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3)
영의는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가기 시작한 바이크에서 졸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줬던 약 중에 진통제가 있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졸음이 밀려온 것.
‘아, 자면 안 되는데……. 아니지, 자동 주행 켜 놨으니까 목적지 도착은 알아서 되려나…….’
영의는 그렇게 고민하다 졸음을 못 이겼는지 무심코 잠깐 눈을 감고 말았고, 고개를 떨구다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어우! 아니지. 그래도 자면 안 되지. 사고 난 지 얼마나 됐다고…….”
영의는 그렇게 혼잣말하고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아까 전과는 다른, 산의 것으로 보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자 영의는 내가 졸긴 했나 보다 생각하며 헬멧(물론 안 쓰고 있지만 영의는 그걸 모른다)의 디스플레이를 보았다. 머지않아 목적지에 곧 도착한다고 표기가 되었다.
“어우…… 근데, 여기 어디지? 안개 낀 거 보니까 지리산이나 그쯤 되나? 아니지, 산이 엄청 많은 걸 봐서 강원도쯤인가……?”
자동 주행으로 와서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아, 지도를 켜 보자.
“지도.”
그렇게 음성으로 지도를 불러오려 했다.
[지도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뭐야, 신호가 안 잡히나? 안개 낀 게 이런 거에 영향을 주나?
물론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과가 아닌 영의는 좀 벗어나서 도심이 나올 때까지 어디로든 가다 보면 알아서 신호가 잡히겠거니 싶어 이내 배달이나 하기로 했다.
다행히 큰 지도를 불러오는 건 안 됐지만 배달지에 대한 지도는 이미 표시되어 있었기에 영의는 표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와…… 진짜 산속이네. 등산하시던 분이 시켰나? 앞으로 산 정상이나 아래쪽이 아니면 배달 안 되게 해 달라고 얘기해야겠다.’
영의는 숲속을 걷다가 풀로 가려진 한 동굴 앞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의 디스플레이에서 알려 주는 표시가 없었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 같은 동굴이었다.
오…… 이런 데를 아는 걸 보면 진짜 산 많이 타시는 분인가 보다. 설마 조난당했는데 구해 달라고 배달을 시키진 않을 거 아냐?
영의는 그렇게 주문인을 부르려 했지만, 갑자기 이름이 기억이 안 났다.
“계세요? 그, 누구였지…… 독고…….”
그때였다, 영의의 목덜미에 누군가가 칼을 들이댄 것은.
“어디에서 보냈나, 무림맹? 아니면, 천마 놈을 위해 내 목이라도 따러 왔나?”
“으어어! 서, 선생님! 진정하시고!”
아니, 배달하러 왔는데 갑자기 어떤 미친놈이 사람 목에 칼을 들이대고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나 요즘 왜 이러지……? 뭐가 씌었나? 굿이라도 해야 하나…….’
영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복색을 보아하니 중원의 인물은 아닌 듯한데, 그럼 마교로구나?”
“아니, 아니에요! 뭐든 간에 둘 다 아닙니다! 전 그냥 배달부라고요!”
영의는 그렇게 필사적으로 소리쳤고, 그때 칼이 목에서 떨어졌다.
칼이 몸에서 떨어지자 영의는 뒤를 돌아보았고, 중국 영화나 무협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복장을 한 흰머리 노인이 여전히 칼을 든 채 서 있었다.
“흠,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무인은 아닌가 보군. 내력도 느껴지고 몸은 나름 단련이 되어 있는데……. 어쨌든, 여긴 왜 온 건가?”
아, 웬 미친 인간인가 했는데 무협지에 너무 심취한 어르신인가……. 그보다, 세상일을 잘 모르시나? 아니, 그 이전에 다짜고짜 사람 목에 칼 들이대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렇게 마음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했지만 일단은 눈앞에 있는 칼 든 노인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는가. 영의는 순순히 답하기로 했다.
“저기, 어르신. 제가 독고휘란 분을 찾아왔는데…….”
“……내가 독고휘다만.”
“……네? 아니, 장난치지 마시고요.”
음식 시켜 놓고 배달부한테 칼 겨누고 미친 소리 하는 게 취미일 리가.
“본좌가 독고휘니라! 뇌섬문 초대 문주이자, 현 천하제일인! 검황 독고휘가 나란 말이다! 감히 본좌를 의심하는 게냐!”
그렇게 소리치며 노인…… 아니, 독고휘는 온몸에서 스파크를 튀겼다. 스파크에 얼마 전 번개에 맞은 트라우마가 있는 영의는 무심코 뒤로 훌쩍 물러났다.
큰일 났다. 미친 영감이 각성까지 했어. 각성자들 중에 콘셉트충이 많은 건 아는데 저건 좀 심한데……? 빨리 음식이나 주고 가야겠다.
옷 보니까 비단옷 같은데 그래도 돈은 나름 벌고 사는가 보네.
“아니, 어르신! 무협지 놀이 하시는 건 좋은데 배달 온 사람한테 그러는 건 아니죠! 아무튼, 짜장 하나에 탕수육 소 자 맞죠?”
영의는 보온 가방 뚜껑을 열었고, 그 안에서 다급히 단무지와 젓가락, 음식을 꺼내며 최대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난 그런 것 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영약도, 보검도 바쳐 봤자 본좌에게선 무공 한 자락 얻을 수 없을 것이야!”
아 진짜 미친 영감…… 내가 더러워서 진짜…… 어울려 줘야 하나?
“아니, 돈으로 주세요. 제가 그런 거 알아서 뭐 합니까? 수수료 포함 19만 원이에요.”
“……돈이라? 본좌가 지금 돈이 있어 보이나?”
아니 미친 영감아, 짜장이 공짜로 먹고 싶었으면 그냥 일반 배달 시키라고, 나한테 시키지 말고.
“없으면 이거 가져갑니다?”
에이, 진짜. 영감님이 장난쳐도 정도껏 치지, 배달부한테 장난을 쳐? 진짜 각성자만 아니었어도 내가 배 째라고 드러누워서라도 돈 받아 갔는데……. 요즘 진짜 운이 왜 이러지? 정말로 굿해야 하나?
그렇게 다시 주섬주섬 음식을 챙기는 영의. 그러나 그의 손을 가로막는 독고휘.
“……두고 가게.”
“……예?”
이젠 음식도 받겠다고? 이거 칼만 안 들었지 완전 강도…… 아니, 칼 들고 있구나. 강도네.
“아니, 돈 없으시다면서요? 그럼 못 드리죠. 수수료는 제가 그냥 어르신 외로운 거 같아서 눈감아 드리겠는데, 음식까지 가져가면 완전 강도 아니에요?”
그 말에 독고휘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무엄하구나! 감히 본좌를 산에서 표국들 주머니나 털어먹는 녹림 취급해?”
아니, 이래도 화내 저래도 화내, 뭐지? 치매인가?
영의는 그쯤 되자 본인도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 있는 각성자가 갑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손님이 왕이라고? 그럼 난 이성계가 되어 주마. 반란의 시간이야.’
“어르신, 음식을 드시고 싶으시면 돈을 내세요. 엄마 손 잡고 다니는 꼬맹이들도 길거리 음식 뭐 먹고 싶을 땐 집어 먹는 게 아니라 엄마한테 뛰어가서 돈 달라고 조르는데, 나이 드실 만큼 드신 분이 왜 그래요? 며칠 굶은 것도 아니면서.”
“…….”
어, 진짜 굶은 건가?
“그, 돈 말고 다른 건 안 되나? 내 가르침 한 줄을 얻기 위해 금을 산처럼 들고 오는 이들도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독고휘의 배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났고, 무안함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독고휘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
“크, 커험!”
“……제가 그런 거 배워서 어디 쓴다고요, 돈으로 달라니까요?”
영감님…… 각성 능력을 가르쳐 봤자 아무도 못 배워요……. 그러니까 돈으로 주든가, 이 손이라도 좀 놔주시죠?
“그…… 내 비동 안에 영약이 있네! 오백년하수오인데, 내가 아직 안 먹고 남겨 둔 게야! 자네, 이걸 가져가 팔면 대대로……는 못 살아도, 자네 아들까진 떵떵거리며 살 걸세!”
이젠 뭐? 오백년하수오? 도라지 정도 있겠지. 운 좋으면 한 2년근 산삼이거나.
“아니, 굶으실 거면 그걸 드시지 왜 이걸 원하세요?”
영의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버티고 있었으나 독고휘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본좌가 지금껏 살면서 수많은 산해진미를 먹어 보았으나 저것은 또 새로운 맛의 향이로구나!’
그는 젊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며 누구보다 빠르게 벽을 깼고, 이내 지천명(40세) 이전에 화경을 넘어 현경의 벽을 뚫으며 천하제일인이라 칭송받았다.
물론 마교의 천마 혁련무강도 그와 비슷한 실력자였지만 절대자는 고독한 법이었기에 정파에선 적수가 없던 그에게 대등한 상대였던 혁련무강은 적이라기보단 나름 친우와 악우 사이의 관계였다.
아무튼 젊었을 땐 열정 넘치게 사파와 마교에 맞서 중원도 구해 보고, 예쁜 아내들도 얻고 자식도 키우고 제자도 키워 내 거대 문파를 만들어 내 독문무공도 전수해 줬다.
그러나 세월이 갈수록 집안 꼴 돌아가는 게 영 보기가 싫어져 산에 칩거해 숨어 지낸 지 수십 년째인 그.
어떻게 오는 건지 몰라도 몇몇 놈들이 간혹 찾아오긴 했지만 그때마다 자리를 옮겨 가며 숨어 지냈다.
당연히 먹는 것은 벽곡단이나 가끔 마을에 내려가서 먹는 국수나 만두 정도.
그렇게 아낀다고 아껴 봤지만 어느새 수중에 돈은 없어지고 가진 건 벽곡단과 자연의 산물뿐.
산을 옮겨 다닐 때마다 가끔 영초 같은 걸 찾지만 보통은 자신이 홀랑 먹어 버려서 남은 건 비장의 오백년하수오뿐이었다.
오늘도 맛없는 벽곡단을 침에 살살 녹여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갑자기 찾아온 낯선 차림새의 방문자가 음식을 들고 왔다.
그것도 엄청 맛있어 보이는 향을 가지고, 심지어 뜨끈한 채로! 그래서 지금 독고휘는 천하제일인의 위엄을 앞세워 대접받아 보려 했으나 상대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영초도 거절하자 지금 독고휘는 마음이 급하고 절박해졌다.
“그, 그럼 내 검을 주겠네. 이래 보여도 만년한철에 현철이 들어간 희대의 보검이네!”
미친 영감이 이젠 검으로 딜을 하려고 한다. 아니, 여기가 전당포인 줄 아나?
……뭐, 그래도 좋아는 보인다. 나름 장식도 잘돼 있고. 근데 내가 저걸 받아서 뭐 어디 쓰라고?
“아니, 어르신. 진짜 자꾸 그러실 거면 저 갑니다!”
그렇게 영의는 독고휘의 손을 뿌리치고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독고휘는 다급한 마음에 금나수로 영의의 팔을 잡았고, 그대로 무의식적으로 영의를 잡아 넘기고 말았다.
터엉!
“어?”
바닥에 엎어지고 충격에 다시 땅 위로 튀어 오르며 영의는 생각했다.
‘뭐야, 왜 헬멧 방어 기능이 안 돼?’
그렇게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영의는 또다시 헬멧이 자신을 보호해 주지 않는단 사실에 실망하려다가 바람에 휘날리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헬멧이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