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20)
한편, 독고휘가 은거하는 대산.
“형님, 그보다 정말 이렇게 기다리면 오는 거 맞수? 어째 며칠 동안 한 번을 안 오는데?”
“……기다려 봐라, 나도 기다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온 것이다.”
독고휘와 팽소운은 동굴 밖에 자리를 펴 놓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두 사람이 노망이 들어 구름을 보며 박수 치거나 햇살을 만끽할리는 없었으니 둘은 영의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리라.
“……아니, 좀 뭔가…… 규칙성이 있을 거 아니우! 형님이 만나던 녀석이었으니, 형님은 뭐 아는 거 없소?”
“네가 규칙성이란 말도 알고, 나이 먹더니 똑똑해졌구나. 옛날엔 말보단 주먹을 먼저 쓰던 녀석이…….”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수! 지금 사흘째 기다려도 안 오고 있는데, 어쩌란 말이우!”
팽소운은 독고휘에게 그렇게 따지듯 말했고, 독고휘는 그 말에 약간 발끈했다.
“아니, 내가 너보고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더냐? 아니잖아! 야,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라. 지난번에 걔가 찾아온 건 나였어! 넌 그냥 갑자기 꼽사리 껴서 막 처먹고 술도 먹고 간 거잖아!”
“아, 대신 무공 가르쳐 줬잖수!”
“내가 더 많이 가르쳤어, 이놈아! 넌 뇌기도 못 쓰잖아!”
“와, 내가 진짜 서러워서! 형님, 한때 도법 쓸 때 나도 벽력도라고 불렸수!”
“무공에서 나오는 뇌기 말고, 몸 그 자체에 뇌기가 쌓여야 한다고! 그거랑은 달라!”
그렇게 당장 산을 내려가서 무림인들이 모인 곳에만 가면 바로 황제와도 같은 대접을 받을 두 사람이었건만, 지금 아무도 없는 이 산속에 둘이 있자 둘은 나이에 안 맞게 철없는 청년처럼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아아! 아무튼! 진짜! 거 매번 찾아오는 주기가 있었을 거 아니오! 말 좀 해 보시오, 형님!”
“……몰러.”
팽소운의 다그침에 독고휘는 아주 작게 말했다.
“……네?”
독고휘의 말을 못 들을 청력이 아니었으나 나이가 나이인지라 정말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어 다시 한번 되묻는 팽소운.
“모른다고! 두 번밖에 안 왔어!”
“아니, 그럼 주기란 걸 모르는 거잖수? 내내 여기 처박혀 있어야 한다고?”
팽소운은 독고휘의 말에 망연자실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래, 그러니까 내려가라. 여긴 나 혼자 있던 곳이니까.”
“그 술맛을 보고 어떻게 안 내려갑니까, 형님! 그 엄청난 명주를 막 갖다가 이렇게 싸 들고 오는 녀석인데!”
예전 영의가 왔을 때 사 온 고량주 맛을 본 팽소운. 술을 좋아하는 그였기에 음식보단 술맛이 더 기억에 남았다.
“……아무튼, 처음 왔을 때 말고 그다음에 네 녀석이 오던 날에 왔……. 잠깐.”
독고휘는 영의가 왔던 때를 떠올리며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한테 뇌전지체와 뇌격공 초입을 받아 갔다.
그리고 다음엔 소운 녀석에게서 권술을 배워 가며 나에게 뇌격공을 조금 추가로 배웠다. 그렇다면……?
“……새로운 녀석.”
“……뭐요?”
“새로운 녀석이 필요하다. 그 녀석은 새로운 무공을 배울 놈이 있으면 찾아올 거야!”
독고휘의 추측은 틀려먹었으나 패턴상 그의 말은 나름 설득력 있어 보였다.
“무슨 소리요, 형님?”
“처음엔 나한테 뇌격공을 배우러 왔고, 그다음은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난 음식을 못 먹게 되었다. 그러다 네가 나타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지!”
무식한 팽소운이었으나 그는 책 쪽의 지식이 없었지, 세상 경험이나 머리 회전이 느린 게 아니었다.
“그 말은…….”
“그래, 나의 뇌격공과 너의 권법, 둘을 배웠고…… 이제 새로운 무공을 가르쳐 줄 놈만 하나 찾아서 끌고 오면 녀석은 올 거다.”
독고휘의 확신에 가득 찬 말에 팽소운은 나지막하게 웃기 시작했다.
“후후후…….”
“허허허…….”
둘 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둘이 누구인가. 현 무림의 최고봉의 인물이자 배분으로도 어디서 안 밀린다.
어디 문파 하나에 볼일이 있다고 말하면 그 문파의 장문인이 맨발로 달려와서 용무를 자신에게 말하면 바로 처리하겠다고 대답할 법한 인물들.
“보자…… 검법으로 해 볼까?”
“형님, 도법도 괜찮지 않수? 검보단 도가 조금 더 배우기 귀찮으니.”
“아니지, 좀 더 까다롭고 귀찮은 거로 보자면 창이 더…….”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떤 인물을 데려와야 영의가 좀 더 자주, 그리고 더 좋은 술이나 음식을 들고 올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 팽소운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 무릎을 탁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그러고 보니 아무나 막 부르면 녀석도 안 오는 거 아니우?”
“……뭐?”
“아니, 그렇잖수! 형님은 천하제일인, 그리고 저는 천하제일권 아닙니까!”
“……너 옛날에 마권이랑 싸워서 졌…….”
독고휘의 말에 다급히 독고휘의 말을 가로막으며 외치는 팽소운.
“아니, 그건 합공당해서 진 거고! 중간까진 내가 이기고 있었수! 그보다, 정마대전 때 일 꺼내기요? 그땐 지금보다 약했잖수!”
“마권 놈도 그때보단 강해졌겠지.”
“무조건! 내가 더 세지! 그러니까 녀석이 형님한테 온 거 아니오!”
팽소운은 그렇게 소리치며 독고휘와 자신을 교대로 가리켰고, 독고휘도 그 말에 나름 흡족해졌다.
‘아암, 천하제일인이니까 그런 음식을 싸 들고 와서 가르침을 받아 간 거지.’
물론 음식은 독고휘가 멋대로 집어 먹었고, 가르침도 반 강제로 받아 간 거지만 독고휘의 머릿속에는 이미 미화가 진행되어 있었다.
“아무튼, 상당한 실력자가 아니면 안 오는 거 아니냐, 이 말이오!”
“흐음…… 일리가 있다. 녀석도 단전은 없지만, 상당한 천재였어. 어지간한 스승이면 쓸모가 없을 거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옛날 정사칠룡 출신들 어떻소? 거, 반쯤 의형제들이니 입도 무겁고, 다들 거의 은퇴했으니 혼자 막 다녀도 의심할 사람 없고. 또 형님이 부르면 별 이유 묻지 않고 올 녀석들 아니우?”
팽소운과 독고휘, 둘이 후기지수 시절 때 생긴 별호로 정파와 사파의 일곱 유망한 남자 후기지수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은 정파와 사파로 처음엔 대립했으나, 정마대전 때 함께 싸우다 보니 반쯤 의형제와도 같은 사이가 되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 같다. 그래서, 누구를 부를 거냐?”
독고휘의 말에 팽소운은 자리에 앉아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독고휘는 은거한 지 오래됐으니 애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거고, 그나마 바깥에서 사는 자신이 생각해야 했다.
“……땡중 놈은 어떻소?”
“……걔 육식은 안 하지 않냐?”
지금 신승이라 추앙받으며 소림의 방장으로 있는 혜윤대사를 보고 땡중이라 말하는 둘. 만약 숭산 주변에서 그런 소리를 했으면 두 사람에게 돌이 날아들었으리라.
“아…… 그 녀석이 술은 잘 먹었는데…….”
“너보다 술을 잘 푸긴 했지.”
그렇게 고민하다 다음 사람을 생각해 낸 팽소운.
“칼잽이는 어떻소?”
“……어디 있는진 아냐?”
“모르지, 나야.”
“장산 놈, 그 나이 먹고도 방랑벽을 못 버리고…….”
검귀 장산, 사파 최고의 방랑검객이라고 불리는 남자였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길치였다.
“오오! 그래, 생각났다! 말코 놈을 부릅시다, 형님!”
“말코? 아아, 운광 놈?”
무당파의 장문인이었다가 지금은 물러난 무당의 최고 어른 중 한 명인 운진자, 젊은 시절에는 운광이란 도명으로 불렸었다.
“맞소, 형님. 그놈이 점잔 빼는 말코 놈이긴 해도 술 한잔 들어가면 제일 잘 놀지 않았수?”
“그래, 술 먹으면 기루에 제일 먼저 쳐들어가는 놈이 그놈이었지.”
“킥킥, 그러다가 꼭 거사 치르기 전에 술 깨 가지고 무량수불거리면서 밖으로 뛰쳐나오고. 재밌지 않았수?”
“클클클, 그땐 재밌었지.”
그렇게 재밌었던 옛 추억을 꺼내며 웃는 두 사람. 그리고 둘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마음을 정했다.
“말코 놈으로.”
그렇게 무당파에 서신을 보내기로 결정한 두 사람. 지필묵은 동굴 안에 제법 있었기에 서신은 금방 썼다.
물론, 모든 내용은 싹 빼고 그냥 모여서 옛날 일이나 추억하고 차나 좀 마셔 보자고 썼지만…….
“뭐, 우리들이 못 만난 지도 좀 됐으니 부르면 올 거요.”
“간만에 말코 놈 술 취한 거나 보자고.”
“그거참 좋은 생각이우. 그런데…….”
말끝을 흐리며 눈치를 보는 팽소운. 그리고 독고휘도 그런 팽소운의 태도를 눈치챘다.
“……전서구 없어?”
“……형님은 그런 거 가지고 산 타시우?”
“좋아…… 없다, 이거지?”
“……그럼 한 명이 내려가서 전서구를 보내야 한다…… 이 말인데…….”
서로 눈치를 보는 둘. 먼저 입을 연 것은 독고휘였다.
“그래도 내가 형인데, 네가 가는 게 그림이 좋지 않겠냐?”
“에이, 거 나이는 동갑인데 그러지 맙시다. 내가 져 가지고 형님이라 모셨지, 언제 나이로 모셨나?”
“난 돈 없다. 돈 있는 네가 가서 보내고 와라.”
돈이 없다며 양팔을 벌리는 독고휘. 그런 독고휘를 보며 팽소운이 품에서 은전을 몇 개 꺼내 보였다.
“그럼 제가 돈 드릴게, 형님이 보내고 오시우.”
그렇게 팽팽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
“나 은거해서 못 나간다.”
“나도 집안 애들한테 산에서 수련하고 온다고 말하고 와서 못 내려가는데?”
“……그냥 취소해!”
“쪽팔리게 어떻게 한단 말이오! 형님도 지금 뇌섬문 찾아가서 ‘아, 배고픈데 밥 좀 다오…….’ 할 수 있소?”
“그거랑은 다르지!”
“나한텐 그게 그거요!”
그렇게 서로 말다툼을 하는 두 사람.
둘 다 서로의 능력과 힘을 알기에 몸으로 싸우면 엄청난 소란이 일어나 은거 생활이 망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좋아, 가위바위보로 하자고.”
“좋소, 준비…… 안 내면 진 거!”
둘은 진각을 밟으며 한쪽 손을 준비했고, 그 진각 때문에 땅이 조금씩 갈라졌다. 그리고 이내 팔을 들어 올리며…….
“가위, 바위, 보!”
그렇게 세기의 가위바위보가 시작되었고, 두 사람은 무림의 고수답게 가위바위보를 하며 올라간 손이 내려갈 때 엄청난 속도로 자신이 낸 것을 바꿔 가며 상대를 이기려 했다.
엄청난 속도로 접히고 펴지는 손가락. 두 남자는 자신의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 손가락을 움직였다.
“…….”
“…….”
그렇게 나온 것은 무승부. 뇌기로 반응속도와 움직임을 올린 독고휘와 주먹의 인생을 걸어온 팽소운의 기량의 승부는 비등했다.
“……이대로는 결판이 안 나겠어.”
“마찬가지요, 형님.”
둘은 서로의 실력을 알았기에 끝이 없을 거라 판단하였고, 이내 팽소운이 은전 하나를 들어 올렸다.
“하늘에 맡기는 게 어떻수? 형님.”
“……좋다.”
붓을 들고 은전 한쪽에 먹을 칠한 뒤, 그걸 던져 판결 내기로 한 둘.
독고휘와 팽소운은 둘이 은전을 같이 잡고 위로 던진 뒤, 아무런 내력과 청력, 그리고 시야로 부정을 저지르지 않게 은전을 위로 던졌다.
그리고 재빨리 옆으로 비켜서서 서로의 귀를 막고 눈을 마주 보며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소리도 막기 위해서였다.
“으아아아아아!!”
“야야야야야야야!!”
얼핏 보면 좀 꼴사나워 보였지만, 그래도 나름 효과적인 페어플레이 방법.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지나가고, 하늘 높이 올라간 은전이 땅에 떨어졌다.
“……난 먹이 칠해진 쪽.”
“난 안 칠해진 쪽으로 하겠소.”
그렇게 둘은 각자의 의견을 가지고 은전이 떨어진 곳으로 갔고…….
“……이건 뭐…….”
“……하늘이시여…….”
은전은 방금 전 그들이 가위바위보를 하기 위해 진각을 밟은 땅, 갈라져 버린 그 틈에 끼어서 거짓말처럼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