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9화
외전 33화
‘샤와르마? 그게 뭐지? 저걸로 뭘 하라는 거지?’
장유향은 멍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거대한 고기 꼬치를 보았다. 60cm는 되어 보이는 높이의 쇠꼬챙이에 꽂혀 있는 원뿔 형태의 고기 뭉치.
언뜻 보면 한 개의 고깃덩어리로 보인다. 왜 고기를 저런 모양으로 꽂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유향은 생각했다.
‘검은색 점이 점점이 박혀 있고, 녹색 얼룩이 져 있어.’
검은색 점은 후추일 가능성이 높았으나 다른 양념일 수도 있었다. 갈아놓은 파슬리일 수도 있고 가능성은 적지만 깨를 뿌렸을 수도 있다.
녹색 얼룩은 언뜻 보면 바질 페스토와 비슷한 형태였다. 하지만 얼룩이 균일하지 않고 얼룩덜룩한 것을 보면 다른 종류의 잎채소를 으깨서 바른 것일 수도 있다.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염지를 하거나 향신료로 처리를 하긴 한 모양이었다.
‘……고기를 아주 얇게 썰어서 다시 겹쳐 놓은 것 같은데. 왜 저런 짓을 하지? 형태 그대로 꼬치구이를 만들면 될 것을. 저렇게 해 놓으면 어떤 부위인지도 모르고 맛이 뭉개지잖아.’
「이 샤와르마는 커민과 카다멈, 계피와 강황, 정향으로 양념이 되어 있습니다. 닭고기 샤와르마는 바하라트로 양념이 되어 있다는 점을 참고하십시오.」
통역사가 페드로의 말을 장유향에게 전달했다. 장유향의 동공이 흔들렸다.
커민, 카다멈, 계피, 강황, 정향은 알고 있다. 하지만 바하라트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뭔지 전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자신이 지금은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놈들끼리만 다 알고 있구먼. 새로 나온 요리인가.’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앞으로 나서서 빠르게 줄을 섰다. 제한 시간은 1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고민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장유향은 오리와 비교적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닭고기 쪽으로 향했다.
진희는 어디 설지 잠시 고민했다.
‘샤와르마라.’
그녀는 알 마추부스 이후로 아랍 요리책을 이것저것 뒤적여 보았다. 그래서 우리는 케밥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랍에서는 샤와르마라 부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동해와 일본해 같은 건가.’
하지만 샤와르마가 뭔지 몰랐더라도 이 독특한 생김새의 원뿔형 꼬치를 보면 뭔지 알 수 있었으리라.
‘이거 이태원에서 많이 사 먹었는데.’
진희가 입맛을 다셨다.
마리오는 망설이지 않고 소고기 줄에 섰다.
‘바하라트는 복합 양념이지? 그러면 이쪽이 아랍 쪽의 센스에 맞을지도 몰라.’
그리고 그는 닭고기 케밥보다 소고기 케밥을 더 좋아했다. 즉 더 많이 먹어보았다는 뜻이다.
“뭐가 좋을까.”
진희는 고민하다가 장유향의 뒤에 섰다. 그녀는 저 소고기를 양념했다는 바하라트가 뭔지 정확히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가 무엇인지 불러줘서 안심할 수 있는 닭고기를 선택한 것이다.
「차례대로 줄을 서서 고기부터 가져가시면 됩니다.」
앞에 있었던 사람들이 칼을 들고서 고기를 썰어냈다. 꼬치처럼 독특하게 긴 칼로 표면부터 고기를 살살 긁어내듯 잘라내면 된다.
‘저게 한 덩어리가 아니었어.’
장유향은 고기의 성질을 눈여겨보았다. 얇은 고기를 한 장씩 꼬챙이에 겹쳐 쌓아 둔 것이다.
‘내가 너무 공부가 부족했구나.’
장유향은 한숨을 푹 쉬었다. 오랜만에 만나 뵌 주군께서는 시야를 넓히라 하셨다.
하지만 그가 향신료를 공부하고, 다양한 요리법을 시험한 것은 전부 진흙 오리구이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다른 요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 이런 요리도 남들이 다 알고 있는 것일진대 자신만이 몰랐다.
정저지와(井底之蛙).
우물 안의 개구리나 마찬가지였다. 홀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 뽐내며 그 바깥의 세상은 몰랐다.
그는 힐끔힐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라.’
다른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보고 난 다음에 재료 선택을 할 생각이었던 장유향은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다 다르잖아.’
임진희는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빵들을 살폈다. 얇은 빵도 있었고 두꺼운 빵도 있었으며 심지어 프랑스산 식빵도 있었다. 전부 미리 구워진 것들이었다. 진희는 그중에서 얇은 또띠아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이런 빵을 쓰던가?’
마지막으로 케밥을 먹은 지 오래 되어 정확히 어떤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아는 대로 요리를 만들 계획이었다. 먼저 고기를 조금 맛보았다.
‘음, 이건 양념이 진하니까 야채가 듬뿍 들어있는 편이 낫겠다.’
임진희는 창고로 가서 야채를 고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고른 것은 양배추였다. 노란 옥수수알과 당근, 토마토와 양파, 자색 양파와 샬롯.
‘매운맛을 덜 하려면 샬롯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닥치는 대로 넣다가 생각난 김에 단무지와 무도 넣었다.
‘고기가 양념이 센 편이니까 단무지도 잘 어울리겠지. 김밥에도 단무지를 넣잖아.’
그녀는 또띠아를 가져다가 그 위에 고기를 얹고, 각종 야채를 넣어 김밥처럼 돌돌 말아 보았다.
테스트 삼아서 타르타르 소스를 뿌려 보기도 했다.
“아- 이건 안 되네.”
진한 흰색 소스는 고기의 맛을 전부 잡아먹었다. 시계를 흘끔 본 임진희는 다른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건 결국 소스 맛이야. 다시 해보자.”
한국에서 잘 알려진 케밥은 독일 등 서방국가에 잘 알려져 있는 되네르(Döner) 스타일 원어로는 듀륌(Dürüm) 즉 속재료를 돌돌 만 것이다.
하지만 본디 케밥이란 ‘불에 구운 고기’라는 뜻일 뿐이다. 꼬치에 꿰어 만들기도 하고 접시 위에 밥이나 다른 구운 야채와 함께 올리기도 한다.
“토마토 어디에 있지?”
반면에 루이스는 양념 된 소고기를 가져다가 접시 위에 올려놓았다. 소고기의 맛을 살짝 보고 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것이다.
“음.”
그는 이미 양념 되어 있는 소고기의 배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다들 저마다 요리를 만들고 있었기에 이제 고기에는 줄이 없었다. 루이스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앞으로 나서서 양고기를 조금 잘라내 왔다.
“역시.”
이 양고기는 소고기와 양념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그는 이번에는 다른 양념이 된 소고기를 조금 잘라내 맛보았다. 열 개의 고기 꼬치는 전부 양념 된 방식이 달랐다.
‘양고기가 둘, 새끼 양고기가 둘, 그리고 소고기가 셋, 닭고기가 셋.’
그는 돌아다니면서 고기를 전부 먹어본 다음에 결론을 내렸다.
‘새끼 양고기가 제일 맛있는데?’
그리고 반드시 한 종류의 고기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칙도 없었다. 루이스는 새끼 양고기와 소고기를 섞기로 결론을 내렸다.
‘닭고기는 여기 좀 안 어울리네.’
그는 토마토를 토막 치기 시작했다. 양파와 함께 섞어서 멕시코식 살사 소스를 만들 생각이었다. 고기가 향이 강한 만큼 소스도 그에 어울리는 것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반면에 마리오는 식료품 창고에서 생닭을 찾아왔다. 마늘과 양파로 간을 하고 나서 익힌 후 고기를 잘게 찢고 있었다.
“고기는~ 고기하고~ 잘 어울리지요~.”
음정이 맞지 않는 이상한 노래를 부르면서였다.
인터넷 방송을 계속 하고 있는 만큼, 조리하면서 시간이 비지 않게 괴상한 리액션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는 닭을 삶아서 데쳐냈다.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자극적인 고기 곁에 담백한 고기를 곁들인다는 것이었다.
“오, 이게 되네?”
비린내만 없애고 소금을 뿌린 닭고기를 실처럼 가늘게 찢는다. 양념 된 케밥용 소고기 역시 비슷한 크기와 길이로 자른 다음에 한 줄 한 줄 땋기 시작했다. 날실과 씨실을 엮어 카펫을 짜는 것처럼 정성을 들였다. 손톱만 한 한 장이 만들어졌을 때 그는 한 입을 먹어 보았다.
“음, 괜찮네.”
* * *
‘그러니까 이 요리는 그냥 고기볶음에 빵을 곁들여서 먹는 거야.’
장유향은 다른 사람들을 훔쳐보면서 어떻게든 따라갔다. 그는 케밥에 대해서 몰랐을 뿐이지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 일단 당근과 양파 등 미리 쓰이는 야채를 전부 찾아서 씻어 놓고 길게 채를 썰어 두었다.
그리고 난 후에는 루이스의 뒤를 따라서 모든 고기를 다 먹어 보았다. 하지만 장유향은 그 양념 전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강하게 양념을 하다니. 애초부터 비린 고기를 쓴 건가?’
마리오가 새로이 닭을 익히는 것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 고기는 반찬처럼 쓰기로 했다.
‘아주 멋진 밥을 지어줄까?’
하지만 쌀이 아예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 요리는 쌀을 곁들여 먹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밀가루와 달걀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새삼스럽게 제한 시간을 깨달았다.
‘모모를 만들면 좋을 텐데.’
모모(馍馍) 즉 화권(花捲, 화쥐안)은 중국식 빵이다. 한국에서는 보통 중국식 꽃빵이라고 부른다. 안에 속을 채우지 않고 젓가락을 이용해 반죽을 길게 꼬아 만드는 밀가루 빵으로, 얇게 떼어내어 고기볶음이나 고추 잡채 등 다른 음식들과 함께 먹는다.
하지만 밀가루 빵을 지금부터 구우려면 시간이 모자란다. 이곳에는 밀가루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고 기존에 만들어진 빵들만 있을 뿐이었다.
시계는 계속해서 가고 있었고 이제는 25분밖에 남지 않았다. 장유향은 빵들도 하나씩 가져와서 먹어 보기 시작했다.
‘이건 좀 도톰하군. 다른 것보다 좀 나아. 식감이 모모를 닮았어.’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는 가져온 것들 중에서 지나치게 얄팍한 것들은 후보군에서 아예 제외했다. 만두도 피가 두툼하고 빵이 톡톡해야 먹을만하지 않는가?
유난히 두껍고 두툼한 빵을 골라냈다. 그리고 그 빵 위에 고기와 야채를 얇게 펴 바르기 시작했다.
“음.”
원시적인 피자같이 보였다. 하지만 토마토소스가 없어서 빵 위에 음식들이 고정되지 않았다. 장유향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그는 식은 빵 위에 기름을 뿌려 보기로 했다.
올리브유를 조금 발라 보았다가 버터로 바꾸었다. 하지만 버터를 바른 것 역시 실패였다. 데운 빵이 식어가면서 차갑게 굳은 버터는 맛있어 보인다기보다 느끼했다.
‘이것도 안 되네.’
눈앞이 흐릿했다. 절망이 그를 휘감았다.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얹어 놓은 채소들은 제멋대로 굴러떨어졌다. 장유향의 어깨가 축 처졌다.
‘주군께 실망을 드릴 수는 없어.’
* * *
‘쟤는 저거 뭐 하는 거야?’
임진혁은 장유향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볼 때부터 보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흘끔흘끔 바라보다가 야채를 손질했는데 볶음밥에라도 넣을 것처럼 조그맣게 자르는 풍부터 심상치 않았다. 케밥이 뭔지 아예 모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는 루이스를 따라서 모든 고기를 맛보더니, 고기는 아주 조금 남겨두었다.
표정을 보면 고기의 맛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아예 다른 고기를 가지고 와서 프라이팬에 굽기 시작했다. 빵도 여러 종류를 가져와서 먹어 보더니 제일 두툼한 네팔식 난을 골랐다.
길고 바삭바삭한 난은 이미 식어서 차가웠다.
그 위에 버터를 바르고 채소를 얹으니 고정되지 못하고 뚝뚝 떨어질 뿐이었다.
‘딱 보기에도 맛없어 보이는데.’
무하마드 왕자가 말했다.
「다들 자기식으로 개량해서 만들고 있는데? 샤와르마의 본래 형태를 살리는 사람은 없고. 라비쉬는 아무도 안 쓰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