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47화 (647/656)

제 647화

외전 41화

「오늘 아침 식사 메뉴로 나왔던 알 해리스. 이 메뉴를 새롭게 창작하셔서 제출해 주시면 됩니다. 원하시는 조리 도구를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고…….」

오늘의 시험 문제를 들은 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오늘 아침은 그냥 닭죽이 아니었나? 향이 좀 강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난 아침 안 먹었는데.”

「이럴 수가! 나는 일부러 내가 직접 만든 요리로 아침 식사를 했는데!」

다른 나라의 출전자들이 웅성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임진희가 혀를 찼다.

“오늘 아침 식사가 시험 문제일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진희는 아침 식사를 깨끗하게 비웠다.

닭죽치고는 특이하다고 생각해서 알 해리스가 뭔지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 보았다.

진희와 함께 식사를 했던 루이스와 마리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구이요리는 아예 샘플이라고 얘기를 해 줬잖아?”

“심사위원이 갑자기 바뀌기도 하고. 대회 운영 자체는…….”

“잘한다고 볼 수는 없지.”

임진희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상금이 얼만데. 대회에 이 정도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잘한다고 할 수 있어.”

“돈과 운영은 별개지. 처음에는 대회 자체도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이 대회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엉망진창으로 만든 학교 축제도 아니고 말이지.”

루이스가 냉정하게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마리오가 씩 웃었다.

“그럼 형은 그만 가. 내가 마저 참여할 테니까.”

“여태까지 참여했는데 기권은 무슨. 난 벌써 어떻게 만들지 생각도 다 해놨다고.”

“이번 대회에서 형이 사라지면 내가 후원하는 애들도 기뻐할 거야.”

“넌 아직 애들 후원 시작도 안 했잖아!”

“어젯밤에 이메일로 알아봤어. 내일부터 하기로 했다고.”

“그건 아직 하는 게 아니잖아!”

진희는 강 씨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자신의 남매가 떠올랐다.

‘임진혁 얘 사실 멕시코에서 크게 다친 건 아니겠지?’

진희는 메시지를 보냈다.

[진희] 진혁아 너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지?

하지만 진혁은 응답하지 않았다. 진희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발을 굴렀다.

“으. 얘가 메신저도 안 보네.”

「시험에 대해서 공지하겠습니다.」

공식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장유향은 결단을 내리고 통역사에게 말했다.

『나는 여기에 더 이상 있을 필요가 없어.』

통역사가 당황했다.

『예? 하지만 지금 2부까지 좋은 성적을 올리셔서 우승 후보에도 드셨지 않습니까?』

『진흙 오리구이도 구워야 하고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많아.』

임진혁이 없는 이곳에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던 장유향은 서둘러 돌아가서 오리 농장에서 오리를 돌볼 생각이었다.

통역사가 아쉬워했다.

『그럼 그렇게 전달을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다른 사람들은 장유향이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지만 면식이 있던 임진희는 장유향이 떠나는 것을 보았다.

“장 쉐프님이 자리를 떠나시는데?”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지? 시험에 참석하지 못할만한 사정이 생기셨나?”

마리오가 눈알을 굴렸다. 그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저분 오리고기에는 자신이 있는 것 같았는데. 샤와르마 과제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으셨다고 들었고. 그런데 지금 와서 포기한다고? 너무 아깝잖아.”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지.”

루이스가 대답했다.

“아니야! 맛있는 요리를 만드셔서 그걸 우리도 먹어보고 배우고 발전하는 게 더 좋은 일이지! 저분이 저렇게 나가면 어떡해.”

“요리계의 발전은 우리랑 상관없어.”

“맛있는 걸 먹으면 좋잖아.”

루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 그냥 내 말에 무조건 트집 잡고 싶은 거지?”

“히히.”

마리오가 히죽 웃었다.

‘루이스가 형이라서 어른스럽긴 하네.’

임진희는 형제 싸움 구경을 그만두고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 보았다.

“엄마, 진혁이한테 뭐 얘기 들은 거 있어요? 얘가 지금 대회 심사 위원을 하다가 갑자기 자리를 떴는데.”

“그런 건 없는데?”

“어디 아프거나 안 좋은가 해서.”

“걔는 감기도 안 걸리는 애잖니? 장기 비행을 해도 혼자 멀쩡하고.”

“그런데 갑자기 심사위원을 안 하니까 걱정돼서 그러지.”

“엄마가 며늘아기한테 물어보마.”

“응, 응. 부탁해요.”

진희는 조금 후에 어머니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엄마] 급한 출장이 생겨서 일 년 정도 부부가 같이 해외에 있을 거라고 하더라.

[진희] 일 년???? 어디로????

[엄마] 유럽 쪽 어디로 가나 봐.

[진희] 아니, 설마 나 있는 파리로 오는 건 아니겠지?

[엄마] 왜? 너 진혁이랑 사이 좋잖아.

[진희] 아니…… 사이가 좋긴 한데……. 미미 님도 저랑 가까이 살고 싶지 않을걸요.

[엄마] ? 며늘아기가 널 불편해하니?

[진희] 엄마 이제 시험 시작해서 이만 가볼게요!!!

진희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돌렸다.

‘황 회장님은 날 불편해하지 않지. 내가 불편할 뿐이지.’

얼마 전 SNS에 진혁이네 집 내부의 사진을 올렸던 사건 이후로 예전보다 더 눈치가 보였다. 회사 상사이기도 하니 더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적절한 거리가 중요하다고.’

어머니는 황미미와 잘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진희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그럼 지금부터 각자의 요리를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알 해리스라.”

진희는 닭죽을 좋아했다. 특히 닭백숙을 먹고 난 후 닭의 살코기를 찢어서 찹쌀과 함께 끓여내는 닭죽을 선호했다. 그리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 죽을 파김치와 함께 먹으면 더 좋다.

‘하지만 알 해리스는 아무래도 디저트 푸딩 같은 느낌이 더 강한데.’

찹쌀 그리고 달콤한 밥.

키워드를 떠올리자 무엇을 하면 될지 알 수 있었다.

‘카오니아오 마무앙을 응용하면 될 것 같아.’

카오니아오 마무앙은 태국의 요리다.

찰게 지은 찹쌀밥에 코코넛 밀크를 비비고, 얇게 썬 신선한 망고를 곁들인다. 라오스와 베트남 일대에서도 유명한 이 디저트는 밥이 아니라 디저트다.

그녀는 쌀부터 고르기로 했다.

“와.”

다양한 종류의 쌀이 준비되어 있었다.

“까투리찰이 있네.”

까투리 즉 암컷 꿩처럼 털이 나 있는 벼의 형태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전라북도 임실에서 나는 이 쌀은 품격있는 단맛이 있어 그녀가 자주 애용했다. 숨어있는 단맛만이 아니라, 씹을수록 기름기가 있는 것처럼 포만감이 있어 고기 중 비계를 좋아하는 진희의 입맛에 잘 맞았다.

‘알 해리스도 양의 지방을 넣어서 끓였으니까. 이 쌀도 잘 어울릴 거야.’

옆에서 마리오 역시 쌀알을 고르고 있었다. 그는 중간 크기의 자색 현미를 골랐다.

진희는 힐끔 마리오가 고른 쌀알을 살폈다.

‘자광도?’

자광도는 경기도 김포 지방에서 주로 재배하였던 쌀이다. 조선 인조 대에 중국에서 수입해온 이후 구수한 맛이 좋아 궁중에도 내내 진상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소량 생산하고 있는 쌀이었다.

‘오래 끓이려고 하나?’

진희는 곧이어 과일과 설탕, 소금을 고르러 갔다. 망고와 같은 달콤한 과일을 고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아쉽게도 과일은 아예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코코넛 밀크는 있었다.

‘으~음. 확실히. 알 해리스를 과일이랑 같이 내놓을 생각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나 봐.’

코코넛 밀크 곁에는 쌀을 갈아 만든 라이스 밀크도 있었다. 진희는 이 음료는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낯익은 손이 그 음료를 하나 가져갔다.

‘루이스는 라이스 밀크로 쌀을 끓이려는 건가?’

그녀는 강 씨 형제가 뭘 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강 씨 형제를 신경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실제 알 해리스는 12시간이 넘게 끓여서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진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네 시간밖에 없었다.

“음.”

조미료 코너에는 다양한 향신료와 조미료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진희는 바하라트를 비롯해서 강황과 계피, 정향을 집었다. 전부 사용하지 않더라도 일단 가져왔다가 뿌려 보려는 생각이었다.

‘소금은 이걸로 쓰고.’

그녀는 말린 파래 가루와 고운 바닷소금을 가져왔다. 파래 가루를 바닷소금에 섞어 파래 소금을 만들었다.

“물양은 이 정도면 됐나?”

코코넛 밀크를 넣어 까투리찰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압력밥솥에 코코넛 밀크를 넣으면서 양이 어느 정도면 좋을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전에는 코코넛 밀크로 밥을 지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음…….”

그녀는 일단 쌀로 밥을 지을 때와 비슷한 양을 넣어 보기로 했다.

‘아, 이거 잘 돼야 하는데.’

* * *

심사위원들은 음료를 마시며 참가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드로 쉐프에게 비서가 다가왔다.

「장 쉐프님께서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가를 포기하신다고 합니다.」

「아쉬운 일이군.」

무하마드 왕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갑자기 못하신다는 거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부터 알아봐.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면 해결을 해 주게.」

비서가 대답했다.

「개인적인 일이라고만 하시면서 말씀을 하지 않고 이미 떠나버리셨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페드로 쉐프가 혀를 차면서 아쉬워했다.

「그분께서 만드시는 알 해리스도 기대가 됐는데 말입니다.」

「유력한 우승 후보가 스스로 떠날 줄이야.」

장유향이 떠난 이유는 임진혁이 심사위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페드로가 아무리 설득해도 이곳에 남아있을 생각이 없었다.

「저 사람들이 다들 새로운 알 해리스를 만드는 거예요?」

라시드가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맛있었으면 좋겠어요!」

린드버그 박사가 웃었다.

「어떤 요리가 나올지 기대가 되는군요. 저 요리사가 하고 있는 건 알 해리스와 아무 관계 없는 라이스 푸딩 같긴 하지만요.」

루이스는 쌀에 우유와 달걀, 그리고 크림과 설탕, 소금을 섞어 젓고 있었다. 터키식 라이스 푸딩을 만들기 위한 방법과도 똑같다.

‘4시간이면 너무 아슬아슬해.’

터키식 라이스 푸딩은 쌀에 온갖 재료를 넣어서 오랜 시간 동안 끓여서 점성을 만들어 낸다. 변질된 쌀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면서도 쫄깃하게 씹히는 터키식 라이스 푸딩으로 변하는데, 이렇게 하는데 총 4~5시간이 걸린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

루이스는 중얼거리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팔팔 끓는 불에서 쌀이 융해되어 푸딩이 되도록 해야 했다. 이마에서 땀이 뻘뻘 흘렀지만 자칫해서 푸딩이 굳어버릴까 봐 손을 멈추지 못했다.

“덥다, 더워.”

그 곁의 조리장에서 요리하고 있던 마리오가 투덜거렸다.

“너무 더워. 괜히 여기서 했어.”

“나 들으라는 거냐?”

“아니. 그냥 덥다고.”

마리오는 진희처럼 압력밥솥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 진혁이가 만든 물엿 쓰고 싶다…….’

그는 아쉬워하면서도 물의 양을 재서 밥을 지었다.

* * *

그동안 진혁은 무사히 이천을 떠나 자택에 도착했다. 황미미는 돌아온 진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빨리 오셨네요.”

“자고 있지 않았습니까?”

“걱정되어서요.”

그녀는 명이를 안고 있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서 평온하게 잠든 둘째를 보고서 임진혁이 말했다.

“애들이 먹을만한 음식을 좀 가져왔는데요.”

“믿을만한 사람이 준 건가요?”

“무하마드 왕자의 개인 요리사가 만들어 준 겁니다.”

황미미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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