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4)
영의는 동굴 바닥에서 눈을 떴다. 물론 마른 풀이 깔려 있긴 했지만 습기 찬 바닥은 맨바닥이랑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오오, 눈을 떴군그래. 기다리는 동안 음식은 다 먹었네. 아주 맛있더군!”
독고휘는 사실 내심 집어 던진 게 미안해서 음식에는 손을 안 대려 했지만 탕수육은 고기 조각이 많아서 나름 괜찮아 보였고, 한 조각을 집어 먹고 난 다음엔 의식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춘장도 젓가락 끝으로 삭삭 긁어 먹고 있었던 것. 고기튀김은 많이 먹어 봤지만 이렇게 바삭하고 또 소스와의 조화를 완벽히 이루는 것은 처음 먹어 본 독고휘였다.
또 짜장은 어떤가. 겉보기엔 검고 거부감이 들었지만 춘장을 입에 넣으면 달짝한 맛이 있고 면과의 조화를 완벽히 이루어 준다. 또 국물이 있는 일반적 면 요리완 다른 그 느낌이 독고휘는 마음에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먹긴 했지만 그 맛만큼은 지금 그의 혀와 목구멍, 그리고 위장이 기억하고 있는 것.
“으…… 헬멧, 없었나……. 그럼 내가 본 건 뭐지……?”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독고휘가 제지했다.
“움직이지 말게. 비록 내가 내력을 주입하고 자네의 기맥을 조금 손보긴 했지만 그래도 머리를 부딪쳤을 땐 조심해야 하네.”
“뭘 해요……? 아, 나 가 봐야 하는데…….”
영의는 그렇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고, 그가 생각했던 움직임과 실제 그의 몸이 행한 움직임은 큰 차이가 있었다. 그저 누운 상태에서 반동을 줘서 앉을 생각이었는데 그 반동이 너무 강해 그대로 앞으로 엎어지고 만 것. 영의는 다시 한번 머리에 전해지는 고통을 느꼈다. 물론 아까완 달리 앞으로.
“허어…… 효과가 상당하군! 자네, 혹시 살면서 번개를 맞은 적 있나? 아니면, 혹시 번개를 뿜는 영물이라도 만난 적이……?”
영의는 쓰러졌다 깨어난 것도 있고, 방금 막 머리를 다시 박아서 정신이 혼미해 무의식적으로 대답해 주고 말았다.
“며칠 전에…… 번개 맞고 살아났는데…….”
“오오! 과연, 어쩐지 자네의 몸에 묘하게 뇌기가 서려 있더라니! 사실 처음엔 그냥 머리를 박고 쓰러진 거니 몸에 이상이 없는지만 확인하려 했거늘, 뇌기가 느껴지기에 어찌나 놀랐는지!”
영의는 독고휘의 말을 듣자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뭐? 내 몸에 뇌기? 전기가 흐른다고? 아니, 그 이전에. 내 몸이 왜 내 몸이 아닌 것 같지?
독고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내력을 넣어 줄 생각은 없었네만, 자네가 가져온 음식을 먹으니 갑자기 마음속에서 자네에게 뭐라도 줘야 한단 생각이 올라오더군. 그래서, 내가 내력을 좀 불어 넣어 줬네. 무공을 배우면 좋겠지만, 안 배워도 평생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 게야! 하하!”
영의는 자신의 몸이 변화한 게 눈앞의 영감이 무언가 했구나 싶은 생각을 했지만 다른 한마디가 신경이 쓰였다.
“……먹었어요?”
“음, 맛있었네. 내 평생 살며 먹은 것 중 최고야.”
“아니, 그걸 홀라당 먹으면 어떡해요! 아 영감님 진짜! 다친 거 보살펴 준 건 감사한데……. 아니지, 다친 것도 영감님이 나 집어 던져서 그런 거잖아요!”
응? 잠깐, 저 영감, 분명 한 손으로 날 잡아서 던졌다고? 무슨 합기도나 유술 달인이야?
“잠깐만요, 영감님. 무슨 능력 각성자세요? 신체 강화랑 속성 계열은 같이 발현 안 될 텐데.”
가끔 두 개의 능력을 발휘하는 각성자들이 있긴 했지만, 육체 강화와 육체 가속, 화 속성과 수 속성처럼 같은 계열에서만 발동이 됐다. 원래 두 개에 적성이 있었으나, 하나만 쓰다가 나중에 다른 하나가 제대로 발현이 되며 두 개가 된다는 게 학계의 연구 결과였다.
“각성이라니? 난 그런 거 모르네만. 그보다, 나는 자네가 더 궁금하네. 어떻게 이곳에 왔는가? 그리고, 자네의 것으로 보여 가지고 오기는 했는데, 저 기물은 도대체…….”
영의는 뒤를 돌아보았고, 동굴의 입구쯤에 그의 마정석 바이크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작동되지 않는 지도 불러오기, 정신 나간 영감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도 강화된 자신의 몸…….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뭔진 몰라도 이상한 곳에 배달을 온 것 같다고. 영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급히 외쳤다.
“알림 확인! 배달 확인!”
자리에서 일어서서 느닷없이 무슨 확인을 외쳐 대는 영의를 보자 독고휘는 머리를 잘못 박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 머리에 내력을 좀 더 주입시켜 줘야 하나 생각했지만 그랬다간 더 미쳐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아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알림이 없습니다.]
[배달 : 독고휘에게 배달이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보상을 받으십시오.]
영의는 자신의 눈앞에 떠 있는 디스플레이를 보며 머리를 만졌고, 거기엔 헬멧 대신 자신의 머리카락이 만져졌다. 그리고 눈앞에다 손을 흔들어 봐도 디스플레이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러다 배달 칸에 손이 닿자 새로운 창이 열렸다.
[손님 독고휘가 음식에 만족하였습니다. 보상을 받으면 돌아갑니다.]
엄지를 치켜든 따봉 표시와 함께 배달 완료라는 글자가 적힌 화면이 나왔다. 영의는 그것을 보며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뭐지?! 드디어 미친 건가? 아니지, 그래도 그 경로대로 바이크는 제대로 움직였는데? 그 이전에, 헬멧이 없는데도 디스플레이가 뜨고 배달 주문이 들어온다고?
“경로…… 바이크…… 주문…….”
그렇게 머리를 만지다 눈앞에 손을 흔들다 이젠 제자리에서 중얼대기 시작한 영의를 보며 독고휘는 이젠 진짜로 잘못된 것 같다고 생각해 영의를 말리려 했다.
“이, 이보게 젊은이. 내가 말했지 않은가. 머리를 다쳤을 때 움직이면 안 된다고. 내 용한 돌팔이…… 아, 아니. 의원을 알고 있으니 함께 가 보세. 그래 보여도 세상에서 신의라고 불리는 녀석이니 자네 머리정도는 고쳐 줄 게야.”
독고휘는 그렇게 말하며 영의를 데려다가 동굴 밖으로 나서려 했고, 영의는 독고휘의 손을 거절하고 말했다.
“영감님, 보상요.”
“응? 보, 보상? 무슨 보상?”
“배달비랑 음식값요. 주셔야죠?”
영의의 말에 독고휘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본좌의 내력…… 아니지, 무공에 대한 가르침 한 줄이라도 받으려고 금을 산처럼 쌓아서 들고 오는 이들이 널렸거늘, 너는 본좌의 내력까지 받았으면서 무슨 욕심을 그리……!”
“아, 내력 그건 저 다치게 해 가지고 한 거니까 음식에 대한 보상은 아니죠. 그리고, 보상 안 받으면 저 못 돌아가요.”
“허어……! 욕심이 끝이 없도다!”
독고휘는 내력까지 받았으면서 끝까지 돈을 달라고 하는 영의가 괘씸해서 쫓아내기 위해 내력을 담아 소리치려 했다.
어디 물에 빠진 사람 건져 놨더니…….
“갈! 사람이 응당 받은 게 있으면 갚아야 하거늘!”
응? 어, 이, 이 말이 아닌데?
“본좌는 그런 것을 잊는 사내가 아니다! 그리 쪼잔하게 살 것이었으면, 본좌는 진작 뗄 거 떼고 황궁에서 동창 놈들이랑 부대끼며 놀고 있었겠지!”
아, 아니야. 아직 정정하다고! 안 떼어도 된다! 왜 말이 마음과 다르게 나오는 거지?!
“그래, 무엇으로 주면 되겠느냐! 본좌의 독문무공? 아니면, 오백년하수오로 받겠느냐?”
내, 내가 왜 이러지? 사술인가? 한때 마교의 명왕심판지옥진에서도 정신을 유지했거늘!
“오, 그럼 뭘로 받지……?”
영의는 저 검이나 보진 못했지만 영초를 가져다가 옥션에 올리면 돈 좀 받겠다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때 알림 창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보상 : 심법 또는 영약 추천]
영의는 갑작스럽게 시야 구석에 뜬 알림 창에 의문을 품었으나 소싯적에 무협지 좀 읽어 본 경험으로는 확실히 이쪽이 낫겠다 싶었다.
“영감님, 심법이나 무공 같은 거로 안 돼요?”
독고휘는 안 된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건 안 된다, 차라리 저 오백년하수오를 주겠다, 무공을 한 끼 식사랑 바꾸다니, 아무리 맛이 좋았어도 그건 좀 아니지 않은가,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의 입은 다른 말을 내뱉었다.
“음! 무엇이든 가르쳐 주지! 단, 하나뿐일세!”
그래도 하나로 제한을 걸어서 다행이긴 한데…… 설마, 본좌의 최상승절학인 천지양단 벽력검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건……?
“어…… 근데 제가 뭘 모르는데, 추천할 만한 게 뭐가 있죠?”
영의는 무림인도 아니었고, 무협지도 재미로 읽은 것이지 심혈을 기울여 읽진 않아 상세한 걸 몰랐다. 독고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냥 기초 토납법이나 좀 가르쳐 주고 말아야겠다 생각하고는 시중에 나도는 것보다는 좋지만 상승무공이라기엔 좀 그런 심법을 말해 주려 했다.
“자, 뇌섬문의 심법인 뇌령(雷領)심법을 가르쳐 주고 싶으나, 이미 자네는 몸에 뇌기가 깃들어 있고, 단전을 만들기엔 여건이 영 좋지 못하니 본좌가 말년에 창안한 뇌격공을 전수해 주겠네.”
뭐, 뭐야! 그건 나중에 죽기 직전에 비급으로 써 놓고 멋지게 장식해 두고 싶었는데!
“오…… 뭔데요?”
“내가 아까 살펴본 바로는, 자네는 단전은 없지만 몸의 기맥에 내력이 흐르고, 그것이 뇌기를 띠고 있네. 즉, 뇌격공을 쓰는 토대인 뇌전 지체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인 것이야. 본디 뇌전지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닌 뇌기와 관련된 심법이나 영약으로…….”
그렇게 독고휘는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밑천을 털어 주기 시작했고, 영의는 흥미진진하게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자, 요약하자면 뇌기로 하여금 자신을 빠르게 만들어 주고, 모든 공격에 뇌기를 흘려 적을 상하게 하는 무공일세. 초식이나 그런 건 본좌도 아직 만들지 못했네. 뇌전지체는 경지에 이르기 전에 만들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데 난 이미 환골탈태를 이루어서 몸에 뇌기를 깃들게 하려니 몸에서 도로 내보내더군.”
그렇게 말하고는 독고휘는 영의를 잡아다가 뒤로 돌리고 등에 손을 댔다.
“오, 저 이거 알아요. 그 무협에서 많이 나오는데.”
“입을 다물게. 뇌격공은 단전처럼 한 군데에 기운을 담아 두는 게 아닌 항시 순환을 시켜야 하는 것일세. 그렇게 조금씩 순환시키며 기운을 전신 곳곳에 균일하게 분배하다 싸울 때가 되면 속도를 올려 방출하는 것이야.”
“그러니까…… 그, 운기조식이나 그런 건 필요 없다고요?”
“그래, 뇌기는 아아아주 미세하게나마 몸 안에서 생성되니 그것으로 힘이 다 떨어질 일은 없네. 그러나 그것을 순환시키며 증폭시키기 전까지는 약해질 걸세.”
독고휘의 말에 따르면 번개나 뇌기를 쓰는 다른 무공을 맞지 않는 이상 일상에서 뇌기를 얻을 방법은 없기 때문에 체내의 미세한 전기를 몸 안에서 순환시키며 증폭해서 모아 두는 개념이었다.
“이 무공은 대기만성형 무공이네. 지금 자네의 몸으로는 내가 뇌전지체를 깨워 뇌격공을 활성화한다면 어지간한 일류고수 정도는 내력 싸움으로도 이길 수 있을 걸세. 자네의 몸엔 아주 순수한 뇌기가 있으니 말이야. 자연의 기를 받아들여 거기서 다시 뇌기를 쓰는 다른 무공은 미미하게 다른 기가 섞이지만 체내의 뇌기는 정순하기에 아주 강력하지. 자, 그럼 조금 아플 걸세. 몸 안의 모든 곳에 뇌기가 흐르는 느낌은!”
독고휘는 그렇게 영의의 몸에 뇌기를 흘려 몸 안에 뇌기를 순환시키기 시작했고, 영의의 체내에 있던 뇌기가 그에 휘말려 조금씩 몸 안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가 지났을까, 독고휘와 영의는 둘 다 땀에 절어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전과 달리 영의의 몸에선 스파크가 드문드문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 이제 됐네. 지금은 순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탓에 뇌기가 몸 밖으로 분출되지만, 이각(30분) 정도 지나면 금세 가라앉을 게야. 아, 물론 다른 이들과 자주 따끔거리는 일이 일어나겠지. 으아아아!! 안 된다니까! 음……?”
그렇게 마지막 주의 사항까지 다 설명을 하자 독고휘는 마음속에서 나오지 못했던 말들이 드디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때 영의의 시야 구석에서도 알림 창이 움직였다.
[보상 수령 완료! 첫 주문의 혜택이 끝났습니다. 다음 배달부터는 보상이 급감합니다.]
[단, 고객의 재량에 따라 보상이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복귀를 시작합니다. 지정된 경로를 따라 이동해 주세요.]
영의는 그 알림 창을 보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동굴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래, 이만 가 보게. 후우…… 말년에 갑자기 무슨 일인지…….”
독고휘는 괜히 음식 좀 집어 먹었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다 싶어 다음부턴 그냥 벽곡단이나 먹기로 결정했다.
“아, 영감님. 감사했습니다.”
“……그래, 가 보게. 뭐…… 나도 얻은 게 있긴 하니.”
영의는 새로운 각성 능력에 대해 알고 무공도 전수……? 받았고, 독고휘는 뇌전지체에 대한 샘플을 눈앞에서 보았으니 뇌격공을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영의는 인사를 하고는 바이크에 올라타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 모습을 본 독고휘는 놀라고 말았다.
“아니, 사람이 하늘을 날다니! 그것도 저런 것에 올라타서! 허허…… 저것이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구름이란 말인가! 허어…… 어쩌면 신선들께서 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뇌전지체를 보여 주시고, 힘을 내라고 음식도 주고 가셨나 보구먼. 그래, 어쩐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더라니!”
독고휘는 그렇게 뇌격공에 대한 비급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신선이 가르침을 주어서 만든 희대의 신공절학이라는 시작 말을 써 넣으며…….
참고로 마정석 바이크는 야간 비행 시 눈에 띄기 위해 형광색이나 백색을 기본으로 출시된다. 영의의 바이크는 흰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