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12)
소리 없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얀 물체. 영의의 마정석 바이크였다.
그리고 영의는 그 위에 탄 채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아가야지, 일단은.”
아래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한 영의. 그는 아까 병민과 병찬(배달부 동생들)이 있던 곳으로 향했고, 이내 배달부들이 모여 대기하고 있는 장소에서 그 둘을 만났다.
“아니, 형. 어디 갔다 온 거야? 배달 주문 온 거 없는데?”
“행님, 화장실이 급했으면 이 안에 드가면 되는 기지, 굳이 멀리 가서 싸고 오셨어야 했슴꺼? 주문 왔다꼬 그짓말까지 해 가믄서…….”
영의가 도착하자 두 동생들은 그렇게 말했고, 영의는 의문에 휩싸였다.
‘몇 시간 정도 수련하다 왔는데…… 얼마나 걸린 거지?’
“그리고 행님, 거 가시는 건 좋은데 문자 좀 보이소. 막말로 우리 집 영감님도 그래 문자 안 보고 그러지는 않아예.”
문자를 보냈다는 병찬의 말에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확인해 보는 영의.
대략 10분 전 병찬이 자신에게 보낸 메시지가 있었다.
“……뭐야, 30분밖에 안 지났네……?”
분명 몇 시간은 지도받고, 직접 몸도 움직여 보고, 무엇보다 음식 먹는 데만도 최소 30분은 걸렸었다.
포장과 이동을 제외하더라도.
“30분이면 똥 싸기에는 쪼매 걸린 깁니더. 행님, 그 식이섬유 하나 드셔 보실래예? 그기 변비에는 그래 좋다 카더만.”
“아, 멍청한 놈아. 가끔 있잖아, 똥 싸러 집까지 가는 애들. 학교 다닐 때 한두 명씩 있었잖아.”
병찬의 말에 병민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병찬은 병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런 기가?”
“그래, 검증된 변기가 아니면 쌀 수 없는 그런 타입이실 수도 있지.”
영의가 눈앞에 있는데도 둘은 그렇게 계속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는 몰랐제. 행님은 맨날 배달하는 모습만 봐가 화장실 가는 걸 몬 본 거 같다 아이가.”
“……나도 별로 본 적은 없는데.”
그렇게 자기들끼리 대화하는 병찬과 병민.
영의는 그 대화에 대놓고 아니라고 말하기엔 자리를 비운 이유를 말해야 하고, 맞다고 말하면 자리를 비운 변명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민했다.
‘아 씨, 그냥 똥쟁이가 되어 버려? 아니면, 좀 구차한 변명을……. 아!’
영의는 그냥 화장실 갔다고 하면 얼굴 보기엔 좀 그래도 이해는 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나중에도 독고휘에게 다녀올 일이 생기면 그때도 화장실 간다고 하는 게 먹힐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 개인적으로 부탁하는 고객이 있어.”
“개인적?”
“행님, 우덜 그런 건 사적으로 안 받지 않슴까. 근데, 누군데예?”
병찬과 병민은 영의의 말에 의문을 표시했다.
“그…… 개인적으로 콜하면 바로 배달해 달라고 하는 분인데, 내가 지금 너희한테 이 말을 하는 이유도 그럴 때 대타 좀 뛰어 달라고 하는 거야.”
“그라믄…… 우리가 그 배달을 하라고요?”
“아니, 내가 뭔 배달 중에 갑자기 콜받으면 그때 내 배달 좀 대신 해 달라고.”
“행님 그라믄 그거 시간 내에 못 배달하면 으짤라고 그캅니꺼?”
병찬의 의문은 타당했으나 영의는 그것도 나름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배달은 내가 한다. 너희는 그냥 음식 받아 오는 걸 해 주면 돼. 음식 가지러 가고, 배달하는 시간 중에 음식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큰 거, 알지?”
물론 몇몇 가맹 매장은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매장에 알림이 가지만 보통 영의의 배달은 가맹이 되지 않는 지방 맛집 등이 많았기에 영의가 직접 가서 포장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 알지예.”
“그러니까, 내가 주문이 들어왔을 때 콜이 오면 주문에 대한 건 너희가 담당해 줘라. 풀로 밟으면 도착해서 주문할 수도 있고, 안 되면 전화로라도 해. 그렇게 음식만 준비시키고, 그동안 내가 콜 주문받은 음식을 담당한다.”
“그다음은?”
“기존 주문을 내가 풀 액셀로 배달하고, 콜 주문을 바로 맡아서 가는 거지.”
영의의 말에 병찬과 병민은 고민에 빠졌다.
“그래서, 정리해 보면 주문이 없을 때는 형이 그냥 하고, 다른 주문 중에 개인 콜 들어오면 우리가 음식만 어떻게든 준비하고 나머진 형이 배달한다고요?”
“그래. 맡아만 주면 내가 수수료에서 10퍼씩 떼서 준다.”
영의의 배달 수수료는 15만 원. 그렇기에 사람들도 잘 안 시키고 영의도 평소에는 안 오는 걸 알기에 그도 수많은 배달 요청 중에 하나씩 골라 배달하며 다녔다.
그러다가 특급 배달 요청이 오면 그에게 직통으로 주문이 들어오는 것.
“10퍼면…… 만 오천 원이네.”
“이야, 두 번만 전화로 음식 시켜 주면 한 건 수수료가 그냥 들어와 뿌리네!”
영의야 공중을 날아다니고 본인의 무력도 제법 있었기에 길거리의 괴수를 마주치진 않지만, 차들이 오가는 도로변이나 밝은 대로 주변이 아니면 배달 수수료는 급하게 뛰어올랐다. 어두워지거나 인적이 드문 곳일수록 괴수들이 숨어 살기 때문.
그렇게 숨어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괴수들이 배달 음식 냄새를 맡고 배달부를 습격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고액 수수료 배달은 영의나 병민, 병찬 같은 각성자 배달부들이 담당하는 것이었다.
“어때, 할래?”
“하지요. 누가 봐도 이득인데.”
“근데 일반 배달은 해당 안 되는 거지예? 특급만?”
“그래, 특급만. 일반은 내가 하다가 가면 되니까.”
영의도 방금 전 알아차린 건데, 중국집까지의 이동 시간과 요리가 나올 때까지의 대기 시간, 그리고 그걸 가지고 독고휘에게 가는 시간과 다시 돌아와서 병병 브라더스에게 올 때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30분이었다.
‘다른 세계……로 이동하면 그쪽에서의 시간 흐름은 여기랑 관계가 없다. 이동했을 때의 시간대로 돌아오는 거야.’
그렇게 잘만 하면 영의 스스로 두 가지 일을 다 할 수도 있지만 병병 브라더스로 혹시 모를 보험을 들어 두고는 그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배달 주문을 기다렸다.
“그보다 행님, 개인적으로는 못 받는데 와 수락하셨으예?”
“야, 너도 알잖아, 형 얼마 전에 돈 다 날린 거.”
“아, 맞다. 맞다. 바이크값 날아간 거. 그래도 한두 달 하면 금방 벌지예?”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예전 같았으면 두 달 동안 빡세게 뛰면 벌었겠지만 지금은 끼니당 4만 원씩 드시는 영감이 며칠에 한 번씩 부를 것 같거든…….’
음식에 대한 보상은 무공 지도 같은 형태로 받았기에 결국 음식값은 영의의 지갑에서 나가는 형편. 영의는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배달부 인생도 그만둘 수 없게 되었다.
‘지금 내 힘은 충분히 강하지만 진짜 각성자들에 비해서는 손색이 크거든…….’
각성자로 괴수들을 잡는 등의 일을 해서 벌 수도 있겠지만 현재 그는 그저 빠르고 가끔 뇌격을 쏠 수 있을 뿐, 강한 힘을 가지고 있거나 뇌격난사 같은 건 불가능했기에 별수 없었다.
‘최대한 영감님들이 비싼 걸 먹기를 바라야지…….’
그렇게 영의는 배달부들과 모여서 주문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다가 누군가 들고 있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방송을 듣기 시작했다.
-네, 97.4FM 오늘의 게이트 소식입니다.
-현재 경기도 지역에 생긴 새로운 게이트에 대한 소식인데요, 신화 길드에서 게이트를 공략했고, 이내 소멸시켰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게이트는 소멸시키지 않고 놔둔 다음 마정석이나 괴수의 부산물을 최대한 마련하는데, 이례적으로 이번 게이트는 소멸시켰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만나 본 신화 길드 인원과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게이트 내부의 괴수들이 너무 위험해서 바로 폐쇄 조치를 했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사상자 없이 게이트 내부를 소탕할 수 있었지만, 다음에 다시 공략하거나 다른 길드에서 왔을 때는 사상자가 안 생길 거란 장담을 할 수 없어 소멸시켰다고 합니다.
-그럼 다음 소식 전해 드리겠습니다. 요 근래에 하수도나 골목길에 숨어 행인들을 습격하거나 음식물 쓰레기 등을 파헤치는 ‘스캐빈저 몬스터’들이…….
그렇게 라디오를 듣던 중, 병찬이 갑작스럽게 영의에게 질문했다.
“이번 게이트 공략, 얼음꽃이 했다 카더만. 행님 아는 사이 아닙니까?”
“……학창 시절 후배지 뭐.”
“에-이, 그냥 후배도 아이드만! 내 전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얼음꽃 신화연 학창 시절 격투 대회 영상에 행님 나오드만요. 둘이 1, 2등 하는 거 보니깐 그냥 선후배는 아인 것 같던데?”
“야, 이 눈치 없는 놈아…….”
실제로 영의와 화연은 나름 가까웠고 고등학교 때 잠깐 사귀기도 했었다.
물론 머지않아 화연이 각성하고 사회의 최상층으로 부상하고는 약간 멀어졌지만.
“……됐어,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
영의는 얼굴을 굳히고 그렇게 말했고, 병민이 열심히 말린 덕분에 병찬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주위의 다른 배달부들도 그들의 이야기에 나름 관심이 생겼는지 힐끔힐끔 그들을 쳐다보았지만 영의는 그저 계속 바이크 위에 앉아 주문을 기다리는 듯 보였다.
[업데이트 중…… 78%.]
‘아, 업데이트 왜 이렇게 느리지……? 지난번엔 빨랐는데.’
영의는 자신의 시야 한구석에서 조금씩 차오르는 막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뭐가 추가될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지난번엔 문자 확인 기능이랑 조작할 때 조금 더 편해졌지……. 이번엔 뭐려나?’
물론 문자 확인 기능이 있긴 하지만 정작 문자는 휴대폰으로 보는 영의였다.
그나마 쓸 만한 게 조작 편의성과 기존 대기 시간을 몰라 별 의미 없어진 주문 대기 시간 감소뿐이었지만 이번에도 뭔가 유용한 게 나와 줄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기다리다 갑자기 시야 한구석에 알림 창이 떴고, 영의는 당황했다.
‘뭐지? 아직 업데이트 중인데? 이, 일단 확인해 보자.’
그러나 이내 생각을 해도 움직이지 않는 알림 창에 영의는 더더욱 당황했다.
열심히 머릿속으로 알림 확인이라고 소리치고 알림 창을 열어 보려 했지만 움직이지 않고 불만 들어와 있는 알림.
“뭐야? 알림 확인!”
그렇게 무심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자 그제야 알림 창이 열렸고, 알림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아자!”
이번에야말로 몸을 좀 강화할 만한 다른 기술을 전수받거나 하다못해 오백 년짜리 영초라도 받아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주문을 확인하는 영의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주문인 : 신화연]
[배달 물품 : 전과 같이]
[배달 주소 : 신화 길드…….]
영의의 가슴은 방금 전처럼 두근거리지 않았다.
“뭡니까, 행님. 갑자기 소리치고.”
“그 개인적 손님이 콜 보낸 거겠지.”
“아니…… 그냥 주문.”
병병 브라더스는 주문이라는 말에 자신들의 주문 목록을 찾아봤으나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낮이라 배달 주문을 시키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있다고 해도 외지에 사는 사람은 낮에는 나가서 사 먹고 말지, 비싼 돈 주고 배달시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낮에는 괴수 걱정 없이 나갈 수 있었기에.
“특급인가?”
“어.”
병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는 영의.
“그라믄 소리 지를 만하제. 대낮부터 한 건 올리고 하니까는.”
“아, 제발 저거 하는 동안 개인 콜 왔으면 좋겠다.”
“어, 내도 방금 그 생각 했는데.”
“어림도 없지. 난 간다?”
영의는 그렇게 바이크를 타고 천천히 날아올랐고, 병병 브라더스가 그를 배웅했다.
“예, 행님. 조심히 다녀오이소. 이번엔 번개 맞지 말고예.”
“맞아도 안 죽으니 괜찮지 않을까?”
“아이지, 행님의 통장이 죽지!”
“그럼 안 괜찮네.”
“행님, 부-디 느긋하게 하다가 콜받으이소!”
“얘 말고 절 불러 주시면 바로 픽업해서 가겠습니다!”
그렇게 잘 노는 둘을 보며 영의는 작게 웃었고, 이내 화연에게 배달을 하기 위해 바이크를 몰았다.
‘지금 업데이트 중이라 너희 부를 일 없을 거야,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