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9)
영의는 혼란에 빠졌으나 이내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자, 생각을 해 보자. 최영의, 넌 그래 보여도 고등학교는 졸업한 놈이야! 논리적 사고를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 참새는 짹짹, 병아리는 삐약삐약, 고등어는 고등고등! 이 뒤에도 들어갈 연관성 있는 단어가 있겠지!
짜장 넷! 탕수육 대! 그리고 다음은!
“……짬뽕인가?”
유감스럽게도 그의 고등학교 성적은 7, 7, 7등급으로 우스갯소리로 슬롯머신 전형이나 로또 전형으로 대학 가겠다고 말하곤 했었다.
젠장, 공부 좀 해 둘걸!
영의는 그렇게 중국집으로 들어가며 마음속으로 욕을 했고, 일단은 음식이 나올 때까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
“사장님, 여기 짜장 곱빼기로 넷…… 아니지, 불면 안 되니까 간짜장으로 해 주시고요, 탕수육 대 자 포장해 주세요.”
“어이쿠, 큰손이네! 가족들이 배달해 먹는 건가?”
“글쎄요, 아무튼 일단 그렇게 주세요.”
영의는 사장에게 그렇게 말했고, 주방에 주문이 들어가 안에서 반죽을 치대고 있을 때(수타 짜장집이었다) 카운터에 있는 메모지와 펜을 발견하고는 사장에게 물어보았다.
“사장님, 여기 메모지랑 펜 좀 빌려 써도 되나요?”
“어? 그래, 뭐 누가 그림이라도 그려 달라 하디?”
종종 배달 요청에 그런 기행을 요청하는 이들이 있었으나 지금 배달한 손님은 기상천외한 기행을 하는 이였지 요청하는 이가 아니었다.
“……아뇨.”
영의는 그렇게 메모지에 글을 써 내리고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짜장 넷, 탕수육 대, 짬뽕? 콜라? 만두? 팔보채인가?]
그렇게 몇몇 단어들을 나열해 두고는 고민하기 시작하는 영의.
아…… 뭐지? 진짜? 그냥 콜라나 가져가? 근데 가져가면 컵은? 아니지, 솔직히 영감님 혼자 먹을 건데 컵은 필요 없지 않나…….
영의가 그렇게 고민하고 있자 뒤에서 스윽 다가와 메모를 보는 중국집 사장.
“뭐야, 이게?”
영의는 그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으나 이내 솔직히 털어놓고 조언을 구해 보기로 했다. 물론, 진짜 솔직히는 안 되겠지만.
“주문이 들어왔는데, 이거에 어울릴 만한 게 뭐가 있을까요? 추천해 가지고 갖다 달라던데.”
“음…… 가족 단위 주문인가?”
“아뇨, 전에 배달해 봤는데 어떤 할아버지예요.”
거짓말은 안 했다. 추천해 달라 하긴 했지만 그건 영의가 사장에게 받는 것이고, 번개 뿜고 사람을 휙 집어 던지는 무공 고수 할아버지도 일단은 할아버지 아닌가.
“그럼 술이지.”
“……술요?”
중국집 사장의 말에 영의는 그제야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것처럼(물론 진짜 몸 안에 전기가 흐르긴 하지만) 깨달음이 왔다.
무협 하면 맨날 뭘 하겠나, 객잔에서 술 먹다 싸우고, 길 가다가 싸우고, 싸우고 이기면 술 먹고, 차는 가끔 나오긴 하는데 술이 더 자주 나오지 않나! 소홍주, 백주, 청주, 여아홍이니 뭐니!
그렇게 영의는 벌떡 일어나 사장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래, 술 있죠? 고량주나 중국 술 같은 거. 가능하면 고급진 거!”
이 중국집은 배달업은 안 하지만 가게 장사로 매출을 찍는 가게였기에 식사가 잦았고, 그 때문에 술도 제법 구비가 되어 있었다.
물론 포장 손님도 받기에 포장용기는 있었고, 영의는 그 덕을 보고 있었다. 물론 포장 안 되는 집에는 반환용 그릇을 쓰기는 하지만.
“어어, 그래. 있긴 하지. 근데 가격대가 좀…….”
“제일 비싼 거! 아니, 그건 좀 아니고. 싸구려는 아닌데, 맛 좋은 거요!”
영의의 말에 주인은 유리병을 가져다주었고, 술 같은 건 잘 모르는 영의는 일단 받아 들었다.
“그게 금룡고량주라고, 나름 괜찮어. 내 개인적으론 그게 제일이야.”
“……뭐, 괜찮을 것 같네요. 네 병 주세요.”
“그렇게 많이?”
“……술 많이 드시거든요.”
그렇게 영의는 처음 주문과 상당히 달라진 네 개의 간짜장 곱빼기와 탕수육 대 자, 그리고 고량주 네 병을 보온 박스에 싣고는 바로 날아올랐다.
‘주문받은 것보다 더 고급지게 구성했으니까, 보상도 더 잘 챙겨 주겠지?’
영의는 들떠서 빠른 속도로 바이크를 몰았고, 자동 주행을 켜자 지난번처럼 구름 속으로 바이크가 질주했다.
“그래, 이거지! 이번엔 뭘 주려나!”
지난번에 본 보상 강화 창은 새까맣게 잊은 채, 영의는 신이 나 바이크를 몰았다.
한편, 동굴 안에서 엄청난 내적 갈등을 하고 있던 독고휘.
그는 지금 수중의 오백년하수오를 팔아 그 돈으로 숙수를 고용해 요리를 만들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흐으음…… 본좌 체면이 있지, 뇌섬문의 아이들에게 돌아가기는 좀 그렇고, 정말로 이 하수오를 팔아야 한단 말인가?’
이 오백년하수오는 독고휘로서도 평생 살아오며 몇 번 본 적 없는 엄청난 영초였다.
무림의 전설 중에 천 년짜리 삼이나 석균 등을 찾았단 이야기는 있었으나 그 정도 급의 영약은 눈앞의 이것이 유일한 실물이었던 것.
독고휘가 그렇게 일생일대의 엄청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기감에 무언가 걸렸다.
‘이…… 이 기는! 뇌기다! 그리고 이 속도는……! 뇌령조구나! 옳거니, 녀석의 내단을 팔면 되겠군!’
지난번 영의가 왔다 간 것을 신선이라 판단했고, 또 영의의 몸에 남은 독고휘의 내기도 사라지고 지금은 영의의 몸 자체에서 나온 뇌기가 몸 안을 순환하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독고휘는 지금 접근하는 게 영의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뇌기를 지닌 영물인 뇌령조라 판단하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바이크를 타고 다시 산자락으로 내려오기 시작한 영의는 아래에서 날아 올라오기 시작한 작은 물체를 보았고, 이내 그것이 사람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
“하하하!! 본좌에게 내단을 내놓……. 신선님?!”
“……번개 쏘는 영감님?”
독고휘는 당황하여 그대로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영의는 그 광경을 보자 당황해 일단 밑으로 내려갔다.
‘허어…… 다시 내게 오신 건가, 이번엔 또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독고휘는 땅으로 떨어지며 그렇게 생각했고, 이내 바닥으로 떨어지는 자신보다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흰 구름(?)을 탄 신선(?)이 보였다.
“허허…… 참으로 빠르구나. 뇌령조도 저것보단 빠르지 못할 것이야…….”
독고휘는 느긋한 태도로 팔다리도 움직이지 않은 채 안방에 누운 것처럼 대자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 광경을 본 영의는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미친 소리 하지 말고, 착지라도 잘해 보든가, 잡아요!”
그러나 여전히 대자로 떨어지는 독고휘. 영의는 속도를 높여 독고휘에게 다가가 차마 머리나 목을 잡을 순 없으니 옷을 잡았다.
그렇게 독고휘가 떨어지기 전에 어떻게든 멱살을 잡아낸 영의.
이내 각성자 특유의 강화된 몸의 힘으로 그를 바이크 위에 대충 걸치고는 땅에 착륙했다.
“허허허…… 내 평생에 구름도 타 보고……. 참으로 진귀한 체험을 많이 해 봅니다, 신선님…….”
‘이 미친 영감님이 진짜 미쳤나……? 미쳐서 지난번에 그 약초 먹은 건 아니겠지? 아니지, 그걸 먹어서 미친 건가……?’
영의는 갑자기 자신에게 공손하게 포권까지 하는 독고휘를 보자 미친 게 아닐까 의심했다.
“……아무튼, 이번에도 배달 왔어요. 짜장 넷에, 탕수육 대 하나, 그리고 술까지. 그보다, 혼자 이걸 다 먹을 수 있기는 한가……?”
그렇게 보온 상자에서 음식들을 꺼내는 영의. 독고휘는 그 광경에 일단 입에서 침부터 배어 나왔다.
“오, 오오오……! 신선님, 또 이 요리들을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신선 아닌데요.”
“아아, 구름을 타고 다니고, 이런 극락의 맛을 보여 주는 요리를 내어 주시는데, 어찌 신선이 아니겠습니까!”
아, 안 되겠다. 이 영감님, 옛날 사람이라 반쯤 미쳤어…….
“아니, 신선이 아니라 그냥……. 그래, 그냥 신기한 도구라니까요. 됐고, 음식이나 받으세요.”
“네, 그래야지요! 신선님이 아니면 누가 저런 신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겠습니까! 근데, 오늘은 좀…… 많이 들고 오셨습니다?”
독고휘의 말에 영의는 의문이 들었다. 저 정도를 다 먹을 수 있었으면 많다고는 안 할 텐데?
“……많이 먹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요?”
“예? 아니, 아닙니다. 전 지난번에 먹은 정도가 좋습니다. 대식가는 아니라서…….”
“그럼, 나머지는 제가 가져가거나 먹으면…….”
영의도 마침 식사 때가 가까웠고, 어차피 자기 돈으로 사 온 거니 먹어도 별문제 없지 않겠나 싶어 말을 꺼냈지만 독고휘의 반응은 격렬했다.
“아, 아닙니다! 전 대식가입니다! 한창때는 한 기루의 식재료를 다 털어 버린 적도 있지요! 그냥 두십시오! 제가 다 먹겠습니다!”
짜장면을 지키려는 듯 그릇을 품에 껴안는 독고휘. 나이 먹고 저러고 싶을까 싶어 안쓰러워진 영의였지만 저렇게 해서 보상을 더 준다면 바랄 게 없다 싶어 일단 내버려 두었다.
“자, 오늘 건 간짜장이라고, 저번이랑 다르게 짜장이 따로 있어요. 보이죠?”
“오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엔 따로 담기지 않았지요.”
설명을 하려던 영의는 계속되는 독고휘의 존대에 좀 불편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겉모습이 백발노인인데 자꾸 존대를 받자니…… 유교 국가 출신의 양심이 조금 찔렸다.
“……존대는 안 해도 됩니다.”
“하지만, 예의와 존경이라는 게…….”
“아니, 그냥…… 하지 마요. 불편하니까. 그냥, 동네 청년이랑 친하게 지내는 할아버지로 대해 줘요. 전, 그냥 옆집 사는 청년이고, 물론 뭐 이것저것 배우긴 했지만 아무튼, 그런 청년이고. 어르신은…… 그냥, 나이 먹고 동네 애들 뛰어다니는 거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 사는 노인인 거로 합시다.”
독고휘는 그 말에 일단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다.
“그…… 그리하도록 하지……요?”
그러나 끝에 소심하게 말을 높였고, 영의는 이내 짜증이 났다.
“아, 아니! 저 신선이고 뭐고 아니라니까요? 그냥 말 낮춰요! 처음에 봤을 때처럼!”
“처음 봤을 때처럼……?”
“네! 무공 한 자락 배우겠다고 찾아온 젊은 놈 대하듯이! 뭐 사실 크게 다른 것도 없지만! 물론 뭐 배우긴 했지만서도!”
영의의 지속되는 말에 독고휘는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신선이 아닌 건가?”
“네!”
“그럼 그 구름은?”
“구름 아니고 그냥 하늘 나는 다른 거고요! 어검비행이라 생각하시고!”
“그럼 요리는?”
“……그건, 제가 가져오는 게 맞긴 한데.”
이내 독고휘는 눈을 감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신선은 아니다.
그런데 하늘은 날고, 물론 저것도 특별한 기물이겠지. 그리고 극락의 맛을 보여 주는 음식도 들고 온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독고휘. 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그럼 그냥 손님 대하듯 하겠네.”
난 모르겠다, 그냥 청년이 하자는 대로 하자.
언뜻 보면 무책임한 결론이지만 생각보다 현명한 결론이었다.
“뭐, 좋아요. 그럼 일단 드시죠.”
지난번처럼 먹어야 보상을 받을 것 같아 영의는 독고휘가 식사하기를 기다렸고, 독고휘도 기다렸다는 듯 젓가락을 들어 올렸지만…… 젓가락이 움직이지 않았다.
“……?”
“……뭔가 조화를 부렸나? 이번에도 몸이 움직이지를…….”
그때, 동굴 밖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독고 형님! 형님 계시우? 방금 누군가 하늘을 나는 걸 보았는데! 혹시 형님이었수?”
……새로운 손님이 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