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41화 (641/656)

제 641화

외전 35화

새롭고 독특한 감각이었다.

남궁소천은 열등감이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특히 둘째 부인 소생의 동생이 그랬다.

‘그 애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래서 자신을 경계하고 같잖은 수작질을 했던 걸까.

그때는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스스로 노력을 하면 되지, 왜 뛰어난 자를 질투하여 끌어내리려고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았다.

‘주변에 자신을 진정 위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상태로, 능력이 뛰어난 형제는 계속해서 치고 올라가는데 비해 스스로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상황이었던 거지.’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명이가 걸음마 연습을 할 때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거나 독이 든 당과를 보낼 것은 아니었다.

‘나는 군자야.’

공자께서는 군자가 피해야 할 세 가지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여색을 경계하며, 불필요한 싸움을 경계하고, 과도한 물욕을 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맹자께서는 군자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군자란 마땅히

부모님과 형제들이 건강하고 별다른 일이 없을 때, 하늘을 우러러보아 부끄러움이 없을 때,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칠 때

즐거워야 한다.

경전을 새록새록 되새기며 남궁소천은 새삼스럽게 동생에 대해서 떠올렸다.

‘명이를 가르칠 때 즐거웠어.’

동생이자 제자이니 두 겹의 인연으로 겹쳐있어 더 신뢰할 수 있다.

‘어라?’

그러고 보니 혈와수는 기억을 잃기 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은 무공뿐이라 했다.

‘그리고 그 무공은 교주께서 알고 계시니 자신은 아무것도 미련이 없다고 했지.’

정파의 수장을 형으로 모실 수 없다며 기억을 잃고 싶다고 청했다.

‘……명이가 내 제자가 아니라 그자의 제자가 되었을 수도 있겠는데.’

이전에는 여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진혁은 두 아들을 분리해서 교육할 수도 있었다. 애초부터 철저하게 일월신교를 믿도록 가르쳐서 남궁가의 심법이나 검법, 보법 따위는 접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

생각을 마치자 심장이 유난히 더 두근거렸다.

‘내가 가르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진혁은 자신을 신뢰하고 동생을 맡겼다.

심법이나 보법을 가르칠 때도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고, 명이에게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 다른 것을 따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명이는 기억을 날려버린 후 자신이 어떤 식으로 축기했는지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리고 진혁은 이 세계에서 마기를 풍기는 것은 곤란하다며 명이의 내공을 흩어 버렸다.

그 결과 지금 명이가 익힌 것은 순수한 정공이다.

명이에게 무공은 전수하지 않는 것을 보고 답답해진 책이 자신이 스스로 동생에게 명이에게 정공 심법을 가르친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 대 남궁가의 심법과 보법을 익혀서 대성한 걸까?’

책은 크게 기뻐졌다.

‘크흡!’

그리고 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안돼.’

1갑자에 달하는 내공.

하지만 외공은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아직 성장기의 몸인 만큼 따로 외공을 수련하지 않고 그동안 기혈을 순환시키며 기틀을 닦는 데에만 힘썼다. 그 결과 지금 부족한 체력 때문에 기력이 모자랐다.

‘아, 안 되는데……!’

과도한 기쁨도, 과도한 우울함도 좋지 않다.

격렬한 감정의 변화 때문에 기혈이 진탕되어 의식이 흐려졌다.

‘나는 그자를 부러워했던 거구나.’

책이 품고 있었던 열등감.

그것은 명이가 허공섭물을 빨리 익혔던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임진혁…….’

지금은 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자.

자신의 부하와 정파의 동맹들을 수없이 격살한 자다.

두려웠고 무서웠으며 불편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화해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자의 무공은 가늠할 수 없는 수준에 올라 있어.’

내공이 몇 갑자가 되는 건지, 허공섭물과 삼매진화로 진기를 낭비하며 요리를 할 정도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주는 초콜릿에도 진기를 듬뿍 담았다.

나름대로 존경했지만 그만큼 미워하기도 했다.

‘왜 너만 고민 없이 행복한 거야.’

‘왜 너만 무공이 고강한 거야.’

‘왜 너만 그렇게…….’

일월신교의 교주, 천마는 무욕(無慾)으로 유명했다.

황궁 숙수가 나와서 차린 모향루.

그곳의 음식이 가히 천하제일이라 하여 정사 간의 무림 고수들이 협정을 맺었다.

이곳에서는 칼을 들지 않고 음식을 즐기리라고.

유명한 고수들이 한 번씩 들렀다는 소문이 있는데, 유일하게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자가 있었다.

바로 천마였다.

그는 음식에는 관심이 없다며 흥미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비파 연주로 유명하던 미인이 있었다. 이름이 항아였던가, 성아였던가 그랬다. 기루의 여인이었으나 천하제일미로 이름이 높았다. 그녀가 우연히 천마에게 구함을 받았다며 흠모하는 연시를 지어 노래했다.

그리고 일월신교에서 누군가 나타나 기녀를 모셔갔다. 당연히 교주의 애첩이 되었으리라 했는데, 환희당의 소속이 되어 평범하게(?) 노래를 짓고 악기를 연주하는 업무를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증거로 이후에도 그녀가 만든 노래가 강호 곳곳에서 불렸다. 계절마다 신곡이 나와서 심심할 새가 없었다.

‘종종 외유를 나오기도 했으니 갇혀 있는 건 확실히 아니었어.’

하지만 무림맹에서는 일월신교의 악마적인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서 허위 소문을 퍼트렸다.

교주가 수백 명의 미녀를 잡아 들여 자신의 첩으로 맞아들였으며 그중 천하제일미도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승인한 계책이었지…….’

남궁소천은 무림맹의 정보수집단체와 개방의 정보, 하오문의 정보를 전부 입수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자신이 세상에서 임진혁의 무림시절을 제일 잘 아는 자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천마는 물욕이 없었어. 비단옷이나 황금, 그리고 좋은 무기 같은 걸 따지지 않았지. 그저 인재 욕심만 있었지.’

정파의 인물이라면 극렬하게 거부하는 몇몇 원로들과는 달리 그는 한때 정파의 일원이었던 자들도 차별 없이 등용했다. 당장 생각나는 별호만 해도 혈도객 말고 여럿이 생각날 정도였다.

일월신교의 신도들은 과연 교주님께서는 다르다며 신격화하고 존경했다. 그렇게 무공이 고강한 데도 스님처럼 여색도, 음식도, 재물도 탐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점이었다.

그러나 임책은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냥 음식 취향이 달랐던 거야.’

현대에 와서 본 임진혁은 달랐다.

먹을 것을 엄청나게 좋아했다. 특히 단 것을 즐겼다. 밀가루로 만든 빵과 소젖으로 만든 크림, 그리고 그것으로 만든 유제품에 환장을 했다. 이국의 귀한 열매를 갈고 볶아서 새까만 음료를 만들기도 하고, 네모지게 식혀서 달콤한 간식도 만들어냈다.

맛에 퍽 진지했다.

‘요리 솜씨는 좀 대단한 것 같기도 해.’

이렇게나 먹을 것에 집착하는 인간이 강호에서는 그렇게 초탈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그것이 부러웠다.

과거에 죽인 자들, 과거에 함께했던 자들.

추모할만한 무덤도 없이, 오직 자신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 남아있다.

어쩌면 자신 역시 기억을 잃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백 년도 아니고 천 년…….’

이 시대는 너무나도 빠르고 쾌활하며 광활하다.

얄팍한 무공과 고작 1갑자의 내공으로 과연 충분할 것인가?

자신이 두려움에 싸여있는 데 반해서 임진혁은 너무나도 당당했다.

동생은 천진난만하고 어머니는 항상 바빴다.

어디에 마음을 붙여야 할지 몰랐다.

그렇지만 동생이 자신을 따라서 무공을 익혀주었기 때문에 위로가 되었다.

내가 가르쳤으니까 천재가 되었다고 자위하는 것도 한순간뿐이었다.

그 동생에게도 한참을 추월당하고 나자 그저 허탈했다.

‘그래, 나는 부러웠던 거야.’

과거를 두고 현재의 가족들을 진심으로 대하면서 태평하게 살아가고 있는 임진혁.

특이하고 다른 아버지와 자식들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받아들이고 있는 유능한 어머니.

형이 하라는 대로 뭐든지 따라 하면서, 형은 당연히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착한 남동생.

손자들을 아끼고 걱정하며 올 때마다 장난감과 간식을 잔뜩 사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볼 때마다 아버지를 타박하며 아이들을 우선으로 하라고 주장하는 고모.

꿈속에서 나올법한 완벽한 가족들이다.

‘크흡!’

심마(心魔)를 극복했으나 그 대가로 진기가 흐트러졌다. 치밀어오르는 분기를 감사와 관용, 그리고 이해로 감싸서 수습한다.

‘임진혁만 행복한 게 아니야. 나도 행복하다.’

평화로운 집안, 자신을 믿고 아끼는 아버지.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자신 역시 아무 문제 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즉 이 집안에서 이질적인 자신이 문제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없애거나 지울 순 없어.’

남궁소천으로서의 자신도, 임책으로서의 자신도 모두 받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진기가 단전에서부터 용틀임하여 폭발하듯 치솟아 뛰쳐나오려고 했다. 지금 이곳에서 주화입마를 일으켰다간 그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아, 안돼.’

아까 외부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던 음성은 어머니의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곳에 없었다.

있었다면 벌써 달려왔을 게 분명했다.

‘나 혼자서 수습해야 해.’

명이는 자신이 주화입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만한 능력이 없었다.

식은땀이 뻘뻘 흘렀다.

그때 누군가 등에 손을 갖다 댔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기운이 등을 통해 주입되었다.

‘아.’

아버지가 왔다.

임책은 그대로 안심하고 기절했다.

* * *

‘기본이 안 됐네. 심마가 들어서 진기를 순환시켜 주는데 그대로 정신을 놔? 남궁가는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훈련시키는 거야?’

진혁은 한 손으로 임책의 등 뒤를 짚고 있었다. 옆에서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황미미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우리 책이 괜찮은 거죠? 어디 잘못된 데는 없죠?”

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책이의 단전부터 시작해서 전신의 대주천을 다섯 번 돌렸다. 그리고 나서야 뭉쳐있던 기혈이 풀리며 아기의 숨소리가 편안하고 고르게 변했다.

‘아기라서 금방 할 수 있네?’

며칠은 걸리는 과정이었으나 진혁은 빠르게 진기를 돌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빠르다고 해도 시간이 걸렸다.

대략 한 시간이 걸렸다. 황미미는 그동안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서성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또, 손톱을 깨물기도 했다. 이미 어렸을 때 교정받아 없어진 줄 알았던 습관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마침내 해 질 무렵이 되었을 때 진혁이 아기를 받쳐 안으며 등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미미에게 말했다.

“이제 아무 문제 없습니다.”

“우리 이야기 좀 해요.”

황미미가 핼쑥한 표정으로 말했다.

* * *

“처음에는 자폐증 같은 건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 아이한테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죠? 생명이 위험했던 건가요?”

진혁은 선물로 미리 만들어 놓은 헤이즐넛 향 초콜릿을 내놓았다. 하지만 미미는 손도 대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런 건 저한테도 미리 알려주셨어야 해요. 그렇지 않아도 멕시코에서 험한 일을 겪고 온 아이인데 말이에요.”

대회 심사를 하다가 호출되어 불려온 진혁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텐데요. 일단 초콜릿을 마시고 나서 마저 이야기하죠. 식으면 맛없습니다.”

그는 초콜릿이 아직 따뜻할 때 미미가 먹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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