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43화 (643/656)

제 643화

외전 37화

“저도 제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다른 세상에 떨어진 줄 알았죠.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죠.”

미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보다 특별히 더한 잘못을 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세계로 가지는 않더군요. 아시지 않습니까?”

진혁의 시선은 미미가 아니라 그녀의 어깨너머 어딘가 먼 곳에 향해 있었다.

“…….”

“미미 씨가 부유한 집안의 외동딸로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전생에 선행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것이 전부 일월의 섭리입니다.”

경험상 ‘일월의 섭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진혁과 말이 안 통했다.

미미는 현명하게 이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종교…….’

미미는 종교에 관심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부모님은 두 분 다 무교였다. 종교란 그녀에게 있어서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이 부분에서 미미는 진혁을 판단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다시 생명이 위험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심마가 온다면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곁에 있다면 괜찮습니다.”

“그럼 진혁 씨가 장남과 항상 함께해야겠네요.”

“…….”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오늘도 이천에서 달려오는 동안 책이는 혼자서 충분히 버텼다. 임진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처럼 위험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렇지만 만에 하나라도 아이가 다치거나 죽게 할 수는 없어요.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이 있어서 지켜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진혁은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아내와 의견 차이를 좁힐 수 있을까?

“그럼…….”

이야기가 길어졌다. 진혁의 스마트폰이 울렸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내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런 방법이 있어요?”

“책이가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면 심마가 올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지금은 아직 입문한 상태라 불안정해서 그런 거고요.”

“조금은 안심이 되네요.”

“최대한 빨리 무공 수련을 시켜서 강하게 만들겠습니다.”

“그럼 사회학과 경제학, 언어 공부 등은 나중으로 미루죠.”

황미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 스마트폰, 계속해서 울리고 있지 않아요?”

“아.”

진혁은 무하마드 왕자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바로 돌아오겠다고 하고 심사 도중에 자리를 떴는데.’

그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잠시 무하마드 왕자에게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이야기하기가 불편하다면 제가 직접 연락을 해볼까요?”

“아니요, 이건 제가 처리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 * *

한참 전, 임진혁이 자리를 떠난 직후.

무하마드 왕자는 황망한 표정으로 빈자리를 보았다.

「이렇게 갑자기 가버리다니. 쯧.」

그는 진혁에게 실망했다.

샤와르마를 재해석한 멋진 요리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샤와르마의 아류작들이나 이상한 퓨전 요리들을 하고 있었다.

‘대회를 한국에서 한 건 진혁 쉐프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하기 위해서였는데. 무하마드 왕자님이나 아흐마드는 이 샤와르마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질 못해.’

페드로 쉐프는 땀을 뻘뻘 흘렸다.

보기만 하면서도 전통 음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며 불쾌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적절한 근거를 대서 중재할 수 있는 임진혁 쉐프가 있어야만 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진혁 쉐프가 3~4시간 안에 온다고 하니까 음식을 바로 맛보지 않고 기다리면 어떻습니까?」

무하마드 왕자는 바로 페드로 쉐프의 제안을 거절했다.

「시험 시간을 처음부터 4시간으로 잡았다면 모를까. 지금 와서 시간을 변경하는 건 우스운 일이야. 왕족의 품위에 어긋난다. 예정대로 5분 후에 바로 심사를 시작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벌써 대회 컨셉을 한 차례 바꾸면서 일정이 바뀌었으니 이 이상 바꿀 수는 없었다.

「진혁 쉐프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본선에서 심사를 하지 못하고 개인사를 핑계로 빠지다니 실망스럽군.」

「아이들이 많이 안 좋은 게 아닐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진혁 쉐프 아닙니까. 맛에는 항상 진지하신 분인데.」

페드로 쉐프가 진혁의 편을 들어 주었다. 린드버그 박사도 거들었다.

「아이가 아프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무하마드 왕자는 어린애처럼 토라져 있었다. 페드로는 곤란해졌다.

‘아, 왕자님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기 시작하시면 곤란한데. 진혁 쉐프가 자리를 뜨면 안 됐어.’

이제 3분 후에는 쉐프들이 차례대로 음식을 제출할 것이다. 린드버그 박사가 말했다.

「무하마드 왕자, 감정을 다스리지 않으면 음식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심사 위원답게 행동하는 게 어떨까요.」

‘박사님! 박사님은 왜 이렇게 눈치가 없습니까!?’

페드로 쉐프는 린드버그 박사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무하마드 왕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가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무하마드 왕자의 조카인 라시드가 말했다.

「제가 아팠을 때, 저희 아버지도 이런 식으로 일을 그만두고 저한테 오셨던 걸까요?」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그래. 오마르 녀석이 너를 많이 아꼈지? 그렇지 않아도 내일 너를 데리러 올 거다.」

「아빠가 오신대요!?」

「그럼. 네가 있는데 직접 와야지.」

무하마드 왕자는 라시드와 함께 이것저것 먹으면서 찍은 사진을 오마르에게 잔뜩 보냈다.

유가 조정 회의에 참석한 오마르 놈은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모양이었다. 회의에서 자신의 발언이 끝나는 대로 직접 와서 라시드를 데려가겠다며 연락을 해 왔다.

‘후후후후. 내가 일부러 국제회의 기간에 맞춰서 이 대회를 연 줄은 몰랐겠지.’

라시드는 묘하게 임진혁을 따랐다. 그래서 그 형을 보게 해달라며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졸라댔다.

하지만 한국은 아랍의 이슬람국가가 아니고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한다. 오마르는 경호원이 있다고는 해도 라시드를 혼자 한국에 보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무하마드는 오히려 부탁을 받아들여 준 척 보호자 역할을 하며 라시드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사촌 오마르를 제대로 골탕 먹였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삼촌, 삼촌. 저 샤와르마는 꼭 빠에야 같지 않아요? 삼촌이 자주 먹는 스페인식 빠에야 말이에요.」

「그러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이미 샤와르마가 있는데 왜 또 새우를 올렸을까요? 저렇게 하는 건 처음 봐요. 의외로 맛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라시드를 보면서 페드로 쉐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카분이 오셔서 다행이야.’

어린아이는 주변 분위기가 변화하는 것에 민감했다. 하지만 라시드가 풀어놓은 분위기도 막상 심사를 시작하자 다시 엉망진창이 되었다.

쉐프들 중에서 아랍식 샤와르마를 충실하게 재현한 자들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오리지널에 미치지 못했다.

「쯧, 아흐마드 같은 맛을 내지는 못하는가? 모양은 그럴듯한데 맛이 형편없군.」

왕자가 중얼거렸다.

야채의 양은 너무 적었고, 배합도 이상했다.

「여기에 이렇게 당근이 많으면 식감이 조화롭지 못해.」

「이 상태로도 나름대로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진혁 대신 와서 앉아있는 아흐마드가 동의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만든 샤와르마 고기가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것이 불만인 모양이었다.

「샤와르마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신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여러 사람들이 음식을 내놓았고, 무하마드 왕자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해도 오랜 시간 동안 무하마드 왕자를 수행해온 페드로 쉐프는 알 수 있었다.

‘왕자님 기분이 무척 나쁘신데.’

페드로 쉐프는 누군가 맛있는 샤와르마를 내놓기를 기원했다. 그는 오늘 대회가 끝나고 나서도 왕자를 수행해야 했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 같이 머물러야 했다. 이번 미식 평론 대회에서는 페드로 쉐프가 수행 비서 역할을 비롯해 대회 진행을 도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다른 사람한테 하라고 할걸.’

그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그리고 그가 개인적으로도 아는 사람이 심사를 받기 위해 걸어왔다.

마리오 강 쉐프의 차례였다.

“제가 만든 샤와르마입니다.”

강마리오는 아주 얄팍한 빵 위에 야채를 올린 것을 내놓았다. 언뜻 보기에는 샤와르마 고기 자체가 흔적도 없어 보였다.

「고기는 어디에 있는 거지? 이 얇게 썬 파프리카와 감자, 당근과 콜리플라워는 꽤나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해. 하지만 정작 중요한 샤와르마가 보이지 않는군.」

무하마드 왕자가 물었다.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마리오는 전혀 긴장한 것 같지 않았다. 그가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빵처럼 보이는 것이 고기입니다.”

요리사 아흐마드가 신기해했다.

「샤와르마 고기는 얇아서 뚝뚝 끊어지는데, 어떻게 이렇게 한 겁니까? 대단한 기술이군요.」

「응?」

무하마드 왕자는 마리오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채소 아래에 깔려 있는 희고 검은 빵처럼 보이는 것을 포크로 잡아당겨 보았다. 언뜻 보면 얇은 파히타 빵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고기였다.

「착각하게 만드는 음식이라. 이런 건 또 나쁘지 않지.」

이건 진혁 쉐프도 자주 쓰는 기술이었다. 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다른 음식이다.

「고기는 맞군.」

잡아당길 때 감촉부터 달랐다. 이 고기는 탱글탱글하고 길었다. 하얀색 고기가 툭 끊어지면서 단면이 드러났다. 빵이라면 다른 모양으로 찢어졌을 것이다.

「하얀 고기와 갈색 고기라.」

「고기로 빵을 만들었어요!」

라시드가 재미있어했다. 소년은 제일 먼저 고기를 뜯어 먹기 시작했다. 즐거워 보였다.

린드버그 박사가 물었다.

「고기를 얇게 면처럼 뽑아내서 엮은 겁니까?」

무하마드 왕자가 중얼거렸다.

「그거, 여자들이 만드는 태피스트리가 생각나는데.」

“그 이름 좋네요. 태피스트리 샤와르마라고 부르죠.”

마리오가 태평하게 말했다.

“고기로 야채를 싸서 집어 드시면 됩니다.”

「음.」

마리오가 샤와르마의 고기와 함께 엮기 위해서 손질한 고기는 거의 모두 닭다리 살이었다. 길이가 긴 닭다리 살을 손질해서 샤와르마와 엮고 나서 매듭을 견고하게 하려고 다시 또 따로 데쳤다.

「버터 향이 감도는데.」

“버터를 발라서 익혔거든요. 그래야 풀 역할을 해줍니다.”

「음, 나쁘지는 않아.」

얇은 라바스 빵으로 감싸서 야채와 고기의 식감을 즐기는 것이 본래의 샤와르마다. 얇은 고기로 감싸서 야채를 먹는 이 음식은 분명히 샤와르마가 아니었다. 지나치게 짜지도 않고 달지도 않으며, 담백하면서 입을 즐겁게 했다.

무하마드 왕자의 ‘나쁘지 않아’는 좋다에 가깝다. 페드로 쉐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는 좋습니다. 이 음식이 마음에 드는군요.」

무하마드 왕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마리오 쉐프. 수고했네.」

마리오가 묵례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면 다음 분 부탁드립니다.」

그 뒤에는 마리오의 친형인 루이스 쉐프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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