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6화
외전 40화
진혁은 자신의 용건부터 이야기하려고 하고 바로 자리를 뜰 생각이었다.
「큰아이 몸이 좋지 않아서,」
「아들이 걱정된다면 아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 되지. 유아 의자를 준비해 두었어. 라시드와 함께 온 소아과 의사도 대기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게. 뭐하면 지금이라도 진료를,」
진혁이 무하마드 왕자의 호의를 즉시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책이와 명이는 황가의 주치의에게만 진료를 받았다. 두 아기의 신체 성장 지수가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골밀도부터 신장, 체중까지 정상 수치에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 식사라도 하고 가게나!」
무하마드 왕자와 페드로 쉐프는 라시드와 아흐마드, 그리고 린드버그 박사까지 초청해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진혁 쉐프의 몫까지 준비해 두었네.」
「심사를 하다가 중간에 나갔는데 돌아와서 식사 대접까지 받게 되다니 면목이 없군요.」
무하마드 왕자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아이가 안 좋아서 그렇다는데 당연히 이해해야지. 그럼 주문 제작 케이크는 언제부터 접수를 받을 수 있나? 이전에 만들었던 그 케이크도 아주 훌륭했지만, 분명히 새로운 케이크가 있을 것 같은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 말입니까?」
「그렇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케이크라고 해도 먹어버리면 없어지지 않나. 그 케이크를 한 번 더 먹어봐야 다른 것들하고 비교해볼 수 있지.」
결국, 그냥 진혁이 만든 케이크를 다시 먹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진혁 쉐프가 만든 빵은 아니지만 이번에 장유향 쉐프가 본선에서 만든 요리도 대단했습니다. 역시 진혁 쉐프의 스승님이라고 할만한 실력이었죠.」
「맞아요. 장유향 쉐프가 만든 요리는 빵 속에 샤와르마와 야채를 넣은 것이었는데, 육즙을 빵 속이 흡수해서 촉촉하고 부드러웠습니다. 제 취향이 아닌데도 맛있었습니다.」
「먹은 순간 기력이 넘치는 느낌을 받았죠.」
「맞아. 취향이 아닌 데도 맛있으면 그게 진짜 맛있는 거라면서요.」
‘이 새끼 진기 넣었네.’
임진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만든 빵과 비슷하다면 그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음식에 진기를 넣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명인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그걸 요리에 적용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야. 평생을 걸쳐서 수련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생각해 보면 자신도 매일 하고 있는 일이었다. 미미에게 주는 초콜릿에도, 주문 제작 케이크에도 진기를 담았다. 다른 케이크의 명인들이 만드는 케이크보다 더 맛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었다.
허공섭물과 삼매진화로 제과제빵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진기의 일부가 재료에 스며들어 간다.
무공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 무식하게 아무 데나 진기를 넣으려고 하다가는 재료가 부서지거나 망가져 버린다. 검을 잘 쓰는 무림인이 대장장이 일을 배운다고 명검을 쑥쑥 뽑아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진혁이 만든 빵과 과자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보다 유난히 맛이 좋았다.
‘그래서 부하 직원들에게 빵을 만들게 하면 같은 레시피라도 맛이 달라졌지.’
결국, 모두가 낼 수 있는 맛으로 하향 평준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오행진이 없었으면 지금도 나는 그 좁은 주방에서 계속해서 끝없이 빵을 만들고 있었을지도 몰라.’
오행진을 설치한 주방에서 요리를 하면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워낸 빵이나 과자의 맛도 좋아진다.
아버지나 어머니도 만족하셨다.
‘그러고 보니 일봉이 녀석은 잘 있나.’
진희가 일봉 사부가 연애를 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문득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장유향 쉐프가 현재까지는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입니까?」
「그렇죠.」
「다른 사람들이 한 요리도 맛있긴 한데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준 자체가 달라요.」
‘이건 불공평한데.’
평범한 요리사들이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진기가 담긴 음식과 비교할 수는 없다. 요리를 못 만들어도 진기가 담겨 있으면 맛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걸 치팅이라고 할 수도 없고.’
똑같이 진기를 담을 수 있는 요리사들이 여럿 있다면 모를까, 장유향이 우승할 수밖에 없다.
「이론 시험은요?」
알 해리스를 수저로 뜨면서 진혁이 물었다.
쌀알이 알알이 녹아있는 이 닭고기 수프는 따뜻하고 부드러워 먹기 좋았다. 계핏가루가 살짝 뿌려져 있었고, 꿀을 곁들였다.
린드버그 박사가 대답했다.
「아, 그걸 추가하면 평가가 낮아지긴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장유향은 훌륭하게 바닥을 깔아주었다. 페드로 쉐프는 스마트 패드를 꺼내어 진혁에게 장유향의 성적을 보여 주었다.
장유향의 이론 성적은 시험을 본 모든 사람들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허.」
진혁은 그 결과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
‘아니, 전에 오리구이 만들 때 재료 이것저것 써 보지 않았어? 이 자식 왜 이렇게 못 해. 내가 다 부끄럽네.’
장유향은 생존해 있는 일월신교의 신도이며 이 대회에 자발적으로 참석했다.
진혁이 정보를 주기는 했지만 하기 싫었으면 안 했으면 됐을 일이다.
‘일월신교의 대표로 왔으면 대표답게 능력을 보였어야지.’
망나니 자식이 경시대회에 나가서 꼴등을 하고 오면 이런 느낌이 들까?
진혁은 부끄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알 해리스에 스푼을 가져갔다.
페드로 쉐프가 열변을 토했다.
「하지만! 이렇게 이론적인 지식이 없다는 사실, 그걸 주목하셔야 합니다. 그게 더 대단한 겁니다. 재료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이 없이도 본능적으로 제일 적절한 재료를 찾아내서 요리를 한다는 것! 그게 바로 직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무하마드 왕자는 솔깃한 표정이었다. 반면에 린드버그 박사는 찡그리며 무어라 말하려 했다.
「아니, 그래도 우리가 시험을 구성한 이상 그 시험 성적에 맞추어 평가를,」
「최초에 과실과 고기에 이름을 붙이기 전에도 우리는 그것들을 먹었을 겁니다. 돼지를 돼지라고 부르지 않고 사과라고 부른다고 해도 제대로 구워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지요.」
페드로 쉐프가 횡설수설하는 가운데 무하마드 왕자가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분을 우리의 잣대로 평가하는 게 나빴나, 싶기도 하군. 우리가 시험 자체를 잘못 구성한 건가?」
「객관식 필기시험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라서 점수가 낮게 나오신 건가 싶기도 합니다.」
듣고 있는 진혁은 점점 더 부끄러워졌다.
‘아냐, 그놈은 그냥 오리구이랑 향신료만 파고들어서 모르는 거야. 걔는 다른 거엔 관심이 없어.’
임진혁은 수프를 다시 한 번 떠 마셨다.
‘우리나라식 삼계죽이라면 소금으로 양념을 할 텐데. 꿀과 허브로 양념을 하니 맛이 달라지는군.’
아흐마드가 만든 이 요리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삼촌, 라마단 시기가 아닌데도 알 해리스를 먹다니 신기한 기분이에요.」
라시드가 수저를 멈추고 말했다. 벌써 다 먹은 모양이었다.
어린아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된 조그마한 그릇이 다 비어있었다.
진혁도 거들었다.
「이 알 해리스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지난번에 먹었던 것보다 더 맛있는 것 같군요.」
「저번에 맛보신 건 간을 세게 한 거고 이번엔 일부러 약하게 한 겁니다.」
아흐마드가 설명했다.
「아참, 아기님과 함께 오신다고 해서 아기님 것도 따로 만들었습니다. 원하신다면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책이를 위한 음식이라.’
진혁은 사양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면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주는 것은 거절하기 어려웠다.
「감사합니다, 잘 받겠습니다.」
물론 아이가 먹기 전에 점검은 제대로 할 것이다. 진혁은 답례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도 답례로 핫초콜릿을 드리죠.」
「잠깐, 진혁. 아흐마드의 알 해리스를 담을 그릇은 내가 준비했다네.」
무하마드 왕자가 말을 꺼냈고, 라시드가 그렇게 말하는 삼촌을 올려다보았다.
「삼촌? 삼촌도 핫초콜릿이 먹고 싶어서 그래요? 내 걸 양보해 줄까요?」
「아니, 나는 진혁 쉐프가 만드는 핫초콜릿이 궁금한 거야.」
페드로 쉐프는 옆에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린드버그 박사는 관심 없는 듯 숟가락을 놀렸다.
「……그릇이요?」
진혁은 이전에 무하마드 왕자가 결혼 선물로 주었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도 그릇이었다. 고가의 그릇에 금으로 왕가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어 지금도 집과 가게에서 사용하고 있었다.
「개수는요?」
「일단 두 개를 준비했지만 필요하다면 더,」
「두 개면 충분합니다.」
갑자기 삼백 개나 천 개의 그릇이 더 늘어나면 보관할 곳도 없다.
「그러면 나한테도 핫초콜릿을 주는 건가?!」
무하마드 왕자가 환하게 웃었다. 진혁도 마주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가는 대로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무하마드 왕자는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진혁은 그 틈을 타서 말했다.
「이번에 대회 심사를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끝까지 참석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무하마드 왕자가 미간을 좁혔다.
「아이들의 건강이 그렇게 안 좋은가? 한국의 의료진들이 실력이 좋다지만, 다른 나라도 나쁘지는 않아. 원한다면 내가 의사들을 소개해 주지.」
「감사합니다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진혁은 알 해리스의 시험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알 해리스는 준비하는 데만 열두 시간 이상 걸리는 음식 아닙니까? 어떻게 재현하게 할 생각이십니까?」
「열두 시간을 주지는 않을 거야. 적당한 시간 내에서 비슷한 요리를 하게 해야지.」
아흐마드가 웃으며 말했다.
「한국에도 압력밥솥이라는 요리기구가 있더군요? 그게 있으면 시간 절약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진혁이 식당에서 일어나 나가려고 하는데 요리사가 카트를 끌고 다가왔다. 그 위에는 보자기에 덮인 도시락 같은 것이 있었다.
페드로 쉐프가 직접 그것을 건네주었다.
「왕자님께서 약속하신 음식입니다.」
「잘 먹겠습니다.」
무하마드 왕자는 진혁이 안고 있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이가 계속 잠들어 있는데…… 보통 아기들이 이렇게 많이 자나? 이게 문제인 건가?」
진혁이 빙긋 웃었다.
「책이는 괜찮을 겁니다.」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 * *
다음날, 대회장.
“진혁이가 심사 위원에서 완전히 빠졌다니, 처음 듣는 얘기야.”
공식 발표문을 들은 임진희와 루이스, 마리오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무슨 일이 있나? 걔가 이런 걸 별일 없이 빠질 애가 아닌데.”
“어디 안 좋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렇지만 제일 동요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주군께서 이 대회에서 아예 빠지신다고?’
장유향은 허망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럼 난 여기에 뭣 하러 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