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8)
텅 빈 체육관 안에 어떠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펑-
펑- 퍽- 쩌억!
보통 때는 턱턱거리는 소음을 내던 샌드백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지금 그 샌드백을 치고 있는 사람은 영의.
그는 팔다리를 모두 사용하여 샌드백을 치고 있었고, 심지어는 정면에서 날린 샌드백을 날아가기 전에 뒤로 돌아가 다시 쳐 내는 묘기까지 보이고 있었다.
“후우…… 확실히, 몸이 좋아지긴 했어.”
영의가 정말 부모님께 사실만 전해 드리고 동생의 입을 막고 끝내려 했다면 전화로 용건부터 전해도 됐을 터.
직접 집까지 온 건 나름의 효심도 있었지만 체육관에서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샌드백을 치다가 멈추고, 이제는 바닥에 주저앉아 독고휘가 자신에게 해 준 뇌력증폭을 시도해 보는 영의. 그는 눈을 감고 최대한 감각을 집중했다.
‘혈관을 느끼듯이…… 나는 지금 심장을 느끼고 있다……. 난 심장을 느낀다…….’
자신에게 되뇌며 심장에 감각을 집중하는 영의. 그러자 영의는 심장 부근에서 묘한 기분을 느꼈다.
‘됐다. 그럼 이걸 그때 했던 것처럼…….’
독고휘가 자신의 몸을 뇌전지체로 완전히 각성시킬 때처럼 체내에 뇌기를 조금씩 퍼트리고 동시에 증폭시키는 영의.
그의 몸 안에서 나오는 미세한 전류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거다. 이 느낌이야.’
독고휘가 주입해 준 뇌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으나 영의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몸 안에 돌아다니는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친숙한 기운을.
그리고 영의는 자신의 몸 안에서 뇌기가 알아서 도는 것이 느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샌드백 앞으로 갔다.
‘……가볍게 한번.’
영의는 잽보다는 무거워도 힘을 넣지는 않은 그런 펀치를 시험 삼아 샌드백에 날려 봤지만, 샌드백이 받은 충격은 가볍지 않았다.
뻐-억!
영의가 전력으로 쳤을 때나 가끔 나올 법한 소리를 내며 뒤로 격하게 날아가는 샌드백.
물론 천장에 제대로 매달려 있으니 날아가진 않았지만 때려서 날렸다기엔 너무 멀리 밀려났다.
“……뭐야?”
영의는 달라진 자신의 몸에 당황했으나, 이내 신이 나서 샌드백을 이리저리 치기 시작했다.
물론 날아가지 않게 한번 때리고 반대 방향으로 옮겨 다시 때리며 샌드백을 제자리에 두면서 사방에서 때리는 묘기를 부리다가…….
퍽! 푸스스-
쏴아아아아악-
“어……?”
그만 샌드백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옆구리가 터진 채 바닥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모래와 자갈.
영의네 체육관에서 쓰는 샌드백은 시중에 파는 완충재가 든 것이 아닌, 아버지가 단련용으로 직접 만든 것으로, 사람의 몸을 때릴 때 뼈를 안 때릴 수는 없는 법이라며 뼈를 재현한답시고 자갈까지 조금씩 섞어 넣었었다.
물론 진짜로 이렇게 만든 걸 섣불리 쓰다가는 뼈나 피부 상하기 딱 좋으니 체육관에 등록한 사람들에게는 항상 주의를 주었다.
글러브 끼고 때려야 하는 위험한 백이니 조심하라고. 그리고 초보자용은 시중에 파는 가벼운 펀칭백으로 마련해 뒀다.
그리고 그때, 체육관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고, 영의는 당황해서 일단 샌드백을 몸으로 가렸다.
“뭐야, 오빠 있네? 또 샌드백 치고 있어?”
“어…… 그게…… 미안, 샌드백 터졌다…….”
영의는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으나 동생인 수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알겠어. 그거 아빠가 낡을 만큼 낡았으니까 조만간 제대로 샌드백 터트리는 거 보여 준다고 했는데, 오빠가 터트렸네.”
원래부터 낡은 게 많은 체육관이긴 했지만, 터질 정도로 약한 샌드백은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영의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바닥에 쏟아지기 시작한 모래를 대충 수습했다. 그리고 그것을 도와 정리를 하는 수연.
그렇게 둘이 한 15분 정도 땀을 흘리자 자잘한 모래 빼고는 대충 정리된 상황.
“그럼, 간만에 한판?”
“……나쁘지 않지.”
영의네 집안은 어릴 때부터 남매를 격투가로 키웠고, 덕분에 첫째는 상도 많이 탔지만 둘째가 성인이 되려 할 무렵 세상에 각성자가 나타나기 시작해 둘째는 결국 일반인처럼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영의와 동생 수연은 각성자였으며, 배달에 재능이 있는 영의와는 달리 수연은 가속 능력을 각성해 집안의 희망이 되었다.
“마력 없이?”
“마력 없이. 단, 위험하다 싶으면 보호용으로 사용하고.”
수연의 차림은 유도나 공수도에서 쓰는 도복 차림이었다. 영의는 가볍게 러닝셔츠에 반바지를 입었으니 둘 다 대련하기에 나쁘지는 않은 복장.
“링은?”
“안 쓰고. 꺾기나 조르기 없고.”
“승리 방식은?”
영의의 질문에 여동생, 수연은 씨익 웃었다. 마치 누군가 보면 비열한 악당의 웃음이라고 할 법한 웃음.
“늘 그렇듯이, 죽일 수 있는 쪽이 이기는 거지.”
“……다 좋은데 그 표정만 어떻게 해 봐라…….”
“그럼 시작!”
수연은 곧바로 소리치며 시작하자마자 영의의 급소를 향해 발 차기를 날렸다.
영의네 집안에서는 못 배울 격투기가 없었지만, 대부분은 대회나 그런 데서 쓸 법한 기술이 아니라 정말로 조상 중에 산에서 살던 분들이 단련하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들이 대대로 이어져 내려와 현재는 대부분이 경기 규칙상 반칙에 해당하는 기술인 것.
“쯧, 맨날 급소부터 시작하네.”
“오빠도 쳐 보든가!”
동생, 수연은 가속이라는 강화 계열 각성자이면서 동시에 마력 출력이 5천을 넘기는 A급 각성자였다.
지금은 마력을 사용하지 않지만 A급답게 엄청난 신체 능력을 선보이며 현란하게 영의를 공격해 나가는 수연.
“흡, 훗. 하! 오빠, 언제까지 막기만 할 거야?”
“…….”
영의는 모든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넘기거나 막고, 때로는 물러서며 수비적인 태도로 나왔다.
‘……모든 게 보인다. 그리고, 몸도 그걸 따라가고 있어. 마약을 하면 이런 기분이려나……?’
영의의 눈에 여동생 수연의 공격은 전부 느려 보였다. 마치 사부가 제자에게 기초 식을 알려 주고 자세를 지도하는 듯 정확하지만 느긋한 움직임.
영의는 그 모든 움직임을 보는 것뿐 아니라 몸의 반응과 움직임도 그 느린 세상과 하나 되어 움직였다.
‘……정말로, 뭔가 강해지게 됐구나.’
“으아아아!! 왜 이렇게 안 맞아!”
동생, 수연은 모든 공격이 다 실패로 돌아가거나 회피로 끝나자 화가 난 듯 공격의 템포를 더욱 높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일반인은 잘 못 볼 정도로 빠른 공격이었는데 지금은 정말로 주먹이 안 보일 정도로 공격하는 수연.
‘하나, 둘. 하나, 둘, 셋. 지금, 피하고. 호흡이 끊길 때. 지금이다!’
영의는 그 공격들도 차분히 받아넘기고 공격 템포를 올리느라 불안정해진 수연의 빈틈을 찔러 손을 뻗었고, 수연은 그 공격에 당황하여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영의의 목을 향해 손을 찔러 넣었다.
“아직 멀었어. 꼬맹아.”
영의는 그렇게 한 팔로 수연의 도복 옷깃을 붙잡았고, 수연의 손이 채 닿기도 전에 영의는 몸을 회전시키며 그대로 수연을 집어 던져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터-엉!
“아야! 아…… 아퍼…….”
“오빠한테 대드니까 그렇게 된 거야.”
그래도 가족이니만큼 전력으로 던지지 않고 나름 엉덩방아만 찧도록 마지막에 힘을 빼며 붙잡아 준 영의.
탄성 있는 바닥에 엉덩이를 부딪친 수연은 그래도 아프다는 소리를 내뱉었다.
“아, 치사해! 그보다, 난 왜 A급인데 오빠를 못 이기는 건데! 큰오빠도 둘째 오빠도 다 마력 없이 싸우면 이겼는데!”
“그게 재능이지. 억울하면 좀 더 수련하거라. 그리고, 엄살 피우지 마. A급 강화 계열이 바닥에 좀 넘어진 정도로 아프면 세상 사람 다 병원 가겠다.”
“씨…… 마력 없이 해서 진짜 아프다고.”
“그러니까 보호할 때 마력을 올리라니까? 넌 그게 문제야. 상황이 갑자기 다르게 흘러가면 잠깐 멈추는 버릇. 싸울 때는 어떻게 한다고? 일단…….”
영의는 수연에게 그렇게 말했고, 수연은 영의의 말에 맞췄다.
“일단 때리고 생각해라. 이기고 나면 상황은 대충 정리된다.”
원래는 죽이고 생각하라는 내용이었지만 현대로 들어서며 조금 바뀐 내용. 그것이 그들 집안에 내려오는 가훈……까진 아니고 일종의 가르침이었다.
“자, 들어가자. 샌드백 터졌다고 말해야지.”
“……알았어. 그보다 오빠, 마력 안 썼지?”
“어, 안 썼어. 왜?”
“아니, 그냥…… 움직임이 엄청 빠른 것 같아서. 예측해서 움직인 게 아니라 보고 움직이는 게 한 2배속 정도 되는 느낌이었어.”
영의는 수연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나도 마력은 안 썼는데……? 이거, 마력이 아니라 몸 그 자체에 적용되는 건가? 동체 시력이나 반사 신경이 올라가는 건 그렇다 쳐도, 움직임도 빨라진다고?’
영의는 그렇게 마음속에 의문 하나를 품은 채 집에 들어갔고, 샌드백을 이미 터트려 먹었다는 말에 아버지는 좌절했다.
“그거 터트리는 모습으로 회원을 늘리려고 했는데…….”
……뭐, 그래도 이미 터진 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다음 날, 영의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와 배달 회사로 갔다.
음식 배달 회사가 아닌 일반 물류 회사였으나 각성자 사회가 시작되자 위험해진 배달 업무를 월급 받으며 하겠단 사람들이 생기자 물류 회사가 배달업에도 손을 댄 것.
그리고 진수는 음식 배달 부서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평소에도 있던 여직원이 보였다. 고객 상담원이라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냥 커피 타는 직원 1 정도.
대부분이 각성자인 특급 배달원에게 따질 민간인도 별로 없었고, 다 목숨 걸고 하는 일이란 걸 알기에 어지간해선 불만을 잘 안 했었다.
영의 정도나 엄청난 속도로 날고 팀장 직책으로 보호 헬멧이 있는 거지, 보통은 마정석 바이크만 있어도 감지덕지요, 일반 바이크에 휴대폰으로 배달하는 옛 방식인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팀장인 영의는 나름 윗선에도 발언을 할 수 있었다. 지금 회사의 최고 마케팅 방침이 전국 최소 15분 배달 보장이었는데, 영의 말고는 그 시간을 찍은 사람이 없었던 것.
“어머, 영의 씨 아니야? 사고 났었다며?”
물론 영의는 지금 헬멧을 쓰고 있다. 그래도 알아보는 이유는 이 시간에 짐 없이 여길 들어올 배달부가 없기 때문.
“네, 오늘부터 다시 일하려고요.”
“영의 씨면 그냥 전화로 말해도 되잖아?”
“예…… 뭐, 그렇긴 한데. 제가 사고 난 뒤에 검진 좀 받았는데, 이거 보험 처리되나 물어보려고요.”
“응? 검진? 아아, 후유증 같은 거?”
후유증이라기엔 너무 좋고 만족스러웠지만 일단은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네, 그래도 번개를 맞은 거니까 검사는 해 봐야죠.”
“음…… 알겠어. 부장님 안 계시니까 오시면 나중에 말해 둘게.”
“……네.”
부장이 있었다면 당분간 쉬면 안 되겠냐는 말을 하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독고휘에게 가려면 배달을 해야 했다.
어제 맛본 자신의 능력은 문손잡이를 잡던 정전기에 다 날아가 버렸고, 이제 다시 처음부터 몸 안에 뇌기를 쌓고 있는 영의.
그는 몸 밖으로 뇌기가 안 나가게 컨트롤하는 법을 밤새 연습했다.
“오, 영의 형이다.”
“행님! 여긴 으쩐 일로 오셨서예?”
건물의 1층, 바이크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자 영의를 알아본 몇몇 배달부들이 그를 반겼다.
“어, 오랜만이다. 다들 나 사고 나 있는 동안 땜빵해 줘서 고맙다, 얘들아.”
“아임더, 행님이나 몸 건강하믄 됐지예.”
“역시 형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지만 몸 하나는 대단해. 차에 치여도 안 죽는 거 아냐?”
빨간 헬멧의 배달부가 그렇게 말하자 영의의 것처럼 은색 헬멧을 쓴 배달부가 소리쳤다.
“이 자슥이! 그런 말 하면 진짜 치이는 거 아나 모르나! 니 그거 그 뭐냐…… 그 프라그다!”
“플래그겠지.”
“그기나 이기나! 똑같제! 말만 통하믄 된다 아임까, 행님.”
“뭐, 그렇긴 하지. 그래서 말인데…….”
영의가 뭔가 말하려던 그때, 시야의 구석에 알림 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잠깐, 배달 주문 왔다. 나 간다!”
그렇게 영의는 곧바로 바이크에 올라타 날아가기 시작했고, 영의와 친한 듯 보이는 두 배달원은 벙 쪄 있었다.
“……니 뭐 배달 요청 온 거 있나?”
“……없는데? 넌?”
둘 다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지만 배달 요청은 없었다.
“내 있으면 니한테 안 물었제. 행님 와 저래 갑자기 가노? 행님 쉬는 동안 그 주문 우리한테 온다 아이가?”
빨간 헬멧과 은색 헬멧은 그렇게 영의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눴다.
“……몰라, 병민아. 아까 건물에서 나오시던데, 이제 다시 특급은 형이 담당하나 보지.”
“아…… 수수료 윽수로 좋았는데. 내 그 며칠 대리 뛰고 집에 컴퓨타 새로 하나 장만했다 아이가. 병찬이 니도 그걸로 뭐 했다매?”
“……주식.”
“……을마 벌었는데?”
그러나 병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
“뭔 일인지 알았다, 내 말 안 하께.”
그렇게 병찬과 병민, 병병 브라더스는 배달 주문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한편, 영의는 공중을 날며 주문을 확인했다.
[새로운 주문이 있습니다.]
“좋아, 좋아! 이번엔 뭐로! 팔보채? 유산슬?”
영의는 기대를 가득 담아 그렇게 알림 창을 확인하였고, 알림 창에는 생각과는 다른 알림이 떠 있었다.
[주문인 : 독고휘]
[배달 물품 : 짜장면 곱빼기 4, 탕수육 (대), ???]
……이 영감, 미친 건가……? 혼자 네 그릇……? 탕수육 대 자에, 그리고 뒤에 건 뭐지……?
영의는 혼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