 구경만 하다 갈 어중이떠중이인 것으로 생각했다.
“……물건, 팔러 왔는데요.”
영의가 손에 든 작은 꾸러미를 들어 올리자 손님이라고 판단한 가게 사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오? 어서 오세요! 그래, 우리 젊고 잘생긴 총각은 뭘 팔러 오셨나?”
“이런 건데, 이것도 제대로 쳐주나요?”
꾸러미에서 금화를 꺼내 드는 영의. 사장은 금화의 찬란한 광채를 보고 눈이 커졌다.
“이…… 이런 건, 금은방을 가는 게…….”
“아, 이거도 게이트에서 나온 거라서요. 그냥 금값보다는 더 받지 않을까 싶어서…….”
“크흠, 저기…… 잠깐 살펴봐도 되겠나?”
“네, 그러시죠.”
영의의 허가가 떨어지자 감정용으로 추정되는 한 안경을 집어 들고 금화를 바라보는 사장.
그는 금화의 세공 상태와 빛깔을 살피더니, 이내 작은 저울을 꺼내 들고 무게까지 달아 보기 시작했다.
“흐음…… 순수 금은 아닌 것 같고, 그래도 많이 섞이긴 했네. 근데…… 금화에 묘하게 마력이 있어. 확실히 게이트에서 나온 산물은 맞는 것 같구만.”
감정 결과를 말해 주는 가게의 사장. 영의는 나름 괜찮은 가격을 받을 것 같아 사장에게 물어보았다.
“얼마 정도 받을 수 있을까요?”
“음…… 글쎄, 기본적으로 이런 금화는 예술품 같은 가치도 있어서 못해도 하나에 1,800? 그 정도 나올 건데, 마력이 있는 게이트 부산물이다 보니까 연구 팀 있는 대학이나, 아니면 수집 취미 있는 부자들이 산다고 하면…… 3,000까지도 불러 볼 수 있겠지.”
사장은 나름의 감정 결과를 착실하게 말해 주었다.
사실 후려쳐 볼 법도 하지만, 각성자들 상대로 잘못 사기 쳤다가 걸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장사를 접어야 하기에 어지간해선 그들도 나름 정직하게 장사를 했다.
“……사실, 한 수십 개는 있는데…….”
꾸러미를 뒤집어 금화를 쏟아 내는 영의.
사장은 쏟아져 내리는 황금빛의 물결을 보고 아까보다 눈이 배는 더 커진 듯했다.
“어…… 어어어……!”
“사장님, 이거 다…… 매입되나요?”
영의의 말에 정신을 바짝 차린 사장. 그는 지금 눈앞에 찾아온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정신 차리자, 박철관! 넌 장사만 17년을 했어! 냉정하게 판단해!’
사장, 박철관은 모두 자신이 꿀꺽하고 싶었지만, 이미 3천만 원을 불러 버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매입하고 싶어도, 가게에 그만한 돈이 없어. 5개까진 내가 3천을 주고 사지. 그리고, 나머지는 경매로 넘겨보는 게 어떤가?”
철관은 크게 욕심냈다간 문제가 생기는 걸 알았기에 자신이 감당할 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는 더 큰 곳에 넘겨 버리기로 했다.
이 건물 위층의 경매에 출품한다면 값이 4천? 아니, 잘하면 6천까지도 오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3천에 산 이 금화를 팔거나 좀 더 묵혀 두었다가 팔면 더 이득을 볼 것이란 계산이었다.
“음…… 경매 등록은 개인이 하기 힘들죠?”
“……뭐, 그렇지. 각성자들은 개인 등록해서 기다리느니, 그냥 가게에 팔아넘기고…… 보통은 경매에 출품할 정도로 좋은 물건들은 길드 차원에서 잘 나오기 때문에 길드에서 전담해서 팔지.”
영의는 사장의 말에 잠시 고민이 되었다.
지금 돈이 좀 필요하긴 해도, 굳이 기다림을 필요로 해야 하나? 다른 가게를 찾아가서 몇 개씩 빠르게 팔고 털어 버릴까?
영의가 고민을 하기 시작하자 눈치 빠른 철관은 영의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챘다.
‘저 눈빛은…… 귀찮아서 대충 처분하고 나가려는 사람의 눈빛이다!’
만약 금화가 다른 곳에 퍼져 버린다면 자신이 매입하는 5개의 가치가 변동될 수 있었기에, 철관은 눈치 빠르게 영의에게 말을 붙였다.
“저기, 자네만 괜찮으면 내가 수익의 1%…… 아니, 0.5%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대리로 해 줄 수 있는데, 어떤가?”
“0.5%라…….”
철관의 말에 영의는 계산을 시작했다.
‘개당 5천…… 아니, 3천에 팔려도 7억 5천…… 거기서 1퍼센트가 7,500만 원…… 그 반이 3,750만 원이니까…….’
바이크 하나 값을 훌쩍 뛰어넘지만 영의는 다른 가게에서도 이 정도 가격을 받을지도 의문이었고, 중요한 건 금화가 아니었기에 수락했다.
“네, 뭐. 그러죠.”
“그래. 그럼 계약서를 쓰지.”
카운터 아래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는 철관.
종종 외상이나 대리 구매 등을 맡기는 손님들이 있었기에 계약서를 쓰는 버릇이 있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십시오! 하하!”
이제 금화도 처분했고, 당장의 자금도 얻었기에 영의는 1층으로 다시 내려갔고, 마정석을 취급하는 가게에서 선반에 종류별로 담긴 마정석들을 보며 직원에게 말했다.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마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대사를 하며…….
“네, 2억 8천만 원입니다.”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나, 생각보다 더 많이 나온 금액에 영의는 급격히 손가락 방향을 수정했다.
“……그럼 여기까지만으로.”
그렇게 결제를 마치고 옥션 밖으로 나서는 영의.
그의 손에 들린 가방에는 다양한 크기의 마정석들이 들어차 있었다.
“흠, 이게 그 플렉스하는 기분인가?”
물론 거의 다 써 버렸지만, 영의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쓴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새로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응?”
잠깐 동안 돈 많던 자신의 모습에 감탄하던 영의. 그는 시야 구석에 알림이 뜨자 곧바로 그것을 확인했다.
[수연 : 오빠! 집에 어떤 여자애 왔는데 누구야 대체?]
[어머니 : 난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뭐야 대체?”
영의는 혼란스러워져서 자신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고, 오늘 아침에 그가 확인하지 못한 메신저의 내용을 보았다.
동생이 보냈던 내용 밑에 깔린, 어제 새벽에 온 메시지.
[전지연 : 선생님! 오늘 오전에 기술 배우러 전에 알려 주신 주소로 찾아갈게요!]
“……아.”
분명히 그가 그의 입으로 말했다. 기술 배우고 싶으면 체육관으로 오라고. 근데, 그다음 날 바로 찾아올 줄은 몰랐지…….
영의는 일단 부모님께 뭐라고 말해야 하나 고민하며 빠르게 집을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