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님의 베이커리-636화 (636/656)

제 636화

외전 30화

필리페 호르헤스 주니어는 충혈되어 벌게진 눈으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 초콜릿 맛을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어요.」

그는 충혈된 눈으로 초콜릿을 씹어 삼킬 듯 바라보았다.

「이건 크리오요군요.」

싱글 빈투바 초콜릿(Single Bean To Bar Chocolate).

보통 가공 초콜릿들은 다양한 카카오 빈을 소재로 하여 카카오 매스와 버터, 그리고 다른 것들을 섞어 만든다. 일반적으로 고가인 카카오 매스의 양을 줄이고 인공감미료와 설탕 등을 추가해서 맛을 낸다.

이번에 진혁이 만들어낸 싱글 빈투바 초콜릿은 다른 빈투바 초콜릿과도 달랐다.

크리오요의 카카오 버터만을 이용해서 고도로 압축했다.

「정말로 크리오요 그 자체입니다.」

호르헤스 주니어가 다시 중얼거렸다.

다이어트를 하는 황미미에게 건강에 좋은 초콜릿을 주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어 보았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공급하려면 크리오요가 더 많이 필요하다.

「맞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르헤스 농장에서 주로 재배하는 크리오요(Criollo)는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 중 오직 5%만 차지하고 있는 희귀한 종이다. 풍부하고 깊은 맛 덕분에 ‘카카오의 왕’이라고도 불린다. 다른 카카오빈과 다르게 하얗고 통통한 콩의 겉껍질은 푸른색과 노란색이다.

필리페 호르헤스 주니어는 그 콩의 맛을 잘 알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날 아버지와 함께 농장을 돌아다니며 콩을 수확한다. 당나귀에게 콩을 싣고 내려와 옆 마을의 발효와 건조 공장으로 옮긴다. 거기서 특수한 상자에 넣고 마당에 상자를 펼쳐놓아 바나나잎으로 덮어 발효를 한다. 층층이 쌓여있는 카카오 빈들이 발효를 마치는데 대략 이레 정도가 걸린다.

발효를 마치면 일주일간 순수한 태양 빛 아래에서 뜨겁게 건조한다. 이때 제대로 골고루 말려야 떫은맛이 깔끔하게 사라진다.

발효하지 않고 건조만 해도 판매할 수 있지만, 발효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가격이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호르헤스 주니어가 중얼거렸다.

「맛있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크리오요 맛이 강하게 날 줄은 몰랐습니다. 항상 떫은맛이 남아 있었는데요.」

「그렇습니까?」

「사실 카카오 매스나 버터는 조금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시 떫은맛이 남아있었습니다.」

호르헤스 농장은 발효와 건조까지 마친 카카오 빈을 팔았다. 그리고 호르헤스 주니어는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카카오 빈을 가지고 놀았다.

흠집이 난 것을 먹어 보기도 했다. 먹어봤자 씁쓸한 맛이 날 뿐이다.

발효하고 건조한 카카오 빈을 볶으면 갈려 나가면서 껍질 부스러기와 씨앗 부스러기가 분리된다. 그렇게 분리되어 나온 씨앗 간 것을 카카오닙스라고 하며, 이것을 볶아서 가공하여 카카오 매스와 버터로 분리한다.

그 상태에서 맛을 보아도 이런 맛은 나오지 않았다.

진혁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볶을 때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집니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저와 아버지가 함께 딴 콩의 일부가 이런 초콜릿이 된다니.」

호르헤스 주니어가 말했다.

「……사실 저는 아버지에게 카카오 빈 농장 일 따위는 그만두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달콤하지만 씁쓸하다. 그 맛은 마치 인생과도 같다. 호르헤스 주니어가 중얼거렸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음.」

늦은 인사였다. 그가 말했다.

「자녀분들이 갖고 계신 특수 능력. 그게 아니었다면 저는 벌써 죽었을 겁니다. 아버지는 저보다 카카오 빈 농장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놈의 농장에 매달리느라 어머니도 돌아가셨죠.」

「음?」

진혁이 멀뚱하니 눈을 끔뻑였다.

왕이 비서가 사전 조사를 했을 때 마담 호르헤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이혼하거나 사별했겠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한 날에도 아버지는 병원에 없었습니다. 카카오 빈을 수확해야 한다고 농장에 가셨죠. 그놈의 카카오 빈!」

호르헤스 주니어가 주먹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내리쳤다. 이야기에 흥미를 잃은 진혁은 호르헤스 주니어가 주먹으로 자신을 때리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놀라울 정도로 약해 보이는 힘이었다. 새끼 기린이 발굽으로 건드리는 것 같았다. 일부러 약하게 때리는 건지 힘이 없는 건지 궁금했다.

「가정부가 죽을 가지고 올 거야. 장시간 굶었으니 조금 더 먹는 게 좋아.」

진혁이 말했다.

「남부 카르텔에서 저희 농장을 찍었을 때부터 저는 카카오 빈 농장을 그만두자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저를 납치하겠다,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거든요. 아들이 소중하다면 보호비를 내놓으라고 하는데 아버지는 총으로 상대하겠다며 설쳤습니다. 결국, 저는 납치를 당했고요. 이대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진혁에게 안겨있던 책이가 전음을 보냈다.

『이건 이제나저제나 달라진 게 없네. 생명을 구해주면 갑자기 자기 인생을 복기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잖아. 상대방이 기저귀를 갈고 싶다거나, 초콜릿을 먹어보고 싶다거나,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멋대로 계속 나불나불…….』

진혁이 책이의 말을 끊고 물었다.

『기저귀 갈아줘? 안 쌌잖아?』

『……당연히 안 쌌지. 예시를 든 거야.』

『영어는 어떻게 이해했어?』

『몰라도 대충 이해할 수 있어. 이런 상황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음.』

진혁이 피식 웃었다. 무림맹의 맹주인 남궁소천은 맹주가 되기 전 천하를 주유하며 수차례 악인을 처단하고 무력한 이들을 구해 주었다. 보아하니 그렇게 구한 사람들은 은인에게 감사의 말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 이야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아들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호르헤스 주니어는 손을 멈추었다. 더 이상 약한 힘으로 허벅지를 때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부들부들 떨리는 양손으로 소파 테이블을 짚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혁 대표님께서 이 카카오 빈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저희 아버지의 농장을 방문하러 오시지 않았다면 저는 벌써 죽었겠죠.」

「음.」

진혁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응대했다. 호르헤스 주니어의 이야기는 클라이맥스를 지나 결말로 치닫고 있었다.

「저를 죽일 뻔한 것도, 저를 살려준 것도 전부 크리오요입니다. 이게 모두 신의 뜻이겠지요. 대표님이 원하시는 대로 아버지를 설득하겠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삐용삐용, 괴상한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손님이 오셨어요.”

가정부가 활짝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체격만 봐도 누군지 알 수 있다. 160cm 전후로 체구가 작지만, 다년간의 노동으로 전신은 근육으로 다져져 있는 자. 필리페 호르헤스 주니어의 아버지인 필리페 호르헤스였다. 쪼글쪼글한 얼굴이 미소 덕분에 활짝 펴져 있었다.

그는 투우를 하는 황소처럼 아들에게 돌진했다.

「주니어!!!」

「아버지!!!」

두 사람이 서로 껴안았다.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아버지하고 싸웠다며. 벌써 죽었을 거고 그 다음은 뭐야?’

진혁은 눈을 끔뻑였다.

안쪽에서 통화하고 있던 왕이 비서도 이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임 대표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끝납니다!”

그가 안쪽에서 소리쳤다.

왕이 비서가 이 중 제일 바빴다. 이쪽의 경찰 서장에게 요구할 것을 하고, 황 그룹의 언론 보도 팀과도 협력을 하는 등 모든 일을 전부 혼자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통역사가 올 때까지 잠시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진혁이 이야기하자 호르헤스 주니어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통역을 하겠습니다.」

「좋아.」

호르헤스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아버지께서는 저를 구해주셔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뭘 원하시는지 여쭤보시는데요.」

진혁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것이었다.

「카카오 빈을 좀 더 많이 사고 싶은데.」

「얼마나 많이요?」

「지금 판매 중인 양의 2배 정도.」

「아시다시피 저희는 독점 판매는 하지 않습니다. 소규모 농장이니만큼 독점거래를 했을 때 발생하는 일들이 두렵거든요.」

「그럼 농장을 늘리지.」

진혁이 소파 테이블에 있던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이 농장과 이 농장을 샀어. 여기를 관리해 주는 게 어떻겠나?」

진혁은 양쪽에 있는 농장을 매입해 실무를 잘 아는 관리자에게 관리를 맡기고자 했다. 이미 출발하기 전에 진행한 건이었다.

「예에에에?!」

양쪽에 있던 게일 농장과 크리스토퍼 농장. 이곳들은 크리오요가 아닌 다른 카카오 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두 농장 모두 카르텔에 협박을 당하다가 보호비를 많이 내서 파산하기 직전의 상태였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필리페 보르헤스가 뭐라고 말했고 주니어가 그 내용을 전달했다.

「게일 아주머니와 크리스토퍼 아저씨의 농장을 뺏을 수는 없다고 하시는데요.」

한국으로 치면 평생을 이웃사촌 겸 직장 동료로 살아온 셈이다. 사이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카르텔 때문에 피해를 본 사이에 이득을 얻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관리인으로 누굴 고용하든 그건 상관없다고 전해 줘.」

그 이야기를 들은 펠리페 호르헤스는 조금 안심한 것 같았다.

「게일 농장에서는 콜렉시오 카스트로 나랑할을, 크리스토퍼 농장에서는 트리니타니오를 기르고 있습니다.」

「둘 다 개량종이군?」

자연 상태의 카카오는 크게 크리오요와 포라스테로 두 종류로 나뉜다. 포라스테로는 빠르게 자라고 열매를 많이 맺어 전 세계 카카오 중 85%를 차지하고 있다. 씁쓸한 맛이 강해 다크 초콜릿에 많이 사용된다.

크리오요와 포라스테로를 교배한 품종이 트리니타니오, 그리고 이 포라스테로를 개량해 병충해에 강한 품종으로 개량한 것이 콜렉시오 카스트로다.

「예, 이미 카카오나무가 자리를 잡았으니…….」

지금 재배 중인 품종을 갈아버리려면 멀쩡한 카카오나무를 뽑아 죽이고 새로운 품종을 심어야 한다.

진혁이 정리했다.

「푸드 팩토리에는 콜렉시오 카스트로 나랑할과 트리니타니오를 공급해 줘. 크리오요는 내 쪽으로 보내면 되고.」

호르헤스 부자는 둘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 쪽이 입을 다물자 아들이 말했다.

「그리고 카르텔이 지금은 물러났더라도 그 자리에 새로운 갱이 들어올 겁니다.」

현실적인 문제였다. 멕시코의 갱은 바퀴벌레와도 같아서 죽여도 죽여도 어디선가 새로 나타났다.

「아, 그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진혁이 씨익 웃었다.

「저희 농장에 사설 경비 부대를 고용할 만큼의 예산은 없습니다. 가시고 나면 또다시……,」

그때 교섭을 마친 왕이 비서가 나타나서 대화에 끼었다.

「황 그룹에서 경비 부대를 보내줄 것입니다.」

왕이 비서가 이 근방의 변호사를 초청해 왔다. 계약서에 서명을 마친 후, 필리페 호르헤스가 손을 내밀었다.

「아들을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혁이 싱긋 웃었다.

「괜찮아. 그보다 이 초콜릿을 좀 먹어보라고. 아들은 마음에 들어 하던데 말이야.」

진혁은 그들을 식당으로 데리고 왔다.

「이동하기 전에 죽이라도 좀 먹이는 게 좋겠어. 의사를 불러서 검진은 끝냈지.」

가정부가 죽을 내왔다. 필리페 호르헤스는 초콜릿, 주니어는 죽을 앞에 두고 자리에 앉았다. 주니어가 죽을 뜨다가 숟가락을 멈추고 말했다.

「아버지께서 목숨을 걸고 저를 구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십니다.」

‘아니, 목숨을 걸지는 않았는데. 그리고 내가 한 게 아닌데. 아들이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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