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37화 (637/656)

제 637화

외전 31화

진혁이 눈을 껌뻑거렸다. 다른 사람의 공을 빼앗는 것은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아니, 그건.」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 아들이 한 일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호르헤스 부자는 몇 번이나 감사의 말을 전했고 진혁은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그보다 이 초콜릿을 드셔 보시죠.」

「시간이 너무 늦어서 저희들은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건 집에 가져가서 먹어도 되겠습니까.」

진혁은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맛인지 듣고 싶었는데.’

하지만 이 중에서 진혁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황미미나 임진희, 하다못해 마리오라도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초콜릿을 먹고 가라고 조언을 했을 것이다.

필리페 호르헤스는 눈치 없이 자리를 떠났다. 초콜릿은 가면서 먹겠다며 챙긴 채였다.

호르헤스 부자를 배웅하고 진혁은 책이의 뺨을 잡아당겼다.

『야, 너는 왜 이렇게 어린 거냐? 내가 괜히 생명을 구해줬다는 감사의 말을 듣고 있잖아.』

유아 의자에서 젖병을 쪽쪽 빨고 있던 책이는 억울했다.

『뭐야?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는데.』

『어쨌거나 가정 교육이 다시 필요해. 너는 현대 화기의 종류와 폭발력부터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어.』

평화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임진혁의 말에 임책이 눈을 가늘게 떴다.

『역시 그런 거였군.』

『엉? 뭐가?』

진혁이 반문했다. 하지만 임책은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러 이 세계의 실상을 알게 하려고 여기에 데려온 거였어.’

서울과 이천, 그곳은 언뜻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이곳 멕시코는 결코 평안하지 않았다. 강호의 일반적인 마을과 마찬가지였다. 사파들이 멋대로 거점을 만들며 세력끼리 싸우는 사이에 민간인들이 죽어 나간다.

임책은 결코 순진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무공의 존재 자체를 몰라. 이곳에서 무공을 아는 사람은 그 자체로 전략 병기가 될 수 있겠지. 사실대로 말해 봐. 나를 훈련시켜서 세계 통일을 할 셈이야?』

임책은 심각했다. 하지만 진혁은 입가에 분유를 묻힌 채 진지하게 속삭이는 아기를 보고서 피식 웃어버렸다.

『오해야.』

『일부러 살아남으라고 저기에 던지고 온,』

『아니, 정말 오해라고.』

* * *

전용기 안.

아기들을 양쪽에 안고 비행기의 계단에 오르며 진혁은 생각했다.

‘박지건도 데려올 것을 그랬나.’

국내의 의사들은 총상을 보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현지의 의료진들에게 수술을 맡겼고, 보호자로 왕이 비서를 남겨두고 왔다.

수술을 마치고 비행기 탑승이 가능한 순간 왕이 비서가 챙겨서 돌아올 예정이었다.

‘앞에 나섰다가 유탄에 맞았다고 했지.’

이번 일에서 유일하게 제일 피해를 본 자였다. 진혁은 박지건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줄 생각이었다.

엘리엇과 이낙호는 돌아오는 내내 끙끙 앓았다. 그들은 별도의 병실에서 격리되어 있었다. 진정제 주사를 맞았는데도 열이 올랐다.

이번에 두 육아도우미를 돌보기 위해 탑승한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도의 외상은 없습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문제입니다.」

특별히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지만 총격전에 휘말린 것 자체가 크나큰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의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동안 진혁은 책이와 명이를 데리고 엘리엇과 낙호를 보러 왔다. 명이가 보채면서 칭얼거렸기 때문이었다.

책이는 악몽에 시달리는 육아 도우미들을 복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이토록 나약할 줄이야.』

강호의 그 누구를 데려와도 이들보다는 담력이 있을 것이다.

하찮은 점소이라 할지라도 무림인의 행사에 끼어들었다가 생명을 구함받았다면 일생의 기연이라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하다못해 고마워하며 만두 하나라도 내밀고 굽신거리며 엎드릴 텐데, 이놈들은 그냥 아팠다.

‘그래서 정말로 시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이 혼자였다면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약한 짐 덩어리들이 둘이나 있어서 골치가 아팠다.

“엘, 엘.”

명이는 까르륵거리며 엘리엇의 품에 파고들어 갔다. 엘리엇은 잠결에 작고 말랑한 아이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굳어있던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다.

‘오.’

아버지 임진혁이 자주 하던 일이다. 악몽을 꾸는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약간의 진기를 흘려 넣어 편안한 꿈을 꾸게 만드는 것.

명이가 그것도 보고 배웠는지는 몰랐다.

책이는 그 모습을 보고서 이낙호의 품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곧이어 이낙호도 새근새근 깊게 잠들었다.

나가 있던 의사가 돌아왔다.

「면회는 끝, 아.」

「아이들이 자고 있으니까, 조금 자게 내버려 두지.」

「알겠습니다.」

두어 시간 정도 낮잠을 잔 후 두 아이들은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후에도 두 육아도우미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평온해 보였다.

개운하게 자고 난 책이가 임진혁에게 물었다.

『저자들은 어떻게 할 거지?』

서류에 서명하고 있던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저 자들이라니?』

『보모들.』

『음.』

진혁이 턱을 괴었다.

『네가 회전 장풍을 사용하는 걸 봤지? 어차피 보육교사로 일하는 계약서에도 비밀 보장 건이 들어있긴 하니까 상관없을 텐데.』

『아?』

『떠들고 다닐만한 사람도 아니야. 인성검사가 전부 끝난 자들이라서.』

뭔가를 누군가에게 알린다면 루버 셔터를 파괴했을 때 알렸을 것이다. 진혁은 육아도우미들에게 딱히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었다.

임책이 딱딱하게 말했다.

『적대하는 세력에서 보낸 첩자일 가능성도 있다.』

『…….』

진혁은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미미 씨가 보낸 사람이긴 하지.’

적대 세력은 아니지만 친밀한 세력.

진혁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지만 가는 길은 다를 수도 있다.

육아와 교육에 있어서 점점 더 다른 방향을 가고 있었다.

과연 황미미의 육아 교육과정에 내공을 사용한 총기 발사와 살인이 포함되어 있을까?

『네 말이 맞아. 저 두 사람의 입을 막아야겠다.』

『그러니까 죽일 셈이냐고!』

『입을 막는데 왜 죽여? 다른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일반인에게 섭혼술을 사용하면 정신이 무너지고 시간이 지나면 백치가 되잖아.』

진혁은 서류의 서명을 전부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책이와 명이를 자리에 두고, 비행기 뒤쪽에 마련된 병실로 갔다.

경호원들이 모여 있는 방 안쪽에서 제럴드가 호기 있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따아아앙! 하고 총을 쏘니까 그놈들이 아예 구르면서 제발 살려주세요! 하는 거야.」

「허풍 좀 그만 쳐라.」

「내 실력 몰라?!」

운전밖에 안 한 놈이 자신이 다 쓰러뜨렸다고 주장하는 꼴을 보며 진혁은 피식 웃었다.

저런 허세를 부리는 놈들이 간혹 있었다.

그는 다시 엘리엇과 이낙호가 머무는 병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 잠시만 비켜 주시지요.」

「예? 예.」

이낙호와 엘리엇, 둘 다 깨어 있었다. 진혁이 입을 열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

“책이하고 명이는요? 아이들은 괜찮은가요?”

낙호에 이어 엘리엇이 아이들의 안부를 물었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아이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서 많이 놀랐습니다. 두 분은 놀라지 않으셨습니까?”

이낙호가 결심한 듯이 입을 열었다.

“자녀분이 아주 특별합니다.”

“그렇죠.”

“더……더 교육이 필요합니다. 제가 꼭 같이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엇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명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저희들은 전부 죽었을 거예요. 하지만 명이는 배울 게 더 많아요.”

“저도 동의합니다. 두 분은 아주 훌륭한 선생님들이시죠. 계속해서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혁이 서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봉투를 내밀었다.

“이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위로금입니다.”

“아뇨, 저희는 한 게 없,”

엘리엇이 봉투를 거절하려고 했지만 낙호는 아무런 말 없이 봉투를 받았다.

“책이가 당신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명이도요.”

“아!”

엘리엇 조가 비로소 봉투를 받아들었다.

“돌아가셔서 한 달은 병가로 쉬셔도 좋습니다. 유급으로 처리해드리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진혁은 뒤돌아서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나서 방 안에서 엘리엇이 낙호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님께서도 알고 계셔…….”

“……모를 수가 없지.”

“애들이 두 살이 되기 전에 윤리교육을 시작해야…….”

열정적인 이들이었다.

* * *

임진희는 방에서 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요즘 서점은 하루 만에 배송해줘서 좋다니까.”

아랍 요리 알 마추부스에 대한 책이었다. 알 마추부스만이 아니라 다른 아랍 요리에 대한 기술도 적지 않았다. 옆에서 마리오가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진혁이는 어디로 갔는데? 오늘은 온대?”

“심사를 해야 하니까 오늘은 오겠지.”

“이 요리도 맛있겠다.”

“음. 이건 한번 해 볼까?”

숙소의 주방에는 시험 때만큼은 아니지만 다양한 재료가 준비되어 있어, 요리사들이 직접 요리를 해먹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미리 신청해도 되었다.

“남이 해주는 요리가 제일 좋은데.”

진희는 입맛을 다시며 어떤 요리를 할지 골라 보았다. 마리오가 투덜거렸다.

“누가 몇 점으로 통과했는지 궁금한데 알 수가 없으니까 답답하다.”

“마리오 여기에 있어?”

문이 열리고 루이스가 들어왔다. 그가 손짓했다.

“스페인식 빠에야 먹을래?”

“오! 먹을래!”

진희가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에야는 흔히 볶음밥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볶음밥과는 조리 과정이 다르다. 볶음밥은 이미 완성된 밥을 넣어서 기름에 볶아 다양한 재료와 함께 완성하는 음식이지만, 파에야는 리조또나 죽과 마찬가지로 생쌀을 사용한다.

소프리토라 불리는 기본 소스를 만들기 위해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각종 야채를 넣고 간을 한 후에, 갈아낸 토마토를 넣고 레몬과 마늘로 향을 낸다.

또한, 여기에 추가할 해산물이나 고기를 소프리토와 함께 볶다가, 여기에 생쌀과 육수를 추가하면서 자작하게 끓여내는 것이다.

“이거 완전 본격적인 빠에야인데? 안토니오한테 배운 거야?”

신선하고 통통한 새우가 올라가 있는 빠에야는 걸쭉한 강황 색깔이었다. 거기에 네모나게 잘라낸 리코타 치즈가 두어 조각 얹혀 있었다. 따뜻한 올리브유와 토마토의 향이 감돌았다.

“안토니오한테 배운 걸 좀 바꾼 거야.”

강 씨 형제의 대화에 진희가 물었다.

“안토니오가 누군데?”

“형 대학 때 룸메이트. 스페인 사람이야.”

“아, 배고파.”

진희가 제일 먼저 국자로 밥을 듬뿍 떠냈다. 빠에야는 양이 넉넉했다. 거의 5~6인분은 되어 보였다.

“많이 먹어도 돼?”

“응. 저번에 칠면조구이 하면서 쌀에 손대니까 갑자기 빠에야가 먹고 싶어지더라고.”

한 입을 맛본 진희가 눈알을 굴렸다.

“이거는 진혁이가 먹으면 딱 좋아할 맛인데.”

“너랑 진혁이랑 취향 다르잖아. 네 취향이 아니라는 얘기를 돌려서 하네.”

“아니야, 이거 정말 맛있어. 근데 진혁이가 진짜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걔가 돌아왔으려나?”

진희가 핸드폰을 꺼냈다. 진혁에게 연락해보려는 것이었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어, 20분 후면 온대. 자기 빠에야도 덜어놔 달라는데?”

그때 마리오도 스마트폰으로 진혁을 검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수로 연락처가 아닌 모바일 웹 화면에서 검색을 하고 말았다. 결과물을 본 마리오가 사색이 되었다.

“진혁이가 멕시코에 갔어?”

“어? 응.”

“마약 카르텔 항쟁에 휘말렸다가 지금 한국으로 들어왔다는데.”

“뭐?”

“여기, 이 신문 기사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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