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38화 (638/656)

제 638화

외전 32화

멕시코의 카르텔 항쟁.

블랙 골드라고도 불리는 카카오 빈을 둘러싼 멕시코 마약 카르텔 항쟁이 계속되고 있다.

남부의 카카오 빈 농장은 본래 남부 카르텔 연합에서 자신의 영역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으나 이를 납득하지 못한 서부 일파가 항의하며 습격해 왔다. 그러나 쳐들어온 서부 일파는 물론이고 남부 일파 역시 전면적인 총격전 끝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남부 카르텔 연합에 납치되었던 필리페 보르헤스 주니어는 스스로 탈출하여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구했다. 푸드 팩토리의 대표이사 임 쉐프는 필리페 보르헤스 주니어를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다.

황미미는 신문 기사를 덮었다.

“그분이 위험하지는 않으셨겠지요?”

“아무 문제 없었다고 합니다.”

황미미는 제럴드와 통화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자세한 보고서를 뒤적였다. 신문 기사의 어조들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아직 어린아이들과 남편이 위기에 처했을지도 모른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것 자체가 직접 하신 일일까?’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소주잔만 한 유리컵에 담겨 있는 초콜릿은 고체가 아니라 마시는 형태였다. 진혁이 전달해온 것이다.

비행기 안에서 만든 후 공항에서 인편을 통해 미미의 사무실로 바로 전달했다.

황미미는 서울에 있는 사무실에 앉아서 그 초콜릿을 받았다.

‘자칫하면 못 받을 뻔했어.’

잔 크기가 작은 만큼 양은 많지 않았다. 커피만큼이나 짙은 다갈색 음료의 위에는 갈아놓은 아몬드 조각이 뿌려져 있었다. 기껏해야 아몬드 한 개 분량일 것이다. 그것도 미미의 취향에 맞춘 것이었다.

“치즈 케이크에서 초콜릿으로 바뀌었어.”

미미가 중얼거렸다. 왕 비서가 활짝 웃었다.

“다이어트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걸 위해 카카오 빈 농장에 갔다가 쓸데없는 위협에 노출되셨지.”

그녀는 스위스산 만년필을 집어 들어 만지작거렸다.

“자칫하면 아이들도 다칠 뻔했고.”

‘집안에서 육아만 하고 계실 때 그걸 오히려 응원했어야 했을까?’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박지건과 제럴드, 이낙호의 보고를 종합해 보면 아이들은 위험하지 않았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지켰고 운이 좋아서 총탄을 피할 수 있었다. 이권을 위해서 싸우는 갱들 사이에서 무력한 보육교사들과 함께 남겨진 것.

미미는 생각했다.

‘진혁 씨가 일부러 두고 가신 걸까?’

진혁은 자신의 과거와 능력을 털어놓았다. 미미가 생각하기에 진혁의 능력은 슈퍼맨과 비슷했다. 세계 어느 곳이라도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에 대해서 뭘 하는지 다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추측했다.

‘자녀 교육은 가능하면 부모가 직접 하는 편이 좋겠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오해였다.

애석하게도 그녀가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진혁이 남긴 말은 ‘아이들의 견문을 넓혀주고 싶어서’ 멕시코에 데리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진혁은 아이들에게 카카오 빈 농장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위험한 것 같은데.’

그녀는 천마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다.

일고여덟 살 된 고아들은 동굴에 갇혀서 잡초를 캐고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어떻게든 생존했다.

하지만 두 살도 안 됐는데 총기를 든 성인들을 상대하는 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어차피 경호원을 계속 데리고 다닐 아이들인데. 무력 훈련이 필요할까? 한국 국적이라 나중에 군대에 가야 한다고는 해도. 지금은 너무 이르잖아.’

미미는 홧김에 자그마한 잔을 통째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

미미의 동공이 흔들렸다.

뜨겁고 진하다.

그 어떤 커피보다도 더 강렬한 향기가 코와 입을 꽉 메웠다.

여태까지 먹어본 어떠한 초콜릿보다도 더 끈덕지다.

커피가 액체라면 이 초콜릿은 고체였다.

케첩처럼 진득한 액체가 파도처럼 밀려와 그대로 목구멍까지 쭉 내려갔다.

여태까지 맛보았던 초콜릿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정말로…….”

그녀는 혀를 내밀어 잔을 핥았다. 아몬드 조각이 살살 씹혔다. 달콤하고 아름다운 음료.

오늘은 새벽부터 일했다. 진혁과 아이들의 소식 때문에 새벽에 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전에 예정된 비즈니스 미팅이 있어 당장 일어나서 진혁을 찾으러 가지도 못했다.

방금 마신 초콜릿은 달콤하고 맛있었다.

조금 전까지 피곤한 줄도 몰랐는데 순식간에 전신에 활력이 솟구쳤다.

‘그렇구나.’

미미가 눈을 깜빡였다.

임진혁은 분명히 모든 것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녀는 애정을 담아 자그마한 유리잔을 어루만졌다. 남아있는 초콜릿의 잔향이 달콤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당황하고 힘들어할까 봐 이 타이밍에 맞춰서 초콜릿을 보내주신 거야.’

과연 기운이 났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전에 진혁이 만들어 주었던 치즈 케이크들도 그랬다.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애들은 괜찮을 거야.’

진혁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총격전을 목격했다고 하는 박지건. 그는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데 홀로 따로 떨어져 나갔다가 다쳤다.

반면에 아이들과 찰떡같이 붙어 있었던 이낙호와 엘리엇은 놀랐을 뿐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진혁이 모든 것을 안배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쪽이 더 위험할 텐데 말이지.’

진혁의 육아 교육 방식은 그녀에게는 터무니없이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진혁이 보기에는 안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미는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언어에 스페인어도 추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진혁의 판단력을 믿었다.

* * *

아침.

「오늘 드디어 진혁 쉐프가 돌아오겠군!」

무하마드 왕자는 생기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진혁과 함께 심사를 한다는 기대감에 어젯밤 잠을 설쳤다. 비서가 가져다준 신문 기사를 읽다가 그가 미간을 좁혔다.

「미스 임이 푸드 팩토리의 대표 이사던가?」

「아닙니다.」

아침 식사로 베이컨과 써니사이드업 –즉 뒤집지 않고 노른자를 햇님 모양으로 동그랗게 익혀낸 달걀부침을 먹고 있던 페드로 쉐프가 고개를 들었다.

「임진혁 쉐프님이 대표이사지요. 임진희 쉐프님은 푸드 팩토리 직원이지만 동시에 황 그룹 소속입니다.」

「그렇다면 진혁 쉐프로군.」

「진혁 쉐프가 멕시코에서 뭔가 했습니까?」

무하마드 왕자가 코를 벌렁거리며 흥분했다.

「역시 대단한 사람이야. 총격전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을 구출해서 살려내다니.」

「대단한 담력이군요.」

페드로 쉐프가 끼어들었다. 무하마드 왕자는 다른 기사들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들을 발견했다.

「항쟁이 어찌나 처참했는지 양쪽 갱들이 전부 죽었다는데. 쯧.」

스너프 필름 같은 장면이었다. 그 와중에 달아난 사람도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 무하마드 왕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혁 쉐프도 위험할 뻔했군. 멕시코에서야말로 방탄 차량이 필요한데. 멕시코에서 쓸 차량을 따로 선물해야겠어.」

「진혁 쉐프님이 다치거나 하지는 않으셨는지 걱정이 되는군요.」

왕자는 멀건 곡물 죽을 떠서 마셨다.

오후에 요리를 심사할 예정이기 때문에 일부러 맑은 곡물 죽만을 먹었다.

「그래도 뭔가 좀 더 드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페드로 쉐프가 걱정했다.

「이 정도가 딱 적당해.」

전에는 아예 끼니를 거르고 물만 마시고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한 끼 이상 굶고 나서 식사를 하면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진혁이 만든 케이크처럼 황홀하리만큼 맛있는 음식을 기다릴 때라면 모를까, 객관적으로 점수를 줘야 하는 대회 심사 때에는 굶을 수 없다.

오늘 심사할 음식은 바로 샤와르마.

새끼 양고기와 소고기, 그리고 닭고기를 준비했다.

「꼬치를 준비하는 것부터 할 걸 그랬나.」

「아닙니다, 그렇게 하실 거였다면 차라리 아랍 요리 경연을 하시는 것이 좋았을 겁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고기 자체는 동일한 조건이니 어떤 조합을 만들어 내는지가 기대가 되는군요.」

페드로 쉐프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다음에는 아예 왕자님 이름을 걸고 아랍에서 요리 대회를 여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페드로 쉐프의 말에 무하마드 왕자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건 어렸을 적에 많이 해 봤지. 지금 30회가 거의 다 됐는데. 자네는 참석해본 적이 없나?」

「……제가 궁전에만 머물러 있느라 견문이 좁아 몰랐네요. 그런데 왕자님,」

페드로 쉐프가 물었다.

「왜 샤와르마는 견본을 따로 만들지 않으셨습니까?」

「샤와르마는 한국에서도 흔히 먹는다고 하던데?」

무하마드 왕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요리 자체가 자유도가 높으니 굳이 샘플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 여겼네.」

「아, 한국에서도 샤와르마가 흔한 줄은 몰랐습니다」

「길거리 음식으로 많이들 먹는다고 하더군.」

* * *

진희는 대회가 시작하기 전에 임진혁에게 연락을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겨우 통화에 성공한 것은 대회가 시작하기 직전이었다.

“너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 애들은?”

쏜살같이 쏟아내는 말에 진혁이 웃었다.

“아무 문제 없어. 그럼.”

“야! 진짜로 괜찮-어.”

그녀는 통화가 끊긴 스마트폰을 아련하게 내려다보았다. 루이스 강이 물었다.

“진혁이 괜찮대?”

“괜찮아 보이네.”

임진희가 중얼거렸다. 뒤늦게 합류한 마리오가 물었다.

“오늘 대회에서는 뭐가 나올 것 같아?”

“입가나 닦고 다녀.”

진희는 휴지를 내밀어 마리오의 입가를 훔쳐냈다. 빠에야의 밥알 조각이 토마토소스와 함께 붙어 있었다. 마치 그저께 보았던 둘째 조카 같았다.

‘책이는 이렇게 묻히고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명이는 맨날 흘리니까.’

자연스럽고 다정한 손길에 마리오가 눈알을 굴렸다.

“진희! 나를 유혹하면 안 되지. 난 이번 대회에서 무사히 우승하고 돌아가서 바로 입양을 할 거란 말이야. 연애 같은 걸 할 시간이 없어.”

“누가 너랑 연애한대?! 조카 같아서 그랬어!”

“네 조카들은 한 살이잖아.”

“그래, 네가 한 살 같다.”

두 사람은 티격태격하면서 요리대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이다, 정말로 별일 없었구나.’

멀쩡한 임진혁이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는 걸 확인하고 진희는 한숨 돌렸다. 만일 누군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놀랐을 것이다.

마리오도 진혁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멀쩡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 개의 거대한 원뿔 모양, 고기 꼬치가 유리 안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케밥?’

「오늘 만들어야 하는 음식은 샤와르마입니다.」

페드로 쉐프가 설명하고, 통역사가 옆에서 통역을 해 주었다.

진희는 기뻐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케밥? 정말로 케밥? 다행이다!’

비교적 익숙하다.

알 마추부스처럼 뭔가를 구워내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더 쉽다. 고기 역시 미리 준비되어 있으니 고기를 굽거나 익혀야 할 필요는 없고, 적절한 크기로 썰어내기만 하면 된다.

‘나한테만 쉬운 건 아닐 텐데.’

그녀는 주변에 서 있는 참가자들을 보았다. 다들 예상외로 잘 아는 음식을 만나서 기뻐하는 가운데 최연장자인 장유향의 표정이 기묘했다.

‘설마 저분…… 케밥이 뭔지 모르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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