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49화 (649/656)

제 649화

외전 43화

* * *

진혁은 미미가 보내준 자동차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전용기 안에서는 미미와 명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여보, 그동안 잘 있었어요?”

“그럼요.”

진혁은 미미의 달라진 화장을 알아보았다. 평소보다 두께가 1mm 정도 더 두꺼웠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디자이너, 패션 스타일리스트의 역작일 것이다. 마치 무대 공연을 나온 것처럼 화려하게 꾸미고 있었다.

“그렇게 꾸미지 않아도 예쁩니다.”

미미는 귓불에 오팔 귀찌를 끼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자그마한 목소리들이 들려 왔다.

「그것 봐요! 역시 임 대표님은 꾸안꾸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거라고요.」

「이번에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만나니까 끼고 온 건가?’

미미는 데이트를 할 마다 항상 팀의 조언을 들었다. 그렇지만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이어셋을 꺼두고 생활했다. 미미의 귓속에서 들리는 스타일링 팀의 응원을 들으며 진혁은 피식 웃었다.

미미는 활짝 웃었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명아, 여기 형이야.”

“형!”

명이는 못 본 사이 부쩍 커 있었다.

책이보다 더 키가 큰 것 같기도 했다.

“이제 명이가 더 크네?”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얼굴 생김새가 확연하게 달랐다. 일란성 쌍둥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작은데 왜 얘가 형이야? 내가 형 해도 되겠는데?”

키도 크고 덩치가 더 있는 동생이 자신을 내려다보자 책이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내가 형이야!”

“형 아니야. 쌍둥이야.”

명이가 당당하게 말했다.

‘명이 녀석도 한국어가 유창하네.’

진혁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따지는 말에도 논리가 있었다.

“내가 너보다 더 똑똑해.”

책이 입을 열었다. 진혁은 그만 웃어버릴 뻔했다.

‘지금 어린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우기는 건가?’

옆에서 황미미도 웃고 있었다. 명이가 발끈했다.

“뭐가 똑똑한데?”

“내가 너한테 이것저것 가르쳐 줬잖아. 발 쓰는 방법도, 손 쓰는 방법도.”

책이가 아주 쉬운 보법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명이는 그 보법을 알아보지 못했다.

“뭐 하는 거야? 춤 춰?”

진혁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명이는 무공 연습이나 운기조식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교육만 받은 모양이었다.

‘무공을 익히는 건 책이 한 명으로도 충분하지.’

진혁은 원래 두 아들이 무공을 익히기를 원했지만 황미미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이미 책이는 무공을 익히고 있었고, 그래서 미미는 명이를 주로 맡아서 교육하게 되었다.

그녀는 책이가 무공을 익히다가 심마에 빠진 것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무가였다면 설득해 무공을 익히게 했겠지만, 진혁은 별 생각이 없었다.

‘빨리 배우는 녀석이니까 나중에 배우고 싶을 때 배우면 되지. 어차피 제과제빵할 때만 쓰는데.’

이미 책이는 허공섭물을 비롯해 삼매진화까지 빵을 만들기 위한(!) 모든 기술을 익혔다.

미미는 명이를 앉히고 안전 벨트를 매 주었다. 그리고 책이를 보았다.

“우리 책이, 엄마 보는 건 오랜만인데. 안 반가워?”

“반가워요.”

“그럼 안아 줘야지.”

“…….”

책이는 뻣뻣하게 앞으로 걸어가서 로봇처럼 경직된 동작으로 어머니를 안았다. 미미는 책이를 마주 안아 주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책이의 표정에는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동생이 자기를 형 취급하지 않는 데에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명이는 능숙하게 기내용 텔레비전의 버튼을 눌러 아동용 TV 프로그램을 켰다. 로봇 애니메이션이었다.

“명이 너 이거 볼 거야?”

“볼래.”

“공부 시간 아니니까 가는 동안에만 봐.”

명이는 뚫어져라 TV를 응시했다. 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애니메이션 속의 로봇은 주먹을 휘둘렀다.

그 어설프게 흐르는 모양을 보면서 책이 답답해했다.

“주먹질을 저렇게 하는 법이 어디에 있어? 정권 지르기를 할 때 중심이 흔들리면 안 되는데! 말도 안 돼!”

“우리 피닉스 욕하지 마! 형이 뭘 알아!”

명이가 화를 냈다. 책이가 눈을 가늘게 뜨며 살벌하게 말했다.

“내가 가르쳤던 것들은 연습 안 했어? 어떻게 저 정권 지르기를 보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어?”

“형이 뭘 가르쳐 줬는데?”

책이 자신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장남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고 진혁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어렸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어린애 장난감 같은 걸 보고 좋아하다니!”

책이가 뭐라고 하든 간에 명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 빨려 들어갈 듯이 집중하자 조그마한 입술이 벌어지고 침이 조금 흘러나왔다.

명이의 왼쪽에 앉아있던 미미는 자연스럽게 명이의 입술을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책이는 망연히 명이를 바라보았다.

“5년…… 고작 5년.”

미미가 풋 하고 웃어버렸다.

“책아, 넌 이제 여섯 살이야. 고작 5년이라니. 네 평생의 대부분의 시간인데.”

“예, 어머니.”

책이 정중하게 몸을 숙였다. 하지만 안전 벨트가 있어 완벽하게 몸을 숙일 수는 없었다.

“아빠하고만 오래 있는데 어땠어? 엄마는 보고 싶지 않았어?”

“어머니 건강하셨습니까. 매일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래, 고마워.”

「안전벨트를 착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임시로 전력을 차단하겠습니다.」

“명이야, 이제 TV 끄자.”

“조금만!”

“비행기 뜨려면 꺼야 해. 이따가 다시 봐.”

“잉.”

명이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모니터를 껐다. 미미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둘째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동안 임진혁은 미미와 명이의 신체를 낱낱이 살피고 있었다.

‘건강은 그렇게 나쁘지 않아. 계속해서 관리를 잘 한 것 같은데.’

미미는 태극권을 꾸준히 수련했고 건강했다. 명이는 무공을 전혀 수련하지 않았다. 그나마 아주 어린 시절 책이를 따라 수련해서 갖고 있던 내공만이 조금 있었다.

몇 년간 꾸준히 수련을 한 책이는 명이의 상황을 믿을 수 없는 것처럼 괴로워하고 있었다.

『진작 명이를 데려와서 같이 수련을 했어야지!』

책이가 전음을 보내왔다. 진혁은 바로 대답했다.

『그럼 너도 6개월 만에 수련을 포기해야 했을걸. 그때 네가 더 수련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렇다고 저 녀석이 무공 수련을 저렇게까지 안 할 줄은 몰랐지! 천재인데! 저 재능을 수련하지 않는 건 말도 안 돼! 강호의 도리에 어긋나!』

『사업도 잘 할 거래. 구구단도 벌써 다 외웠대.』

『구구단? 그건 또 뭔데?』

『넌 진짜 상식이 필요해.』

『…….』

책이는 입을 다물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비행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미미가 보내준 전용기를 타고 입국하자 공항에서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아.”

아버지는 그리 늙지 않았다.

오행진이 설치된 곳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젊어지는 셈이네.’

진혁은 아버지를 반겼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어떠셨어요?”

“진혁아.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아버지는 진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옆에서 어머니가 살짝 웃어주었다. 그리고 임진희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떻긴! 엄청 바빴지!”

진희가 조잘거렸다.

“네가 일 다 떠맡겨 버리고 튀어버린 덕분에 내가 다 했다.”

명이가 뛰쳐나왔다.

“할아부지!”

명이는 넘어질 것처럼 앞으로 달려나가서 할아버지에게 폭 하고 안겼다. 할아버지-진혁의 아버지가 명이를 안아서 들어 올리며 비행기를 태우듯 빙글빙글 돌렸다.

“우리 명이! 어서 와라.”

어머니가 오랜만에 보는 큰 손자를 반겼다.

“책이니? 정말 많이 컸네!”

책이는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못 알아본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어린아이다운 태도일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책이는 명이를 모방했다.

“할머니.”

책이가 착한 자세로 걸어가서 자연스럽게 손을 내미는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진혁은 책이를 보고 웃었다. 어머니와 진희도 웃었다.

“우리 책이가 아버지하고 오래 있더니 어른스러워졌구나.”

“그럼요. 제가 어떻게 교육했는데.”

진혁이 뿌듯하게 말했다. 일행은 각각 차에 나누어 타고 한남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여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다른 차에 타고, 진혁은 아버지와 함께 뒤쪽에 있는 다른 차를 탔다.

“그래, 책이 아프다던 거는 이제 괜찮고?”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

“도대체 어떤 희귀병이길래 거기까지 가서 몇 년 동안 치료를 받은 거냐? 아니, 얘기 안 해도 된다. 이제 치료가 다 되었다니 다행이지.”

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책이가 제과제빵은 하기 싫대요. 자기 하고 싶은 걸 한 대요.”

“걔는 여섯 살이야. 하고 싶은 게 매일매일 바뀔 때지. 조금 있으면 대통령을 하고 싶다고 했다가, 수영 선수를 하겠다고 할지도 몰라.”

“책이는 보통 여섯 살이 아니에요.”

진혁은 책이의 정체에 대해서 부모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책이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기를 바랐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이것까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 아주 똑똑한 여섯 살이지. 오랫동안 아팠고 세상에 대해서 잘 모르는.”

“…….”

“너도 여섯 살 때는 빵 굽는 게 싫다고 했어. 하지만 지금 봐라. 잘 하고 있잖아?”

“네, 제과제빵 전공으로 대학까지 갔죠.”

“그래. 그리고 이렇게 훌륭하게 자랐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그렇게 된 거야. 나는 네가 뭘 하든 믿어 주었다.”

“……예.”

“이제 막 빵을 굽기 시작한 신입생들한테 어떻게 하라고 일일이 말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야. 하지만 아무런 조언 없이 직접 해 봐야 실력이 늘어. 너도 소년원 애들 데려와서 가르쳐 봤으니 알지 않니?”

“그렇죠.”

“스스로 할 수 있게 믿어주렴. 처음에는 실수를 몇 번 한다고 해도 직접 배워서 더 나아질 거야.”

진혁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서울은 많이 변해있었다. 공항에서 집에 가는 길에도 새로운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도로 모양도 변했으며 없던 다리도 생겼다. 오랜 시간 동안 산속에 있었더니 매연조차 낯설게 느껴졌다.

“서울에는 여전히 차가 많네요.”

“당연하지.”

진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 어렸던 진혁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소중하게 여기는지 몰랐다.

평화로운 일상생활과 가족들을 빼앗긴 이후에서야 그것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깨달았다.

“아버지, 책이는 저랑 달라요.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바뀌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빵은 굽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저한테 얘기한걸요.”

남궁소천 놈은 원래 자기가 한 말은 지키는 녀석이었다. 대쪽같이 곧고 고집이 셌다. 진혁을 지켜보며 아버지가 웃었다.

“네가 이미 여러 번 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책이한테 말을 했구나?”

“네.”

“그럼 이제는 그 이야기를 하지 말아보자꾸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