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45화 (645/656)

제 645화

외전 39화

장유향이 고른 포실포실하고 통통한 빵은 페드로 쉐프가 장난삼아 가져다 둔 것이었다.

‘바게트 풍으로 구워놓은 빵이었는데.’

다들 얇은 빵을 사용하는 가운데 일부러 그 빵을 고른 장유향.

「호오……. 이렇게는 먹어본 적이 없지.」

「그렇게 훌륭한 오리구이를 내놓으셨던 장 쉐프님이시라면 무슨 생각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예상외로 무하마드 왕자와 아흐마드는 호평을 했다. 페드로 쉐프는 말없이 눈알을 굴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형편없다고 하더니. 아는 사람이 만든 요리라고 해서 기대감을 갖는 건가?’

기대감.

그것은 양날의 검이나 마찬가지다.

‘겉모습을 보고 맛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맛있으면 더 가산점을 받을 테지만, 반대라면…….’

맛있을 줄 알았는데 맛이 없으면 더 크게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하마드 왕자는 기대감을 크게 갖는 편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쉐프들은 가차 없이 해고해 왔다.

자신의 앞에 있는 이 노인은 과연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

‘오리 요리의 달인이라고 해서 다른 것도 잘 할 수 있을까…….’

페드로는 장유향이 대회에 꼭 참석하고 싶다고 해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장 쉐프는 허언을 하지 않았다. 미각을 예민하게 단련시키기 위한 체력 훈련 때에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자였다. 동양인인 데다가 다른 자들보다 나이가 20살 이상 많다는, 체격적으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훈련을 달성해 냈다.

그렇지만 그때도 통오리 구이 외의 다른 요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리의 품종, 오리의 생육 방법, 통오리 구이를 맛깔나게 할 수 있는 향신료나 소스 따위에는 흥미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는 누가 뭐래도 진흙 오리 통구이의 달인이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오직 그것밖에 모르는 고집불통이었다.

‘샤와르마는 오리로는 만들지 않으니까.’

페드로는 접시에 담긴 요리를 내려다보다가 손을 씻었다. 이것은 손으로 집어 먹어야 하는 요리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빵 덩어리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두꺼운 빵 안에 무엇을 어떻게 넣었을지 궁금했다.

맨손이 두터운 빵에 닿자 뜨거운 온기가 감돌았다.

「손으로 떼기에 딱 좋은데?」

조금 더 빨리 가져왔다면 뜨거워서 손을 데었을 것이고, 더 늦게 가져왔다면 식어서 맛이 덜했을 것이다. 이 심사 시간을 위해 적절하게 조절한 것이리라.

‘음, 역시 한 분야의 대가라면 다른 데서도 두각을 보이는 걸까.’

페드로 쉐프는 여기 들어온 빵을 전부 알고 있었다. 그가 골라서 비치해 놓은 것들이니 당연하다. 그러니 빵 자체의 맛에는 기대하지 않았다.

「……묘하게 반미 생각이 나기도 하고.」

반미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바게트 안에 햄과 치즈, 양상추를 넣는 베트남식 샌드위치의 이름이다.

그는 양손으로 푹신푹신한 빵을 찢어냈다. 갈색 표면 안의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속살에 파묻혀 있던 다갈색 고기가 보였다. 그 곁에는 붉은색 토마토, 녹색 파프리카, 투명한 양파가 있었다. 내용물은 샌드위치 안쪽에 들어가는 것과 특별히 다를 바 없었으나 조리 방식이 달랐다. 이미 익힌 고기를 한 차례 더 버터와 함께 볶아내어 버터 향이 감돌았다. 거기에 더하여 짙은 향신료의 향기가 퍼지며 육즙이 흘러내려 하얀 속살을 적셨다.

「이건 반미가 아니라 만두 같기도 한데.」

페드로 쉐프는 통통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두꺼운 빵과 짭짤한 고기라. 이건 충분히 한 끼 식사가 되겠습니다. 먹으면서 묘하게 기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담백한 빵의 안쪽에 버터를 바르고 고기를 얹었다. 버터와 기름을 흡수한 빵은 촉촉하고 기름졌다. 나쁘지 않은 빵이었다. 하지만 장유향 쉐프의 통오리 구이에는 미치지 못했다.

‘역시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면 고작 이 정도인 건가.’

페드로 쉐프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라시드는 아예 맛을 보지도 않고 빵을 내려놓았다.

「샌드위치 빵이 너무 두꺼워요. 너무 크다.」

「아니야, 먹어 봐. 생긴 거랑 다르다.」

무하마드 왕자는 빵을 한 입 먹어 보더니 표정이 바뀌었다.

「이거 먹으면서 은근히 기운이 나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지쳐 있던 피로가 확 풀리는 느낌이야.」

까탈스러운 무하마드 왕자가 괜찮다고 인정했다.

「좋은 고기와 좋은 빵을 써서 요리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도 제가 두터운 빵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빵은 다르군요.」

샤와르마를 가지고 사람들이 장난친다며 불쾌해하고 있던 아흐마드도 표정이 풀려있었다. 아흐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오히려 케밥 유사품이 아니라서 더 좋고요.」

먹기 전에는 분명히 왜 이런 빵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한 입 먹고 나니 활력이 넘치며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뭐 마약이라도 넣은 거 아닙니까? 갑자기 커피 열 잔은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린드버그 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에 있는 재료만을 사용했는데 마약을 어떻게 넣습니까.」

「그리고 마약은 이런 맛이 날 수가 없어요.」

「……드셔 보셨습니까?」

페드로 쉐프가 히죽 웃었다.

「아니, 제가 마리화나나 대마초, 하시시 같은 걸 피웠겠습니까?」

‘피웠나 보군.’

‘피웠어.’

린드버그 박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범한 음식이라면 이런 맛이 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기운이 난다는 게 이상한데.」

무하마드 왕자는 이런 현상이 익숙했다.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 장인이 혼을 담아서 만든 음식이라면 말이야. 임진혁 쉐프의 케이크들도 그렇다고.」

왕자의 해명에 린드버그 박사가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 케이크는 저도 정말로 먹어보고 싶군요.」

비슷비슷한 음식을 먹으면서 질려 있던 가운데 개성 있고 독특한 음식이었다.

「아주 훌륭한 음식입니다. 개성적인 샤와르마였어요. 그럼 다음 사람.」

하지만 장유향은 움직이지 않았다. 무하마드 왕자가 고갯짓을 했다.

「다음.」

장유향이 고개를 들어 비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심사위원 중에서는 임진혁 쉐프님은 계시지 않습니까?』

이 빵은 장유향이 성심껏 만든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입맛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주군께서 드실 수 있도록, 주군의 입맛에 맞추었다.

주군께서는 얇은 피 만두와 두꺼운 피 만두 중에서는 두꺼운 것을 좋아하셨다. 지나치게 뜨겁거나 차가운 것보다 적당히 따끈따끈한 것을 선호했으며 고기는 잘게 잘려서 씹히는 것보다 덩어리가 큼직큼직한 것을 좋아하셨다.

그러나 여기서 제공한 고기들은 판처럼 층층이 쌓아 올린 것이라 덩어리가 크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들을 다시 분해하고 조립해 버터로 구워 뭉쳐 미트볼처럼 동그랗게 만들었다. 씹는 맛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다.

주군께서는 과연 그 도량이 바다와 같이 넓어, 토마토와 파프리카, 양파도 큼직하게 썬 것을 즐겼다. 하지만 양파는 투명하게 될 정도로 익은 것을 좋아하셨다.

그 모든 취향을 완벽하게 맞추었다고 자부하는 이 빵.

「이거 빵도 너무 두껍고. 고기도 많이 넣었다 싶은데 요상하게 맛있네.」

「그러게, 기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그가 정성 들여 만들어낸 이 빵을 지금 저자들이 먹고 있었다.

뽑아낼 수 있는 만큼 모든 진기를 담은 빵.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주군께 바치기 위해서 열심히 만들었는데……. 주군! 지금 어디에 계신 겁니까!’

저들이 먹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 따로 남겨둔 것도 없었다. 자신이 먹으려고 빼둔 것도 없다.

장유향은 슬펐다.

‘주군, 어째서 저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 * *

무하마드 왕자가 힐끔 쳐다보았다.

빵은 맛있었다.

하지만 장유향이 지금 심사위원의 부재를 물어보니 불쾌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자리를 비키지 않을 기세였다.

「임진혁 심사위원은 일이 있어서 갔습니다.」

통역사가 전달해준 말을 듣고서 장유향은 어깨를 추욱 떨어뜨렸다.

「진혁 쉐프님 입맛을 맞춰서 만들기라도 한 건가?」

페드로 쉐프는 벌써 주먹만 한 빵을 다 먹어버렸다. 린드버그 박사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렇게 다 먹으면 다른 심사를 못 할 겁니다. 자제하시죠.」

「박사님도 다 드셨지 않습니까.」

「이거 못생겼는데 맛있었어요.」

라시드가 즐겁게 말했다. 무하마드 왕자가 피식 웃었다.

‘요리사들이란.’

「장유향 쉐프는 제자에게 자신의 음식을 꼭 먹여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쯧쯧.」

「자, 그럼 다음 사람을 심사할까요?」

「들어오시지요.」

이제 심사받을 사람은 얼마 남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방금 있었던 사소한 일은 잊은 채 다시 빵을 맛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의 이 샤와르마는 정말로 별로군요.」

「아까 먹었던 장 쉐프님 빵이 정말로 맛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지.」

진기를 담은 음식을 맛보고 나서 다른 음식을 맛보면 안 된다. 다른 음식의 맛이 형편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장유향은 그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 * *

[주군, 제가 능력이 부족하여 주군께 제 음식을 맛보여드리지 못하여 통탄할 따름입니다. 제가 과분한 능력으로 시험에서 1, 2차 모두 우수한 성적을…….]

임진혁은 이천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했다. 1차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리구이가 아닌 2차 메뉴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것은 예상외였다.

“아, 초등학생도 아니고 상 받은 걸 자랑하고 싶은 건가? 무슨 맛인지 궁금하긴 하네.”

진혁은 대수롭지 않게 메시지를 넘겼다. 그리고 옆에 잠들어 있는 아기를 흘깃 바라보았다.

“아이 교육이라…….”

어찌 보면 이 아이를 교육하는 것도 장유향을 교육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공 수련이 제일 쉽지. 그다음에 나와서 사회 적응이 어려워서 그렇지.’

경지를 높일 때까지 둘이서 폐관해서 무공 수련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제일 어려운 일은 다 마쳤어.’

미미에게 아이의 상태를 털어놓고 전부 이야기하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도 마쳤다.

‘당분간은 다른 것을 신경쓸 필요가 없으니 천천히 하자.’

그는 무하마드 왕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하거나 메시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에 대회에 더 이상 심사위원으로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할 생각이었는데, 황미미가 그 의견을 반대했다.

그래서 이렇게 이천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당분간 외부와 연락하지 않을 거라면 이번 대회까지는 마무리를 하는 게 좋겠어요. 무하마드 왕자에게 더 이상 빚을 지는 것은 좋지 않아요.”

그리고 미미는 몇 가지 사업상의 거래 이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요약하자면 무하마드 왕자와 함께 사업을 하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잠수를 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으음.’

이런 일들을 조정하는 것은 원래 광안마의 역할이었다.

광안마가 이천에 가달라고 부탁했다면 거절하거나 불쾌해했을 테지만, 황미미가 요청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제가 직접 가서 설득하는 것보다 진혁 씨가 직접 가서 인사를 하는 게 좋아요.”

“……그렇군요.”

“무하마드 왕자님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혁 씨를 아주 좋아하니까요.”

미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진혁은 미미의 죽은 조부를 생각했다.

‘그 녀석은 어딘가에 다시 태어났으려나.’

진혁은 차 안에서 턱을 괴고서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 보이는 광경은 평화로웠다. 카시트에 앉아서 잠든 장남도 평온했다.

‘아무래도 아동 복지 사업이라도 하자고 해야겠어. 그 녀석이 어린 시절에 학대를 받는다거나 하면 골치 아파지니까.’

사업은 미미 씨에게 부탁하면 알아서 잘 할 것이다. 진혁은 책이와 함께 폐관 수련을 하는 동안 부탁할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부모님 생일하고 진희 생일이랑……. 아, 맞다. 진희 파리에 집 사주기도 부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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