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21)
“정말 그거면 되겠나? 자네는 욕심이 없는 인물이로군.”
일라이저는 바이크를 공중에 띄우고 떠날 준비를 하는 영의를 보며 말했다.
이유는 모르지만, 뭔가 저 친구에게 더 챙겨 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글쎄요, 나중엔 더 욕심이 넘칠지도 모르죠.”
영의의 재킷 주머니를 가득 채운 속성 마정석의 가격을 생각해 보면 금화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였지만, 그가 얻은 이득은 마정석 따위보다 더 값진 물건이었다.
“하하하, 솔직해서 좋군. 나도 어지간하면 적당한 욕심은 눈감아 주겠네. 어떻게 인간으로 태어나서 욕심 하나 없이 살다 가겠나?”
“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게!”
영의는 그렇게 작별 인사를 하며 날아올라 사라졌고, 일라이저는 마력의 파장을 추적해 보려다 이내 그만두었다.
무작정 호의만 보낸 상대도 아니고, 크게 수상한 낌새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귀한 전마석을 주고 간 상대인데 괜히 뒷조사를 해 보려다가 손해를 볼 수도 있었다.
“흠, 흠…… 이제 못다 한 연구를 할 수 있겠군.”
일라이저는 100의 이득이 눈앞에 있어도 그 아래 1의 손해가 있다면 70을 희생해서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성격이었다.
물론, 마법적 성취가 달려 있다면 1의 이득에 100의 손해라도 강행했겠지만.
그렇게 일라이저와의 주문 거래를 마치고 복귀하는 영의. 그의 시야에는 알림 창이 이번의 거래 결과를 알려 주었다.
[배달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 : (뇌)마정석(소) - 12개, (뇌)마정석(중) - 3개, 아리안델 공통 금화 - 30개, 마력 주입기(표준 사양) - 1개]
[보상 수령 완료! 첫 주문 혜택이 끝났습니다. 다음부터는 보상이 축소됩니다.]
영의는 처음에 자신의 보온 가방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마정석을 요구하려 했으나, 이내 문득 처분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마정석을 다 갖다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흡수해서 쓰자니 장비를 못 구해…….’
실제 각성자들의 스펙 업이나 미각성자들의 각성을 위해 사용하는 마력 주입 기기는 MRI 기계처럼 크고, 사람이 직접 들어가야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영의가 마련해서 사용하기에는 매우 큰 어려움이 따랐다.
심지어, 의료 기기에 가까운 취급이었기에 바이크처럼 그냥 돈 있다고 살 물건도 아니었고.
그래서 영의는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다.
마법사라는 게 있고, 속성 마정석이 흔하다면 마력 주입기도 하나쯤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일라이저에게 물었고, 그는 흔쾌히 답했다.
‘아, 마석의 마력을 사람한테 주입하는 기구? 당연히 있지! 나 같은 사람이야 필요 없지만, 제자들 중에 마력을 과도하게 써서 탈진이 일어나는 녀석들에게 필요하니, 몇 개 있지.’
그렇게 마석-마력 변환 장치와 마력 주입 장치라는 이름을 가진 마력 주입기를 받아 내고, 나머지는 가능한 한 큰 마정석들로 받으려 했다.
그러나 일라이저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있는 뇌 속성 마석은 영의가 받은 것들이 전부라고 말했었다.
이에 영의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매드독들의 마정석을 일라이저에게 넘겨주고, 다음에 올 때엔 뇌 속성 마정석을 많이 구해 달라고 부탁해 둔 상황.
남은 대금은 금화로 받아서 영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며 금값을 계산하고 있었다.
‘흠…… 근데, 이거 다 세공돼 있는데 어떻게 팔지……? 좀 뭉개거나 녹여야 하나? 근데, 그럼 예술적인 가치를 못 받아서 진짜 금값만 받을 텐데……. 응? 잠깐만, 아아!’
그렇게 구름 속으로 들어가다 느닷없이 떠오르게 된 마정석들에 대한 생각.
자신의 동생에게도 하나쯤 줄 만한 걸 챙길 수 있었고, 또 화연에게 수 속성을 가져다준다면 그녀는 흔쾌히 매입할 것 아닌가!
또 그녀의 커넥션을 이용하면 나머지 마정석도 판매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신화 길드의 힘을 이용하면 주입기도 필요 없고 주입기 몫으로 마정석을 더 받아 올 수 있었을 텐데!
“하아…… 이 멍청한 놈……. 뭐, 그래도…… 다음 주문 때 받으면 되니까…….”
영의는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다짐하며 바이크를 몰고 도시로 향했고, 그의 기대와는 달리 일라이저는 뇌 속성 마석만 구입하려 하고 있었다.
“뇌 속성 마석, 있는 대로!”
“……예?”
“그런 게 있다, 빨리!”
“예, 예!”
당연하게도 일라이저의 사정은 알지 못하는 영의.
그는 일단 금은방에서 뭐라고 말해야 이 금화를 의심 없이 팔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 * *
한편, 무대륙. 밤이 깊었지만 달빛이 밝아 그리 어둡진 않았다.
중원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문파 중 하나인 무당파.
그리고 그곳의 구석진 한 초라한 전각에 도관과 도복을 입은 한 중년 도사가 다급히 달려와 문을 두드렸다.
“사백님, 저 광진입니다. 계십니까?”
“……무슨 일이냐?”
안에서 들려오는 진중하고 현기가 묻어나는 목소리.
그 목소리만으로도 전각 안의 인물이 범상치 않음을 짐작게 했다.
“저, 다름이 아니오라…….”
“용건만 간단히 하거라. 난 사제처럼 그리 깐깐하지 않단다.”
문안의 목소리에 중년 도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번 진정한 뒤, 손에 들린 밀봉된 종이봉투를 들고는 문 앞에 두었다.
“예, 서신이 왔습니다. 권왕께서 직접 보내온 서신입니다.”
“……권왕이? 팽가에서 보낸 게 아니고?”
“예, 사백님. 밀봉되어 내용은 모르나, 바깥에 쓰인 이름은 권왕 본인의 이름입니다.”
중년 도사의 말에 문안의 인물은 침묵했다.
그리고 이내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한 노인.
“……어쩐 일로, 서신을 보낸 것인가? 집안 잔치나 무림맹의 일에 부를 리는 없지만, 만약 부를 것이었으면 개인적인 이름으론 보내지 않았을 것을.”
노인은 도관을 쓰고 있지 않고 도복도 안 입은 흰 무복 차림이었으나, 이 무당산에서 그를 그런 이유로 흉보거나 욕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현 무당의 최고수이자 전대 장문인, 아직까지 그만한 기재가 나타나지 않아 아직 태극검이란 이름을 내려놓지 않은…… 아니, 못한 태극검 운광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일단 물러가거라. 집안이나 단체의 이름으로 보냈다면 장로들과 장문인 앞에서 내용을 말해 줘야겠지만, 옛 친우가 개인적으로 보낸 것이니 일단 나만 읽겠다.”
“네, 알겠습니다. 사백님.”
중년의 도사는 그렇게 인사를 올리고 사라졌고, 운광은 방 안에 불을 켜고 서신의 밀봉을 뜯어 읽어 보기 시작했다.
“흐음…… 허어, 음? 그렇단 말이지. 허허…….”
서신을 모두 읽고는 고이 접어 소매에 넣는 운광. 그는 제법 기대에 찬 표정으로 방에서 나와 장문인의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냥 걸어 나가도 별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 외출한다고 기별은 해 두어야 나중에 잔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에.
서신의 내용은 간단했다.
그냥 나이도 먹고, 이제 뒷방에 나와 있는 것도 심심하지 않느냐, 물론 뒷방에 안 갔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심심하긴 할 테니 옛날처럼 모여서 이야기나 하자.
술도 마셔 보고. 땡중은(진짜 편지에 이렇게 썼다) 아직 방장인 걸 알고 있으니 자리를 못 비울 거고, 너는 그나마 자유롭지 않느냐.
그러니 독고휘랑 같이 옛날 추억이나 이야기해 보자. 그러니까 언제까지 어디로 와라. 함께 가자…….
라는 내용이었다. 운광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내용이었기에 장문인과 장로들을 모아 두고 그렇게 말했고, 장문인도 그냥 허락해 주었다.
매일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던 사형이었는데, 이렇게라도 가끔 내보내 줘야 좀 사람답게 살지 않겠는가.
그래서 운광의 출타 소식은 모든 무당파 도사들에게 전해졌고, 물론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았기에 대부분은 그냥 일시적인 외출이라 생각했으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일부 장로가 자신의 직전제자에게 입 싸게 말해 버렸고, 덕분에 젊은 도사들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황과 권왕을 만나러 간다니, 정파 최고수들의 모임이 아닌가!
그래서 수많은 젊은 도사들이 운광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묘하게 주변을 서성거리며 강조했고, 그 행렬에는 그들의 스승뻘에 가까운 중년 도사들도 끼어 있었다.
“……대체 어떤 입 싼 녀석이 그 말을 흘려서는…….”
“하아, 그냥 나만 들을 걸 그랬군.”
장문인과 장로들은 그 광경을 보며 탄식했고, 또 그 와중에 소식은 무당산 아래에도 알려지고, 이내 소문은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가고, 또 와전되었다.
-태극검과 권왕과 검황이 만난다!
-태극검과 권왕과 검황이 모여서 생사결을 펼치려 한다!
같은 내용에서,
-태극검과 권왕과 검황이 사파를 밀어내고 정파천하를 만들려고 한다!
-태극검과 권왕과 검황이 소규모 별동대로 마교를 침공한 뒤, 천마의 목을 따오려고 한다!
같은 내용까지……. 무당파에서는 그것을 전력으로 부정하는 성명을 내놓았고, 대산 주변 객잔에 묵던 팽소운도 그 소문을 듣고는 급하게 객잔에서 도망치듯 나와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렇게 팽소운과 운광이 만나기로 한 날, 둘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수많은 무림인들과 양민들이 구경 나왔고, 도복을 입은 운광이 오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웅성거렸다.
-저것 봐, 태극검님이시다!
-오오, 광진자님……!
-태극검 광진자님이시다……!
도인을 높이는 말로 진자를 붙이며 환호하는 백성들.
운광은 그 진자라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옛날에 제법 놀림받았기 때문.
그렇게 수많은 인파 가운데에서 주목받으며 시선들에 불편함을 느끼던 그때, 그의 귓가에 한 줄기 전음이 날아들었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떨어뜨리고 오는 게 좋을 거야. 북쪽으로, 최대한 빠르게!’
운광은 그 전음이 팽소운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곧바로 북쪽으로 최대한의 속도로 경공을 펼쳐 사라졌고,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 대부분의 무림인과 백성들은 그가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
-드, 등선이다!
-우화등선을 하셨어!
물론, 몇몇 무림인들은 그게 엄청난 속도로 사라진 것이란 걸 알았고, 그중 몇 명은 직접 따라가 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참을 북쪽으로 달린 무림인들. 그러나 그들은 운광의 옷자락마저도 보지 못했다. 하긴, 그만한 실력이 있었으면 구경꾼들처럼 서 있지도 않았으리라.
“허억…… 허억…… 도저히 못 가…….”
“나도……. 그냥 포기하고 집에서 수련이나 할걸…….”
포기하는 무인들이 있는가 하면, 몇몇 무인들은 끝까지 그들을 뒤쫓아 가려 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마교의 첩자도 있었다.
한편, 운광은 처음에는 북쪽으로 가다가 중간에 다시 방향을 바꾸란 전음을 듣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이내 그의 앞에서 빠르게 이동하던 눈에 익은 우람한 덩치의 사내와 마주치게 되었다.
“무량수불, 팽소운 도우 아니시오!”
“……도사 흉내 내지 마라, 말코 녀석.”
“허허…… 나이가 나이이거늘, 아직도 그런 말투를…….”
운광의 말에 팽소운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을 받아넘겼다.
“크하하, 됐고! 뒤에 따라붙은 놈들 없지?”
“흠, 중간까지 그나마 잘 따라오던 인물이 있었지만, 속도를 높여 떨쳐 냈지.”
“음, 나도 그놈은 알아챘지. 나름 싹수는 있어 보이던데?”
“뭐, 어지간하면 재능을 보고 무당에 들일까도 싶었지만, 오늘은 그러려고 나온 것이 아니니. 독고휘 형님…… 아니, 검황께선 어디 계신지?”
“도사 말투 쓰지 말라니까, 거참. 아무튼, 가자고. 형님은 저 앞, 대산에 계신다.”
그렇게 정파의 최고수 둘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참고로, 독고휘가 있는 대산은 그 산이 아니라 건너편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