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1화
외전 45화
『예멘식 바하라트 오리 구이입니다.』
진혁은 순간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예멘이라고?”
갑자기 왜 예멘이 튀어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흙가마를 고집하던 녀석이 마음을 바꾼 걸까?
‘향신료는 이것저것 바꿔 보고 오리 품종도 새롭게 써 보긴 했지. 하지만 흙가마와 진흙으로 감싸는 방식은 바꾸질 않았었어.’
어떻게 보면 요리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스테이크를 프라이팬에 구웠을 때와 오븐에 구웠을 때, 그리고 꼬치에 끼워서 직화구이를 했을 때마다 맛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리구이도 마찬가지다. 장유향은 몇십 년 이상 전통 흙가마를 고집해 왔고 이 흙가마가 최고라고 하였다. 몇몇 오븐이나 현대식 가마를 시험해 본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들었다.
결국, 한국에도 흙가마를 만들고 새로운 지점을 오픈한 것이 몇 년 전.
그런데 그 흙가마를 예멘식 오븐으로 바꿔버렸다니 놀라운 일이다.
『검사가 도끼를 쓴다고 하는 셈이 아닌가? 그걸 바꿀 줄은 몰랐는데.』
『검사가 도끼를 쓰다가 검사로 돌아온 것입니다.』
“진희야. 너도 예멘식 오븐 써 봤지? 어땠어?”
진희가 핀잔을 주었다.
“그게 몇 년 전인데 내가 그런 걸 기억이나 하고 있겠어?”
임진혁은 자신의 접시에 놓인 오리고기를 바라보았다.
장유향은 고기를 썰어내고 조금 더 작게 잘라 명이와 책이의 앞에 놓아주었다.
명이가 수저를 들고 막 먹으려고 할 때였다.
“명이야. 할아버지 먼저 드셔야지.”
“할아버지! 빨리 먹어요!”
“그래, 그래.”
아버지는 웃으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너희들도 어서 먹자꾸나.”
이어서 어머니가 오리고기를 입에 넣었다.
“맛있네.”
오리 요리라고 해서 정말로 오리고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함께 싸 먹을 수 있는 쌈무와 상추 등의 쌈 채소 등 곁들이 채소 또한 종류별로 놓여 있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은 당근과 오이, 파프리카와 셀러리.
“셀러리라.”
“그건 내가 좋아해서.”
임진희가 생글생글 웃으며 집게로 셀러리를 집어 자신의 접시에 가져다 놓았다.
진혁은 그중에서도 신선한 오이를 집어 들었다.
장유향이 빙긋 웃었다.
『전부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각자의 앞에 채소 접시를 전달해 주었다.
진혁의 앞에는 오이와 부추, 그리고 생마늘이 놓였다.
일행 모두의 입맛에 맞춘 듯, 모두의 앞에 놓여있는 채소의 종류가 달랐다.
『부추 두 줄기와 오이 반 조각, 고기와 함께 드시면 좋을 것입니다.』
“부추 두 줄기와 오이 반 조각, 그리고 살코기 한 점이라.”
진혁은 그 말대로 했다.
오리고기를 입안에 넣자마자 알싸한 매운맛이 코끝을 찔렀다.
‘호오.’
진혁에게는 부드럽게 느껴질 뿐이지만 부추의 매운맛이 분명하다. 임진혁은 장유향이 어떤 의도로 부추와 오이를 올려두었는지 깨달았다.
『좋은데?』
적당한 두께로 썰어놓은 오리고기가 씹히는 것과 동시에 오이가 아삭하게 부서졌다. 덧붙여 알싸한 부추의 매운맛이 함께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사프란과 말린 고추의 향이 산뜻하게 풍겼다.
이것은 진혁이 기억하던 진흙 오리구이가 아니었다.
새롭게 재해석한 요리라고나 할까.
“맛있다.”
아버지의 표정이 밝았다.
“장유향 쉐프님이 여기까지 오셔서 오리구이를 해주시다니 영광이야. 진혁아, 전달 좀 해 줘라.”
아버지는 얇게 썰어낸 배 조각과 새싹보리를 함께 먹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시고 있다.』
황미미도 웃고 있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어요. 지난번보다 더 맛이 좋아진 것 같네요.”
미미도 셀러리와 오리고기 조합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명이는 오물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질겨.”
“조금 더 씹으면 돼.”
큰아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가끔 진혁이 뒷산에서 산나물을 뜯어 오면 불평 없이 아무거나 잘 먹었다. 반면에 둘째 아들은 치악력이 약한지 오리고기를 씹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나 당근은 안 먹을래.”
붉은색 채소를 옆으로 밀어 놓기도 했다. 황미미가 엄하게 말했다.
“당근을 먹어야지.”
“당근 싫은데. 왜 내 앞에만 있어?”
진혁이 위엄있게 차남에게 말했다.
“엄마 말을 들어야지.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해.”
차남은 숟가락을 뚝 하고 떨어뜨렸다. 그리고 뺨과 얼굴의 근육이 실룩거리더니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진한 소변 냄새가 주변에 퍼졌다.
“어머.”
황미미가 서둘러 일어나서 둘째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다.
진희가 물었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어?”
“명이가 아직 소변을 못 가리는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식사 시간에.”
“그러게.”
진혁은 놀라서 따라갔다. 그리고 유아 시트에 앉아 있던 책이도 벨트를 풀고 뛰어내렸다.
* * *
하지만 임진혁은 둘째를 볼 수 없었다.
“여보, 명이가 당신을 무서워해요.”
황미미가 방에서 나왔다. 방 안에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명이의 목소리였다.
“그 아저씨 무서워.”
“아저씨가 아니에요, 아빠라고 하셔야죠.”
“무서워어어어. 으와아아아앙.”
엘리엇 조가 달래는 목소리도 들렸다. 황미미는 문을 완전히 닫았다. 그래도 진혁은 방 안쪽에서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서워어어.”
“자, 자. 진정하시고 팔에 힘 푸시고. 옷 갈아입을게요.”
“먼저 씻기부터 해야지.”
이낙호의 목소리도 들렸다.
진혁이 골라 뽑았던 도우미들은 아직까지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보육교사들을 깊이 신뢰하고 있다.
진혁이 문 너머로 소리쳤다.
“잠깐 아빠한테 얼굴 좀 보여줄래?”
“우와아아아앙.”
돌아온 것은 대답이 아니라 더 커다란 울음소리였다. 마치 겁에 질린 새끼 짐승 같았다.
“……왜 저러는 거지?”
진혁은 멍청하게 문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겁에 질린 거지.』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작은 손가락이 진혁의 손등을 쿡 찔렀다. 책이가 혀를 차면서 뒤에 서 있었다.
『아까 풍긴 기운. 그걸 애기가 어떻게 버텨?』
『내가 기운을 풍겼다고?』
『위압감이 넘치잖아. 일류 무사라도 기절할만한 기운을 평범한 애한테 쏟으면 어떡하냐고. 당연히 무서워하지.』
책이는 문을 열었다.
“형 들어간다.”
“나한테는 형 없어!”
“네가 오줌싸개라고 해도 동생으로 받아줄게.”
“…….”
책이는 문을 조금 열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황미미와 임진혁은 문 안에서 형제가 나누는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오줌싸개 아니야.”
“밥 먹다가 오줌쌌는데 오줌싸개가 아니야?”
“우와아아앙.”
둘째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미미가 웃으면서 진혁의 손을 잡았다.
“아이들은 둘이서 내버려 두죠.”
“쟤들 밥은 안 먹어도 될까요?”
“나중에 저녁 시간에 먹으면 돼요. 간식을 올려 줘도 되고요.”
황미미는 진혁의 곁에서 나란히 걸었다.
식당까지 향하는 복도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오고 나서 처음으로 둘이서만 있는 시간이었다. 황미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진혁의 손을 쥐었다. 이전과는 굳은살이 박힌 위치가 미묘하게 달랐다.
‘아.’
진혁은 손을 맞잡아 주었다. 그가 침중하게 말했다.
“명이가 아주 어린애 같군요.”
“또래들 중에서는 어른스러운 편이에요.”
“이렇게 겁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오히려 폐관 수련을 하기 전에는 주변에 총탄이 날아다녀도 침착했는데 말입니다.”
미미는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주변에 총탄이 날아다니는데 침착할 필요는 없지요.”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진혁을 올려다보았다.
“여보, 책이도 이제 일반적인 교육을 받아야 할 때가 됐어요. 이전에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결국 책이도 우리들과 함께 어울려서 살아야 하니까요. 당신이 평생 뒷바라지를 해줄 수는 없어요.”
간곡한 말에 진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식사를 하러 가죠.”
“예.”
지금은 길게 이야기할만한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식당으로 향했다.
다른 식구들은 오리구이를 전부 다 먹고 다른 메뉴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오리고기는 차갑게 식어있었다. 진혁 부부가 돌아온 것을 본 장유향이 다시 나타났다.
『데워 드리겠습니다』
장유향은 조그마한 고체연료 램프를 가져와 오리고기를 데워 주었다.
진혁은 오리고기를 씹었다. 식었다가 다시 데웠는데도 맛이 좋았다.
하지만 소변을 지리고 울던 명이의 얼굴이 떠올라 식사에 집중하지 못했다.
“며늘아기, 명이는 괜찮니?”
“네. 밥 먹다가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지금 씻고 있어요. 기다리지 않고 식사해도 될 것 같아요.”
미미는 다음 메뉴를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웨이터는 전주식 비빔밥을 가져다주었다.
주홍빛 날치알과 지그재그로 놓인 검은색 김 그리고 노란 단무지와 푸른 채소들이 자그마한 밥공기에 담겨있었다. 보기에 퍽 아름다웠다.
“와, 이 비빔밥은 아까워서 못 먹겠다.”
“고추장 좀 이리로 줘요.”
임진희는 자기 밥에 고추장을 뿌린 다음에 옆으로 넘겼다. 어머니가 한 입을 먹어보고 감탄했다.
“소고기 비빔밥이네!”
“이것도 맛있다.”
아버지가 비빔밥 위에 참기름을 두어 방울 떨어뜨렸다. 향긋한 향기가 풍겼다.
“이 다음 메뉴는 뭘로 했니?”
“새우장과 임연수 구이가 나올 거예요.”
“그것도 맛있겠구나.”
식사는 순조로웠다. 비빔밥과 새우장, 임연수 구이도 맛있었다.
하지만 진혁은 내내 비어 있는 두 자리를 힐끔힐끔 보았다.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그 정도에 놀랄 줄 몰랐는데.’
* * *
식사를 마치고 진혁의 가족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차라도 드시고 가시지 않겠어요?”
“내일도 가게를 열어야 해서 말이지. 일찍 가야 해.”
“건강한 걸 봤으니 됐다.”
아버지는 진혁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당부했다.
“애들은 원래 네 맘대로 안 되는 거야. 너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아라.”
“예.”
“책이도 이제 돌아와서 유치원도 다니고 친구들을 사귀려면 힘들 거야. 네가 든든하게 뒷받침을 해 주렴.”
임진희가 마지막으로 나서며 속삭였다.
“나한테 집 같은 걸 선물하기 전에 미미 씨한테 좀 더 잘해 줘. 신혼인데 이렇게 몇 년이나 독수공방하는 게 어딨어? 사이 안 좋아서 별거하는 건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잘 좀 해!”
“…….”
진혁은 그 부분에는 전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그러고 보니가 아니야! 일 년도 너무 긴데 몇 년을 그냥 보냈냐고. 제정신이 아니라니까, 하여튼.”
진희가 당부했다.
“잘 해, 알았지?”
“응.”
진희와 부모님을 배웅하고 나서 황미미와 임진혁은 현관에 서 있었다. 미미가 말했다.
“저희도 들어가요.”
“그래요.”
황미미는 지극히 태연해 보였다.
‘방금 진희가 한 말을 들었을까?’
진혁은 생각했다.
‘괜찮은 줄만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