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14)
신화연, 27세. 10여 년 전 게이트 발생 사태 때 최초로 휘말리며 각성한 사람 중 한 명으로, 당시 B급의 마력 출력과 얼음 속성 계열로 각성하며 슈퍼스타로 등극.
자체적인 육체 능력도 뛰어나 근접전과 원거리전 모두에 능하다고 하며 세상은 그녀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그녀는 한국의 톱 10 랭커 안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모든 걸 부정하고 싶었다. 당장 눈앞에서 맞서 싸우고 있는 D…… 아니, C였다가 지금은 B급 출력만 가진, 심지어 보조 계열이라 육체의 활성화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남자인 영의에게 벽을 느끼고 있었다.
왼쪽 어깨? 안 된다, 이미 의식하고 있다.
옆구리? 안 된다. 중간에 막힐 수 있다.
하단을 노려 봐? 노리다가 내가 역공을 먹을 수 있다.
신화연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타고난 것도 있지만 A급 각성자로 더욱 강화된 반사 속도와 운동신경으로 영의를 공략해 보려 했으나 눈앞의 영의는 단 한 치도 빈틈을 허용해 주지 않았다.
“왜 그래? 소극적으로, 힘 좀 내 봐.”
“네…… 힘, 내 보고 있죠. 근데 좀 버겁네요?”
둘은 가벼운 견제타만 주고받으며 계속 싸움을 유지했다. 움직이면 움직이는 그 사이에 상대의 공격이 날아와 꽂히는 상황.
둘은 처음의 격돌 이후 제자리에 서서 상체만 조금씩 움직이며 대치하고 있었다.
‘……애가 왜 이렇게 소심해졌지? 게이트에서 목숨 걸고 싸워서 그런가?’
학창 시절 영의와 함께 운동하던 때에 신화연의 별명은 미친개였다.
여자한테 붙일 이름은 아닌 것 같지만 실제로 그녀와 경기를 뛴 모든 사람의 소감이 그랬었다.
마치 정신 나간 짐승을 상대하는 것 같다고.
실제로 신화연은 싸울 때는 맹공을 유지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건 영의와의 싸움에서도 적용되었다.
하지만, 영의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지금 그의 반사 신경과 반응속도, 그리고 힘은 몰라도 몸이 움직이는 속도는 화연을 웃돌고 있었고, 격투 센스까지 계산한다면 정말로 단순히 격투로 화연을 상대하면 이기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화연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 호시탐탐 틈만 노리고 있었다. 정면 대결을 하면 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에.
“……쯧, 재미가 없네.”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물러섰고, 화연은 그런 영의의 행동에 멈칫했다.
“……선배? 안 하시게요?”
“그래, 안 하려고. 모든 수단을 다 써서 싸우자고 했는데, 틱틱 견제나 하고 있고. 또 움직임은 그게 뭐야? 가만히 서서 깔짝거리는 거? 네 스타일 아니잖아.”
영의는 아까 전 화연이 던진 얼음 수건을 집어 들었다.
아직 차갑긴 했으나 이제 어느 정도 녹아서 좀 부드러워진 수건.
영의는 그 수건을 들어 화연의 얼굴에 덮고는 그대로 꽉 붙잡았다.
“흠해? 흠해(선배? 선배)!!”
“잠깐만 있어.”
그렇게 얼굴을 잠시 덮어 둔 수건을 떼어 내고는 화연과 눈을 마주하는 영의.
화연은 무의식적으로 눈을 돌리려 했다.
“눈 돌리지 말고. 너 대체 왜 이래? 깔짝, 깔짝. 또 시작할 때의 기세는 거짓말처럼 가만히 서서 싸우고. 너, 나 봐주냐?”
“아니에요, 선배. 제가 선배를 봐주기는…….”
“그것도 아니면, 나 간 보는 거야? 나랑 싸우는 게 무서운 거냐고.”
“아뇨, 절대. 전 무섭지 않아요.”
“그럼 왜! 진심으로 안 나오는 건데?”
“…….”
화연은 영의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대체 내가 왜 그렇게 싸운 거지? 내가 쫄았나? 아니면,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나? 내 스타일이 바뀐 건가?
그렇게 고민하는 화연을 보자 영의는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고민하고 그러는 애가 아니었는데…….
“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싸워. 내기는 없던 거로 하든가. 아니면, 네 마음가짐이라도 다르게 먹어 봐.”
“마음가짐…….”
화연은 그 말에 문득 깨달았다.
아, 나는 지금 선배를 압도해서 어떻게든 내기에 걸어서라도 안전하게 두려고 하는 거구나.
선배는 각성 능력이 없어도 아직 저렇게 강한데, 또 개싸움으로 겨우 이겨서 내기에 따르게 하면 내가 나 스스로 내기에 만족하지 못할까 봐.
‘선배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화연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영의를 노려보았고, 영의는 아까와는 다르게 바뀐 화연의 눈빛에 미소 지었다.
“좋아, 좋은 눈빛이네.”
영의는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서 거리를 벌리려 했고, 화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선배, 지금부턴 제가 미친년이 될 거예요. 정신 똑바로 차려!! 최영의!!”
화연은 그렇게 소리치며 영의의 등을 공격하려 달려들었고, 영의는 이미 그 기습을 감지했기에 몸을 돌리며 손등으로 화연의 머리가 있는 곳을 후려쳤다.
아니, 정확히는 후려칠 뻔했다.
쿠당-!
영의가 공격할 때 바로 자세를 낮춰 태클을 건 화연.
영의는 회전을 하느라 지지력이 약해졌기에 화연의 태클에 넘어졌다.
“잡았다……!”
실제로 학생 시절에 그녀가 태클에 성공만 하면 무조건 상대는 패배를 맞이했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미친개 말고도 처형인이라고도 했었다.
“쯧, 귀찮게……!”
영의는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타 마운트 자세를 잡은 그녀를 떼어 내려 했으나, 그녀는 쉽게 놔주지 않았다.
“하하, 제가 미친개 신화연이에요. 잊었어요?”
화연은 그렇게 말하며 영의의 얼굴을 가격하려 했으나 영의는 여유로웠다.
‘가속 1.5배.’
영의는 체내에 흐르는 뇌기의 속도를 1.5배로 올렸고, 이는 즉 영의의 신체 능력이 그만큼 올라갔다는 것을 뜻했다.
“흐읍!”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땅에 튕겼고, 갑작스럽게 상승한 영의의 신체 능력을 예상하지 못한 화연은 마운트가 풀릴 위기에 처하자 급하게 자세를 고치려 했으나 영의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타다닷!
살짝의 틈이 생기자 곧바로 왼팔과 발끝으로 땅을 밀치며 동시에 오른팔을 뒤로 뻗어 땅에 짚고 자신의 몸을 끌어당긴 것.
덕분에 약간의 거리를 이동한 영의는 마운트에서 풀려났고, 둘 모두 앉은 자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뭐예요, 선배? 숨겨 둔 힘? 아니면, 그것도 각성 능력이에요?”
영의는 그 말에 순순히 답해 줄 마음은 없었다.
“글쎄, 남자의 허릿심?”
“…….”
화연의 얼굴이 한순간 살짝 달아올랐으나 이내 화연의 손에 얼음 결정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래, 모든 수단을 쓰죠. 모-든 수단을…….”
“……저건 좀 그런데.”
화연은 이내 손에 얼음 손톱을 만들어 영의에게 달려들었고, 손톱의 날카로움을 몸으로 때울 자신은 없던 영의는 손톱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기 시작했다.
“아하하하하! 그래, 이거지! 이래야 내가 좋아하는 미친개답지!”
“선배, 그거 알아? 나도 선배가 좋아! 안 죽을 걸 아니까!”
그렇게 둘은 싸움에 미친…… 아니, 어쩌면 서로에 대한 광기를 흩뿌리며 맞붙었다.
저돌적으로, 그리고 직선적으로 파고들어 오는 화연과 그걸 부드럽게, 때로는 재빠르게 피하고 쳐 내는 영의.
지금 공세는 화연이 우위였지만 영의는 모든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 내고 있었다.
“아하하! 선배, 엄청나네요! 현역 각성자로 뛰어도 되겠어! 나랑 사냥이나 하러 갈래요?”
“말은 고마운데, 아직 모자라. 그리고…… 빈틈!”
화연은 신나게 웃으며 얼음 손톱을 현란하게 흔들며 왼팔을 영의에게 찔러 넣었고, 영의는 화연의 왼팔을 오른손으로 잡고는 곧바로 잡아당기며 왼팔로 화연의 목을 잡아당겼다.
그 힘에 의해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 시작하는 둘.
“이익!”
화연은 다급히 오른팔을 휘둘러 봤지만, 영의는 능숙하게 화연의 왼팔에 있는 얼음 손톱으로 쳐 내며 막아 냈고, 이내 화연을 잡아 벽으로 던졌다.
터엉!
벽에 부딪히고 땅바닥에 엎어지는 화연. 그녀는 곧바로 재빠르게 다시 일어나 자세를 갖췄다.
“하아…… 선배, 왜 이렇게 빨라요? 나보다 빠른 것 같은데…….”
“누구보다 빠르기 때문에 내가 배달업으로 먹고사는 거지. 뭐 해? 들어와 봐. 부탁할 거…… 있는 거 아니었어?”
영의는 그렇게 손을 까딱였고, 화연은 웃으면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달려드는 그녀의 손에는 얼음으로 된 망치가 만들어져 있었다.
“무기 쓰기 있기야?”
“모든 수단!!”
화연은 그렇게 얼음 망치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영의는 방금 전 얼음 손톱 때보다 조금 더 고전하기 시작했다.
‘이런, 역시 쟤는 무기술이 더 잘 맞아. 아니지, 내가 무기를 상대하는 법이 약한 걸 수도……?’
영의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에 독고휘를 만날 때는 맨손으로 무기를 상대하는 법에 대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뇌기의 속도를 올렸다.
‘2배.’
속도를 올리자 온몸에 따끔거리는 감각이 들었고, 영의는 이것이 한계라고 느꼈다.
‘아직은 2배가 다인가, 심지어 힘을 줄였는데도…….’
영의는 속도를 올리기 위해 출력을 희생했다.
쉽게 말해 더 빠르고 더 민첩하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대신 평소의 힘을 그대로 내면 몸이 상하기에 뿜어내는 힘을 줄인 것.
그리고 그렇게 화연을 상대하기 시작했고, 화연은 빨라진 영의의 속도에 맥을 못 췄다.
“뭐야! 왜 이렇게 빨라!”
“장기전으로 가자고, 어때?”
“……선배, 혹시 뭐 휠리스라도 신었어요? 안 그러면 이 정도 속도가 안 나올 텐데?”
물론 지금 둘 다 맨발이다. 화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망치를 집어 들고 방어하는 자세를 갖췄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몸 주변에 생겨나기 시작하는, 떠다니는 얼음 방패들.
일단 막으면서 상황을 보려는 듯한 모습에 영의는 화연의 방어 자세를 보자마자 큰 한 방을 위해 자세를 잡으며 화연에게 다가가 정권을 날렸다.
그리고 그 정권에 망치가 부서지고 화연이 뒤로 밀려나야 했으나…….
“……걸렸다.”
“?!”
그러나 그것은 화연이 판 함정. 망치가 부서지자 망치의 뒤에서 나타난 건 얼음으로 뒤덮인 화연의 주먹이었고, 영의는 그것을 보고 곧바로 빠져나가려 했으나 그의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얼음!’
곧바로 발을 얼리려 했다면 눈치를 챘겠지만, 발 주변에 얼음들을 깔아 둬 이동을 제한하는 함정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냉기는 주변에 떠다니는 얼음 방패로 위장한 것이었고. 영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일련의 과정이 확인되자 미소 지었다.
“적을 물어뜯는 것밖에 못하던 미친개가, 이젠 적을 몰아넣고 유인하는 사냥개가 됐구나…….”
……결국은 개였다.
그렇게 화연의 회심의 일격을 맞고 날아간 영의.
그는 소지품이 있는 반대편 벽까지 날아갔고, 벽에 튕긴 뒤 화연의 충전 중인 휴대폰 위로 떨어졌다.
작게 콘센트 쪽에서 스파크가 튀었으나, 영의의 몸에 가려 화연은 그것을 보지 못했다.
“아오…… 쓰읍…… 더럽게 아프네. 역시 A급인가…….”
영의는 자신의 방어력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도 추가로 하면서 몸을 일으켰고, 이내 몸 상태가 좋다고 느꼈다.
‘뭐지……? 왜 저걸 맞았는데 기분이 상쾌하지?’
그렇게 원인은 모르겠지만 좋은 느낌이 드는 영의. 그는 곧바로 다시 화연에게 뛰어갔다.
그리고 충전이 거의 완료되었던 화연의 휴대폰은 배터리 용량이 20%로 떨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