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56화 (외전 완결) (656/656)

제 656화

외전 50화

‘자기 입에 들어가는 음식보다 자식들을 더 챙기는구나.’

마리오는 진혁이 만든 수플레 중 하나를 아예 손도 안 대고 남겨두었다.

예전에는 맛있는 것이 있으면 제 형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날뛰면서 엄청나게 먹어대던 녀석이다.

그런 놈이 애들 준다고 안 먹고 포장하는 걸 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잘 있어라.”

“그래, 또 보자.”

마리오와 헤어지고 나서 진혁은 천천히 걸었다. 정처 없이 겪으면서 자신이 깨달은 것들을 복기했다.

‘마리오는 딸과 아들 둘 다 사이가 좋았지.’

딸과 통화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알 수 있었다. 마리오의 딸은 마리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했다.

서로 장난치는 모습을 보니 부모라기보다는 친구 관계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변한다.

진혁도 부모가 되면서 분명히 변했다.

하지만 진혁의 변화와 마리오의 변화는 달랐다.

이전의 마리오보다 지금의 마리오가 훨씬 성숙한 사람이었다. 마리오는 본질적으로 변화했다.

딸이 축구 경기에서 선수로 뛰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서도 즐거워 보였다. 딸은 프로 축구 선수를, 아들은 아이돌을 지망하고 있다. 둘 다 쉬운 길은 아니다.

고교 여자 축구 선수인 딸을 위해서 장거리 경기에 갈 수 있게 차를 태워다 주었다. 딸과 아들에게 좋은 요리메뉴를 만드는데 잘 안된다며 진혁에게 조언을 청하기도 했다.

‘요즘은 재택근무로 돌리고 일 양을 많이 줄였다더니.’

자신의 일과 승진은 뒷전에 미루고 아이들을 위하고 있었다. 진혁은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봐야겠다.’

그는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루이스 강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지금 가도 돼?”

“언제라도 와. 지금 사무실이야.”

“사무실이 어디지?”

“지금 위치가 어디야? 내 비서가 바로 데리러 갈 거야.”

“아니야. 주소만 보내 줘.”

루이스 강은 푸드 팩토리의 서울 지사에 있었다. 지사는 한남동 자택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루이스의 비서가 나와서 진혁을 바로 안내해 주었다.

“대표이사님 사무실은 이쪽입니다.”

‘루이스가 대표이사로 승진했구나.’

그러고 보니 어제 황미미에게 얼핏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진혁은 임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 빌딩의 26층에 도착했다. 그 앞에는 루이스가 나와 있었다.

“성과 보고 들으려고 온 거지? 여기로 와 봐.”

루이스 강의 눈에도 주름이 깊게 패 있었다. 나이 들고 피로해 보이는 루이스는 조금 긴장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어, 아니. 그런 걸 보러 온 건 아니야.”

하지만 루이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회의실로 향했다.

“어제 황 회장님이 직접 브리핑해주셨다며? 그래도 새롭게 개발된 레시피들은 알아야지.”

루이스 강이 회의실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진혁이 모르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각종 그래프가 표기된 파워포인트 화면이 스크린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회의실 한쪽 벽을 완전히 메운 스크린을 보며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

“이번 달에 개발된 푸드 블록 팩토리의 신제품 블록은 총 87개, 이중 퀄리티 검사를 통과한 것은 65개에 불과합니다.”

진혁은 옆에 서서 한 시간가량 보고를 들었다. 루이스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도록 직원들을 독려하고 응원하며 야단치기도 했다. 마침내 회의를 해산하고 난 후 루이스가 진혁을 이사실로 초대했다.

“어때, 직원들은? 이제 너랑 함께 일할 사람들이야.”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난 대표이사직을 맡지 않을 거야.”

“어?”

루이스가 눈을 크게 떴다. 진혁이 웃었다.

“대표이사 일, 하면서 즐거워 보이더라. 관리직을 잘하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럼 너는 무슨 일을 하려고?”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바쁘게 일하는 루이스는 즐거워 보였다. 자식의 일을 이야기하던 마리오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진혁이 대표이사직을 맡지 않겠다고 하자 조금 더 안심한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비서가 차를 내왔다.

“마실 것을 드리겠습니다.”

꽃잎이 둥둥 떠 있는 캐모마일 차였다. 향긋한 차향이 방 안에 퍼졌다. 진혁은 따뜻한 차를 받아 마시지 않고 그대로 앞에 내려놓았다.

비서가 자리를 피하자 비로소 진혁이 입을 열었다.

“마리오 보고 왔어.”

동생 이야기가 나오자 긴장해 있던 루이스의 표정이 펴졌다.

“마티랑 마리 얘기 들었겠네. 걔 요즘 맨날 그 자랑하느라 바빠.”

“들었지.”

진혁은 조금 전에 마리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계속 형처럼 되고 싶어서 발버둥 쳐 왔단 말이야? 형보다 더 뛰어난 페이스트리 쉐프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너보다 더 잘난 페이스트리 쉐프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그게 아니야. 마리 베네딕트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마티아스처럼 될 수가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 그런데 늦게 입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오빠처럼 되려고 노력을 하더라고…….’

진혁이 루이스에게 물었다.

“마리오는 루이스 형처럼 되고 싶었다고 하더라.”

“옛날이나 그랬겠지! 지금은 안 그래.”

일어나서 창가로 다가갔다.

“맞아. 마리오가 많이 변했더라.”

“나도 너한테 라이벌 의식을 느꼈지만, 지금은 괜찮아.”

“정말로?”

“너 5년 동안 쉬었잖아? 내 실력이 너보다는 낫지.”

루이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여기 주방에 같이 가 볼래? 내 솜씨를 보여주지.”

“이번에 개발한 레시피북 봤어. 많이 늘었더라.”

“아니, 직접 만들어 준다니까? 평이 엄청 좋았다고. 황 회장님도 좋아하셨어.”

루이스가 자랑스럽게 말하며 플라스틱 샘플 모형도 보여주었다.

“봐, 이 가운데에 있는 볼록볼록한 질감이 느껴지지? 이게 이번에 만 개 이상 생산이 됐다고. 재주문이 제일 많이 들어와.”

진혁은 루이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를 재평가했다.

‘자신이 만든 레시피가 맛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매출을 올리고 성공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 모습을 보니 알 수 있었다.

“루이스 형은 많이 팔리는 걸 좋아하네.”

“당연한 거 아니야? 사람들이 더 많이 원한다는 거잖아. 직접적인 지표지. 작년에는 너무 내 취향에 맞추어 만들다 보니 미국 쪽에서는 생각보다 매출이 안 나왔어. 각 나라별로 즐겨 먹는 맛이 다 다르다 보니까 전부 맞추는 게 어렵더라. 하지만 포인트는 지방이었어. 적당히 기름기가 있으면서도 살짝 달콤하면서 짠맛을 만드는 게 핵심이었지.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았으니까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루이스는 이번 매출 지표가 정말로 자랑스러웠는지 평소보다 말이 많았다.

“……나는 사업적인 성공보다는 내 레시피를 더 갈고 닦아서, 더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게 더 좋아.”

진혁이 중얼거렸다.

루이스를 보니 진혁은 더욱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진혁 자신이 원하는 것은 사업적인 성공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원하시던 사업적 성공은 고작해야 동네에서 빵이 잘 팔리는 정도였어. 걱정하지 않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수 있는 정도. 그리고 정말로 원하던 건 후배들을 가르치고 그 길을 닦는 거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공이 따라왔다.

관리직에 오르니 다른 사람들을 채용하고 관리하며 책임져야 했다.

대표이사직에 있을 때 다른 회사와 협상하며 일하고, 그 모든 것들은 그 자신이 원하던 꿈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족에 집중하려고 했지.’

진혁의 아버지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타입이었다. 진혁도, 진희도 저마다 그 등을 보면서 자랐고 나름대로 잘 컸다.

하지만 마리오는 전혀 달랐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응원해 주고 꿈을 키우도록 도와주었다.

비교적 나이 많은 아이들을 데려왔고, 혼자 몸으로 키우면서 쉽지 않았을 텐데도 어른스럽게 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진혁은 자신이 아들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실마리를 얻었다.

‘……나는 가족들이 뭘 하고 싶은지 먼저 물어본 적은 없어.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들을 해보라고 말했을 뿐.’

진혁의 아버지는 진혁에게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진혁의 스승은 진혁을 사람 대우하지 않았다. 소교주가 되었을 때도 여러 명이 경쟁하게 시켰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죽이려는 사형제들을 죽이고 나서야 비로소 지위가 굳건해졌다. 광안마나 다른 부하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자신은 여러 차례 죽었을 것이다.

진혁이 지금 아들들에게 대하고 있었던 태도는 아버지의 것과 스승의 것이 섞여 있었다.

그것과 다른 방식으로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만일 내가 천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면 바로 죽었겠지.’

진혁은 사실 책이가 어리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책이 바라는 대로 외딴곳에서 무공을 수련하면서 홀로 사는 것이 좋을까?

진혁은 원래 그렇게 둘이서 무공을 수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에 돌아와서 보니 너무나 많은 것들이 변화해 있었다.

현대 사회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조차 다시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로 돌아오는 것이 힘들었다.

‘만일 책이 녀석이 원하는 대로 그곳에서 십 년 정도 몸이 자랄 때까지 계속해서 둘이서 수련만 했다면.’

최악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무공 실력은 늘었을지 모르지만, 책이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지나치게 외로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그렇다고 미미가 말하는 대로 사회에서 학교에 다니며 다른 사람들과 적응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미미는 광안마가 교육했던 대로 뛰어난 부품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 칭찬을 미끼로 나아가 장래에 기업가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후계자를 키워내고 있지…….’

진혁은 21층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한강을 보았다. 해가 져가며 노을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수천 번, 수만 번 보았던 일몰이다.

하지만 이곳은 강호가 아니었다. 서울이었다. 해가 지더라도 불이 꺼지지 않고 오히려 눈부시게 빛날 것이다. 곧이어 가로등과 간판에 불이 들어오며 네온사인이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불야성 같아 아름다웠다.

“여기 야경이 참 예쁘지?”

루이스가 말을 걸었다. 진혁이 캐모마일 잔을 든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고마워. 난 이제 돌아간다.”

그는 루이스에게 인사를 했다. 루이스는 당황한 것 같았다.

“뭐? 지금 간다고? 아직 보고도 안 받았잖아.”

“그런 거 받으려고 온 게 아니야. 그냥 인사하려고 온 거지.”

집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는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추어 집에 도착했다.

황미미가 현관까지 나와서 웃으면서 그를 맞이했다.

“강 씨 형제를 만나고 왔다고 들었어요. 좋았어요?”

“……예. 오랜만에 만나니 변했더군요.”

미미가 살짝 웃었다.

“진혁 씨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진혁이 충동적으로 물었다.

“연기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까?”

미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유명한 배우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즐겼다. 하지만 사업을 물려받고 결혼을 한 이후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고 연기의 연 자도 꺼내지 않았다.

황미미가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많이 물어보던 질문인데, 진혁 씨는 처음 물어보시네요.”

“지금 이 삶이 마음에 듭니까?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싶지는 않습니까?”

강호에서의 삶이 없었다면 진혁은 이곳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어리석은 실수를 하고 가족을 잃고 뼈저리게 후회했겠지.’

무림에서 보냈던 시간들은 괴로웠고 힘들었으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인연과 시간들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럼 당신도 없고, 우리 애들도 없잖아요?”

미미가 생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진혁은 그 손을 맞잡았다.

“회사에 복귀하실 건가요? 아니면 자문으로 레시피 개발을 하고 싶으세요?”

“……자문으로 레시피를 개발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애들하고 좀 더 시간을 많이 보내겠습니다. 뭘 하고 싶은지도 들어 보고요.”

진혁이 어렵게 꺼낸 이야기를 미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 주었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육아를 조금 덜 하면서 연기를 다시 하고 싶으면 그것도 응원하겠습니다.”

미미가 눈웃음을 쳤다.

“아, 요즘은 사업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요. 저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오랜만에 보는 진짜 웃음이었다. 진혁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복도로 걸어갔다. 저 멀리서 명이가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어디 갔어! 나 왔어요!”

“어린애처럼 투정 부리지 말고 기감을 익혀 봐. 그럼 어머니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 느낄 수 있다고.”

책이가 말하는 소리도 들렸다. 미미가 외쳤다.

“금방 갈게! 기다려.”

진혁이 웃었다.

“미미 씨, 고마워요.”

미미가 눈썹을 추켜올렸다.

“갑자기 뭐가요?”

“당신과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진혁이 약속했다.

“지금까지 미숙한 모습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더 노력할게요.”

미미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외전 현대편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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