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48화 (648/656)

제 648화

외전 42화

“저도 먹어봤는데 괜찮았습니다.”

진혁은 눈앞에서 도시락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뚜껑을 엶과 동시에 향긋한 밀죽의 향기가 풍겨왔다.

“나쁘진 않아 보이네요.”

“알 해리스는 먹어본 적이 없지요? 미미 씨도 먹어 볼래요?”

진혁이 손을 살짝 대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죽을 데운 것이다. 황미미는 수상쩍은 밀기울 덩어리처럼 보이는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딱 보기에 맛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이게 맛있어요?”

“예, 지금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겁니다.”

진혁이 그릇째 내밀었다.

미미는 그 그릇을 받아서 한 입만 마셔 보았다.

“음.”

오트밀을 우유에 갠 것처럼 텁텁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질척하지 않았다. 살짝 달콤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했다.

“이건 다 먹으면 의외로 배부를지도 모르겠어요.”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그릇이 절반이나 비어버렸다. 텅 빈 위장이 따뜻한 국물로 채워지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고파요? 그러고 보니 오늘 식사를 언제 했습니까?”

그러고 보니 오늘 아이를 돌보느라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점심 저녁 전부 먹지 않았어요.”

원래대로라면 영양사가 계획한 식사를 조리사가 조리해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 곁에 계속해서 머무르느라 나온 식사를 거절했다. 아마 고용인들이 나누어 먹었을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네요. 아침 식사로 먹어도 좋겠어요.”

“원래는 라마단 때 해가 지면 먹는다고 합니다.”

“장기간 금식을 하고 난 후에 먹는 음식이라서 더 속에 좋은가 봐요.”

반밖에 먹지 않았는데도 꽤 포만감이 있었다. 미미가 물었다.

“당신도 저녁을 드실 건가요?”

“예.”

“그럼 지금 식사를 준비하라고 할게요.”

미미가 활짝 웃었다.

* * *

식사가 준비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두 명이 함께 앉아도 되는 대리석 타원형 식탁.

그 한쪽 끝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았다.

“폐관 수련을 한다고 해도 식사는 매일 같이 할 거지요?”

스테이크를 썰면서 미미가 물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폐관 수련 자체가 외부와 연을 끊고 단절되어 수련하는 것을 말한다. 책이와 함께 무공 수련을 하면서 아예 다른 가족들과도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진혁이 자신의 계획을 말하자 미미가 물었다.

“그럼 식사는 어떻게 할 건가요?”

“……벽곡단을, 음. 그러게요.”

진혁은 당연히 벽곡단을 먹일 생각이었다. 따로 만든 벽곡단의 레시피를 넘겨서 일주일마다 일정한 분량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책이는 성인이 아니었다. 청소년조차 아니다. 아직 발달하지 않은 유아다.

벽곡단 같은 것을 먹다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면 곤란하다.

미미가 웃었다.

“그러면 매 끼니는 제시간마다 들여보낼 테니까 꼭꼭 씹어서 편식 없이 먹도록 부탁해요.”

“…….”

“영양사에게 부탁해서 매일 영양가 있는 끼니를 보낼게요.”

* * *

가족과 친지, 사업상 지인들에게는 유럽으로 장기 출장을 간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사실은 중국의 화산, 그곳의 암자에 들어와 있었다.

미미는 두 사람이 살 수 있는 자그마한 암자를 구해 주었다.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이 살기에 딱 적당했다.

원래는 등산객들이 들어올 수 있는 자그마한 길이 있었는데, 그 길까지 산 다음에 아무도 올 수 없도록 막아버렸다.

미미가 준비해준 덕분에 전기와 수도, 가스, 그리고 인터넷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세상 어디의 폐관 수련에서 블루레이로 동영상을 보면서 운기조식을 하냐고.”

진혁이 투덜거렸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폐관 수련이 아니었다.

성인이 된 자가 혼자 폐관 수련을 한다면 운기조식을 하며 내공이 쌓이고 수염이 자랐을 것이다.

벽곡단을 씹으며 너덜너덜한 옷을 입어야 마땅하다.

“점심이 왔나?”

“오늘도 만두래요?”

“응.”

책이는 이제 한국말을 능숙하게 했다. 임진혁은 자신이 어제 입었던 옷을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 옷을 바구니에 담아내놓으면 직원들이 가져가 빨래를 해서 돌려주었다.

계절이 되면 아이의 신체 치수에 맞춘 색색의 린넨 옷들이 배달되었다. 진혁이 갈아입을 옷들도 마찬가지였다.

빨래는 일주일에 세 번, 그리고 식사는 하루에 한 번씩 배달이 되었다.

“메뉴는 좀 다양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

미미는 통신 교육이라도 필요하다며 최신 영화와 아동용 교육 영상을 보내왔다.

하지만 진혁은 그 블루레이를 쌓아두었다. 1:1 과외처럼 무공 수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인데 저런 것에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책아! 남궁가의 무한보법은 몸을 가볍게 움직이는 형태잖아?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몸을 띄우려고 할 필요는 없지. 디디고 있는 발은 굳건해야 해. 거기서 최소한으로 움직여 보자고.”

“…….”

책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이 익힌 무공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남궁가의 무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숨길 수가 없었다.

“마보를 할 때 자세가 이상한데? 발의 용천혈에서 기를 내뿜는다고 생각하고 다섯 개 발가락 모두로 땅을 움켜잡듯이 하면서 해야지.”

마보 자세란 근력을 훈련하기 위해 일정 시간 동안 유지해야 하는 자세였다. 현대의 스쿼트 자세와도 유사한데 다리와 팔의 각도와 모양이 미묘하게 다르다.

“우리는 그렇게 안 했는데.”

“마보 자세에도 내리누르는 마보와 들어 올리는 마보가 있잖아. 우리는 들어 올리는 마보를 중시하는데 너희는 그 반대지?”

당장 마보 자세를 할 때도 남궁가의 마보 자세는 일월신교에서 하던 것과 달랐다.

배우기 위해서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용천혈에 힘을 주지 않았단 말이야!”

“그러면 아마 이쪽 앞 허벅지 쪽의 근육에 더 힘을 주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 같은데.”

책이는 꾸준히 수련을 하면서 교정을 받았다. 그가 원래 알고 있었던 검법은 나뭇가지를 깎아 들고서 연습을 했다.

“팔길이와 다리 길이가 달라져서 원래 검법을 그대로 쓸 수가 없어.”

“……봐, 첫 번째 초식을 사용할 때 허리를 조금 더 숙이면 괜찮을 거야.”

“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르게 익숙해져 갔다. 불필요한 외부의 간섭없이 오로지 무공을 토론하는 시간.

그 시간이 행복했다.

[미미]

여보, 이제 슬슬 괜찮아지지 않았어요?

언제까지 거기에 있을 거예요?

[진혁]

조금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마음을 완전히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보법과 검법을 다듬는 데 이년이 걸렸다. 책이는 자신이 익힌 심법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진혁이 그 심법을 개량해 익히도록 조언을 주었다.

[미미]

벌써 3년이나 지났어요.

시부모님께서도 연락을 해 달라고 하시는데요.

[진혁]

제가 따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그리고도 1년이 더 흘렀다.

책이는 다섯 살이 되었다.

“심법만 조금 더 익히면 될 것 같은데.”

임진혁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책이는 한 번도 자르지 않아 여자아이처럼 길어진 머리카락을 포니 테일로 묶어서 뒤로 늘어뜨렸다.

똘망똘망한 눈빛과 부드러운 뺨.

그리고 부쩍 커버린 키.

책이는 확실히 성장했다.

더 이상 아기라고는 부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진혁의 눈에는 아직까지 아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것저것 기술은 배웠지만, 아직도 현경에 도달하지를 못했어. 전생의 경지는 금방 도달할 줄 알았는데. 왜 못하지?’

그것이 진혁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책이 자신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명이 녀석은 심법을 익히고 있을까? 걔도 데려와야 하는데.”

“그게…… 너희 엄마가 명이까지 여기에 데리고 올 수는 없다고 그러더라.”

명이는 임진혁이 없는 동안 어머니의 엘리트 교육을 소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걔는 뭐 하고 있대? 내가 알려준 심법과 보법 수련은 제대로 하고 있을까?”

“이제 유치원 다닌대.”

책이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진혁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연락을 계속 해왔다. 진혁은 책이에게 명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유치원?”

“국제학교 유치원.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로 수업을 한다던데.”

미미가 보내준 사진은 단체 사진이었다.

명이와 또래 아이들이 활짝 웃고 있었다. 황인과 흑인, 백인 등 여러 인종이 섞여서 함께 브이 자를 그리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머리에는 종이로 만든 고깔을 썼다.

“유치원이 뭔데?”

“……너 같은 나이의 애들이 다니는 학교.”

“학교? 학관 같은 건가.”

“너도 학교에 가서 또래 애들과 정상적인 상호작용을 하면서 인간관계를 배워야지.”

“지금 이 나이에 코흘리개들이랑 같이 학관에 가라고? 그럴 수는 없지.”

책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혁이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너는 지금 인간관계가 서툴러.”

“아니, 난 멀쩡해. 아버지가 엉망이지.”

책이는 허공섭물과 삼매진화를 완전히 익힌 후부터 진혁을 제대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폐관 수련해서 그거 하나는 좋은 점이네.’

하지만 아직도 진혁보다 실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책이는 그것이 억울했다.

‘내가 더 젊고 똑똑하고 선천지기도 순수한데. 왜 명이보다 더 약한 거지.’

진혁은 슬슬 외부에 나가서 새로운 빵을 만들고 싶었다. 가족들과 친지들이 계속해서 연락해 오는 것도 번거로웠다.

“책이 너는 언제까지 수련을 하고 싶은 건데? 평생 할 거야?”

“아버지를 이길 때까지 계속.”

책이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말했다.

임진혁은 결단을 내렸다.

“……수련은 나가서도 할 수 있어. 너한테 지금 필요한 건 사회생활인 것 같다.”

“엥? 왜? 여기서 무공을 수련하는 게 좋잖아? 뭘 더 해야 하는데?”

“빵을 만들어야지! 음식 트렌드가 얼마나 빨리빨리 바뀌는 줄 알아? SNS에 올라오는 빵 사진들만 보는 거로는 부족해. 가서 먹어보고 새로운 걸 만들어야 한다고.”

이곳에는 화덕이 없었고 진혁은 빵을 만들지 못했다.

“……여기까지 배달해 달라고 하면 되지.”

뒷마당에 약초와 채소를 일부 재배하긴 했지만, 밀을 키우지는 못했다. 진혁은 이곳에 들어오면서 아예 주방을 설치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책이를 수련시키는 데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설치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빵을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이것저것 꿈틀거렸다.

‘이곳에서만 나는 약초들을 넣어서 약초 빵을 만드는 것도 괜찮고.’

웰빙 트렌드는 지금까지도 유의미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진혁은 직접 캐서 말린 약초들을 몇 뿌리 챙겼다.

“이제 나가자.”

“무공 수련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어? 난 아직 현경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했다고! 너무 부족해!”

“너 여섯 살이 되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거든? 그런데 지금 다섯 살이지? 유치원에서 또래 애들을 좀 겪어볼 필요가 있어. 학교 가려면 지금 나가야 해.”

“부족하다니까!”

“나가서 해! 학교 다니면서 방과 후에 집에 와서 하면 돼!”

진혁이 암자 안에서 언성을 높였다. 책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굳이 바깥세상에서 사회 활동을 해야 할 필요가 있어? 학교는 왜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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